The genius grandson of the cash king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2)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2화(2/200)
#002화
새천년, 2000년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가 종각에서 울려 펴졌다.
종말론자들을 염원을 뒤로한 채 열린 희망찬 21세기.
전 세계의 비행기가 추락하고 전자제품이 오류를 일으키고,
핵미사일 자동으로 발사돼 지구가 멸망할 것이란 우려를 키웠던 Y2K는 오지 않았다.
‘새롭게 온 것은 바로, 나다.’
한 번 지나쳤던 지난 삶을 되돌아 21세기의 첫 날로 다시 온 것이다.
정훈은 처음에 꿈인 줄 알았다.
과거로 돌아온 상황을 현실이라 믿는 게 더 이상한 사람이다.
폭발로 인한 혼수상태에서 꾸는 꿈으로 생각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을 넘어 사흘이 되는 날 아침이었다.
아직은 어두운 어스름한 이른 새벽에 눈을 뜨며 생각했다.
‘나는 되돌아왔다.’
결국 그는 이 믿기 어려운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부터 윤정훈은 진지하게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앞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들을 세세하게 적었다.
기억력은 타고났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려지는 법.
기록해야 할 것을 빠짐없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주요 사건 사고, 주가 변동, 금융 위기, 집값 폭등, 9.11 테러 등등. 사소한 것부터 세계를 뒤흔든 중요한 사건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또 기록했다.
하지만 지난 생에도 한 번도 사지 않은 로또.
번호를 기억하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비상한 기억력이 있다고 해도 관심 없었던 분야는 기억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정훈은 가장 중요한 숫자를 적었다.
폭발이 있기 전에 고현민 변호사가 알려 준 마카오 돼지 은행의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19611963198304261155 pw : 1984 ]이 안에 적지 않은 돈이 들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윤정훈이 태어났을 때 만든 계좌니 분명 아직 돈이 있다.
비록 얼마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정훈은 자신이 왜 폭발로 살해되어야 했는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각난 기억을 끌어 모아 퍼즐을 맞추었다.
마지막에 들었던 사장님의 말과 고현민 변호사가 메모로 적어 준 조직,
‘천지회’.
고현민 변호사가 경고한 것처럼 폭발을 일으킨 놈들은 천지회가 분명하다.
폭발의 배후인 그들은 날 노리고 있었다.
또한 그 자리에 있던 이형중 사장은 천지회에서 꽤 중요한 위치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지금도 나를 노리고 있을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정훈은 선택해야 했다.
지난 인생처럼 조용히 살 것인가?
1조 원, 미국 슈퍼 복권보다 더 큰 돈을 가질 수 있는 현정옥의 상속자가 될 것인가?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돈 앞에 정답은 항상 정해져 있다.
돈 많은 게 진리다.
정훈은 자신의 몫인 당첨금을 챙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번 생에는 다행히 1등에 당첨된 것을 빨리 알게 되었다.
이제 당첨금만 수령하면 된다.
그런데 당첨금을 수령하는 게 꽤 어려울 수도 있다.
어쩌면 아주 많이…….
윤정훈에게는 타고난 머리와 뛰어난 신체가 있었다.
남들은 모르지만 포토그래픽 메모리에 버금가는 기억이다.
거기다 미래도 정확히 알고 있으니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도전해 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두 손에는 아무것도 없다. 통장에 있는 만 원이 전부인 상황.
그러니 조심 또 조심하고 섣불리 접근하면 안 된다.
신중하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지회는 서초동 변호사 사무실을 아무렇지 않게 날려버린 조직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막강한 조직이길래…….
언론과 경찰, 검찰을 다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들이 노린 건 결국 돈이겠지?
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도 죽으면 갈 곳을 잃은 그 돈을 차지할 속셈이었을 것이다.
할머니 현정옥, 명동여제에게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정훈아, 잘 잤냐?”
버터 발린 더러운 목소리로 느끼한 멘트를 날린 은수가 정훈을 보고 웃었다.
“한 대 필래?”
교복 안에서 담배를 꺼내 정훈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야, 나 끊었다니까, 그만 좀 해라. 후우”
은수는 한 달 동안 집요하게 담배를 피우자고 꼬시고 있다.
그러니까 죽기 3년 전에 담배를 끊어서 요즘이 제일 피고 싶을 때인데,
악마 같은 자식이 하루에도 몇 번씩 달콤하게 유혹했다.
그래도 다행인 게 심각한 금단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젊은 육체는 중독에서 쉽게 벗어났다.
“언제까지 가는지 지켜본다, 훗”
어울리지 않는 말투하고는…….
은수는 정훈 다음으로 싸움을 잘한다.
얼굴은 여자들이 많이 따르는 비리비리하게 기생오라비.
속도가 장점이지만 파워가 약한 게 단점.
자신은, 속도와 파워가 갖춰진 만능 파이터.
은수는 운동에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결국 그 힘을 잘못된 방향으로 사용하게 되지만.
원래 감수성도 풍부하고 여린 친구였는데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정훈은 요즘 계속해서 은수를 세뇌하고 있다.
“은수야, 이제 2학년인데……. 2년 뒤면 나가야 되는데……. 졸업하면 뭐 할 거냐?”
“글쎄, 들어오라는 조직은 많은데……. 그쪽으로 갈까?’
정훈과 은수는 정말 많은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소문이 자자한 싸움실력에 부모도 없는 고아들. 쓰고 버리기에 딱 좋은, 그쪽 세계에서는 완벽한 금수저의 조건을 가졌다.
“야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해야지 그런데 들어가면 소모품이야”
진심을 다해 은수에게 그 바닥의 생리를 알려 주었지만 쉽게 설득되지 않았다.
희망보다 절망이 더 익숙한 보육원생은 절망적인 상황을 선택하는 데 익숙한 편이다.
“농담이야”
허무하게 흩날리는 하얀 연기를 보았다.
담배 연기를 뿜어내는 은수의 씁쓸한 얼굴과 저 멀리 사라져 가고 있는 담배연기.
그것을 보면서 진심으로 한번 빨아 보고 싶었다.
뇌를 때리는 후우…… 그 쾌감.
잊자, 잊는 게 속편하다.
“어이, 거기 학교 갈 준비 안 하냐 고아 두 마리.”
언제 왔는지 커다란 덩치를 한 원장 아들이 이죽거리고 있었다.
‘나이도 어린 새끼가 어디 형님 보고…… 아 나 보다 한 살 많구나’
정훈은 아직도 고등학생이란 게 완벽하게 적응되지 않았다.
원장 아들 김현수.
자신들보다 한 살 많은 기세등등한 돼지.
배경 때문에, 그리고 큰 덩치 때문에 아이들은 찍소리도 못했다.
정훈과 은수는 문제를 일으키기 싫으니 피했었고.
‘그래, 저 돼지 새끼가 분위기를 흩트렸지.’
정훈은 지난 생에서 저런 모욕을 참고 수수방관했던 자신을 후회했다.
저 돼지 새끼는 고아 새끼, 부모 버린 새끼, 갖은 패드립과 욕설로 아이들의 의욕과 자존감을 수시로 꺾었다.
그때는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참았지만 도저히 두 번은 못 참겠다.
나이는 비록 18세지만 정신은 36세다.
19세 돼지의 모욕은 결코 흘려버릴 수 없었다.
‘그리고 저 돼지를 가만히 두면 보육원 아이들이 더 주눅 든다.’
정훈은 안 그래도 두 번 겪는 이 우울하고 무기력한 분위기 때문에 정신병에 걸릴 지경이었다.
없는 희망이라도 만들어 열심히 살아야 할 우리를 찍어 누르는 놈을 가만히 두면 안 된다고 결심했다.
정훈은 김현수를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야, 미친 돼지 새끼가 말도 하네”
처음으로 그를 도발했다.
“뭐라구? 이게 돌았냐?”
처음 겪는 반항에 잠깐 당황한 김현수. 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는 눈썹을 파르르 떨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훈에게 김현수는 원래 한 방도 안 될 놈이었다.
다만 원장 아들이라는 막강한 권력 탓에 손을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
녀석은 머리를 까딱거리며 정훈의 앞에 섰다.
키도 덩치도 확실히 정훈보다 컸다.
하지만 싸움은 몸으로 하는 게 아니다.
싸움은 기세가 중요하고 특히 고등학교 싸움은 무조건 선빵.
먼저 한 방 제대로 꽂으면 끝이다.
선빵을 제대로 꽂을 생각에 넓적한 돼지머리의 빈 곳을 찾고 있을 때였다.
“퍼억”
누군가 정훈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화끈거렸다.
“뭐야, 씨….”
눈앞에 보육원 원장 김현철이 있었다.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던 자.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철저하게 챙기는 사람.
피해를 주지 않으면 딱히 터치를 하지 않았다.
저번 삶엔 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쥐 죽은 듯 있다 나왔으니 지금까지는 악연이 아니었다.
원장의 사자후가 터졌다.
“이것들이 학교 갈 준비도 안 하고, 뭐 하는 짓이야.”
잘못은 자신의 아들이 했지만 처벌은 정훈과 은수만 받았다.
“퍼억”
아까만큼의 강도로 은수의 뒤통수도 후려쳤다.
은수가 눈을 꼭 감았다. 안 그러면 눈알이 튀어 나갈 만큼 강했다.
‘젠장, 자기 아들은 더럽게도 감싸네……’
한두 번도 아니고 매번 저런 식이니 김현수가 보육원에서 왕처럼 설치는 것이다.
정훈은 결심했다.
‘기다려라. 곧 무릎 꿇고 싹싹 빌게 만들어 줄게.’
정훈은 생각했다.
‘나는 현정옥의 손자이자 유일한 상속자다.’
***
돈 많은 부자들만 산다는 성북동의 언덕.
안으로 들어 갈수록 땅값이 비싸지는 기이한 동네다.
사생활 보장이 땅값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인 곳이다.
그 동네의 끝자락에 오래전부터 터줏대감처럼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집이 있다.
500평 조금 넘는 땅의 대부분은 넓은 정원이었다.
작고 아담한 붉은색 벽돌 건물 두 개만이 소박하게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어르신, 만호입니다.”
“흐음……들어오게.”
오후의 햇살에 깜빡 졸고 있던 현정옥이 정신을 차렸다.
60이 되어서일까 부쩍 조는 일이 많아졌다.
세월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힘들게 운동할 생각은 없었다.
삶의 목적도 의욕도 없는 인생, 하루하루 지나가길 바라고만 있을 뿐이다.
그녀의 최측근인 김만호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쉽게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흠……”
“표정이 왜 그런가? 왜 아니었던 거야? 뭐 그럴 수도 있지. 나는 괜찮네. 너무 괘념치 말게”
그녀의 유일한 관심, 잃어버린 손자 찾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진 아이.
그녀가 가진 살아야 할 목적이었다.
“그게……어르신……”
“거 답답하네 이 사람아. 무슨 일이야?”
신문을 건네받은 현정옥, 표시된 곳을 한참을 읽던 그녀의 하얀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 이 학생이 그 아이야?”
“네. 어르신.”
“학업 성적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경찰의 공식적인 수사 결과야?”
고개를 끄덕였다.
벌써 세 명 째. 손자로 추정되는 아이가 또 죽었다.
사인은 모두 가정 불화 또는 성적 비관으로 인한 자살, 혹은 교통사고였다.
“도대체 어떻게 안 거지? 보안을 철저히 한 건 확실하지?”
“네 어르신. 오직 전화로, 그것도 공중전화로만 지시했습니다. 그런데도……이렇게 쉽게 훼방을 놓는다는 건.”
“천지회……겠지?”
현정옥의 탄식 같은 중얼거림을 들은 김만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전화도 도청하고 경찰의 수사도 쉽게 결론 지을 수 있는 힘. 이 땅에 그런 힘을 가진 건 천지회 말고는 없겠지. 천지회를 궤멸하지 않고서는……후후후”
현정옥은 자신의 헛된 망상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20년 전에는 가능했었다.
패기도 자신의 힘이 되어 준 아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짝에 쓸모없는 돈만 남았다.
“그들의 숨겨진 힘을 가늠조차 못하겠습니다. 어르신.”
“끄흠…….”
현정옥의 짧은 신음이 흘러나왔다.
“그 아이 집에 문상이나 다녀와. 조의금으로 넣어…….”
“네 지난번처럼 일억, 익명으로 넣겠습니다.”
“자식 잃은 마음……돈이 눈에 들어올까.”
자신의 아이도, 그 아이의 아이도 잃은 현정옥은 그들의 슬픔을 충분히 가늠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제 그만하지. 나 좋자고 더 이상 헛된 목숨을 희생시킬 순 없어.”
힘없는 목소리로 현정옥이 낮게 읊조렸다.
카리스마로 명동을 휘어잡은 여제의 아우라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예”
김만호도 어렵게 동의를 했다.
더 이상 찾다가는 어르신마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래 수고했어. 그만 나가 봐.”
“아, 그리고 말씀드린 신세기 통신 인수전이랑 최근 급성장하는 벤처 기업들의 투자 요청이…….”
“후우, 됐어. 이 나이에서 돈 더 벌어서 뭐 하려구. 그냥 편히 쉬다가 가야지. 자네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좀 쉬엄쉬엄 해”
“……예 어르신. 그럼 가 보겠습니다.”
김만배는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갔다.
현정옥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이제 그만해야겠어. 너무 많은 아이들이 희생되었어. 우리 정훈이도 아마 별이 되었겠지. 하긴 불씨를 살려 두진 않았을 거야.’
그녀는 초점 없는 눈으로 자신과는 너무 다른 평화로운 오후의 따스한 햇살만 보고 있었다.
***
“다혜야, 저녁 먹으러 가자. 요 앞에 우리 떡튀순김 어때?”
동공이 지진 난 듯 흔들린 박다혜는 곧 이성을 되찾았다.
입술을 꽉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나 요즘 돼지 된 거 같아서…….”
“풋, 야 니가 돼지면 우린 곰이다. 어흐응…….”
“아니야. 오늘 저녁은 참을게.”
“알았어. 이년아. 근데 너 그런다 나중에 집에 가서 라면 먹고 잔다”
저주를 퍼붓는 친구들의 말에 순간 발끈한다.
“꺼져, 이것들이”
“헤헤. 갔다 올게.”
부쩍 몸이 무겁다고 느낀 박다혜는 친구들을 돌려보냈다.
오늘부터 저녁은 아주 간단히 먹기로 했다.
전교 3등 안에만 들면 되는 공부.
줄곧 2등을 유지하고 있으니 이제 중요한 건 몸매다.
공부하느라 앉아만 있어서 살이 너무 쪘다.
학교 매점에서 저녁을 대신할 우유를 사서 교실로 돌아갈 때였다.
불량스러운 2학년 남자들의 무리가 그녀를 불렀다.
“야, 박다혜. 누가 너 좀 보자고 하는데…….”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김현수의 졸개들이자 이 학교 일진 양아치들.
박다혜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같은 학년 일진 양아치 김현수.
또래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키와 덩치.
희망 보육원장 아들로 안하무인이 따로 없다.
자신에 대해 지속적으로 관심을 보인 그를 무시했었다.
하지만 최근엔 더욱 노골적으로 들이댄다.
‘재수 없는 새끼, 휴, 아빠가 알면…….’
아빠가 알면 바로 끝이지만 아빠가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박다혜 가족이 여기 있는 것도 모두 아빠 때문이다.
아빠가 권한 남용으로 좌천된 지 3년이 지났다.
지금까지 전 가족이 조용히 살다가 이제 겨우 서울로 올라간다.
그녀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조금만 더 참자고 생각했다.
그러면 저 짜증나는 돼지도 더 이상 안 봐도 된다.
오늘만 문제없이 넘기면 된다는 생각에 그를 따라갔다.
어둑해지는 학교 본관 옆을 걸어서 체육관으로 향했다.
체육관 정문 옆 구석에 있는 창고의 문이 열렸다.
매캐한 담배 연기가 가득한 공간에 몇 명의 아이들이 모여 있었다.
그 중심에는 아이들의 왕, 김현수가 다리를 쩍 벌리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
“여어. 안녕, 박다혜.”
불결한 목소리가 박다혜의 귀에 들렸다.
“우리 여신 박다혜. 오빠보고 인사해야지.”
“오빠는 무슨, 개소리는 닥치고”
양아치 일행들의 시비를 무시했다.
역겨운 담배 냄새가 가득한 공간.
김현수는 박다혜를 보고 비릿하게 웃었다.
‘훗, 역시 내 여자 친구로 손색이 없군’
김현수의 더러운 웃음에 토할 것 같았지만 참았다.
검사인 아빠가 알게 되면 저 돼지 새끼 분명 죽을 게 뻔하다.
서울에서도 자신을 괴롭히던 아이를 너무 호되게…… 교육해서 물의를 일으켰던 아빠.
그녀가 웬만하면 참고 있는 이유였다.
“다혜야, 오빠가 잘해 줄게. 응? 우리 오늘부터 1일 어때?”
오늘은 이 자식이 평소보다 더 몸을 밀착시키고 있다.
“오빠는 무슨, 야 김현수 그만해. 너 싫어한다고 몇 번을 말해. 나 이제 전학 가”
더러운 돼지 냄새가 박다혜의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리고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너 우리 아빠가 알면…….”
“너희 아빠가 알면……. 이번에 인사도 드리고 우리 공식적으로 사귀면 어때?”
박다혜의 이마에 핏줄이 툭툭 튀어나기 시작했다.
머리를 가득채운 분노의 수증기는 그녀의 눈을 흐렸다.
폭발 직전의 압력솥처럼 부들부들 몸을 떠는 그녀.
어리석은 저팔계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어깨에 손을 올리며 손끝으로 봉긋한 가슴을 슬쩍 슬쩍 터치했다.
결국 그의 짧은 손끝이 그녀의 폭발을 부추겼다.
‘이제 조금만 더 참으면 서울 갈 수 있는데……. 젠장. 더 이상은 나도…….’
분노로 가득 차 붉게 달궈진 그녀의 작은 얼굴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욕설이 튀어나왔다.
“야이 씨발, 이 개돼지 새끼야, 내가 조용히 살려고 참고 있었는데.
너 이 개새끼, 오늘…… 우리 아빠가 알면 돼지 멱을 딸 거다.
넌 오늘 죽었어. 저팔계야, 우리 아빠가…….”
박다혜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
조그마한 얼굴의 한쪽에 강한 충격이 느껴졌다.
박다혜의 뺨을 강타하는 남자의 손.
그리고 이어서 복부를 강하게 쳤다.
“뭐? 저팔계? 돼지새끼? 이게 돌았나”
의식을 잃고 쓰러진 박다혜.
쓰러지며 훤히 드러난 그녀의 하얀 허벅지를 비릿하게 보던 김현수가 주변을 보았다.
일행들이 모두 박다혜를 보며 침을 삼켰다.
“야이 씨……. 이것들이 어디 형수님한테 침을 발라. 눈 깔아 이 새끼들아.”
“흐흐흐흐.”
비릿한 웃음을 짓는 무리들.
김현수가 그들을 보고 짧게 명령했다.
“야, 다 나가 있어”
모두가 밖으로 나갔다.
마지막 녀석이 나가면서 문을 꼭 닫았다.
다시 문을 열고 밖을 확인했다.
친구들은 교실로 향하고 있다. 이제 이곳에 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박다혜와 둘 만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재빨리 창고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어두워지는 초저녁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그가 몸을 구부렸다.
긴장된 손이 축 늘어진 그녀의 몸을 향해 마수처럼 뻗어 나갔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이 좁은 창고 안을 가득 메웠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