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grandson of the cash king becomes a tycoon RAW novel - Chapter (65)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65화(65/200)
#065화
“네 녀석이 하는 일이 썩 마음에 들었나 봐. 귀한 산삼을 다 주고. 백 년은 된 것 같은데.”
“진짜요? 할머니가 어떻게 아세요?”
정훈의 눈이 커졌다.
“녀석아, 내가 매년 먹는 거니까 잘 알지. 이건 산삼이야. 넌 모르겠지만. 허허허.”
손자가 귀한 걸 선물로 받아오자 현정옥은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이걸 먹자꾸나.”
“네?”
정훈은 인상을 찌푸렸다.
“은수야.”
할머니는 방 안에 있는 은수까지 거실로 불러냈다.
“은수 너 요새 얼굴 안 좋아 보이던데 이리 와서 아 해 봐.”
“네?”
은수의 눈동자가 갈 곳을 잃었다.
정훈을 보며 구원을 손길을 뻗었다.
“맞아요, 할머니. 은수가 요즘 몸이 너무 안 좋아요. 저보다는 은수가 먹어야 할 것 같아요. 은수야, 이거 먹어.”
“이게 뭔데?”
“산삼.”
“으……. 전 괜찮아요. 할머니 드세요. 아니면 정훈이 주시던가요.”
“어림없다 요 녀석들. 안 먹으면 카드 잘라 버릴 거야.”
정훈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은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런 엄포에는 설설 기어 주는 게 손자의 도리.
“으, 알았어요. 대신 할머니 이것 좀 처리해 주세요.”
“뭘 말이냐?”
“우리 회사 직원이 사채를 썼다가 된통 당해서요. 명동에 가서 혼 좀 내 주세요.”
정훈은 지난 삶이 떠올랐다.
IMF 직후 이자제한법도 폐지된 상황.
지금 명동은 ‘무주공산’이다.
거대한 불법 사채 시장은 고금리 대부업체로 대체된다.
일본계 대부업체들, 그들은 재일 교포를 앞세워 고금리 대부 시장을 장악해 매년 수천억의 이익을 가져갔다.
그게 올해다.
지금 선점해야 한다.
“그래, 그거 뭐 어렵다고. 약속할 테니. 이거 먹어라.”
정훈은 한 뿌리를 그대로 씹었다.
은수도 얼굴을 찡그리며 먹었다.
할머니도 한 뿌리를 드셨다.
젊은 몸이라 별다른 차이를 몰랐다.
하지만 은수는 달랐다.
좀 더 활기차졌다.
다음 날 서재에서 현정옥은 정훈이 보여 준 서류를 보았다.
“이봐, 요즘 명동 사채 시장 분위기 어때?”
“IMF 때문에 이자제한법이 폐지되면서 다시 고리 사채가 생기고 있습니다. 게다가 불법 추심도 활개를 치는 것 같습니다.”
만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자의 법정 최고한도를 규정한 법률인 이자제한법은 1997년 외환 위기 후인 98년 1월 13일 폐지되었다. 그리고 2007년 다시 제정될 때까지 명동 사채 시장은 예전의 양육강식으로 돌아갔다.
“흐음, 그래. 명동을 한번 가야겠군.”
“네. 준비하겠습니다.”
만호도 최근에 난립하고 있는 고리 사채꾼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대로 두면 서민들 피해가 커져 경찰이나 검찰에서 치고 들어온다. 결국 여사님의 영업장도 피해를 보게 된다.
명동 사채시장은 자율적으로 자신을 정화하면서 권력과 공생 중이었다.
“그런데 도련님은 갑자기 이걸 어디서 가져오신 겁니까?”
“누가 사채 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길 듣고 해결해 주고 싶었나 봐.”
“역시 도련님 마음이 참 따뜻합니다.”
“그래 그렇지. 그런데 그 녀석이 그거 하나 때문에 나한테 이 서류를 보여 준 건 아닌 것 같아.”
“아마 그렇겠지요. 다른 꿍꿍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녀석이 무슨 꿍꿍이를 벌일지 궁금한데.”
“뭐 또 다른 말씀은 없었습니까?”
“내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하던데.”
“어르신의 친구들이라면…….”
“그래. 이제 슬슬 사천왕을 소개해 줄 때도 된 것 같은데. 정훈이 녀석 겁먹지나 않아야 할 텐데.”
“어르신 이미 두 분은 천지회와 결탁했습니다. 박 회장님과 방 회장님만 아직 그들과 야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적으로 돌려선 안 돼. 황 회장과 이 회장이 천지회가 좋아서 결탁한 게 아니야. 돈이 좋아서지.”
“내가 정훈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소개해 주는 것밖에 없어. 그들을 적으로 삼던 우군으로 삼는 녀석의 능력이지.”
“알겠습니다. 연락해서 약속 잡겠습니다.”
만호도 현정옥도 정훈의 생각을 파악할 수 없었다.
2002년 후반부터 사업을 시작해 매년 수천억의 돈을 쓸어간 일본계 고금리 대부업체.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들여서 티브이 광고를 했다.
은행에서 대출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업체로 달려갔고 고금리로 대출받았다.
불법 사채보다 싼 이자, 합법적인 업체, 깨끗한 이미지로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이 앞다퉈 달려갔다.
***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지 한 달이 더 지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임창정의 노래 ‘슬픈 혼잣말’이 인기가요에서 3주 연속 1위를 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현정옥의 롤스로이스는 삼성대부의 낡은 사무실 앞에 차를 댔다.
“정훈아, 가서 정리하고 오거라. 내가 없어도 되는 일이잖니. 가능하면 빨리 와. 내가 오늘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
“누구 말씀이세요?”
“네 놈이 있는데 한 놈은 친구고 두 놈은 배신자고 한 놈은 속을 모르는 놈이지. 정훈이 네 놈이 궁금해하던 노친네들이야.”
“네, 할머니. 빨리 갔다 올게요.”
슬며시 웃음 짓고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정훈은 할머니의 말을 듣고 명동 사천왕임을 직감했다.
지난 생에 신문 기사로만 전해 들었던 존재였다.
그 누구도 그들의 실명이나 얼굴을 알지 못했다.
중간급 이상 되는 전주들만 존재를 알고 있고 얼굴은 극소의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할머니가 그들을 소개해 준다고 생각하자 살짝 긴장되었다.
낡은 사무실의 문을 열자 찌든 담배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들어 왔다.
그리고 퀴퀴한 냄새까지.
은수는 향기를 사랑하고 악취를 싫어했다.
병적으로 싫어하는 악취를 뿜어내는 곳.
은수는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불쾌한 걸 싫어하는 은수는…….
불필요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주먹과 발로 사무실 인원들을 무릎 꿇렸다.
“사장님.”
정훈이 입을 열었다.
“누구십니까? 저희한테 이러시면 안 됩니다. 큰일 납니다.”
은수한테 실컷 얻어터진 사장이 공손하게 충고했다.
“쉿, 저 친구 여기 오래 있는 거 싫어해요. 자 서류 가지고 오세요. 전화기도.”
“저희 뒤를 봐주시는 분이 현 여사님입니다.”
“뭐? 현정옥 여사님?”
“네.”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었다.
정훈이 흠칫 놀라는 척하자 천천히 일어섰다.
“다짜고짜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폭력으로 해결하시면 안 되죠.”
옆에 있던 은수는 기가 찬 얼굴이었다.
“우린 현정옥 여사님의 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서 멈추면 더 문제 삼지 않겠습니다.”
“그래요?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고 일단 유민철 씨 서류 가져와요.”
“유민철? 아, 동훈개발 유 부장. 야, 이지수 사모님 서류 좀 가져와.”
이름을 외우고 있는 걸 보니 고객이 얼마 되지 않는 게 분명했다.
정훈이 훑어보았다.
“와, 천만 원 빌렸는데 이자가 월 10퍼센트. 지금까지 이자만 매년 1200만 원을 뜯어낸 겁니까?”
정훈이 놀란 눈으로 물어보자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그래도 연체 이자는 안 받았습니다. 원래는 연체 이자까지 해서 천만 원으로 오천만 원도 뜯어내는 게 이 바닥 아닙니까?”
“대단하시네요. 현정옥 여사님 그늘에 있으시다고요?”
정훈이 다시 한번 남자에게 물었다.
“네, 현금왕 현정옥입니다. 저흰 그분의 계열사 중 하나입니다.”
자신의 협박이 통한다고 생각하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이지수 씨 잔금은 제가 변제합니다. 알겠죠?”
“네, 아쉽지만 이 정도로 마무리하죠.”
“부탁 하나 할게요. 밑에 가면 롤스로이스가 있습니다. 그 안에 제 할머니가 계신데, 그분께 좀 가져다주십시오.”
불쾌한 표정을 지었지만 은수의 찡그린 인상에 흠칫 놀랐다.
남자는 종이를 받아 밖으로 나갔다.
강상철은 어젯밤 꿈을 생각했다.
전직 대통령이 나왔다.
대박 길몽!
그래서 오늘 좋은 호구가 올 줄 알았다.
그런데 첫인상이 아주 좋은 호구라고 생각했는데,
흠씬 두들겨 맞을 거란 생각은 못 했다.
연초에 본 사주는 올해 대운이 들어온다고 했는데.
일은 안 되고 얻어터지기나 하고 이제 이 바닥도 떠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잘나가는 동기인 이형중이 부러웠다.
그 녀석처럼 마른오징어 짜듯 했으면 됐는데…….
그러면 번듯한 회사로 스카우트 될 수 있었을 텐데.
자신과는 잘 맞지 않았다.
서류를 받아든 강상철은 계단을 뚜벅뚜벅 내려갔다.
눈앞에 번쩍이는 롤스로이스가 있었다.
짙은 선팅에 안이 보이지 않아 창문을 두드렸다.
– 똑똑
창문이 천천히 내려가며 백발의 노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
사무실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썩 일을 잘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차영미의 말대로 착해 보이긴 했다.
유민철에게 받은 서류를 통해 회사를 샅샅이 뒤졌다.
특이한 게 사채 사무실 하는 사람들이 전과가 전혀 없었다.
폭행 전과도 없이 깨끗했다.
소파에 있는 정훈은 궁금한 표정으로 그들을 보았다.
“이 바닥에는 어떻게 들어온 겁니까?”
덩치가 좋은 사람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훈은 무릎을 꿇고 있는 남자의 옆을 보았다.
“돈, 벌러 왔습니다. 그게 답니다.”
30이 되지 않은 것 같은 청년들.
IMF가 끝나고 아직 변변한 일자리가 없던 시기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남자가 들어왔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저, 저기 현정옥……. 여사님이 빨리 오시랍니다.”
“인사드리셨습니까? 여기가 계열사라고 해서 인사하라고 보냈는데.”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도련님.”
사내는 무릎을 꿇고 싹싹 빌었다.
“죽을죄라. 이런 걸로 죽긴 그렇고 현정옥 여사님 이름값이 좀 됩니다. 그걸 팔았으니 대가를 지불해야죠?”
“살려 주십시오.”
“죽이지 않는다니까 참……. 나중에 올 테니 청소해 놓으세요. 안 그러면 저 친구가 기분이 아주 나쁠 겁니다. 아 특히 환기 좀 시키세요.”
은수를 힐긋 본 그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정훈은 손에 들고 있던 서류철로 남자의 뒤통수를 아주 세게 후려쳤다.
“이건 지금까지 유민철 씨 가족 괴롭힌 벌입니다. 나머지 처벌은 나중에 와서 하죠. 혹시라도 도망치면…….”
“기다리겠습니다.”
차에 올라탄 정훈에게 할머니가 물었다.
“저놈은 뭐 하는 놈이냐?”
“할머니 밑에서 일한다고 하던데요.”
“뭐? 저런 찢어 죽일 놈이…….”
할머니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제가 나중에 혼낼게요.”
“오늘은 시간이 없어서 참는다. 다음에 와서 저 녀석을 찢어 죽여야겠어. 어서 가자.”
“네.”
현정옥의 롤스로이스는 명동을 지나 을지로 있는 낡은 국밥집 근처에 섰다.
***
“어 왔어?”
“에이, 아직도 여기서 모여?”
“짠돌이 방 회장이 여기서 보자니 뭐.”
“그런데 박 회장은 오늘 안 와?”
“감기 때문에 못 나온데, 여름에 개도 안 걸리는 감기에 걸리기는”
“개보다 못한 놈이니 그렇지. 혹시 나온다고 미리 알린 거야?”
모른 척 시치미를 뗀 다음 딴소리를 했다.
“자네가 윤정훈이군. 형중이랑 많이 닮았어, 난 황 이장이고 이쪽은 이 회장이야”
“정훈아, 인사만 해. 쓸모없는 노인들이다. 그놈들이랑 붙어먹은 놈들이지.”
“어허, 붙어먹다니. 그냥 사업 몇 개 같이하는 거지.”
정훈이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어르신.”
“자 정훈이 판은 깔았으니, 할 말이 머냐?”
역시 할머니는 내 속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대부업에 진출하고 싶습니다.”
“뭐? 사채? 그건 우리가 꽉 쥐고 있는데. 우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온다는 거야?”
“아닙니다. 합법적인 대부업체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싶습니다. 명동은 지금 아귀다툼입니다. 이자제한법이 폐지되면서 여기저기서 서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크하아아, 이거 현정옥의 손자라고 기대했더니 어디서 머저리를 데려왔구먼.”
“그러게, 돈을 도덕책으로 벌려고 해 쯧쯧.”
이 회장과 황 회장의 말에도 할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들의 비웃음을 다 들은 정훈은 조용한 미소로 화답했다.
“이 전화기 보이십니까? 다들 가지고 계시죠? 어르신 유선 전화기 요즘 쓰십니까?”
한참을 전화기를 보던 이 회장이 정훈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거 내가 말실수 했구먼, 현정옥의 손자가 맞네, 맞아. 그러니까 우리가 하는 사채놀이가 유선 전화기 꼴 난다는 건가?”
“네,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될 겁니다.”
“이봐 젊은이, 우리가 사채를 한다고 돈놀이만 하는 게 아니야.”
“알고 있습니다. 돈 되는 건 다 하고 있지 않습니까? 주식, 부동산, 무기명 채권, 어음할인. 굴리는 돈만 해도 어르신들 모두 조 단위의 자산인 줄 알고 있습니다.”
흠칫 놀라는 표정이다. 자신들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알 거라고 생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언제까지 그림자 속에서 움직일 수는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 그런데 대부업을 꼭 하려는 이유가 있나? 이미 증권사도 중공업도 가진 걸로 아는데.”
“배가 고파서 그렇습니다. 지금 먹을 게 너무 많습니다.”
“그럼 다른 걸 먹지 굳이 사채와 다를 바 없는 고금리 대부업이라 뭔가 앞뒤가 안 맞는데.”
“여기서 시작해 하나하나 먹어 치우면 됩니다.”
이제 곧 카드 회사가 부실해지고 은행이 매물로 나온다.
그걸 바로 덤비면 천지회의 방해가 극심할 것이다.
이 대부업체는 연결고리다. 이걸 빌미로 최대한의 로비를 해야 한다.
금융계와 친분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정훈의 목표였다.
물론 그들의 눈을 돌리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선재종합기계와 선재중공업에 그들의 시선이 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
“허허, 글쎄, 뭔가 그게 다는 아니겠지만 나쁘지 않은 이유네. 그럼 해 보게. 우리 돈이 필요한 건 아니지 않나?”
“같이하시죠? 제가 51%, 어르신들이 49%를 맡아 주십시오.”
“뭐? 돈이 없는 거야?”
그 말을 들은 현정옥의 이마가 찡그려졌다.
“흠, 농담에 발끈하기는. 왜 우리가 같이해야지?”
“앞으로 제가 먹을 것들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습니다.”
세 노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뭐? 푸하하하. 이 녀석 뭘 먹으려고 하는 거야?”
“거제에 주인 없는 고래가 한 마리 떠올랐습니다.”
술잔을 비우려던 노인들의 손이 멈췄다.
“설마 그 고래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저와 한번 손 잡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실 겁니다.”
정훈의 계획에 순간 당황했던 현정옥이 정신을 차렸다.
정훈에게 알려야 할 사실이 있었다.
“정훈아, 저 두 놈은 배신자 놈들인데 꼭 같이해야 하나?”
“어허, 배신은 무슨 돈이 되니까 같이하는 거지, 자네가 그때 손을 떼지 말았어…….”
이 회장의 옆구리를 황 회장이 찔렀다.
할머니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사연이 있어 보였다.
“미안하네. 현 여사. 내가 오랜만에 자네를 봐서 실수했구먼. 미안해.”
할머니는 대답 없이 앞에 있던 막걸리를 한 번에 비우셨다.
“그럼 우리 손자 의견은 다 들은 것 같군.”
“할머니, 저는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그래.”
정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은 가게를 나온 그는 가게 안을 보았다.
낡은 유리창 사이로 네 명의 노인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새 기분이 좋아졌는지 다들 떠들썩하고 웃고 계셨다.
자신이 모르는 세월의 깊이가 그들 사이에 있었다.
이 낡은 가게 안에 있는 네 명의 노인.
그들의 총재산이 10조가 넘는다는 것을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
“이봐 현 여자, 저 핏덩이가 명동에 버틸 수나 있을까?”
“글쎄, 저 나이에 큰 걸 이뤘으니 이런 건 쉽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회칼이 난무하는 곳인데, 오줌이나 싸지 않으면 좋으련만.”
이 회장이 입꼬리를 올렸다.
“쌍팔년도도 아닌데 회칼은 무슨. 자네나 내 손자 때문에 낭패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크흠.”
“자 한잔해. 오랜만인데. 근데 개만도 못한 박가 놈은 많이 아프대?”
“글쎄, 자네가 한번 연락해 봐”
현정옥은 대답하지 않았다.
세 명의 노인들 모두 정훈의 말을 곱씹었다.
할까? 말까?
아직은 정할 수 없었다.
그가 보여 준 것이 없었다.
과연 저 아이가 명동에 어떤 바람을 불게 할지 궁금했다.
불볕더위를 시원하게 날려 줄 바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명동은 너무 뜨거웠다.
***
정훈은 은수와 함께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사무실로 갔다.
청소를 열심히 해 놓으라고 했는데 얼마나 했을지 궁금했다.
낡은 계단을 올라가 냄새났던 사무실의 문을 활짝 열었다.
현금왕의 천재손자, 재벌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