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grandson of the loan shark king RAW novel - Chapter (171)
사채왕의 천재손자-171화(171/840)
<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
#171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한국에서 본격적인 국회 의원 총선거가 시작되었을 때, 러시아에서는 푸틴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옐친 대통령의 이른 사임은 6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를 앞당겼다.
2차 체첸 전쟁에서 강인한 모습을 국민에게 각인시킨 푸틴은 반수 이상으로부터 지지를 받으며 결선 투표 없이 바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물론 겉보기에는 푸틴이 손쉬운 승리를 거둔 것처럼 보였지만, 물밑에서 올리가르히 간의 치열한 암투가 있었다.
베레좁스키가 미는 푸틴과 구신스키가 지지하는 주가노프가 선거에서 붙었고, 결과는 주가노프의 패배였다.
그러나 구신스키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이 소유한 방송국을 이용해 푸틴을 비난하는 방송을 계속해서 내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김 사장님.”
푸틴의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스크바 공항에 도착하자, 메드베데프가 나를 반겼다.
“교수님, 오랜만입니다. 직접 나오셨습니까?”
“하하, 교수를 그만둔 지가 언젠데요.”
멋쩍은지 메드베데프가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 교수직을 사퇴하고 선거 대책 위원장을 맡으셨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지난 일입니다. 푸틴이 당선되었으니 저도 야인으로 돌아가야지요.”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제부터 푸틴 대통령을 옆에서 도와주셔야죠.”
별것 아닌 대화였지만 권력의 중심에 있음에도 소탈한 성품을 유지하는 메드베데프의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공항 출구에는 나의 경호팀과 러시아 경찰에서 나온 경호팀들이 양옆으로 서 있었다.
그들의 호위를 받으며 메드베데프와 같은 차에 오르니, 조수석에 탄 그의 비서가 일정을 안내해 주었다.
“대통령 취임식이 내일 정오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러시아 시간으로 시계를 맞추고 보니 저녁 시간이었다.
몰랐을 때는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자각하고 나니 허기져서 메드베데프에게 넌지시 물었다.
“바쁘시지 않다면 같이 식사라도 하시겠습니까?”
“오, 좋지요! 제가 맛있는 레스토랑을 알고 있습니다. 거기로 가죠.”
나와 메드베데프를 태운 차량이 천천히 모스크바 도심으로 들어갔다.
“메드베데프는 이제 어떻게 하실 계획인가요? 아까 말씀하신 대로 야인으로 돌아가실 생각입니까?”
“음······. 일단 행정 차장으로 복귀할 거 같습니다. 가스프롬 부사장을 겸임하게 될 것 같군요.”
러시아의 역사는 바뀌지 않는구나.
푸틴은 메드베데프와 자신의 측근들을 가스프롬 이사회로 임명함으로써, 구신스키를 제거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축하드립니다, 차장님. 차장님이라고 불러도 괜찮겠죠?”
“감사합니다. 과분한 자리에 앉게 됐습니다.”
“그만큼 푸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신임이라는 말에 메드베데프가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겼다.
“글쎄요. 벌써부터 저에 대한 견제가 들어오더군요. KGB와 군인 출신들로부터 말입니다.”
푸틴은 올리가르히가 장악한 크렘린 궁 요직들의 개편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KGB 출신 및 FSB 국장을 역임한 경력을 앞세워,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군과 정보기관 출신들을 대거 중앙 정계로 부르고 있었다.
실로비키라고 부르는 엘리트 집단의 등장이었다.
“푸틴 대통령의 신임이 있다면 아무리 견제한들 그게 먹히겠습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푸틴과 오래 알고 지냈지만, 그의 속을 파악하는 건 늘 힘들어요.”
메드베데프의 말처럼 푸틴은 할 말을 다 하는 사람처럼 보여도, 그것이 그의 진짜 속내인지는 쉽게 알 수 없었다.
천성인지, 아니면 KGB에서 교육을 받은 탓인지. 자신을 숨기는데 특출 난 사람이었다.
이윽고 차는 한 레스토랑 앞에 멈춰 섰다.
“들어가죠, 김 사장.”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오는 동안 연락해서 미리 다른 사람들을 모두 내보낸 듯했다.
“식사하면서 조용히 대화하고 싶어서 말입니다.”
미리 준비했는지 앉자마자 바로 음식이 나왔다.
마 과장과 메드베데프의 비서를 제외하고 모두 레스토랑 밖으로 내보냈다.
그러자 레스토랑 안은 무슨 비밀 얘기를 해도 좋을 만큼 조용해졌다.
“한잔 받으시지요.”
사람 좋게 웃은 메드베데프가 와인을 따라 주었다.
잔에 조금씩 차오르는 붉은 와인을 바라보고 있을 때, 메드베데프가 문득 물었다.
“김 사장님은 러시아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래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메드베데프가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제게는 러시아의 미래가 보이지 않습니다. 푸틴이 대통령이 되긴 했지만, 권력을 차지한 올리가르히의 힘이 너무 강합니다.”
나름대로 진심인 듯 메드베데프의 표정은 조금 불편해 보였다.
쉽게 꺼내기 어려운 말이니 불편할 만하지.
“푸틴이 그들의 꼭두각시가 되지는 않겠지만, 제거하기에는 경제적으로 너무 큰 피해를 볼 거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메드베데프가 잔을 들어 앞으로 내밀었다.
잔을 살짝 부딪치고 와인을 마셨다.
무거워진 분위기와는 달리 와인은 부드럽게 목을 적셨다.
“아마······ 구신스키를 먼저 제거하려고 하겠죠. 이미 시나리오는 모두 나왔을 테고요.”
와인을 먹고 있던 메드베데프의 눈동자가 커졌다.
“올리가르히는 푸틴을 애송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긴장도 하지 않을 거고요. 자신들이 만든 대통령이라고 생각해서 방심하고 있을 겁니다.”
푸틴의 야심도 모르고, 베레좁스키는 축배를 들고 있겠지.
“푸틴은 절대 그들의 꼭두각시로 만족할 사람이 아니죠. 올리가르히와는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기 위해 군과 정보기관 인사들을 크렘린 궁으로 부르고 있는 거 아닙니까?”
메드베데프는 어느새 잔을 내려놓고 와인을 음미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그를 따라 잔을 내려놓으며 웃었다.
“그와 달리, 당신은 올리가르히의 자리를 군과 정보기관 인사들이 차지하게 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김 사장님은 사업이 아니라 정치를 하셔도 되겠습니다. 왜 푸틴이 당신을 좋아하는지 알겠군요. 무섭습니다.”
푸틴이 나를 기꺼워한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지만, 메드베데프의 입으로 들으니 새삼 기분이 좋았다.
“과찬이십니다. 러시아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라도 짐작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닙니다. 예상은 할 수 있어도, 이렇게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요. 당장 올리가르히와 푸틴이 다툴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테이블 위로 손을 올린 메드베데프가 손깍지를 꼈다.
그는 불안한 듯 깍지 낀 손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올리가르히의 지원으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 푸틴이니까요. 물론 구신스키 같은 몇몇 사람은 예외지만요.”
올리가르히를 제거하는 일은 푸틴의 정치적인 기반을 없애는 일이기에, 아무도 그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
베레좁스키는 구신스키가 가진 회사들을 집어삼킬 생각에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그와 함께 푸틴을 지원한 올리가르히들 역시 떨어질 떡고물을 나눠 가질 준비만 하고 있으리라.
“차장님, 살아남고 싶다면 욕심을 버리세요. 차장님이 푸틴을 친구라고 생각하는 건 압니다.”
하지만 푸틴은 매정한 사람이다.
메드베데프가 친구라고 해서 봐주거나 하지는 않을 테지.
“아버지와 아들도 권력을 나눠 가지지는 않습니다. 머리를 최대한 숙이고, 푸틴이 시키는 일에만 집중하세요.”
“······.”
“친구라고 특별한 대우를 해 줄 사람이 아니라는 건, 메드베데프 당신이 더 잘 알지 않습니까? 원래 이인자의 삶이라는 건 치열하죠.”
“이인자······.”
원했든, 원치 않았든 그는 푸틴 정권의 이인자가 되었다.
그렇기에 머릿속이 더욱 복잡할지도 모른다.
“밑에서는 시기하는 자들의 견제를, 위에서는 통치자의 의심을 받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기록된 이인자의 끝이 어땠는지 기억하세요.”
결말은 언제나 죽음이었다.
이인자가 역사서에서 한자리를 차지하던 때는 왕정 시대다.
그때와 현재는 다르지만, 권력에 있어 독재 국가는 왕정 국가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리고 푸틴의 러시아는 과거로의 회귀였다.
“이봐, 올라가서 보드카 좀 들고 와!”
이마를 짚은 메드베데프가 옆을 지키고 서 있던 비서에게 말했다.
와인 대신 보드카를 잔에 가득 채운 메드베데프는 그걸 단번에 마셔 버렸다.
“하······. 김 사장님, 이해해 주세요. 와인으로는 성에 안 차네요.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러시아인의 보드카 사랑은 유명하니까요.”
와인을 마실 때보다 오히려 생기가 도는 그의 모습에 작게 웃었다.
메드베데프가 작은 잔에 보드카를 채우며 다시금 말을 이었다.
“김 사장님의 말이 맞아요. 그들이 무섭습니다. 고르바초프의 정화 작업으로 겨우 KGB의 힘을 약화했는데, 다시 모스크바 중앙으로 그들이 돌아온다면 과거로 회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러시아를 걱정하는 겁니까, 아니면 당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겁니까?”
회귀하기 전, 메드베데프는 누구보다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메드베데프는 마치 러시아의 미래를 고뇌하는 지식인 같았다.
“글쎄요. 내 안위가 걱정되는 건지, 아니면 조국을 걱정하는 건지. 내 마음을 나도 잘 모르겠군요.”
씁쓸한 미소를 보인 메드베데프가 보드카를 다시 마셨다.
고민을 가득 안은 그의 모습이 조금 안쓰러웠다.
“천천히 드세요, 차장님.”
“이 정도는 간에 기별도 안 가요. 김 사장님도 한잔하시겠어요?”
“저는 이걸로 만족할게요.”
와인이 들어 있는 잔을 들어 흔들며 웃었다.
메드베데프도 금방 빈 잔에 보드카를 채우며 따라 웃었다.
몇 잔 주거니 받거니 마시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차장님,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김 사장님의 도움이라······. 역효과가 날 것 같은데요. 푸틴은 제 사람이 다른 이를 지지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을 성인군자가 아닙니다.”
웃었던 게 거짓말처럼 메드베데프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그럼 어떻게 해 주길 바라십니까?”
“이야기를 해 주세요. 러시아에 미래가 있을까요? 김 사장님의 생각을 듣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도 함께 말입니다.”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러시아의 장래는 밝다고 생각합니다. 반세기를 미국과 함께 세계를 양분했던 나라인데, 그 저력이 어디 가겠습니까. 경제적으로 위기가 오기는 했지만, 풍부한 지하자원과 인적 자원이 있으니 일어설 겁니다.”
메드베데프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그가 듣고 싶은 말이 이런 말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았다.
“차장님, 정치보다는 가스프롬의 부사장직에 최선을 다하세요. 정치 싸움에서 한 발짝 물러나서, 푸틴에게 적이 될 생각이 없다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 됩니다.”
“······가스프롬이라.”
“푸틴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모든 권력이 바로 쏠리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푸틴은 대통령이 아닌, 러시아의 진정한 차르가 되기 위해 차근차근 준비해 나갈 것이다.
“결국엔 올리가르히의 눈치를 보지 않을 만큼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걸 가능하게 해 주는 건 가스프롬을 비롯한 러시아 국영 기업들이고요.”
“옐친은 가스프롬을 비롯해 많은 국영 기업을 올리가르히의 손에 넘겼어요. 민영화라는 명분으로 말입니다. 이를 다시 장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엄살만큼 믿을 수 없는 말은 없지.
재미있다는 듯 턱을 괴고 그를 바라보았다.
“쉬운 건 아니죠.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아니란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사회를 장악할 계획은 이미 수립된 거 아닙니까?”
“······단순한 예측입니까?”
“내가 만약 푸틴 대통령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해 본 것뿐입니다. 나라면 가스프롬을 이용해서 올리가르히에게 넘어간 기업들을 지속해서 다시 국영화시킬 테니까요.”
아무렇지 않게 푸틴이 세운 계획을 줄줄 읊었다.
권력은 돈에서 비롯된다. 푸틴도 이를 잘 알고 있을 터였다.
“표면적으로는 민간 기업이지만, 통제권은 러시아 정부가 가지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올리가르히의 힘을 빼는 최고의 방법은 그들에게서 돈을 뺏는 거니까요.”
푸틴을 비롯해, 러시아의 새로운 핵심으로 떠오를 실로비키들은 가스프롬을 장악할 계획부터 세웠다.
그들은 가스프롬을 장악한 뒤, 민영화가 된 기업들을 인수하는 데 사용했다.
이는 부메랑이 되어 가스프롬의 부실을 촉발하지만, 푸틴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결국 살아남은 올리가르히는 푸틴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를 바꾸고 싶다면, 푸틴의 후계자가 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철저하게 자신을 굽히고, 속이고, 낮춰야 합니다. 그러면 푸틴의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푸틴이 했던 방법을 그대로 읊어 주자, 복잡미묘한 얼굴이 된 메드베데프가 말없이 보드카를 마셨다.
“제가 할 수 있는 조언은 여기까지입니다. 선택은 메드베데프 당신이 하는 거고요.”
도와주는 대신 이야기를 해 달라 했으니, 줄 수 있는 답변은 여기까지다.
내가 그를 채근할 수도, 그렇다고 선택을 종용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가스프롬을 가지는 것이 러시아를 가지는 것이다. 전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이만 일어나시지요. 내일은 아침부터 바쁠 거 같은데요?”
“아, 제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군요.”
“아닙니다.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차장님.”
민망해하는 그를 배려하기 위해,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
“별거 아닌 한탄을 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잊어 주십시오, 하하.”
“네. 오늘 나눴던 대화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악수를 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메드베데프도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을 잡았다.
잡은 그의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레스토랑을 벗어나 곧바로 모스크바의 자택으로 향했다.
큰 정문이 열리고도, 차를 타고 더 들어가고 나서야 저택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차가 멈춰 서자 이고르가 대신 차 문을 열어 주며 반겼다.
“보스, 오랜만입니다.”
“이고르, 잘 지냈어요?”
차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보니 많은 게 바뀌어 있었다.
“어떻습니까, 보스?”
“마음에 듭니다. 고생 많이 했군요.”
내가 머물 본관 안은 유럽 귀족들이 사용할 법한 장식품들과 실내 장식으로 꾸며져 있어, 마음에 쏙 들었다.
“내일 일찍 움직여야 하니까, 다들 푹 쉬라고 해 주세요. 마 과장님은 한국 분위기 좀 파악해서 내일까지 보고해 주시고요.”
“네, 보스.”
러시아의 내 저택에서 제대로 묵는 첫날이 그렇게 지나갔다.
다음 날 나는 러시아의 새로운 대통령 푸틴의 취임식이 열리는 크렘린 궁으로 출발했다.
< 제 도움이 필요하십니까?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