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grandson of the loan shark king RAW novel - Chapter (271)
사채왕의 천재손자-271화(271/840)
< 회장님도 아시잖아요 >
#271
회장님도 아시잖아요
송영주 회장을 마지막으로 찾았을 때는 아픈 사람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정정했다.
하지만 병상에 누워 있는 그는 이제는 누가 봐도 죽을 때를 기다리는 노인처럼 보였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재계의 거인이 처음으로 보이는 나약한 모습이었다.
“김 사장, 왔구먼. 가까이 오게.”
“네, 회장님.”
천천히 송영주 회장의 침대로 걸어갔다. 얼굴에는 병색이 역력했지만, 그래도 눈빛만은 여전했다.
송영주 회장의 눈에는 여전히 힘이 깃들어 있었다.
“평양에서 큰일을 당했다고 들었네.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다행히 다친 곳은 없습니다.”
“그래, 다행이야. 자네 비서가 총을 맞았다고 하던데 후유증은 없는 거 같구먼.”
나는 대답하는 대신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송 회장은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었다.
하긴. 내 조언을 들었다고 해도 그룹의 사활을 걸고 김학권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그가 대북 정책을 펴게 만든 것도 송영주 회장이었다.
그런 만큼 아직도 청와대 곳곳에 그의 사람들이 남아있으니 어쩌면 평양에 있었던 송찬우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네가 본 평양 분위기는 어땠어?”
“평양이요? 아니면 김정일 위원장이요?”
“둘 다 말일세.”
“아마 일 년에서 이 년 정도는 아무런 대외 활동을 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자연스럽게 남북 경제 협력도 늦어질 거 같고요.”
“허······. 그렇단 말이지.”
송영주 회장의 얼굴에 아쉬운 빛이 떠올랐다.
“죽기 전에 개성공단에 첫 삽을 뜨는 것을 보고 싶었네만······. 요원하겠어.”
“······.”
회한이 묻은 말을 내뱉는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자 송 회장이 가볍게 호통을 쳤다.
“나 아직 안 죽었어. 너무 그렇게 보지 말아.”
예전보다 힘이 빠지긴 했어도 웃음소리는 여전히 호탕하고 컸다.
북한에 관한 이야기로 말문을 튼 송 회장은 한동안 대북 사업에 관한 이야기만 했다.
“네, 그렇습니다. 예상보다 세습 정치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고위층들이 있어 보였습니다.”
“그렇지. 그러고 보면 우리 재벌들의 세습 경영에 불만이 있는 사람들도 있겠구먼.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겠고 말이야.”
자연스럽게 대화의 흐름이 세습 경영으로 향했다.
물 흐르듯 원하는 주제로 대화를 유도하는 화법은 언제 겪어도 놀라웠다.
“회장님, 저는 투자자입니다. 돈이 아니라면 사람의 능력을 보는 편이죠. 저와 뜻을 함께하는 중우그룹 김병우 회장도 평사원 출신이지만 능력 하나만으로 기업 총수의 자리에 앉은 사람입니다. 능력만 있다면 출신이 어떻겠습니까.”
“······.”
에둘러 말했지만, 송찬우 회장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능구렁이인 송영주 회장이 내 말속에 숨은 가시를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말없이 나를 보고 있었다.
“세습이 문제가 아니라 능력이 문제인 겁니다. 송 회장님께서는 역사를 좋아하시니,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 핏줄이라는 이유만으로 능력도 없는 왕이 자리를 차지하고 그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 그리고 그 왕이 어떻게 쫓겨나는지를요.”
역사에 빗대어 설명하자 송 회장의 얼굴이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우리나라는 왕조 시대의 폐단을 재벌들이 그대로 담습하고 있었다.
자신이 소유한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그리고 그 자식이 또 자신의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일이 일상이었다.
“자네는 모를 거야. 오로지 능력으로 그 자리에 올라선 거니까. 하지만 평범한 다른 사람들은 아닐세. 비빌 언덕이 있다면 기대는 것도 방법 아니겠나.”
송 회장의 말은 틀렸다. 나도 저번 삶에서 할아버지의 연민으로 인해 아무것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후계자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그리고 그건 내게 오히려 독으로 작용했다. 내 능력보다 과분한 자리는 나를 야금야금 좀먹었고 결국 나를 파멸로 이끌었다.
돈과 권력 앞에서 핏줄이라는 알량한 방패가 얼마나 가치가 없는지를 몸소 겪어 봤다.
그래서 나는 송영주 회장을 말리고 싶었다.
송찬우 회장의 미래를 알기에 더더욱. 권력 싸움에서 밀린 송찬우 회장은 모든 것을 빼앗기고 결국 자살이라는 최악의 방법을 선택한다.
하지만 미래를 모르는 송영주 회장은 고집스레 송찬우에게 대현을 맡기려고 했다.
조금이나마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 일부러 차갑게 말을 내뱉었다.
“회장님이 아시는 이상으로 저도 힘겹게 자리를 지켜 내고 힘을 키워 왔습니다. 그런 만큼 송찬우 회장이 가시밭길을 걸어갈 거란 사실을 어느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요.”
“자네······.”
“송찬우 회장이 걸어갈 길은 말 그대로 지옥 길일 겁니다. 형제들과의 싸움, 국민과의 싸움, 그리고 정권과의 싸움. 그 힘든 길을 회장님의 욕심 때문에 가라고 강요하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송찬우 회장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싶으신 겁니까, 회장님.”
“······자네가 도와준다면.”
송영주 회장은 나를 굳게 믿고 있었다.
내가 도와준다면 송찬우가 그 길을 조금은 쉽게 걸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물론 내가 도와주면 조금은 수월해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이득에, 내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무조건 타인을 돕는 선한 사람이 아니니까.
내가 들어도 서늘한 목소리가 자연스레 튀어나왔다.
“회장님. 저는 회장님을 존경하고 회장님이 걸어온 길을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업이란 정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
“회장님도 아시잖습니까. 송찬성 회장이 회장님을 쏙 빼닮았다는 걸요. 능력도, 추진력도, 심지어는 성격까지 모두 말입니다. 그 사람이 회장님의 뒤를 이어 대현이라는 그룹을 잘 이끌어갈 인재라는 것도 이미 알고 계시면서 대체 왜 이러십니까.”
분명 그도 알고 있을 것이다. 모를 리가 있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해 효과적으로 굴리는데 도가 튼 사람이 송영주 회장이었다.
아들이라고 해서 능력을 검증하는 데 소홀했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대현자동차는 송찬성의 손에 떨어져 덩치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송영주 회장도 나이가 들자 미혹에 빠진 듯했다.
죽음을 앞두고 대북 사업이라는 마지막 숙원이 눈앞에 나타나 그의 판단력을 막고 시야를 가렸다.
“대북 사업 때문에 그룹의 존폐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오로지 대북 사업 때문에 후계자를 정하는 건 회장님의 욕심이고, 아집입니다.”
“김 사장, 자네······.”
송영주 회장의 목소리가 떨리기 시작했다.
대현그룹 회장인 그에게 이렇게 직설적으로 얘기한 사람은 할아버지 이후로 내가 처음일 터였다.
대현이라는 왕국에서 그는 독재자였고, 폭군이었다.
송찬우에게 회장직을 물려줬음에도 왕회장이라 불리며 그룹 대소사에 사사건건 참견했다.
“회장님이 원하시는 게 대현의 성장인지, 아니면 대북 사업의 성공인지 되새겨 보십시오. 부디 뭐가 더 중요한지 생각해 보세요. 할아버지의 친우이자 제 좋은 조언자였던 회장님이기에 무례하지만, 감히 이런 말씀을 드립니다.”
내 말에 송영주 회장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정곡을 찔렸는지 입을 꾹 다문 채였다.
나는 그런 송영주 회장을 가만히 기다렸다.
한참 동안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눈을 떴을 때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강건한 눈을 한 그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먼저 입을 열었다.
“자네한테는 빈말도 못 하겠구먼. 내 속마음을 그대로 들여다본 듯이 말을 하니, 원. 그래, 솔직히 말함세. 나는 내 이름이 대현에서 사라지는 걸 용납할 수 없네.”
“······사라질 리가 없습니다.”
“아니야. 찬성이 그 아이는 내 이름을 지울 녀석이야. 대현에서 내 이름을 지우고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싶어 할 게 분명해.”
“······.”
대현에서 송영주라는 이름을 지우면 그건 대현이 아니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있나.
송찬성이 힘을 가진다고 해도 그건 불가능했다.
내 표정을 읽은 송영주 회장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자네는 설마라고 생각하겠지. 아니, 아니야. 내가 만약 찬성이 놈이었다면, 나는 그리했을 거야. 내 앞에 다른 사람의 이름이 있는 걸 절대로 용납할 수 없지.”
“회장님.”
“그러니 자네가 나 좀 도와주게. 자네는 태산금융으로 천가 놈을 위로하지 않았나. 나는 그렇게 해 줄 자식놈이 없어. 나에게는 대현이 전부일세.”
살아서도, 죽어서도 대현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송영주 회장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대한민국 역사의 한 축에 자리 잡은 대기업을 만들어 냈으니 그에게는 대현이 전부일 터였다. 그러나 나는 그 모습이 그저 안타까웠다.
“대북 사업은 꼭 성공시켜야 하네! 그걸 해 줄 사람은 찬우뿐이야. 찬성이는 내가 죽으면 무조건 대북 사업을 접을 거야. 내가 살아 있을 때야 내 말에 따르는 듯 행동하겠지만······. 허억······!”
“회장님. 송 회장님! 일단 진정하세요.”
격한 어조로 말을 잇던 송영주 회장이 숨을 헐떡였다.
창백해진 얼굴에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곧 숨이 넘어갈 사람처럼 보였으나 눈에는 여전히 힘이 깃들어 있었다.
“허······. 허억······. 김 사장. 아니, 무혁아. 자네가 한 번만, 딱 한 번만 이 늙은이를 도와주게. 네 할아비와의 오랜 우정을 생각해서라도 딱 한 번만 나를 도와다오.”
거친 숨을 내뱉었으나 송영주 회장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부탁일세.”
“진정하시고 천천히 숨 들이쉬세요.”
나는 송영주 회장이 따라 할 수 있게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었다. 들숨과 날숨을 오래도록 반복했다.
긴 시간이 지나서야 간신히 송 회장의 호흡이 진정되었다. 그가 진정하는 걸 보고 나서야 다시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괜찮으세요, 회장님? 흥분하지 마시고 제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지 말씀해 보세요. 회장님은 정말로 저를 믿으시는 겁니까? 도와준다고 말만 하고 송찬우 회장을 꼭두각시로 만들어서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할 거라는 의심은 안 해 보셨어요?”
“당연히 해 봤다네. 그래도 내 선택은 하나야. 차라리 자네가 내 아들이라면. 아니, 손자였다면 이런 고민은 조금도 하지 않았겠지.”
“······.”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태산금융을 세운다고 말했을 때 송영주 회장이 보인 반응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씁쓸해 보이는 송 회장의 모습에 자연스레 마음이 약해졌다.
이래서 그를 찾지 않으려고 했던 건데. 작게 한숨을 쉬고는 송 회장의 손을 잡았다.
까슬한 손은 희미한 온기만 느껴졌다.
“어떻게 해 드리면 만족하시겠어요?”
“찬우가 그룹을 경영하는데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게. 자네라면 가능하지 않겠어?”
“그거면 되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제가 얻는 이득은 뭡니까.”
“이득?”
“아무리 좋은 친우였다고 해도 할아버지께서 회장님을 도와줄 때 서로 주고받는 게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제게는 주는 것 없이 그저 정으로 부탁하실 생각은 아니시죠?”
할아버지는 친우였던 송영주 회장에게 도움을 줄 때도 자신의 이득을 챙겼다.
그게 사채업자의 본모습이고, 나도 그런 할아버지의 신념에 동의했다.
“이 늙은이 생의 마지막 부탁일 수도 있는데도 꼭 그래야겠어?”
송영주 회장의 눈빛이 회한에 젖었다. 무언가를 추억하는 듯 잠시간 눈을 감았던 그가 이내 눈을 뜨고는 나와 눈을 마주쳤다.
나는 담담한 눈빛으로 그런 송 회장을 응시했다.
침묵은 짧았다. 이내 송 회장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예끼! 이놈은 이런 점까지 자기 할아비를 똑 닮았네. 그래, 내 자네가 원하는 걸 주지. 대현전자? 대현자동차? 아니면 대현건설?”
송영주 회장은 내가 대가를 요구할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미 마음의 준비를 끝냈으면서, 나를 떠볼 생각인지 대현의 기둥이나 다름없는 사업의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대북 사업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냐는 생각이 듦과 동시에 그에게 대북 사업이 정말로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게는 중우그룹이 있습니다. 자동차는 관심이 없고요. 전자는 중우전자가 일성전자를 곧 따라잡고 국내 최고가 될 겁니다. 건설요? 중우건설과 극성건설이 얼마 전에 합병했습니다. 대현건설과 차이가 얼마 안 나는 거 아시잖아요.”
송영주 회장은 내가 그 기업들을 받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대신 송 회장의 입가가 딱딱하게 굳기 시작했다. 내 입에서 나올 말을 짐작한 모양이었다.
“진짜 줄 수 있는 것, 그리고 제게 이득이 될 만한 것을 주신다면 저는 송찬우 회장의 든든한 아군이 되겠습니다.”
결국 나는 송영주 회장의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하지만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정만으로 부탁을 들어줄 수는 없었다.
송영주 회장이라면 내가 정말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겠지.
굳은 입매를 풀고 한숨을 쉰 그가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후······. 그래. 자네가 원하는 대로 해 주지.”
내가 원하는 건 돈도 아니었고, 대현의 계열사도 아니었다.
일성을 철저하게 재계에서 고립시키는 것.
그건 대현만이 할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송영주 회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 회장님도 아시잖아요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