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idfield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8)
천재 미드필더가 돌아왔다-138화(137/201)
138화 존중
아르테타는 천천히 템포를 조절하며 후방에서 볼을 돌렸다.
“급할 필요 없어! 천천히 해!”
키슬링의 선제 득점으로 경기 흐름이 넘어오고 주도권도 꽉 쥐고 있던 터라 실수하지 않는다면 변수는 없었다.
오늘 센터백 듀오는 토마스 베르마엘렌과 세바스티안 스킬라치.
주로 교체나 중요하지 않은 경기에 출전하는 스킬라치였지만, 오늘 폼은 괜찮아 보였다.
“나이스 패스!”
패스를 주고받을 때도 여유로웠고 브랜드포드 시티의 어설픈 압박도 쉽게 흘려보냈다.
베르마엘렌, 메르테자커, 코시엘니에게 밀려 출전 기회가 적었던 그였으나 큰 불만은 없었다.
세 사람의 기량이 자신보다 좋다는 걸 일찌감치 인정했으니까.
본인부터 백업 생활에 만족했다.
아스날에 남아 있으면 자동으로 우승 커리어가 따라왔으니까.
이걸 포기하고 다른 팀으로 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후보라도 영광의 시대를 함께하고, 이에 기여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평가가 올라간다는 걸 알고 있었다.
“측면으로 돌려!”
서하의 외침에 스킬라치는 오른쪽으로 벌려 줬다.
“굿 패스!”
아스필리쿠에타는 부드럽게 원터치 패스로 나바스에게 전달했다.
나바스는 등을 진 채로 공을 받은 후 적절한 타이밍에 중앙으로 보냈다.
서하는 자신에게 굴러오는 공과 압박하러 나오는 선수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거리는 아직 조금 있었다.
툭.
오른발 뒤꿈치로 공을 건드려 속도를 확 죽였다.
살짝 스핀을 머금은 공이 왼쪽으로 느릿하게 굴러갔다.
“윤!”
사람을 담그려는 생각인지 슬라이딩 태클이 들어왔다.
아스날의 핵심인 서하만 없으면 해볼 만하다는 생각인 걸까.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슬라이딩 태클은 심했다.
‘아직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먼저 성을 낼 줄이야.’
이대로 태클에 당하는 척 발에 걸려 넘어져도 이득이었지만,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저 망할 눈빛부터 꺾어야 했다.
서하는 왼발 끝으로 공을 컨트롤한 후 오른발에 다시 보냈다.
발을 두 번 가볍게 움직여 슬라이딩 태클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
깜짝 놀라는 표정은 기억할 필요 없었다.
이제 곧 절망으로 물들 테니까.
툭. 툭툭툭.
공을 길게 치며 몰고 나갔다.
점점 속도가 달라붙었다.
순식간에 중앙선을 넘어 브래드포드 시티 진형에 발을 디뎠다.
“젠장! 녀석을 막아!”
몸으로 밀고 들어오는 선수들을 본 서하는 살짝 웅크렸다가 갑자기 속도를 높여 치고 달렸다.
“미친!”
서하를 코앞에서 놓친 상대 선수는 헛손질을 선보이며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툭. 툭. 툭.
지그재그로 달릴 필요도 없었다.
아우토반을 달리듯 일직선으로 쭉 나아갔다.
‘전방에 센터백 둘과 미드필더 하나 그리고 키슬링. 오른쪽은 나바스. 풀백이 달라붙어서 선택지로는 꽝이야.’
시야를 넓혀 왼쪽도 눈에 담았다.
그나브리가 눈치를 보며 살살 중앙으로 좁혀 들어왔고 풀백으로 출전한 바실리스 토로시디스가 사이드라인을 타고 달렸다.
다들 움직임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부지런히 따라붙는 상대 선수들이 있었지만, 수비 위치가 좋지 않았다.
사이드를 완전히 내줬으니까.
텅텅 빈 왼쪽 사이드를 요리할지 아니면 이대로 직진해 단숨에 슈팅을 가져갈지.
행복한 고민도 잠시.
서하는 앞을 보고 달렸다.
“뚫는다.”
중앙을 포기하기 어려웠다.
한 명만 뚫으면 완벽한 득점 기회가 만들어지는데 이를 놓칠 서하가 아니었다.
도전은 항상 즐거웠으니까.
툭. 툭툭. 툭툭툭.
상대 선수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컨트롤을 섬세하게 가져갔다.
길게 차지 않고 짧게, 그렇다고 아주 짧게 차기보다는 상대가 발을 내미도록 먹이를 던졌다.
상대가 원하는 타이밍에 태클이 들어오도록 함정을 판 거다.
‘와라.’
프리미어 리그 상위 팀 선수들이었다면 서하의 의도를 눈치 채고 사이드로 밀어내거나 지연시켜 동료들과 함께 압박했겠지만, 이들은 4부 리거였다.
프로의 끝자락에 걸친 선수들.
함정인 줄도 모르고 거리 안으로 들어오자 발을 뻗었다.
서하는 기다렸다는 듯 왼발로 공을 굴러 바깥쪽으로 빼냈다.
“……!”
몸을 측면으로 살짝 돌린 후 다시 왼발로 툭 치고 올라가 상대의 태클을 피하며 돌파했다.
아름다운 움직임보다는 역동적이고 치명적인 움직임이었다.
브래드포드 시티 팬들은 서하의 폭력적인 드리블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멍하니 바라봤다.
이런 드리블은 4부 리그에서 볼 수 없는 어나더 레벨이었으니까.
서하는 속도를 다시 높였다.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부풀어 올랐으나 이제 곧 고지였다.
조금만 더 참으면 됐다.
“후우. 후우.”
거친 숨소리가 전신을 뒤덮었다.
그래도 달리고 또 달렸다.
영리한 키슬링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거다.
키슬링은 기대에 부응했다.
키슬링이 오른쪽으로 빠지는 움직임을 가져가자 센터백 하나가 끌려 나갔다.
센터백 사이의 간격이 벌어졌다.
골키퍼는 아직 위치를 잡지 못하고 살짝 왼쪽으로 쏠려 있었다.
키슬링은 완벽한 미끼였다.
더욱 간격을 벌리기 위해 오른쪽 대각선으로 뛰었다.
황급히 따라붙는 센터백, 서하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맺혔다.
‘완벽하게 열렸다!’
골키퍼가 자신의 위치와 서하의 위치를 파악하고 재빨리 이동했으나 늦었다.
열린 공간으로 강력한 슈팅이 쇄도하고 있었으니까.
발등에 제대로 걸린 슈팅은 오른쪽으로 살짝 휘어나가며 그대로 상단 구석에 빨려 들어갔다.
출렁!
또다시 골망이 출렁였다.
“우와아아아아!”
서하는 자신의 전매특허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고 가볍게 점프 어퍼컷 세리머니를 펼쳤다.
평소대로 세리머니를 펼쳤다가는 피부가 쓸려 나갈 것 같았으니까.
키슬링도 살짝 슬라이딩 세리머니를 펼쳤다가 피부가 살짝 까졌던 터라 더욱 조심해야 했다.
서하는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자리로 돌아왔다.
선제 득점이 나온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추가 득점이 터지자 브래드포드 시티 선수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팬들은 할 수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줬지만, 그들의 목소리에는 진심이 담기지 않았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길 바라고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한참 남았어.”
전반전은 물론 허락된 시간까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겨야 했다.
물론 벵거 감독과의 약속은 잊지 않았다.
하지만 전반전에 골을 많이 넣었다고 벤치로 불러들일 꽉 막힌 감독이 아니었다.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불러들일 가능성이 높기에 최대한 많은 득점을 올려야 했다.
“압박해! 더 강하게! 측면! 측면으로 몰아! 좋아!”
“쟤들 완전 겁먹었어! 그냥 밀어붙여도 돼! 그나브리! 자신감을 가져! 네가 좋아하는 드리블을 보여 주라고!”
아스날은 이제 자기 진형에서 공을 돌리지 않았다.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가 브래드포드 시티 진형으로 넘어와 플레이했다.
“윤! 방금 롱 패스 좋았어!”
그들은 초반에 보여 준 허술한 압박 플레이를 그만뒀다.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걸 두 골을 얻어맞고 배웠으니까.
서하는 템포를 살짝 올렸다.
골 잔치를 벌일 시간이었다.
상대가 약하다는 걸 알자 다들 공을 잡을 때마다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처럼 매섭게 변했다.
“좋아! 측면으로 계속 뚫어!”
발걸음부터 가벼웠다.
특히 윙어들의 컨디션이 좋았다.
그나브리와 나바스는 자신의 장기들을 뽐내며 브래드포드 시티 선수들을 농락했다.
두 골을 얻어맞은 데다 측면이 흔들리니 팀 전체가 흔들렸다.
잡아야 할 선수들은 놓치고.
미끼들에게 농락당하니 여기저기에 큰 구멍이 생겼다.
“사이드! 아니! 중앙 막아!”
“다들 집중해! 아직 할 수 있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브래드포드 시티 벤치에서 선수들의 위치를 잡아 주고 흔들리는 멘탈을 붙잡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으나 효과는 없었다.
아스날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최상위 포식자였다.
피할 공간도 도망칠 힘도 없었다.
“계속 밀어붙여!”
부상에서 복귀한 아르테타는 펄펄 날아다녔다.
경기 조율은 완벽했고 패스로 압박을 풀어 나가는 힘도 좋아졌다.
상대가 4부 리거라는 점은 조금 감안해야겠지만, 아르테타의 폼이 빠르게 올라온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아르테타가 없어서 전진 패스가 안 되는 코클랭과 플라미니를 기용할 수밖에 없던 경기를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물론 윌셔의 합류로 숨통이 조금 풀렸으나 아르테타이 역할에 어울리는 선수가 아니었다.
공격적인 임무에 어울리는 선수였던 터라 아르테타의 역할을 대신할 선수는 없었다.
“카솔라가 있지만, 공격 재능을 낭비하기는 아깝지.”
아르테타가 활발히 필드를 누비자 자연스레 함께 짝을 이룬 프림퐁도 오른쪽 공간을 커버하며 자신이 맡은 역할을 완수했다.
부상의 여파가 살짝 남아 있었으나 대체로 나쁘지 않았다.
“윤!”
아르테타의 패스를 받은 서하는 동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퍼즐이 맞춰지듯 약속된 플레이를 가져갔다.
서하는 가볍게 왼발로 공을 툭 건드렸다.
출렁!
미끼를 자처한 키슬링이 공간을 만들어 주고 서하가 그 공간으로 공을 밀어 넣자 그나브리가 파고들어 논스톱 슈팅을 가져갔다.
골키퍼는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세 번째 실점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아!”
원정 팬들의 환호성이 쏟아졌다.
이번 시즌 세 번째 득점을 기록한 그나브리는 코너 에어리어로 달려가 파이팅 넘치는 세리머니로 기쁨을 표출했다.
서하가 다가와 축하의 말을 건네자 그나브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서하를 껴안았다.
“윤! 정말 고마워!”
“네가 잘 차서 들어간 거야.”
“헤헤. 그런가? 하긴 내가 잘 차긴 했지! 발등에 제대로 걸려서 딱! 골인 걸 직감했거든!”
“다음에도 그렇게 해. 그러면 출전 기회는 점점 늘어날 거야.”
“응! 나 오늘 컨디션 진짜 좋거든! 그러니 팍팍 밀어 줘!”
서하는 피식 웃고는 그나브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려 준 후 자리로 돌아왔다.
전광판 시계를 보니 전반전이 끝나려면 아직 한참 남았다.
“20분. 이 정도면 충분해.”
전의를 상실한 선수들을 보니 살짝 동정심이 생겼지만, 여기는 프로 무대였다.
봐주는 경기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 플레이해야 했다.
“윤!”
벤치에서 신호를 보내왔다.
체력을 아끼고 템포를 조절하라는 신호였다.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호흡을 천천히 골랐다.
“우리가 너무 달리긴 했지.”
힘든 줄도 모르고 필요 이상으로 날뛰었던 터라 쓸데없이 체력을 낭비했다.
박싱 데이도 코앞이고 1월에도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벤치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서하는 동료들에게 다가가 벤치의 지시를 알렸다.
다들 아쉬워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벤치의 지시를 무시할 정도로 담이 크지 않았다.
중앙선을 넘어갔던 수비 라인을 내리고 템포도 확 죽였다.
동료들과 공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홈 팬들은 야유를 퍼붓지 않았다.
그들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었다.
“쟤들 안 나오는데?”
“우리가 와 주길 바라나.”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완전히 기가 죽어 있었다.
하려는 의지가 완전히 사라졌다.
스코어는 3대0에 경기력은 압도당했고 공을 만져 볼 기회도 많지 않았다.
볼을 만져 봤자 바로 압박당해 뺏기는데 할 말이 날까.
그래도 저들이 버티는 이유는 프로 선수이기 때문이다.
경기를 봐주러 온 팬들을 위해 억지로 꾹 참고 뛰는 거다.
“존중해 줘야지.”
서하는 굴러온 공을 왼쪽 측면으로 보냈다.
그나브리에게 악착같이 달라붙는 브래드포드 시티 선수들.
그런 선수들을 보며 홈 팬들은 열렬히 응원했다.
서하는 남은 기억들을 모두 쓰레기통으로 버렸다.
언제까지 과거에 얽매여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