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idfield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55)
천재 미드필더가 돌아왔다-155화(154/201)
155화 지금 터트리자
생각지도 못한 말을 들은 서하는 살짝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은 채 탈의실로 향했다.
황재협 이사가 바로 따라 붙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서하에게 사과했다.
“서하야,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괜히 기자들과 인터뷰해서.”
“신경 쓰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아니야. 내가 조 감독님께 상황을 말씀드릴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마… 이해해 주실 거야.”
“알겠어요.”
황 이사는 애써 활짝 웃으며 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준 후 자리를 떠났다.
“협회에서도 골치 아픈가 보네.”
감독을 구하지 못해 억지로 앉혀 놓았는데 컨트롤이 잘 되지 않으니 생각이 많은 듯했다.
서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탈의실로 향했다.
서둘러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시간을 확인하니 약속 시간까지 대략 20분 정도 남아 있었다.
“그냥 기를 죽이고 싶었나.”
여전히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강현 감독.
저러는 이유야 잘 알고 있었다.
원치도 않는 대표 팀 감독과 구단 감독을 겸직하고 있었으니까.
새 시즌을 바쁘게 준비해야 할 시간인데 대표 팀 경기로 시간을 잡아먹고 있으니 얼마나 애가 탈까.
차라리 경질해 주길 원할 거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2년.
팀 조직력을 한창 올릴 시기였다.
그런데도 새 감독을 구하지 못하고 임시 감독으로 때우고 있었다.
협회의 일처리도 문제고 조강현 감독의 책임감 없는 자세도 문제.
서둘러 해결하지 못하면 또다시 같은 성적표를 받을지도 모른다.
좀 더 높은 무대를 꿈꿨던 서하에게는 좋지 않은 소식이었다.
“지금은 해결할 방법이 없으니 좀 더 지켜보자.”
서하가 무리에 합류하자 진우원이 감독 시선을 피해 윙크를 보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런던 올림픽 때 함께한 선수들도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환한 분위기도 잠시.
훈련이 시작되자 무겁고 삭막한 분위기가 훈련장을 뒤덮었다.
선수들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조강현 감독을 바라봤다.
‘해외파 선수들하고 감독하고 사이가 좋지 않다더니 사실이었네.’
서로에게 불만이 쌓였는지 대화도 나누지 않고 수석 코치를 통해 의사를 전달하고 있었다.
덕분에 수석 코치는 조강현 감독과 선수단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서하야,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나쁘지 않아요.”
“휴, 다행이다. 대표 팀 훈련은 처음이겠지만, 너무 긴장하지 말고 모르는 거 있으면 형들이나 나한테 물어봐. 알겠지?”
“그럴게요.”
“좋아. 우원이는 어때? 어디 아픈 곳은 없어?”
수석 코치는 선수들의 몸이 불편하지 않는지 컨디션 체크하며 수첩에 빠르게 적었다.
그동안 조강현 감독은 자신이 데려온 코치들과 이야기할 뿐, 선수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훈련 준비도 함께 하지 않고 조금 떨어져서 지켜보고 있었다.
체크가 끝나자 수석 코치는 조강현 감독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고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 지시를 내렸다.
다시 돌아온 수석 코치는 선수들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막내들은 세팅하고 다른 사람들은 훈련장 뛸 준비해.”
“알겠습니다!”
대표 팀의 막내 라인은 서하와 손호민이었다.
두 사람은 불평하지 않고 벤치 앞에 있던 훈련 장비들을 가져와 잔디에 깔았다.
서하는 고깔을 잔디 위에 놓으며 불화가 가득한 훈련장 분위기에 혀를 내둘렀다.
조강현 감독은 선수들과 거리를 두면서도 기를 꺾으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서하는 절로 한숨이 나왔다.
서로 신뢰를 줘야 하는데 신뢰를 주지 않고 강압적으로 명령만 하니 누가 따르려고 할까.
“구단에서는 이렇지 않았다는데.”
“야.”
서하의 중얼거림에 손호민이 잔뜩 긴장한 얼굴로 옆구리를 툭툭 치며 검지를 올렸다.
손호민은 서하가 놓은 고깔 위치에 맞춰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주변을 슥 살폈다.
아무도 이쪽을 보고 있지 않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조 감독한테 찍히면 큰일 나. 찍히면 데뷔도 못 할 수 있다고.”
“우원이 형 말이 진짜였어?”
손호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새로운 감독님이 오실 때까지 얌전히 있어. 그게 최선이야.”
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조 감독님이 월드컵 예선전까지 맡기로 했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그것 때문에 형들 불만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야. 지금 당장 전술 옷을 입혀야 하는데 구닥다리 전술로 브라질 월드컵에 나가게 생겼잖아. 그게 예선전에서 통하면 몰라. 지금까지 선수들 개인 기량으로 욱여넣어서 이겼는데 전술은 쓸모도 없으니. 하아.”
손호민은 투덜거리면서도 조강현 감독의 얼굴을 슬쩍 살폈다.
다행히 그는 두 사람을 바라보지 않고 코치와 대화를 나눴다.
물론 여전히 불만이 많은 얼굴.
왜 유럽까지 와서 경기해야 하는지 이해 못 하는 표정이었다.
“진짜 오기 싫었나 보네.”
“조 감독님이 엄청 반대했잖아. 한국에서 경기 하면 되는데 왜 유럽까지 가냐고. 이크! 이쪽 본다. 빨리 설치하자.”
두 사람은 서둘러 세팅을 끝내고 구보를 뛰는 무리로 합류했다.
런던 올림픽 주역들이 다가와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며 오늘 있을 훈련을 간략하게 알려 줬다.
손호민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작은 목소리로 진우원에게 물었다.
“진짜요? 진짜 그걸 한다고요?”
“어… 그걸 지금 하시겠단다.”
“와, 미친. 독일전에 뛸 체력을 지금 다 쓰게 생겼네.”
서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최신식 훈련까진 바라지 않았다.
컨디션 점검 위주에 개인 훈련을 약간 곁들일 줄 알았다.
아니면 세트 피스 훈련이라든가.
하지만 훈련 첫날부터 강도 높은 훈련이라니, 그것도 체력 훈련 위주로 돌아간다니.
“완전 구닥다리네요.”
서하의 냉정한 평가에 구재칠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어쩌겠냐. 하라는 대로 해야지.”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도 안 나오네. 컨디션 조절을 해야지 무슨 다짜고짜 체력 훈련이야.”
캐피탈 원 컵 결승전이 코앞이었던 터라 기선우의 신경은 굉장히 날카로워져 있었다.
거의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동료들은 그를 달래 주면서도 훈련에 대한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서하는 조강현 감독의 의도를 파악하려고 애썼으나 진심으로 체력 훈련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고집스러운 얼굴에 고개를 저었다.
“쓸데없이 체력을 빼게 생겼네.”
비시즌이었다면 이해할 텐데.
아니, 그냥 이해하기를 그만뒀다.
“자! 다들 원으로 만들어. 빨리!”
구보가 끝나자 서하는 동료들과 함께 가벼운 스트레칭으로 몸을 푼 후 강도 높은 체력 훈련에 들어갔다.
수석 코치에게 모든 걸 맡겼던 조 감독은 체력 훈련이 시작되자 거짓말처럼 열정적으로 지휘했다.
“야! 빨리 빨리 안 뛰어? 내가 말한 시간에 못 들어왔잖아! 야! 너, 돌아가서 다시 뛰어. 들어올 때까지 계속 뛸 테니까 한번 끝까지 가 보자.”
장신 스트라이커인 김진욱은 썩은 표정을 지으며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조강현 감독은 출발선에서 꾸물거리는 선수들을 다그쳤다.
“다음! 빨리 준비해!”
자신의 차례가 오자 서하는 호흡을 고른 후 고깔 위치를 확인하고 빠르게 뛰었다.
툭. 툭. 툭. 툭.
양 옆을 쉴 새 없이 오가며 점진적으로 전진했다.
방향 전환도 매우 중요했고 한번 타이밍을 잘못 잡으면 균형을 잃고 넘어질 수 있었기에 속도도 잘 유지해야 했다.
툭.
고깔을 한 번 건드리고 다시 반대편 고깔을 건드리며 발을 바쁘게 놀렸다.
“후우. 후우. 후우.”
처음 해 보는 훈련이었음에도 서하는 능숙한 몸놀림을 보여 주며 제한 시간을 여유롭게 통과했다.
도착 지점에 발을 내밀며 상체를 앞으로 숙인 후 거칠어진 숨을 연이어 몰아쉬었다.
서하를 아니 꼽게 봤던 조강현 감독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잘하네. 그렇게만 해.”
“감사합니다.”
“잠시 저기서 쉬었다가 다른 코스로 이동해. 자, 다음!”
서하는 알겠다고 말하며 박재영이 숨을 헐떡거리며 늘어져 있는 자리 옆에 앉아 숨을 골랐다.
박재영이 힘없이 손을 흔들며 서하를 반겼다.
“오! 서하 왔냐.”
“생각보다 힘드네요.”
“크흐흐. 힘들지. 한국에 있을 때는 입에 단내가 나도록 했거든. 유럽 오고 나서는 안 했었는데 이걸 다시 하게 될 줄은 몰랐어. 오랜만에 하니까 미치겠더라.”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이거 비시즌 중에 하는 거죠?”
“그래서 다들 얼굴이 썩은 거 아냐. 비시즌 중에 하는 걸 지금하고 있으니까. 후우. 난 다음 훈련으로 넘어갈게. 천천히 와.”
박재영은 간신히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코스로 넘어갔다.
서하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봤다.
다들 소화하는 데 큰 문제 없었다.
익숙한 훈련인지 방향 전환, 속도, 조절까지 곧잘 했다.
물론 나머지 공부를 받아야 하는 선수들도 꽤 됐다.
유럽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체력이 올라왔던 터라 괜찮았으나 아시아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이 문제였다.
“하아. 하아. 하아. 개같은.”
아직 비시즌 중이었기에 아직 체력이 올라오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강현 감독은 통과하지 못한 선수들을 계속해서 돌려보냈다.
골키퍼들도 예외는 없었다.
“시발, 이걸 왜 해야 하는 건데.”
“몰라, 시발.”
불만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터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 전 문제를 해결한다면 한 편의 스토리가 뚝딱 완성됐겠지만, 조강현 감독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좋게 말하면 뚝심, 나쁘게 말하면 고집과 아집으로 똘똘 뭉쳐 강압적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서하는 착실하게 훈련을 소화했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훈련 분위기에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차라리 지금 터지는 게 좋은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스쿼드를 꾸렸음에도 8강에서 멈춘 이유는 여러 요인이 있었다.
적응력, 전술, 우승 후보를 만난 불운도 있었으나 몇 개월 남기지 않고 새 감독을 임명한 축구 협회의 안일한 자세가 가장 컸다.
새 감독이 원하는 전술에 적응하기도 전에 월드컵이 열렸으니까.
‘예선 통과 자체가 기적이었지.’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승부차기 끌고 간 끝에 8강이라는 무대에 오르며 원정 최고 기록을 썼지만, 개인적으로는 정말 아쉬웠다.
조금 더 시간이 주어졌다면 결과를 바꿀 수 있었으니까.
“야! 뭐 해! 내가 감독 대행이라고 해서 대충 하는 거야 뭐야! 똑바로 하라고!”
서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감독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저 사람은 아니었다.
훈련을 지켜보던 축구 협회 관계자들의 표정도 점점 굳어졌다.
이러려고 유럽 원정 경기를 추진한 게 아니었으니까.
“팀장님, 괜찮은 거 맞아요?”
“당연히 안 괜찮지! 하지만 윗선에서 지시한 거잖아. 우리는 하이에나들이 냄새를 맡기 전에 차단해야지. 하아. 돌겠네.”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어디 가서 그런 말하지 마라. 너 바로 잘린다. 황 이사님도 우선 지켜보라고 하셨으니 우린 가만히 있으면 돼.”
“당… 서하? 왜, 왜 여기에 있어?”
서하는 물을 마시러 왔을 뿐이라고 얼버무리고는 다시 돌아갔다.
삐익! 삐익! 삐익!
체력 훈련이 끝났다는 휘슬 소리에 선수들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널브러졌다.
다들 숨을 헐떡이는 소리가 훈련장 전체로 퍼졌다.
서하는 손호민과 함께 늘어져 있는 선배들에게 물병을 돌렸다.
“오! 막내들이 고생한다.”
“이야! 엄청 시원한데? 고맙다!”
“너희들도 빨리 쉬어.”
서하는 마지막으로 매서운 눈빛으로 조강현 감독을 노려보는 기선우에게 다가가 물병을 건넸다.
기선우는 고맙다는 짤막한 말을 건네며 물병을 입에 가져갔다.
“하아, 이제야 살 것 같네.”
기선우는 무릎을 만지작거렸다.
서하는 슬쩍 말을 걸었다.
“선우 형, 무릎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저번 경기에서 살짝 타박상 입은 부분이 아직도 따끔거리거든.”
“그럼 훈련을 빠졌어야지.”
“나라고 안 빠지고 싶었겠냐. 무릎이 아파서 체력 훈련만 쉬겠다고 정중히 말했는데 참 나. 아예 말이 안 통하더라. 나보고 엄살 부린다면서 끝까지 소화하게 만들더라고. 정말 존경스러운 분이라니까.”
“이건 아닌데.”
서하가 공감해 주자 기선우는 신이 났는지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더 무서운 이야기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애들도 아픈 거 참고 뛰었다는 거지. 이게 말이 되냐? 응? 말이 되냐고.”
“당연히 안 되지.”
“아무튼 답이 없어. 독일전을 제대로 뛸 수 있을지나 모르겠다. 어떻게 온 기회인데. 하아. 완전 퇴보야 퇴보.”
한계치에 도달한 말투와 목소리.
비단 기선우뿐만이 아니었다.
감독이 협회 관계자들과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선수들은 저마다 목소리를 내며 조강현 감독의 훈련 방식에 불만을 내뱉었다.
지금 당장 쿠데타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서하는 결단을 내리기로 했다.
이번 일로 사람들에게 욕을 잔뜩 먹더라도 상관없었다.
냄새 나는 똥은 치워야 했으니까.
그 전에 동지들을 만들어야 했다.
“형, 저 못 참을 것 같은데 같이 터트리실래요?”
서하의 제안에 기선우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구국의 결단을 내린 의사처럼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