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idfield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3)
천재 미드필더가 돌아왔다-23화(22/201)
23화 내가 있으니까
프리미어리그 2011/12 개막전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개막전 상대는 뉴캐슬.
겨울 이적 시장에서 리버풀에 주포인 앤디 캐롤을 넘기고 40M 파운드라는 이적료를 받아냈다.
여기에 안정적인 풀백인 호세 엔리케까지 리버풀로 이적시키며 전력이 떨어진 팀이었다.
이외에도 케빈 놀란을 웨스트햄에, 웨인 라우틀리지를 퀸즈 파크 레인저스로 보냈다.
실탄을 두둑이 챙긴 뉴캐슬은 곧바로 쇼핑에 나섰다.
가장 먼저 릴의 에이스, 요안 카바예를 깜짝 영입하며 중원 퀄리티를 높였다.
여기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부진을 겪던 윙어 가브리엘 오베르탕을 영입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특급 유망주인 진우원을 데려오며 한국 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원래는 선더랜드에서 영입했을 텐데 뉴캐슬이라니.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잖아.”
서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진우원의 이적 기사를 읽었다.
현지 팬들의 댓글 분위기를 살펴보니 나름 나쁘지 않았다.
기대한다는 댓글이 다수였다.
좋지 않은 댓글도 있었다.
앤디 캐롤을 팔고 유망주를 데려오는 선택이 맞는지 의아하다는 의견이 꽤 있었다.
“진우원이라.”
서하는 어떤 선수였는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진우원은 런던 올림픽 황금 세대 주역 중 한 명으로 그와는 꽤 가까이 지낸 사이였다.
“엄청 친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교류는 많았지.”
해외에 있으면 자연스레 한국인 교류가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대표 팀에서 호흡을 맞춰본 사이라 자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성격이 온순하고 털털해서 까칠한 서하를 잘 받아주곤 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에이전트를 바꾸라고 말했는데 들어먹질 않다가 저니맨 신세가 됐지.”
서하는 바로 수첩에 적었다.
은디아예와 연결시켜준다면 저니맨 신세를 막을 수 있으리라.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뉴캐슬은 왜 유망주인 진우원을 영입했을까?”
진우원은 아시안 게임과 아시안 컵 활약으로 유럽 구단들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선수였다.
실제 공식적으로 오퍼가 온 구단은 프리미어리그의 선더랜드 그리고 네덜란드의 PSV, 분데스리가의 샬케04였다.
본격적으로 이적 소식이 들린 날짜는 6월 중순이었다.
뉴캐슬은 입질조차 없었다.
“뉴캐슬이 진우원에게 오퍼를 보냈다는 소식은 없었는데. 설마 나 때문인가?”
서하는 뉴캐슬 2군과의 경기를 떠올리다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만 16살 한국인 미드필더가 박살내는 경기를 보고 눈이 돌아서 하이재킹한다?
“아시아 시장을 생각한다면 진우원의 영입은 나쁘지 않지.”
소속 팀은 물론 국제 대회에서도 증명했고 만 21살이라는 어린 유망주였으니 긁어 볼만 했을 테고.
쓰임새도 확실했다.
진우원은 가짜 공격수 롤과 공격형 미드필더, 윙어까지 소화했던 멀티 플레이어였으니까.
중소 규모 구단에서 멀티 자원은 어디든 환영을 받는 법.
서하는 팀에 잘 적응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했다.
“이번에 만날 수 있겠네.”
서하는 슬슬 훈련장으로 향했다.
오늘도 어김없이 파커가 마중 나와 있었다.
파커는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서하는 피식 웃으며 물었다.
“파커, 여자 친구 생겼어요?”
“널 케어하느라 바빠 죽겠는데 무슨 여자 친구야. 타기나 해.”
“근데 무슨 선글라스에요. 옷도 깔끔하게 입고. 딱 봐도 여자 만나러 가는 것 같은데.”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자 파커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아. 눈치 빠른 자식…”
“흐흐흐. 예뻐요?”
“예쁘면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됐고 짐이나 내 놔.”
파커는 서하의 짐을 받아 트렁크에 실었다.
서하는 조수석 문을 열고 앉은 후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파커는 운전석에 앉으며 슬쩍 훑어보다가 씩 미소를 지었다.
“맸어? 맸네. 훌륭하다. 꼬맹이.”
“감사합니다. 어르신.”
파커는 서하의 이마에 가볍게 딱밤을 먹이며 시동을 걸었다.
“노래는 뭐 들을까? K-POP?”
“클래식 음악 틀어줘요.”
“애늙은이 같은 녀석.”
파커는 투덜거리면서도 서하의 니즈에 맞춰주었다.
몇 번 지직거리더니 감미로운 피아노의 선율이 흘러나왔다.
익숙한 멜로디가 귓가를 속삭이자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에 든다는 신호였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인 프란츠 슈베르트가 만든 피아노 5중주이자 가곡, 송어였다.
고상한 취향에 파커는 혀를 내두르면서도 묘한 표정을 지었다.
“예술적으로 공을 차면 취향도 닮는 건가.”
“클래식이 편하고 좋잖아요.”
“듣기야 좋지. 애들이 들을만한 음악이 아니니까 하는 말이야.”
부드럽게 핸들을 돌리는 파커.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으니 베스트 드라이버의 면모를 보여주는 듯했다.
확실히 파커는 외모가 끝내줬다.
몸매도 나쁘지 않고 딱 여자들이 좋아할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파커는 모르는 여자 앞에서는 말더듬이가 되는 남자였다.
모태 솔로 진행 중인 파커가 말을 걸어왔다.
“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면 막 영감이 떠올라?”
“아니, 제가 예술가도 아니고 무슨 영감을 떠올려요.”
“축구할 때 보면 뭔가 다른 선수들하고 다르게 차니까 그렇지. 팬들도 네 플레이 스타일을 예술가 기질이 다분하다고 말하잖아.”
덕분에 코리안 지단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터라 서하는 피식 웃었다.
“전 자유롭게 공을 차고 싶었을 뿐이에요. 무언가에 구속되는 걸 정말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신나게 퇴장도 당하고?”
“…”
예상치 못한 공격에 서하는 입을 꾹 다물었다.
파커는 자신이 이겼다고 생각했는지 한껏 신이 난 얼굴로 콧노래를 불렀다.
참 유치한 사람이었다.
평생 모태 솔로가 되길 바랐다.
“아 참! 스쿼드 넘버가 나오는 날인데 무슨 번호를 받을지 알아?”
“원하는 번호는 10번이지만, 10번은 반 페르시가 사용하고 있어서 8번을 주겠다고 하셨어요.”
“응? 8번? 8번은 나스리인데?”
“맨체스터 시티로 가잖아요.”
“아, 그렇지.”
구단 동의도 떨어지고 메디컬 테스트까지 통과했는데 아스날에 남아 있을 이유는 없었다.
이미 맨체스터에 집을 구했다는 말까지 돌았던 터라 서하는 거리낌이 없었다.
“정말 괜찮겠어?”
파커의 걱정 어린 물음에 서하는 코웃음을 쳤다.
“나스리가 보복이라도 한대요?”
“아니, 전임자가 나스리잖아.”
“전혀요. 나스리가 좋은 선수는 맞지만, 저보단 아니죠.”
자신감을 넘어 패기 넘치는 말이 서하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파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드디어 정신이 나갔네.”
“예술가들이 다 그렇죠.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져 있잖아요.”
“그건 맞지. 도착했다. 오늘도 열심히 하고 말썽 피우지 말고. 오늘 퇴근은 네 에이전트님이 하신다니까 나 기다리지 마.”
서하는 피식 웃고는 조수석에서 내리며 덕담을 남겼다.
“파커, 행운을 빌어요.”
“고맙다. 만약 잘 되면 결혼식에 초대해주마!”
그 전에 사귀는 것부터 생각해봐야지 않을까 싶었지만, 서하는 맛있게 반응해줬다.
“오! 벌써 결혼까지 생각했어요? 아이는 몇 명 가지시려고요?”
“아이? 잠시만.”
파커는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끝내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놓았다.
“한 셋은 낳아야지 않을까? 아들 둘에 딸 하나. 어때?”
어설프게 핀 손가락 세 개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뤄지지 못할 꿈처럼 말이다.
***
개막전을 이틀 앞두고 구단에서는 1군 스쿼드와 넘버를 발표했다.
1. 마누엘 알무니아
2. 아부 디아비
3. 바카리 사냐
4.
5. 토마스 베르마엘렌
6. 로랑 코시엘니
7. 토마스 로시츠키
8. 서하 윤
9.
10. 로빈 반 페르시
11. 카를로스 벨라
12. 프랑시스 코클랭
13. 보이치에흐 슈체스니
14. 시오 월콧
15. 알렉스 옥슬레이드챔벌레인
16. 아론 램지
17. 알렉스 송
18. 세바스티안 스킬라치
19. 잭 윌셔
20. 요한 주루
21. 우카시 파비안스키
22.
23. 안드레이 아르샤빈
24. 엠마누엘 프림퐁
25. 칼 젠킨슨
26. 키어런 깁스
27. 제르비뉴
28. 료 미야이치
29. 마루앙 샤막
52. 니콜라스 벤트너
송이 휘파람을 불며 씩 웃었다.
“오! 윤! 8번이라니! 감독님이 널 엄청 마음에 들었나본데?”
“프리 시즌에 미친 활약을 보여줬다고 해도 이렇게 빨리 올라올 줄은 몰랐는데.”
“구단에서 밀어주는 것 같은데?”
“내 득점은 안 밀어주나?”
“너 같으면 밀어주겠냐?”
서하는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기존 선수들이 받았던 등번호를 제외하면 자신이 받을 번호는 두 자리, 4번과 8번뿐이었으니까.
먼저 4번은 아스날의 전 주장 세스크 파브레가스의 등번호였다.
이번 이적으로 등번호가 비었지만, 아무도 가져가지 않았다.
부담스러운 번호였기 때문이다.
물론 4번을 준다면 서하는 받을 의향이 있었다.
파브레가스의 뒤를 이를 플레이메이커라는 걸 팬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었으니까.
“9번은 아무도 안 가져가나?”
“그러게. 마루앙, 왜 달라고 안 했어?”
송의 물음에 가만히 앉아 있던 샤막은 볼을 긁적였다.
“아스날의 9번은 좀 그렇잖아.”
역시 선수들이 가장 꺼려하는 번호는 9번이었다.
9번의 저주.
다보르 슈케르부터 시작해 프란시스 제퍼스, 호세 레예스, 줄리우 밥티스타, 에두아르도까지.
걸출한 스타들이 거쳐 간 자리였으나 부상, 향수병, 기량 저하 등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활약을 펼쳤다.
“감독님께서 이번 시즌에 9번은 비워둘 거래.”
반 페르시의 말에 서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럼, 내가 달아볼까.”
진심 반 농담 반이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에게 주어지는 번호였지만, 안 될 건 없었다.
아무도 원하지 않았으니까.
반 페르시가 깜짝 놀란 얼굴로 서하에게 물었다.
“윤, 그거 농담이지?”
“누군가는 저주를 끊어야 하잖아. 혹시 관심 있어?”
“전혀! 난 10번이 좋아.”
“나도 10번이 좋은데. 네가 10번을 가져가서 8번을 받았어.”
서하의 말에 반 페르시가 크게 웃으며 머리를 거칠게 망가뜨렸다.
하지만 오늘은 무스를 발랐던 터라 쉽게 망가지지 않았다.
역시 사람은 항상 대비하면서 살아야 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한 반 페르시는 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동료들은 두 사람의 대화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었다.
새로운 주장과 팀 내 막내이자 온갖 풍파를 일으키는 축구 신동.
어떤 대화가 오갈지 궁금해지는 건 당연했다.
반 페르시가 슬쩍 입을 열었다.
“윤, 10번을 가지고 싶어?”
“양보할 거야?”
“내가 말한 조건들을 충족한다면 너한테 10번을 줄게.”
절대 줄 것 같지 않게 해놓고 진지한 얼굴로 말하자 서하는 진심인가 싶어 그를 떠봤다.
“조건이 뭔데?”
“첫 번째 조건은 내가 리그에서 30골을 넣고 득점왕을 차지하는 거지.”
서하를 제외한 선수들은 피식거리며 반 페르시를 놀려댔다.
한창 잘하다가도 부상으로 시즌을 온전히 소화하지 못할 때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 한 번도 서른 골 이상을 집어넣은 적이 없는 반 페르시였다.
리그 서른 골을 조건으로 건다는 말은 즉 10번을 절대 내주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동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서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덥석 미끼를 물었다.
“그거면 돼?”
서하가 물러나지 않자 반 페르시는 ‘이것 봐라?’라는 표정을 지으며 두 번째 조건을 내밀었다.
“당연히 또 있지! 나한테서 10번을 가져가는 게 쉬운 줄 알아?”
“뭔데?”
“이번 시즌 리그 우승!”
패기롭게 외치는 반 페르시.
하지만 동료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로빈, 너무하는 거 아니야?”
“맞아. 득점은 그렇다 쳐도 우승이라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우리가 우승 전력은 아니잖아.”
“윤, 그냥 포기해. 10번은 반 페르시가 퇴물이 되면 달라고 해.”
“맞아! 그게 더 빠르겠다!”
반 페르시는 동료들의 대화를 듣지 않았다.
아주 작은 기대를 품은 채.
서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 가능할 것 같아?”
“로빈은 어떻게 생각하는데?”
“뭐, 쉽진 않겠지. 맨체스터 형제들의 전력이 만만치는 않잖아.”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하는 반 페르시와 다르게 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가. 난 우리가 우승권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잘못 생각하는 거야?”
서하의 말에 반 페르시는 주변이 시끄러워질 것 대비해 재빨리 손을 올렸다.
그리고는 다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서하는 그의 눈을 피하지 않고 피식 웃었다.
아, 이때부터였나.
내 안의 작은 아이를 외치고.
램지로는 우승할 수 없다며 이적했던 이유가 아스날 선수들은 야망이 없다는 걸 느낀 거다.
서하는 반 페르시를 이해했고 함께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가 좋아할 말을 골라 대답했다.
“그야 당연히 내가 있으니까.”
반 페르시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내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네가 10번 가져라.”
“정말 주는 거야?”
“미친놈! 내가 주겠냐?”
서하는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로 또다시 머리를 엉망으로 만들려는 반 페르시의 손을 쳐냈다.
두 번은 당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