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idfield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5)
천재 미드필더가 돌아왔다-45화(44/201)
45화 나서지 말게
팻 라이스는 서하가 발을 들여놓기 전에 환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 왔나? 방이 좀 더럽지?”
“아뇨.”
“아니긴 뭐가 아니야. 더러운데.”
서하는 멋쩍은 얼굴로 머리를 긁적였다.
안 그래도 좁은 방이 각 종 자료들로 어지럽게 펼쳐져 있었다.
앉을 자리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팻 라이스는 서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밖으로 나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서하는 흔쾌히 수락했다.
이 방에 오래 있다가는 없던 병도 걸릴 것 같았으니까.
두 사람은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늘따라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선수들로 가득했던 훈련장에는 뒷정리하는 직원들이 보였다.
“산책하면서 이야기 나누세.”
“그러죠.”
수석 코치와 축구 선수의 대화는 늘 그렇듯 축구로 시작했다.
가끔 지루하지 않게 취미나 건강 이야기를 곁들였다.
“아직도 그 식단을 지킨다고? 자네 정말 지독하구먼.”
“나름 버틸만해요.”
“채소와 어류로 이뤄진 식단이 맛없진 않지만, 육류 섭취는 아예 배제한 거야?”
“가끔 특식으로 섭취해주죠.”
팻 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판단이야. 로빈도 육류를 조금씩 먹어준다더군.”
“아, 저번에 들었어요.”
신선한 회도 한 두 번이지.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매일 먹어주면 질린다.
서하는 기름기가 좔좔 흐르는 육즙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감독님이 공을 들여 짠 식단이고 효과도 좋지만, 자네는 성장할 때니 가리지 않고 많이 먹게나.”
“이미 6피트(약 183cm)인 걸요.”
“크면 더 좋지!”
“그야 그렇죠.”
“식단 이야기는 그만하고 저기에서 잠시 쉬었다가 가세.”
두 사람은 벤치에 앉았다.
“끄응! 요새는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무릎이 쑤시는구먼.”
“건강 검진은 받으셨어요?”
“당연히 받았지. 아직은 크게 망가진 곳은 없다고 하더군.”
자신이 건강하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알통을 보여줬다.
하지만 팻 라이스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수석 코치에서 내려온다.
오랜 지병이었던 무릎이 심각해져 더는 필드에서 머무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왜 그러나?”
“아무것도 아니에요.”
“무릎은 그만 봐. 선수 시절에 망가진 거라 복구하긴 글러먹었어. 자네도 조심해. 무릎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
“조언 감사해요.”
팻 라이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서하를 불렀다.
“윤.”
“네, 코치님.”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아나?”
“잘 모르겠습니다.”
“자네에게 미안해서야.”
갑작스러운 사과에도 서하는 그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렸다.
팻 라이스는 발언할 기회를 준 서하에게 고마워하며 말했다.
“우리도 요즘 팀 분위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인지하고 있었네. 이 문제를 두고 코칭스태프는 의견이 갈렸네. 나는 코칭스태프가 개입해서 해결하자는 쪽이었고 감독님은 선수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자율에 맡기자는 쪽이었지.”
“감독님은 선수들을 신뢰하시는 편이죠.”
“맞아. 그래서 선수들이 감독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믿고 따르는 거지. 아무튼 코치들은 감독님의 의견에 동의했고 로빈을 중심으로 해결하길 기대했지.”
“하지만 그러질 못했죠.”
“나는 감독님이 로빈을 주장으로 임명하자고 했을 때 강하게 반대했네. 로빈은 내성적이고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거든. 물론 경기장에서는 스타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않지만, 주장이라 하면 선수들을 아우를 줄 알아야 하는데 로빈은 그럴 능력이 없어.”
서하는 팻 라이스의 의견에 적극 공감했다.
반 페르시가 실력은 좋아도 리더감이 아니었으니까.
“나는 토마스를 추천했지만, 감독님은 로빈을 믿자고 하셨네.”
“계속 반대하셨으면 감독님도 고집을 꺾으셨을 텐데요?”
팻 라이스는 피식 웃었다.
“내가 자네들에게는 못 되게 굴어도 감독님께는 찍소리도 못해. 그리고 감독님도 무작정 로빈을 믿자고 말한 것도 아니거든.”
“아, 주장단이 있었죠.”
“맞아. 주장단이 로빈을 잘 보좌해준다면 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거라 보셨거든. 나도 여기에는 동의했지. 부주장인 토마스가 나서면 로빈이 받을 부담감을 줄여줄 테니까.”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팻 라이스의 의견에 동의했다.
신입생들을 잘 이끌어주고 좋은 팀 분위기를 만드는데 공헌한 선수는 베르마엘렌이었다.
팀 입장에서는 베르마엘렌의 부재가 정말 아쉬웠다.
부상으로 빠지지 않았다면 이 사태까지 오지 않았을 테니까.
서하는 FC 병동으로 이적한 선수들을 떠올리며 속으로 혀를 찼다.
‘로빈 빼고 주장단 선수들이 전부 부상으로 빠졌네.’
팻 라이스는 목이 마른 듯 물을 벌컥벌컥 마시며 아저씨 소리를 냈다.
“너무 말을 많이 했더니 목이 아프군. 어쨌든 사태는 커졌고 로빈은 해결하지 못했지. 조기에 해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로빈은 관망했어.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랐던 거겠지.”
“그럴지도 모르죠.”
“우리는 고작 블랙번전에서 한 번 졌을 뿐이야. 얼마든지 반등할 기회를 만들 수 있었지. 그래서 블랙번전을 복기하는 자리를 만들었는데…결과는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지. 우리가 선수들을 너무 과대평가한 걸까?”
서하는 그렇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아꼈다.
지금은 들어줄 때였으니까.
“미켈과 송의 다툼을 가지고 뭐라 하는 건 아니야.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는데 다투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의견을 내고 충돌하고 그 속에서 양보할 건 양보하고 사과할 건 사과하면서 합의해나가는 게 팀이지. 나는 로빈이 나서서 중재해주길 바랐어. 선수단 정리는 바라지도 않았지. 그건 토마스가 돌아오고 나서 해결해도 될 문제였으니까.”
그는 씁쓸한 얼굴로 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것 참. 본의 아니게 자네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자리가 되었군. 정말 미안하네.”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팻 라이스는 고맙다는 말을 건네며 조심스레 서하를 불렀다.
“후우. 윤.”
“네, 코치님.”
“자네는 나서지 말게.”
“무슨 말씀이시죠?”
“노인네가 이상한 소리를 한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로빈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네.”
“진심이십니까?”
팻 라이스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아니지. 이건 감독님의 의견이야. 나는 감독님의 부탁을 받고 로빈을 강하게 질책한 것뿐. 기회는 무슨 기회. 지금 당장이라도 주장직을 박탈하고 싶네.”
“그렇군요.”
“아무튼, 로빈이 감독님이 보낸 메시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겠지. 그래도 자네는 나서면 안 돼.”
“팀 위계가 흔들리니까.”
팻 라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감독님은 예전부터 자네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었지. 그리고 예상했던 대로 회의실에서 존재감을 드러내더군. 파벌은 없고 팀에서 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코시엘니를 이용해서 말이야. 그걸 봤을 때 얼마나 소름이 돋던지. 이게 정녕 16살이 생각할 법한 수인가 싶었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팻 라이스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래, 모든 걸 떠나서. 자네의 행동이 옳을 수도 있겠지. 마침 자네를 지지해주는 선수들도 있고 코칭스태프들과도 친분이 깊고 팬들의 지지도 얻는 중이지. 하지만 아니야. 자네는 너무 어려. 지금도 역할이 과중한데 주장직까지 더해지면 버티지 못할 걸세. 감독님은 절대 허락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은 물러나게.”
팻 라이스의 타이름에도 서하는 물러서지 않았다.
“제가 앞에 나서서 리더 역할을 하겠다는 건 아니에요. 팀 분위기를 조금 바꾸고 싶은 것뿐이죠.”
“그럼 더더욱 이런 행동은 그만 두게. 팀에 혼란을 줄 뿐이야.”
“하지만.”
팻 라이스는 한 숨을 내쉬었다.
“윤, 지금 자네가 해야 할 행동은 하나일세. 바로 중립이지. 더는 말하지 않겠네. 자네는 똑똑하니 내 말을 다 알아들었을 테니까.”
“언제까지요? 로빈이 해결할 때까지요?”
“끙! 그렇게 말하니까 내 속이 터지려고 하는군. 그래도 어쩌겠나. 감독님이 마지막 기회를 주겠다는데. 마음 같아서는 토마스를 조기 복귀시키고 싶네만. 하아…정말 어려워.”
팻 라이스의 장벽은 높았다.
서하는 잠시 물러서기로 했다.
벵거의 오른팔이라 불리는 그와 척을 져서는 좋을 건 없었으니까.
“제가 가만히 있어도 선수들이 절 가만히 두질 않을 거예요.”
“내가 어떻게든 막아주겠네.”
서하는 단호하게 말하는 팻 라이스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자네는 아직 어리고 미래도 창창하니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올 거야. 우리는 자네가 빠르게 꺾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그러니 지금은 축구에 집중하게.”
진심이 담긴 조언이었다.
서하의 등을 가볍게 두드린 팻 라이스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나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
“우와아아아!”
칼링컵 3라운드.
아스날은 슈루즈버리 타운을 에미레이츠 스타디움으로 불러들였다.
오늘 경기에 나서는 선수들은 그동안 출전 시간이 부족했던 선수들과 2군 선수들이었다.
호흡을 맞춰볼 기회는 많지 않았으나 다들 의욕은 넘쳤다.
[프림퐁이 왼쪽으로 열어줍니다! 셰인 롱이 공을 받고 빠르게 올라갑니다! 아스날의 빠른 역습! 슈루즈버리 타운 선수들이 당황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단순하게 가야하는데 생각이 너무 많아요!] [맞습니다! 셰인 롱을 태클로 끊어야 하는데, 롱! 중앙에서 버티던 샤막에게 공을 내주고 샤막은 달려온 로시츠키에게 패스! 로시츠키! 슛! 골키퍼가 막아냅니다! 하지만 월콧의 쇄도! 월콧! 슛! 골! 골입니다! 월콧의 시즌 첫 번째 골입니다!] [정말 좋은 역습 전개였습니다. 프림퐁이 볼을 탈취해서 측면으로 공격 전개를 열었고 상대 수비진이 우왕좌왕하는 사이, 공을 받은 셰인 롱이 샤막에게 패스. 샤막은 무리하지 않고 로시츠키에게 공을 내줬죠.] [덕분에 로시츠키의 멋진 중거리 슈팅을 볼 수 있었죠!] [맞습니다. 잘 차고 잘 막았지만, 월콧의 움직임을 놓쳐 실점하고 말았죠. 슈루즈버리 타운 선수들이 경기에 집중했다면 월콧의 움직임을 대비했을 겁니다.] [전반전에만 두 골을 먹히면서 선수들의 의지가 많이 떨어진 점도 큽니다. 두 번의 세트피스 상황에서 롱과 샤막의 득점이 터진 게 정말 컸습니다.]서하는 경기장이 아닌 집에서 TV로 경기를 시청했다.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만끽하지 못하지만, 편안하게 경기를 볼 수 있어서 나쁘지 않았다.
그나브리는 부러운 얼굴로 짭짤한 감자칩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진짜 재미있겠다.”
“나도 진짜 뛰고 싶었는데 하아. 우린 언제 기회가 올까?”
“윤, 뭐, 들은 소식 없어?”
“내가 어떻게 알아.”
서하가 피식 웃으며 말하자 베예린이 음흉한 얼굴로 말했다.
“1군에서 네가 실세라면서.”
“누가 그래?”
“엠마누엘이.”
“걔 말을 믿어?”
다들 고개를 저었다.
프림퐁의 허세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알아줬으니까.
“또 넣었다! 벌써 네 골 째야!”
“아오! 내가 저 경기를 뛰었어야 했는데! 왜 날 뺀 거냐고!”
두 사람이 부러운 얼굴로 세리머니를 펼치는 선수들을 보고 있을 때 토랄이 서하를 불렀다.
“윤! 전화 온 것 같은데?”
서하는 발신인을 확인했다.
은디아예였다.
서하는 바로 받았다.
-윤! 지금 통화 괜찮아요?
“네, 괜찮아요. 그런데 무슨 일이에요?”
-다름이 아니라 아까 찰리 아담측에서 연락이 왔어요. 봉사 활동하기 전에 만나서 이야기하고 싶다는데 만나실 건가요?
서하는 바로 거절하려고 했다.
하지만 은디아예의 말이 조금 더 빨랐다.
-찰리 아담이 아론 램지가 입원한 병원에 직접 찾아가 사과하겠대요.
“언제 마음이 바뀌었대요?”
-아스날이 합동 봉사 활동을 제안했을 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네요.
은디아예의 대답에 서하는 코웃음을 쳤다.
찰리 아담은 절대 사과하지 않는 선수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램지에게 병문안도 가지 않고 오히려 사후 징계와 벌금이 너무 가혹하다며 항소하려했다.
이에 식겁한 리버풀에서 빠르게 막았다는 말을 듣고 서하는 찰리 아담이라는 인간을 아예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유독 아스날만 만나면 더 거칠게 굴었던 터라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런 선수를 찰장군이라 부르며 칭송한 사람들이 이해가지 않았다.
“뒤늦게 사과한다고 해도 전 찰리 아담을 만나고 싶지 않네요.”
-합동 봉사 활동에서 만날 텐데. 그래도 거절하실 거예요?
“물론이죠.”
봉사 활동을 나가서 계속 마주치지는 것도 아니고 사진 몇 번 찍고 각자 병동을 돌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합동 봉사 활동을 제안하지 말 걸 그랬어요. 전 그래도 찰리 아담을 믿었거든요? 램지에게 사과만 했어도 웃으면서 만났을 거예요.”
-이해해요.
“그런데 당당하게 행동하더라고요. 그 자식은 백태클로 선수 생명을 갉아 먹고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파렴치한 놈이에요.”
서하는 크게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조용히 목소리에 분노를 담았다.
은디아예도 더 권유하지 않았다.
몇 가지 전달 사항을 알려준 후 두 사람은 통화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