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idfield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
천재 미드필더가 돌아왔다-5화(4/201)
5화 일일 알바
“다녀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익숙한 광경이었다.
늘 집에 오면 혼자였으니까.
그때는 혼자라서 편했는데 과거로 돌아오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괜히 울적해지기 전에 서하는 주변을 둘러봤다.
부모님의 취향에 맞춘 익숙한 인테리어, 가구 그리고 소품들.
집은 크지 않았지만, 갖출 건 다 갖추고 있었다.
런던에 정착하고 떠나기 전까지 오랫동안 살았던 집이라 많은 추억이 쌓여 있었다.
좋은 기억도 그렇지 못한 기억도.
서하는 과일 바구니에서 바나나를 꺼내 껍질을 벗겼다.
“돌아온 게 실감이 나네.”
큰 방으로 가는 길에는 서하가 받은 메달과 각 종 트로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반대편에는 영국 신문에서 발췌한 기사들과 한국 신문에서 발췌한 기사들을 코팅해 전시해두었다.
[한국의 특급 유망주가 떴다!] [윤서하군, 만 7세 나이로 프리미어리그 명문 구단 입단!] [아스날에서 특별대우를 받고 있는 윤서하는 누구인가?]“이걸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서하는 추억에 잠긴 채 기사를 읽다가 턱을 긁적였다.
살짝 부끄러운 제목과 내용이 적나라하게 적혀 있어 읽을 마음이 싹 사라졌다.
그때는 뽕이 차올랐는데 나이를 먹고 나니 부끄러움이 많아졌다.
서하는 도망치듯 자리에서 벗어나 방으로 들어갔다.
방을 쭉 둘러보던 서하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여긴 여전하네.”
책상과 침대가 붙어 있다시피 있었고 책장에는 교과서와 책들이 가지런히 꽂혀 있었다.
방에도 무수히 많은 트로피와 상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서하는 축구만 잘하지 않았다.
교내 우수 학생으로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성적을 받았다.
프로 데뷔한 후에는 학업을 놓았지만, 축구와 관련된 것들은 꾸준히 공부했다.
코칭스태프와 전술 토론을 벌일 정도로 뛰어난 전술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다.
서하는 열심히 살아온 흔적을 바라보다가 뒤를 돌아봤다.
“와, 색이 바라지 않았네.”
문 뒤에는 리오넬 메시가 포효하는 포스터와 아르헨티나 축구 대표 팀 유니폼이 걸려 있었다.
유럽 생활을 청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때도 가져갔던 녀석들이라 그런지 굉장히 반가웠다.
“이렇게 보니 좋은데?”
포스터 아래에는 포스트잇들이 붙여져 있었다.
-언젠가 맞붙을 날을 기다리며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되는 날까지! 열심히!
-프리미어리그 우승, FA컵 우승, 리그 컵 우승, 챔피언스 리그 우승 그리고 월드컵 우승.
-나는 할 수 있다!
-메시 사랑해요.
-나의 버킷 리스트. 메시와 포옹하기. 메시와 대화 나누기. 메시와 유니폼 교환하기. 메시 인터뷰에서 이름 언급되기.
“…부끄럽네.”
리오넬 메시는 그의 우상이었다.
메시의 플레이는 늘 서하에게 영감을 주었다.
플레이에 녹여낼 정도로 메시의 드리블과 개인기를 따라했다.
오른발잡이였음에도 메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왼발로 공을 차고 받는 연습을 했다.
덕분에 오른발과 왼발을 가리지 않는 선수가 될 수 있었다.
물론 전문가들은 서하를 코리안 지단이라 불렀지만 말이다.
서하는 이 별명도 좋아했다.
“데뷔 전에는 메시와 같은 필드에서 뛰는 꿈을 꿔왔는데 말이지.”
아쉽게도 메시와 맞붙은 적은 두 차례뿐이었다.
바로 데뷔 시즌이었다.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바르셀로나를 만난 서하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 메시에게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서하는 2경기 3득점 2도움으로 분투했음에도 메시가 이끄는 바르셀로나라는 벽을 넘지 못했다.
“하지만 경기가 끝나고 유니폼을 교환했지.”
경기에서 지고 울고 있는 서하를 발견한 메시는 따뜻하게 위로해주며 이례적으로 먼저 유니폼을 교환하자는 말을 꺼냈다.
당시 이 장면이 굉장히 화제가 되며 윤서하라는 이름을 전 세계 축구 팬들의 머릿속에 각인시켰다.
사실 서하는 그날 어떤 말을 나눴는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다.
메시는 스페인어만 할 줄 알았고 서하는 영어만 할 줄 알았던 터라 대화 내용을 기억할 수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스페인어로 말을 걸어야지.”
마지막으로 뛴 구단이 스페인 2부 리그였던 터라 유창하지 않지만, 일상 대화는 문제없었다.
그와 만나려면 우선 프로 무대부터 데뷔 해야겠지만 말이다.
“아, 벌써 4시네.”
서하는 마음이 급해졌다.
아까 거실 탁자에서 집에 오면 가게로 와달라는 문장이 적힌 포스트잇을 봤었기 때문이다.
서하는 검은 모자를 쓰고 외출복으로 갈아입은 후 밖으로 나갔다.
몇 걸음 떼기도 전에 하늘이 흐려지고 부슬비가 내렸다.
런던의 날씨는 여전했다.
서하는 오랜만에 느껴보는 지랄 맞은 날씨에 미소를 지으며 부모님이 운영하는 가게에 도착했다.
가게는 집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있던 터라 꽤 가까웠다.
밖에서 슬쩍 보니 좁은 가게 안은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손님 대부분 영국인들이었다.
심지어 가게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줄을 서고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매장에서 먹지 못하고 포장해서 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다.
“아버지가 장사 안목은 정말 좋단 말이지.”
처음 런던에 왔을 때는 유학생들의 편의를 봐주는 사업을 하며 돈을 꽤 벌었다.
덕분에 런던에 정착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러다 가족 여행으로 하와이에 놀러갔을 때 핫한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포케였다.
포케는 익히지 않은 신선한 해산물과 채소를 특별한 소스에 비빈 하와이안 전통 음식이었다.
당시에는 이제 막 미국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음식이라 유럽에서는 유행하기 전이었다.
서하의 아버지는 포케에 꽂혀 잘 나가던 사업을 때려치우고 런던에 포케 가게를 차렸다.
그 결과, 미친 듯이 잘 팔렸다.
유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돌다가 점차 주변으로 소문이 퍼졌다.
덕분에 3개월 만에 이슬링턴 구의 핫플레이스로 자리매김했다.
[Islington‘s poke]서하는 평범하면서도 글자 크기가 큰 간판을 보며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게로 들어갔다.
가게 안은 전쟁터였다.
종업원들은 정신없이 음식을 날랐고 주방은 매서운 칼질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금발 주근깨 여인, 리오넬라가 서하를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에 보니 서하도 반가웠다.
“윤!”
“리오넬라, 도와주러 왔어요.”
“응! 어서 안으로 들어가 봐.”
서하는 주방에 들어갔다.
주방에는 그의 부모님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빠르게 양상추를 썰던 서하의 아버지는 서하를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으로 신호를 보냈다.
시선은 양상추 박스에 가 있었다.
서하는 박스에 담긴 양상추를 가리키며 물었다.
“양상추부터 손질할까요?”
“부탁한다.”
“알겠어요.”
일할 때는 굉장히 예민하셨던 터라 서하는 군말하지 않고 앞치마를 입고 옷을 걷어붙였다.
양상추 농장에서 바로 떼 왔는지 굉장히 신선했다.
서하는 겉잎을 제거한 후 심지를 떼어주고 흐르는 물에 씻었다.
윤종석은 서하가 일하는 모습을 쓱 보더니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던졌다.
“그거 다 하면 당근도 부탁해.”
“알겠어요.”
“여보! 새우는 얼마나 남았어?”
“어디 보자. 한 박스 남았어요! 우리 서하, 오늘은 일찍 왔네?”
서하는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해주는 어머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훈련 첫날이라 그런지 빨리 끝내주더라고요.”
“그래? 훈련은 어땠어? 따라갈 만 해?”
“나쁘지 않았어요.”
“새로 만난 친구들은 괜찮고?”
서하는 자연스레 프림퐁을 떠올렸다가 순간 짜증을 낼 뻔했다.
하필 그 녀석을 떠올리다니.
서하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잘 대해주더라고요. 아직 첫날이니 더 두고 봐야죠.”
“축구도 좋지만, 친구들하고 친하게 지내. 또 싸우지 말고.”
“안 싸워요.”
“그래, 우리 아들 믿을게.”
칼질을 끝낸 윤종석은 포장 그릇에 담으며 말했다.
“두 사람 잡담 그만하고 사적인 대화는 일 끝나고 하자고.”
“당신은 우리 아들이 오늘 뭐했는지 궁금하지도 않아요?”
“나도 당연히 궁금하지. 하지만 바쁘잖아. 며칠 전에 직원이 그만두는 바람에 더 바쁜 거 같아.”
“그러고 보니 댄 아저씨는.”
“교통사고로 잠시 쉬게 됐어.”
리오넬라가 주방에 얼굴을 내밀며 소리쳤다.
“새우 포케 두 개하고 연어 포케 한 개 포장 주문 들어왔어요!”
“여기 연어 포케 세 개 포장.”
“보스, 오늘따라 손님이 많아요!”
“손님 많으면 좋지.”
“당연하죠! 이거 나가면 되죠?”
“맞아.”
리오넬라가 포장한 음식을 가지고 나가자 서하의 어머니, 김미선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복에 겨운 소리긴 한데 장사가 너무 잘 되도 힘드네.”
“종업원들 중에 주방에서 일할 사람 뽑으면 되지 않아요?”
윤종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려고 했어. 우리 아들을 계속 써먹을 수는 없잖아.”
“연어 포케 다섯 개 주문이요!”
“또? 미치겠네. 리오넬라, 몇 팀 남았어?”
“마흔 팀 정도 있던데요?”
윤종석은 허탈한 미소를 지으며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될 거란 생각은 했는데 생각보다 엄청 잘 되네.”
“요즘 사장님 가게가 SNS에서 한창 뜨고 있거든요. 보세요. 손님들 다 젊은 사람들이잖아요.”
“그거 참 신기하네.”
윤종석은 홀을 보다가 리오넬라에게 슬쩍 주방을 권유했다.
“리오넬라, 혹시 주방 생각 있어? 시급 더 쳐줄게.”
“헤헤. 아뇨. 전 서빙이 좋아요.”
“주방 들어오면 시급 두 배.”
“전 많이 벌 생각 없어요.”
매몰차게 거절당한 윤종석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리오넬라가 일을 참 잘하는데.”
“여보, 뭐해요? 주문 밀렸어요.”
“내 정신 좀 봐. 서하야, 양상추 다 손질했어?”
“다 하고 당근 다듬는 중이에요.”
“계란도 삶아줄 수 있지?”
“당연하죠!”
서하는 씩씩하게 대답하며 능숙하게 당근 껍질을 벗겨냈다.
일하는 모습을 본 김미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아들이 당근을 손질해 본 적이 있었나?”
“응? 한 번도 안 했었어?”
“어제가 처음이었잖아요.”
“아, 참 그랬었지.”
대화를 들은 서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얼굴을 긁적거렸다.
“그냥 두 분이 하시는 모습을 보고 따라한 거죠.”
“그런 것 치고는 정말 잘하는데.”
서하는 더 이상해지기 전에 손질한 당근을 구석에 두며 소리쳤다.
“아버지! 당근 다 손질했어요! 계란 삶을게요!”
“어 그래.”
다시 기운을 차리고 집중하려고 할 때 리오넬라가 다급한 얼굴로 주방으로 난입했다.
“사장님! 비상! 비상!”
“뭔데?”
“단체 포장 주문이요!”
“몇 인분인데?”
“50인분이요!”
윤종석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
“식재료가 부족하다고 하면 주문을 취소하지 않을까?”
“아스날에서 주문했는데요?”
“뭐? 정말?”
“네! 저녁 6시에서 6시 반 사이에 가지러 오겠대요.”
그는 서하를 바라보다 이내 결심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해야지. 당연히 해야지!”
“이번에는 저도 도와드릴게요!”
“정말?”
“물론이죠!”
“고맙다.”
리오넬라는 주방으로 들어와 앞치마를 입으며 말했다.
“제가 구너잖아요. 직원들이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겠다는데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여줘야죠. 아 참! 사장님, 시급은 아시죠?”
“당연히 챙겨주지! 세 배로.”
“예스!”
윤정석은 서하를 바라봤다.
“서하는 몸 상하니까 적당히 해.”
“내일은 훈련 없어요. 괜찮아요.”
“그래도.”
“어차피 하루인데요. 뭐. 그거 제가 할게요.”
“어? 연어도 손질할 줄 알아?”
“그냥 영상으로 봤어요.”
취미가 요리였던 터라 생선 손질은 기본이었다.
능숙하게 연어를 손질하는 아들의 모습을 본 김미선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아들을 축구가 아니라 요리를 공부시켰어야 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