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midfielde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5)
천재 미드필더가 돌아왔다-86화(84/201)
86화 작은 출렁거림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운도 따라 주지 않았다.
꾸역꾸역 버티던 중 전반전 막바지에 베르마엘렌이 발목을 삐며 경기를 뛸 수 없게 되었다.
주루가 몸도 풀지 못하고 긴급히 투입되었지만, 결국 베르마엘렌의 공백을 메우지 못했다.
부스케츠의 패스를 받은 파브레가스가 역전 골을 넣으며 친정 팀에 비수를 꽂았다.
친정 팀을 생각해 과한 세리머니를 펼치지 않았으나 원정 팬들은 착잡한 눈빛으로 파브레가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가장 사랑했던 선수였으니까.
서하는 말없이 바나나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로커 룸 분위기를 살폈다.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이번 시즌 들어 가장 최악이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지 않고 각자 자리에 앉아 시간을 때웠다.
“…….”
침묵으로 가득 찬 로커 룸.
이럴 때 주장이 나서야 했다.
하지만 반 페르시도 멘탈이 털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멍청한 얼굴로 축구화만 만지작거렸다.
반 페르시가 없으면 주장단이 나서야 했지만, 현재 주장단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부상과 컨디션 악화 등 이런저런 이유로 명단에 들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말을 하든 효과가 없었다.
숫자는 부족하고 1점 차로 끌려가고 있는 데다 원정 경기였다.
이니에스타가 부상으로 빠졌음에도 바르셀로나에는 월드 클래스 선수들이 득실거렸다.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실수하면 모를까.
그런 기회는 거의 없을 거다.
‘반전을 꾀해야 하는데.’
아스날이 가진 수는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서하가 공을 잡으면 돌아서지 못하게 막았다.
서하만 막으면 아스날의 공격은 거세된 것과 다름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하에게 쏟아지는 관심을 이용해 로이스를 활용해 풀어 나가려 했으나 그것도 실패하고 말았다.
너무 낮은 지역에 있던 터라 바르셀로나의 박스까지 타격하려면 굉장히 먼 거리를 뛰어야 했다.
또 로이스가 아무리 활동량이 좋고 고속 드리블러라 해도 바르셀로나의 촘촘한 수비망을 뚫기에는 아직 경험이 부족했다.
‘체력 낭비기도 하고.’
좋은 해결책은 없다.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는 것뿐.
송처럼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견디며 버틴다면 기회는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는 찾아온다.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면 충분히 해볼 만했다.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서하는 다 먹은 바나나 껍질을 휴지통에 넣었다.
바나나 껍질은 깔끔하게 빨려 들어가며 아주 작은 소리를 냈다.
툭.
침묵이 돌던 로커 룸에 작은 소리가 들리자 선수들의 시선이 휴지통으로 쏠렸다.
그들은 소리를 낸 주인공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모두가 서하를 바라봤다.
약간의 기대, 희망, 반전 등을 품은 얼굴들.
서하는 선수들의 시선을 느끼며 조심스레 입을 움직였다.
“난 지금도 할 만하다고 생각해.”
서하가 던진 말 한마디는 잔잔한 호숫가에 강한 파장을 일으켰다.
최악의 상황인데도 할 만하다고 주장하는 서하의 말에 선수들은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정말 할 만한 걸까?
반쯤 넘어가는 선수들도 있었다.
분위기를 조금 바꾸자 서하는 다시 말을 이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정말로 할 만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고 생각해.”
서하가 진실한 얼굴과 목소리로 말하자 여기저기서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먼저 서하의 오른팔을 자처하는 프림퐁이 훌훌 털고 일어났다.
“윤의 말이 맞아! 솔직히 나는 다섯 골이나 먹힐 줄 알았어. 그런데 고작 한 골밖에 못 넣더라고. 쟤들 생각보다 약해. 우리를 뚫지 못했다고!”
코시엘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번째 골은 내 실수에서 비롯된 거야.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동점으로 끝났을 텐데. 미안.”
반 페르시는 고개를 저었다.
“롤로, 네가 미안해할 필요 없어. 집중력이 흐려져서 움직임을 놓친 게 가장 크다고 생각해. 나도 송이 퇴장당하고 정신을 반쯤 놓고 있었거든. 공이 가는대로 움직였어. 그러다 보니 체력도 낭비되고 선수도 놓칠 수밖에 없었지.”
반 페르시의 말을 시작으로 다들 한마디씩 거들었다.
대부분 하는 말들이 비슷했다.
집중하지 못했다.
멘탈이 흔들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 절대로 상대가 강하다는 말은 꺼내지 않았다.
붙기 전에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앞섰지만, 막상 붙고 나니 선제 득점도 뽑고 리오넬 메시라는 최고의 선수도 꽁꽁 묶으며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효율적으로 잘 막아 냈다.
물론 이니에스타를 막지 못한 채 송이 불필요한 백 태클로 퇴장당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바르셀로나의 힘은 약했다.
볼 점유율이 높고 환상적인 패스 플레이와 선수 개개인의 플레이가 훌륭했으나 거기까지였다.
아스날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로커 룸 분위기가 다시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자 서하는 마지막 한마디로 방점을 찍었다.
“기적을 만들자.”
반격의 시작이었다.
* * *
수비는 인내심 싸움이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고된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스날은 버텼다.
팀을 위해 한 발 더 뛰며 공간을 메우고 혼신의 힘을 다해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아스날이 갑자기 달라지자 바르셀로나 선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뒤가 없는 병사들처럼.
물러서지 않고 맞서 싸웠다.
서하는 공격이란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오로지 수비와 커버에 전념했다.
프림퐁과 힘을 합쳐 중원을 틀어막자 바르셀로나의 공격 방향은 측면으로 고정되었다.
측면은 중앙보다 변수를 만들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선택지는 줄어들고 공격 방향도 예측이 됐다.
메시가 드리블을 치려 하자 토로스디스가 몸으로 부딪쳐 막아 냈다.
“아악!”
그리스 국가 대표 풀백답게 피지컬을 이용한 끈끈한 수비로 프림퐁과 함께 메시를 틀어막았다.
전반전과 마찬가지로 메시는 두드러진 활약이 없었다.
문제는 역시 오른쪽.
문제가 터진 오른쪽을 보수하기 위해 서하는 두 다리가 불이 날 정도로 열심히 뛰어다녔다.
파브레가스가 공을 잡고 측면으로 전개하려 하자 서하는 이를 예측하고 발을 뻗어 패스를 차단했다.
사냐가 서하의 발에 맞고 흘러나온 공을 잡고 사이드로 빠졌다.
“길게 차!”
서하의 외침에 사냐는 산체스가 달라붙기 전에 길게 때렸다.
바르셀로나의 사이드 뒷공간.
풀백인 아드리아누가 신나게 나왔다가 노출한 공간이었다.
이곳으로 벨라가 뛰어들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좋은 기회.
하지만 벨라의 발에 닿지 않았다.
“아오!”
마스체라노가 먼저 움직여 공을 걷어 냈기 때문이다.
“괜찮아! 지금처럼만 해!”
“정말 좋았어! 계속 뒤로 찔러!”
아스날 선수들은 흔들리지 않고 다시 수비에 전념했다.
서하는 계속해서 공과 선수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바르셀로나 진형을 살폈다.
큰일을 겪었음에도 바르셀로나의 포백 라인은 공격적이었다.
두 명의 센터백은 중앙선을 넘어 빌드 업에 깊게 관여했고 양 풀백들도 높이 올라가 아스날의 측면을 타격했다.
이는 아스날에게 좋은 기회였다.
더 많은 골을 넣기 위해 밸런스를 무너뜨리고 공격에 집중하는 선택은 필연적으로 뒷공간을 내어 줄 수밖에 없었으니까.
서하는 이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자 했다.
첫 번째 기회는 아쉽게 날아갔으나 아직은 괜찮았다.
이제 막 15분이 지났을 뿐.
경기를 길게 봐야 했다.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버틴다면 또다시 기회가 찾아올 테니까.
서하를 비롯해 아스날 선수들은 강한 신뢰와 믿음을 바탕으로 바르셀로나의 맹공을 온몸으로 버텨 냈다.
“사이드! 사이드로 몰아!”
“윤! 옆에! 좋아!”
“계속 버티면 돼!”
“집중해 집중! 충분히 할 수 있어! 중앙 비었어!”
코시엘니가 페드로의 슛을 안면으로 막고 프림퐁이 슬라이딩 태클로 메시의 드리블을 끊어 냈으며 서하는 몸을 날려 파브레가스의 중거리 슈팅을 막아 냈다.
엄청난 집중력과 끈끈함으로 바르셀로나의 공격을 막아 냈다.
아스날 선수들의 투혼은 캄프 누 전역으로 빠르게 퍼졌다.
“…….”
선수들을 응원하던 홈 팬들도 아스날의 육탄 방어와 몸을 아끼지 않는 수비에 점점 말을 잃어 갔다.
분명 경기는 이기고 있었다.
스코어는 1대2.
경기 내용도 정말 훌륭했다.
압도적인 볼 점유율과 눈이 즐거운 유기적인 패스 플레이 득점만 터지지 않았을 뿐이지 박스 타격도 간간이 이뤄졌다.
슈팅 숫자는 10개가 넘었고 유효 슈팅도 5개로 기록했다.
“이대로는 안 되는데.”
“쟤들 너무 잘 버티잖아.”
“무조건 한 골 더 넣어야 해.”
홈 팬들은 속이 타들어 갔다.
이니에스타를 잃고 한 명이 적은 상대로 1점 차로 끝난다면 승리했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더 많은 골이 필요했다.
선수들도 팬들과 생각이 다르지 않았다.
그들도 더 많은 골을 원했다.
캄프 누는 그들의 홈이었다.
누구도 넘볼 수 없게, 압도적으로 꺾고 올라서야 했다.
후반전 76분이 지나자 바르셀로나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풀백인 아드리아누를 빼고 바르셀로나의 특급 유망주, 이삭 쿠엔카를 투입했다.
쿠엔카는 바르셀로나의 미래를 책임질 제2의 메시의 별명이 있는 유망주였다.
서하는 앳된 얼굴을 한 쿠엔카를 바라보며 소매로 땀을 닦았다.
“공격적인 카드네.”
펩 과르디올라의 승부수였다.
수비는 푸욜과 마스체라노 여차하면 부스케츠가 내려와서 도와주면 됐으니 나쁘지 않은 수였다.
서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위치를 빠르게 살폈다.
빈틈이… 보였다.
아주 작은 빈틈이 열렸다.
서하는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표정을 감추고 수비에 집중했다.
교체로 들어온 쿠엔카의 몸놀림은 매우 가벼워 보였다.
이니에스타가 메시가 만들어 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쿠엔카는 사지로 뛰어들었다.
자신감으로 똘똘 뭉친 쿠엔카는 포지션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이며 숏 패스로 동료들과 공을 주고받았다.
“잘하네.”
생각보다 정말 잘했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체력이 고갈된 프림퐁을 가지고 놀았다.
덕분에 메시가 풀리기 시작했다.
메시는 그동안 당했던 울분을 토해 내려 무력시위를 벌였다.
로이스와 토로시디스 사이를 양발 드리블로 벗겨 내고 페인팅 모션으로 프림퐁을 완벽하게 무너뜨린 후 왼발로 감아 찼다.
하지만 아스날에는 신이 있었다.
슈체스니는 동물적인 움직임으로 메시의 슈팅을 쳐 냈다.
“오우우우우…….”
홈 팬들의 탄식이 캄프 누에 쏟아졌다.
후반전에 나온 최고의 기회였다.
메시도 머리를 감싸 쥐며 정말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멋진 선방을 선보인 슈체스니는 벌떡 일어나 머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다들 집중해! 얼마 남지 않았어! 사이드! 사이드 비었잖아! 윤! 나이스 플레이!”
서하는 쿠엔카의 안일한 패스를 막고 탈취해 사이드로 달렸다.
쿠엔카가 들어오면서 빈틈이 보였던 공간, 우측 사이드.
서하는 모든 힘을 끌어냈다.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두 다리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
툭! 툭! 툭!
공을 길게 차며 달렸다.
서하의 광폭적인 드리블에 마스체라노와 부스케츠는 뒤로 빠르게 물러났다.
순식간에 중앙선을 넘어 사이드로 공을 몰았다.
서하는 방심하지 않았다.
주변을 빠르게 살폈다.
반대편 사이드에는 로이스가, 중앙에는 반 페르시가 젖 먹던 힘까지 짜내 달리고 있었다.
바르셀로나도 기민하게 대처했다.
푸욜, 마스체라노, 부스케츠, 사비가 빠르게 복귀하기 시작했다.
공격 숫자는 셋.
수비 숫자는 넷.
충분히 해볼 만한 숫자였다.
서하는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부스케츠는 보며 중앙으로 꺾었다.
“……!”
부스케츠가 기다렸다는 듯 사이드를 버리고 중앙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서하는 애초에 중앙으로 갈 생각이 없었다.
오른쪽으로 확 꺾어 부스케츠를 역동작에 걸리게 만들었다.
갑작스러운 방향 전환으로 허벅지가 터질 듯이 아팠지만, 참았다.
이번이 아니면 두 번 다시 안 올 기회였다.
반드시 성공시켜야 했다.
허우적거리는 부스케츠를 뒤로하고 사이드로 계속 달렸다.
미들 서드를 지나 거의 박스 안까지 달려왔다.
장장 60m를 달려온 서하는 이미 한계에 도달해 있었다.
숨이 가빠오고 두 다리가 떨렸다.
하지만 버티고 또 버텼다.
마스체라노가 긴장한 얼굴로 서하의 앞을 가로막았다.
툭. 툭툭. 툭.
“…….”
이제는 선택해야 했다.
마스체라노를 돌파하고 슈팅을 가져갈 것인지, 동료들을 이용할 것인지.
위치는 로이스가 가장 좋았다.
서하와 눈이 마주친 로이스가 사비의 뒷공간으로 침투했다.
“후우.”
서하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사비가 이미 눈치채고 앞으로 나와 오프사이드 트랩을 만들었다.
절호의 기회를 허무하게 날릴 뻔했다.
반 페르시는 푸욜에게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역시 돌파였다.
서하는 공을 오른쪽으로 굴려 마스체라노의 반응을 살폈다.
마스체라노는 따라오지 않았다.
폭발력이 끝났다는 걸 눈치챈 마스체라노는 급하게 굴지 않았다.
동료들이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며 앞으로 살짝 움직였다.
여차하면 탈취할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서하도 앞으로 공을 굴렸다.
공이 자신의 범위 안으로 들어오자 마스체라노가 상체를 들이밀며 밀고 들어왔다.
서하는 기다렸다는 듯 빠르게 발바닥으로 공을 뒤로 굴리고 사이드로 빼내는 척하며 다시 안으로 차 마스체라노의 가랑이 사이로 공을 집어넣었다.
“……!”
공이 가랑이 사이로 빠져나가고 있을 때는 이미 서하의 몸이 마스체라노를 벗긴 후였다.
역동적인 움직임에 이은 폭발적인 순간 스피드.
서하는 허벅지가 터질 듯이 아팠지만, 참고 뛰었다.
박스 안으로 공을 굴리고 발을 내밀어 영역을 선포했다.
발데스가 황급히 달려와 슈팅 각도를 좁혔다.
‘여기까지야.’
서하는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슈팅을 가져갈 것처럼 속인 후 공을 가운데로 보냈다.
“안 돼!”
반 페르시가 푸욜 뒤에서 튀어나와 넘어지면서 왼발을 쭉 뻗었다.
푸욜이 반 페르시를 물고 넘어졌지만, 이미 늦은 후였다.
공을 데굴데굴 굴러가 골망을 가볍게 툭 건드렸다.
작은 출렁거림.
아스날의 동점 골이 터져 나왔다.
기다림의 끝은 기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