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singer who returned from the sea RAW novel - Chapter 125
125화. 신율. (完)
콘서트가 끝난 다음 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왔다.
예송이형은 숙취가 좀 있는지 오늘은 종일 쉬겠다 했고, 승현이는 곧장 한국으로 귀국을 한다 했다.
“그럼, 2주 뒤에 보자!”
나는 그런 승현이에게 말했다.
“나도 이번 주 중으로 한국 갈 건데?”
“그래? 그러면 한국에서도 볼 수 있으면 보자.”
“좋지.”
이후 나는 혼자 점심을 먹었고.
76층에 돌아오자 숙취에서 깨어난 예송이형이 샤워를 하고 나온 후였다.
예송이형은 미국에 온 가족들과 함께 미국 여행을 하겠다고 했다.
“나는 거의 회사에만 있었으니까···, 사실 미국에 온 느낌보단 합숙소에 온 것 같아.”
그렇게 예송이형마저 76층을 떠나 가족들이 있는 호텔로 향했다.
오늘은 토요일이고.
그래서인지 회사 건물 내에도 평소보단 직원들이 그리 많지 않다.
우리의 콘서트를 포함하여 회사 내에 스케일이 큰 행사들이 최근 모두 끝났기 때문인지, 주말임을 감안해도 상주 직원이 많지 않았다.
홍보 팀과 공연 팀은 아예 단체 휴가를 냈다고 한다.
비행기는 일요일 새벽에 예정되어 있다.
원래는 승현이와 함께 그 비행기를 타고 갈까 했는데, 승현이가 너무나 타이트하게 귀국 일정을 잡아서 같이 가지 못했다.
물론 승현이의 마음은 이해한다.
한국에 있는 자기 여자친구 빨리 보고 싶겠지.
아무쪼록 나는 76층에 홀로 남아 여유를 즐겼다.
낮잠을 잤고, 커피를 마셨고, 운동을 했다.
8층에는 헬스장이 있다. 그곳에서 런닝머신을 타며 창밖으로 뉴욕 풍경을 바라보았다.
80층에 있는 수영장엔 가지 않았다.
그러다 36층에 들러 내일 새벽 공항에 나를 데려다줄 로드 매니저와 대화를 나눈 뒤, 76층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어?”
나는 눈을 슥슥 비볐다.
그리고 다시금 엘리베이터를 바라보았다.
“뭐지?”
엘리베이터의 현재 층을 표시하는 불빛이 77층을 가리키고 있었다.
‘저긴 우리 말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없을 텐데?’
청소를 하는 직원이 출입을 했나? 생각을 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경우에는 보통 해당 층의 카드키를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미리 연락을 고지하는 편이다.
핸드폰 내역을 뒤져보아도 그런 내용은 없다.
나는 곧장 카드키를 엘리베이터 대고 77층으로 올라갔다.
띵동-!
엘리베이터가 77층에 도착하자 바로 앞에 닫힌 문이 보인다. 일전에 내가 스노클을 던져두고 올 때와 같은 모양이다.
‘누가 77층을 잘못 눌렀나···. 잘못 누른다고 올라올 수 있는 층은 아닐 텐데···.’
나는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77층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물 빠진 수영장 바닥에 의자를 갖다 놓고 그곳에 앉은 정체모를 사내가 있었다.
얇고 검은 코트 같은 걸 걸친 채, 검고 챙이 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언뜻 보면 거대한 까마귀처럼 보일 듯한 인상이었다.
나는 의자에 앉은 채 등 돌린 그 사내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사실 그 사내를 처음 본 순간,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이 문을 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이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고 있을 것이다.
내가 사내 바로 뒤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 사내는 모자를 벗었다. 여전히 등 돌린 채였다.
그리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스노클을 주워 얼굴에 썼다.
“어때? 잘 어울려?”
그가 뒤돌아보며 나에게 말했다.
“못생겼어요.”
내가 말했다.
“스노클이 잘 어울리는 뮤지션은 너밖에 없을 거야 아마.”
“칭찬인가요?”
“반찬은 아니지.”
“여전히 재미없는 농담을 하시네요.”
“IM씨만 하겠니.”
나는 그에게 말했다.
“드디어 찾았네요. 마이크. 아니, 마이클.”
“땡~”
그는 스노클을 벗으며 말했다.
“내 이름은 이효은이야. 마이클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못 찾으셨습니다~”
마이클은 그렇게 말하곤, 싱긋 웃었다.
77층의 창문에서 새어나오는 빛이 마이클에게 역광을 만들었다.
그래서 마이클의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이클은 지금 나의 표정이 매우 잘 보일 것이다.
나는 문득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울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힘들었어요···.”
“힘들 게 뭐가 있어.”
“마이클이 없었으니까요.”
“내가 있었어도 너희들을 괴롭게 했을 거야.”
“그래도 어딜 가면 간다는 말은 하고 가면 좋잖아요.”
“어딜 갈지 몰랐으니까.”
“······, 그러면 어디에 갔는데요.”
“그건 비밀이지.”
“마지막까지 비밀밖에 없으시네요.”
“과연 마지막일까?”
“그럼, 여기 남을 거예요?”
“비밀이야.”
“마지막까지 비밀 맞네요. 뭘.”
“그럼 사실 하나를 말해줄까?”
“뭔데요?”
“은 아주 엉성하다는 거야. 코드도 정돈이 개판이고, 음원에선 보컬 녹음 상태도 오류 투성이야.”
“마이클 없이 우리끼리 처음 만든 곡이어서 그래요.”
“아니, 사실은 마이클도 그래. 마이클은 엉성한 사람이야. 너희들이 그 빈 자리를 채워주고 있었을 뿐이지.”
“말은 잘하시네요.”
“사실인걸.”
그렇게 말하며 마이클은 벗은 모자를 손에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곤 손에 든 모자를 내 머리에 씌워주며 말했다.
“더 잘할 수 있어. 그걸 잊지 마.”
그리곤 마이클은 조용히 엘리베이터로 돌아갔다.
나는 그런 마이클을 가만히 보내주었다.
문이 닫히기 직전, 나는 말했다.
마이클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이상 들을 수 없는 크기의 목소리로.
“안녕, 마이클.”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의 유리창 너머에서 마이클은 손을 흔들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77층에서 내려갈 때, 마지막까지 보이는 마이클의 모습은 그 손이었다.
그리고 텅 빈 풍경.
고요했다.
*
– 너희 엄마 건강이 많이 좋아져서, 이제 가벼운 산책도 하고 그러신단다. 내일 한국에 온다고 했지? 그러면 서울에 있는 집에서 온 가족 다 같이 모이자꾸나.
아버지의 문자였다.
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버지의 문자를 다시금 읽어보았다.
사진 속 어머니는 밝은 얼굴로 아버지와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뉴욕에서 출발한 비행기가 10시간 넘게 상공을 거닐다가 인천에 도착했다.
한국에 도착하니 아침 10시 즈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서울에 있는 집까지 차를 타면 1시간 30분 정도가 걸린다.
어머니에게 귀국 소식을 전하자, 이미 아버지와 함께 서울 집에 와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 곰탕을 끓여놓았으니 천천히 오렴.
나는 헤르츠 레코드 측에서 고용한 운전기사의 차를 타고 서울에 있는 집으로 향했다.
그리곤 떨리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탔고, 집 문 앞에 섰다.
문에 잠시 귀를 기울여보니 안에선 작은 대화소리가 들렸다.
“율이 언제 온대?”
“곧 도착할 거라던데?”
“전화해볼까?”
“응, 내가 해볼게.”
아버지의 마지막 목소리를 끝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곧장 집의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전화를 받은 채로 집에 들어서며 말했다.
“다녀왔습니다.”
*
그날 저녁엔 곰탕을 맛있게 끓여먹었고, 다음 날 우리는 강원도로 다시 돌아왔다.
날씨는 벌써 완연한 봄 날씨다.
강원도에도 봄 기운을 가득 머금은 바람이 불었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바다로 향했다.
그리곤 해변의 모래사장을 함께 걸었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부모님 사이에 끼어서, 양손으로 각각 어머니의 손과 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렸을 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내가 팔을 위로 들고 있었어야 했는데, 이제는 부모님이 팔을 조금 위로 들고 있었어야 했다.
“어우~ 팔 아프다야~”
어머니가 웃으며 말했고, 아버지도 “율이가 많이 컸네, 미국 간 사이에 더 컸나?” 말하셨다.
어느덧 태양은 바다 쪽으로 저물고 있었고, 우리는 집에 돌아갈 준비를 했다.
집까진 걸어서 10분이면 가기에, 나는 부모님에게 먼저 집에 가 있으라 한 뒤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쏴아아-
철썩-
쏴아아-
철썩-
끼룩끼룩 우는 갈매기들. 저무는 태양. 파도의 포말. 발 밑에서 바스라지는 모래들.
나는 바다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발목이 잠기고, 무릎이 잠기고, 허벅지가 잠겼다.
그리고 허리춤까지 잠겼을 때에. 해는 이미 지고 난 뒤였고, 바다는 깜깜했다.
나는 검은 바다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다.
이 바다는, 내가 처음 물의 음악을 들었던 곳.
내가 처음 말문이 트였던 곳이다.
내가 새로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 바다로 돌아왔다.
이제는 몸이 전부 잠길 만큼 바다 속에 들어가지 않는다. 특히나 밤의 바다에서 그런 위험한 짓을 할 정도로 어리석거나 무모하지도 않다.
문득 의 영화 한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부른 OST가 재생되는 장면.
한 소년이, 밤의 바다에 들어가 하염없이 가만히 서 있는, 그 장면이 떠올랐다.
그 소년과 내가 다르지 않았다.
영화 속 그 소년이, 모든 걸 포기했다가 다시 삶을 시작해보려는 의지로 바다 속에 있었다면.
나는
‘이제 나는, 무엇이 되려나.’
앞날을 알 수 없는, 평범한 소년에 불과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더 잘할 수 있어, 그 사실을 잊지 마.”
마이클의 말처럼.
“여전히 빛나시네요.”
김설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해.”
효인의 말처럼.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들이 여전히 내 곁에 있으니까.
남은 시간들도 절망 속에만 있지는 않을 것이었다.
‘밤의 바다는 생각보다 따뜻하구나.’
나는 아무도 없는 바다에서 하염없이 노래를 불렀다.
내가 작사하고, 내가 불렀던 모든 곡들이 자동재생 되듯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것들을 그대로 불렀다.
몇 시간이 지나고.
끝내 가장 마지막 곡 까지 불렀을 때.
밤의 바다에서 나 홀로 펼쳐진 콘서트는 끝났다.
그리고 알았다.
이제 다음 노래를 만들 차례라는 것을.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
10년 뒤.
“올해 그래미 최고의 앨범상은, 슈팅 스타의 입니다!!! 축하드립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승현이가 주먹을 불끈 쥐고 “예쓰!” 하고 환호했고, 예송이형은 주변 테이블에 있는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윽고 무대 위에 올라 트로피를 건네 받고, 승현이와 예송이형이 수상소감을 말하자 이제 나의 차례였다.
이번에도 시상을 맡은 돈 레전드가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축복 받은 삶이군, 안 그런가?”
나는 돈 레전드에게 대답했다.
“틀림없이요.”
그리고 마이크를 잡았다.
내가 할 말은 단 하나였다.
“어머니, 그곳에서도 웃어주세요. 저도, 웃어보겠습니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