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0화(10/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0화
전교생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그런데, 얘는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집요하게 물어 오고 있었다.
“어떻게 나를 몰라? 진짜로? 왜?”
“알아야 해?”
반사적인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이건 너무했나.
“아, 미안.”
저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한시하랑 같은 반 친구였던 것 같기도 하고.
단발머리는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너를 아는데?”
“나는 유명하잖아.”
“좋은 쪽으로는… 아닐 텐데?”
“그건 알지.”
“그것치곤 너무 당당한 걸.”
“원래 다 그렇게 유명해지는 거야. 괜히 회사들이 욕먹으면서 어그로 끄는 게 아니라고.”
노이즈 마케팅 모르냐.
물론 내가 한 마케팅이 아니라서 골머리가 아파오는 건 나도 마찬가진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별수 없지. 이미 유명한 걸 어쩌나.
단발머리는 내 뻔뻔한 말에 생각에 잠긴 듯 두 눈을 굴렸다.
“…일리 있어.”
응?
이걸 왜 납득하냐고.
아무 말이나 던진 건데, 이걸 납득해 버리는 바람에 할 말을 잃었다.
“으음. 음.”
이럴 때는 차라리 네가 누구였냐고 물어보는 게 낫지 않을 게 싶기도 하고. 눈치를 살피며 입을 뗐다.
“아무래도 까먹은 듯싶은데. 그래서 이름이?”
“…안 유명해서 미안.”
“야.”
아무리 생각해도 백 퍼센트다.
같은 반이었던 데다가 성격파탄인 한시하와도 나름 친했던 게 분명했다.
이 녀석에게 친구가 있었다는 게 설정상 의문이긴 하지만. 어쨌든 ‘알아야 해?’ 발언은 아무리 봐도 개새끼였던 거 같은데.
다시 정적이 맴돌았다.
여기서 집요하게 이름을 물어보는 것도 조금 눈치가 없는 관계로 화제를 돌렸다.
“그… 이름은 나중에 다시 물을 테니까, 다른 거 하나만 묻자.”
“….”
“시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
내 가방엔 슬라임 구슬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외에 맹독 슬라임을 처치했을 때 얻은 야광석도 남아 있었다.
슬라임 구슬은 당장은 가치가 바닥이라 팔기엔 애매해도, 야광석은 내놓으면 꽤 잘 팔릴 터였다.
가문의 도움도 못 받는 처지. 솔직히 노골적으로 말해서 당장 삼각김밥 사 먹을 돈도 없다. 뭐라도 팔아서 자금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머릿속에 떠오른 게 아르델 아카데미 근처에 있는 클렌트 시장이었다.
“알지.”
단발머리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퉁명스러웠던 말투는 어디로 가고 나름 충실한 설명이 이어졌다.
“거리는 조금 있는데. 아르델 아카데미 뒤편에서 꺾어서 골목을 조금 올라가면. 광장 건너편에 다리 하나가 있는데 거기 거치면….”
그, 아니 그거 아냐.
“잠깐만.”
순식간에 쏟아지는 정보에 손사래를 쳤다. 꺾어서 올라가서 거치고 그런 거 너무 추상적인데.
21세기의 문물에 길들여진 터라 지도 없이는 집밖에도 못 나가는 내 입장에선 너무 하드코어 모드였다.
눈치를 보며 입을 뗐다.
“네가 팔 건 없고? 살 거라든가.”
“뭐?”
이름도 모르던 전 반 친구로서. 진짜 내가 봐도 염치없는 멘트이긴 한데.
“같이… 가 주면 안 되나?”
나, 사실 길치야.
* * *
“아이, 참. 은근슬쩍 깎지 마시고. 이거 던전에서 나온 따끈따끈한 야광석이라니깐.”
“저, 저기요!”
쾅.
“아주머니?”
약팔이의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살면서 자영업의 꿈을 가져 봤으나 이루기 전에 과로사한 나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스읍… 장사는 안 하길 잘한 거 같은데.”
개원했다가는 쫄딱 망했을 거 같아.
확실하다. 이 정도의 영업력이라면 한 달도 못 버텼을 테니까.
야광석을 거래하는 곳을 몇 군데 돌아다녔지만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얼굴에 후려치는 인간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나저나 여기.
내가 아는 시장과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값을 흥정하고 남녀노소 섞여 목소리를 높이는 광경을 보면, 이세계라고 뭐 사람 못 살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달까.
그때, 명랑한 목소리가 정신을 깨웠다.
“야광석 세 개요.”
열심히 얼 타고 있는 나와 달리 단발머리는 제법 잘 팔고 있었다.
두둑이 현금을 챙겨들고 나오는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어떻게… 한 건데?”
“학생증부터 보여 드렸는데.”
아.
나, 이런 사람이다. 하고 일단 명함부터 깐 셈인가.
확실히 이곳은 아카데미생들이 단골로 자주 찾는 편이다.
어마어마한 학비를 내는 만큼 다들 하나같이 씀씀이도 상당했다. 좋은 관계를 만들어 두면 나중에 또 찾아올 것이라 판단한 모양.
아르델 아카데미라는 이름만으로도 먹고 살기가 이리 편하다.
단발머리는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나중에 또 찾아오겠다고 했어.”
“물건 사 드린다고?”
“그렇지. 근데 돈은 없어.”
“당당한걸.”
“그건 누구 못 이길 것 같은데.”
툭툭 뱉는 말에 피식 웃으며 인정했다.
그나저나 돈이 없다니. 아르델 아카데미에서 흔한 케이스는 아니었다.
입고 다니는 옷이나 행동거지에서 대충 예상은 했는데 평민 출신인가.
돈이 없는 건 이쪽도 마찬가지인 터라 텅 빈 주머니를 탈탈 털고서 상점 하나를 잡고 들어갔다.
“으으, 다들 속물적이란 말이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발머리 못지않게 두둑이 챙겨 오는 데에 성공했다.
역시나 학생증이 프리패스였다.
“이걸로 한 일주일 치 여유자금은 확보를 한 건가?”
“…그럼 가자.”
목적을 달성한 단발머리는 내가 나오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말을 뱉었다.
“바로?”
나도 모르게 되물었다.
누가 시장에 와서 물건만 팔고 가냐. 상인도 아니고.
딱 보아하니 여기는 백화점도 편의점도 없는 거 같은데. 사실상 여기가 중심상가 아닌가?
그러면 파는 김에, 사는 김에. 꽈배기 하나, 호떡 같은 거라도 입에 물고 돌아가는 게 도리 아닌가 싶어서 멍해졌다.
“볼일 끝났잖아.”
“던전에서는 몰랐는데. 은근 재미없게 사는 편이구나.”
“내가?”
내 지적에 기분이 나빠졌는지 여자애는 인상을 찌푸렸다.
뭐, 사실이잖아.
“따라와, 같이 와 준 보답으로 뭐 하나 사 줄 테니까.”
“움.”
여기에 호떡이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비슷한 거라도 조져야지.
싫지는 않은지 별말 없이 졸졸 따라온다.
옷가지가 진열되어 있는 상점들, 마공석과 포션을 파는 상점을 지나쳐 달달한 음식 냄새가 나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순간.
어라.
나는 본능적으로 거울 앞에서 멈춰 섰다.
“왜?”
빙의한 이후로 제대로 거울을 볼 틈이 없었다.
도망친 후 바로 아카데미로 향했고 기숙사에 입주하기도 전에 던전부터 뛰었으니까.
“얜… 누구냐?”
솔직히 말해서 그리 좋은 꼴이 아니리라는 건 대강 짐작하고 있었다.
한시하의 이미지가 음침한 쪽으로 굳은 데에는 정말 음침하게 하고 다니는 패션 감각 때문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이 꼬라지였다고?”
이건 조금 심하지 않나.
본판을 보아하니 그리 나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눈을 반쯤 가리고 있는 꼴에 너덜너덜한 옷가지까지. 범접하기 어려워 보이는 비주얼임에는 틀림없었다.
이쯤 되면,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했던 거 아닐까?
“이건… 진짜 거지새끼 아니야?”
귀족가문의 막내아들이 이러고 다녀도 아무도 안 말렸단 말이야?
거기 사용인들 깡그리 직무유기 아니냐? 이걸 냅둬?
진짜로.
누가 봐도 음침해 보이잖아!
“머리부터 어떻게 쫌 하자.”
지금 한가롭게 호떡이나 처먹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 * *
다음 날, 강의실은 한 사람의 등장과 동시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어?”
저벅저벅.
여느 때처럼 평범하게 뒷문으로 들어온 한시하.
한시하가 걸어 들어올 때면 모세의 기적마냥 다들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달랐다.
다른 의미로 물길처럼 하나둘씩 갈라지는 학생들. 앞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애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제 눈을 비볐다.
“누구야?”
강의실이 크게 술렁였다.
저 정도로 잘생긴 얼굴이라면 그동안 몰랐을 리 없다.
“와.”
나직한 탄성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왔지만, 묘한 이질감에 다들 쉽사리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기도 한데.”
“설마.”
한 명의 시선이 한시하의 가슴팍을 향했다.
“말도 안 돼.”
가문의 문장. 그것이 들어간 배지가 교복에 걸려 있었다.
그걸 발견한 게 한둘이 아니었는지 뒷좌석은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옅은 갈색 머리에 특유의 오묘한 눈빛은 그대로였지만, 시원하게 쳐 낸 머리와 깔끔하게 차려입은 옷가지는 도무지 같은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았기에.
다들 한참 동안이나 말을 잃었다.
저 얼굴이, 객관적으로 봐도 꽤 잘생긴 저 얼굴이 한시하일 리가 없었다.
차라리 타 학교에서 전학 온 학생이라면 몰라도.
“누구신지?”
누군가 용기를 내어 조심스레 물었다.
뒷사람이 대답하듯 나직이 읊조렸다.
“음침한 한시하.”
“저 얼굴이… 음침할 리가 없잖아!”
퍽.
여자애 둘은 투닥이며 말을 뱉었다.
음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옷이 날개라고. 진짜 다른 사람 같아 보였으니.
저게 한시하가 맞다면, 저런 얼굴은 대체 왜 가리고 다닌 걸까.
“와, 겁나 잘생겼는데…?”
“그러니까 더 말이 안 되지. 한시하일 리가 없어, 절대로.”
둘의 대화를 앞에서 듣고 있던 한 남학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붉은 머리를 치켜올린 크릭이었다.
“야, 거기 한시하 자리야. 넌 누군데 거기 앉는 거야?”
한시하는 자신을 향해 시선이 쏠린 게 당황스러운 듯 인상을 찌푸렸다.
왜 이리 단체로 자신을 취조하듯 쳐다보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였다.
“한시하, 맞는데.”
“뭐?”
“뭐라고오?”
“네가 한시하야?”
아델라는 구석에서 탄식을 내뱉었다.
어째, 저 반응이 나올지 본인만 몰랐던 것 같은 얼굴.
크릭은 말문이 막힌 듯 어버버 하며 한시하를 가리켰다.
“머… 머리는 대체….”
“왜? 너무 길다 싶어서 잘랐는데.”
긁적.
한시하는 묵직한 가방을 내려놓으며 제자리에 앉았다. 사람답게 다듬었을 뿐인데 이렇게 놀랄 일은 아닌 듯싶어서.
“옷 빼고는 나름 그대로 아닌가?”
거지꼴에서 사람으로 신분이 조금 상승했을 뿐.
한시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크릭을 돌아보았다.
“어… 어!”
하지만, 비포 앤 애프터를 가장 처음으로 직관한 아델라는 나직이 중얼거릴 뿐이었다.
아무리 봐도, 저건 진짜.
“사람을 바꿔 낀 수준인데.”
* * *
크릭은 이를 악문 채 바로 뒷자리에 앉은 한시하를 똑바로 응시했다.
“어디서 폴리모프 시술이라도 받고 온 거야?”
대충 성형이라도 했냐는 소리.
한시하는 무슨 개소리냐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하루 만에?”
그건 그렇긴 하다.
크릭도 자신이 말해 놓고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듯 입을 다물었다.
그는 평민 출신이었다.
아카데미 입학할 정도니 재능이 뛰어난 편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아카데미 전체를 통틀어 보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무시받고 차별받는다고 느낄 때가 많았다.
1학년 기준으로는 그랬다.
여느 열등감을 가진 학생들이 그렇듯, 크릭은 그런 감정을 풀 대상을 찾았다.
귀족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흑마법을 연구한답시고 가문에 버려진 녀석. 거기에 더해 생긴 것부터 행동까지 음침하기 그지없는 녀석.
바로 한시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시하를 조직적으로 괴롭혀 가며 그 열등감을 풀고 우월감을 가지려 했다.
그걸 한시하도 모르지는 않았다.
빨간 머리에 말하는 싸가지. 한시하를 저렇게 대하는 사람이 몇 없었으니 누군지는 바로 알아챘다.
‘깝치다가 가장 먼저 얻어터졌던 것 같은데. 아, 죽였던가.’
한시하의 심성이 결코 착한 편은 아니었다.
원작에서 한시하는 흑마법을 개화한 이후 저를 무시했던 녀석들은 차례로 죽여 나갔다.
흑마법의 재료로 삼았다는 소리였다.
아마 그 첫 번째 희생양이 눈앞에 앉은 크릭.
동정심은 들지 않았다. 한시하가 삼류 악역이라면, 이 녀석은 텍스트를 할애하기도 아까운 별 볼 일 없는 악역에 불과했다.
“뭐 어떻게 한 거냐? 말이라도 해 봐. 좋은 건 나눠야지.”
“….”
“왜? 영 쪽팔리나?”
녀석은 아까 말문이 막혔음에도 계속해서 도발을 걸어왔다.
제아무리 음침해 보이는 외형이라도 가문에 팽 당했다는 소문이 들기 전까지는 찍소리도 못했던 녀석이 이리도 기어오르는 게, 한시하는 그저 우스웠다.
제가 읽었던 소설 속 이야기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중이었으니.
“요 며칠 어떻게든 낙제를 면해 보겠다고 빨빨거리시더만. 그게 겨우 이거였나?”
“야, 대답하라고. 너 나 무시하냐?”
그저 같잖은 도발에 한시하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무시하면 안 되냐?”
“뭐, 뭐?”
“뭐 하나 무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대우해 줘야 하는 이유라도 있냐고.”
“머리 자르더니 뇌도 잘랐나. 이런 미친…!”
한시하는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들어 올렸다.
지금 이 강의실의 공기.
아닌 척해도 이 둘의 대화에 모두가 집중하고 있다. 이전엔 다들 관심이 없거나 한시하를 비웃었다면.
지금은 왜일까.
묘하게 달라진 분위기에 한시하는 태연하게 허리를 폈다.
비단 외형뿐만이 아니라, 행동과 말투에서도.
다들 어느 정도 직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한시하가 맞나?’
지나치게 당당하다. 저 눈빛이 크릭을 완전히 압도하고 있었다.
늘 쩔쩔매며 뒤에서 혼자 중얼거리기만 하던.
왠지 음침하던 그 한시하가 아니라는 걸.
지이익.
한시하는 가방 지퍼를 열며 담담하게 말을 뱉었다.
“굳이 믿은 게 있다면, 이쪽이겠지.”
한시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방이 크게 들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