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08)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08화(108/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08화
한시혁은 두 손에 깍지를 낀 채 흥미롭게 한시하의 발표를 들었다.
한시하가 생글거리며 엿을 먹였던 마지막 멘트는 여전히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쪽이 지난달에 마법부에서 빠꾸 먹은 논문보단 나은 것 같은데.’
반드시 떨궈야겠다.
‘모든 허점을 짚어 줘야지.’
한시혁은 속으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나름 유치한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한마디 질문만 던져도 쩔쩔맬 것이 뻔했다.
그 쩔쩔매는 모습을 보며 골려 주는 것 또한 나쁘지 않은 선택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자신이 아는 한, 한시하가 이런 쪽에 능할 리가 없다.
기껏해야 다른 조원들의 도움을 받아 여기에 나왔을 테지.
속 빈 강정 같은 한시하의 실력쯤은 몇 마디만 던져도 탈탈 털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뭐지?”
한시혁은 이내 제 귀를 의심했다.
이 자리에 있는 다른 이들은 별생각 없이 듣고 있다 쳐도, 한시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한시혁의 입장에선 기겁할 수밖에 없던 장면이었다.
얼마 전 아델라가 느꼈던 감정.
그 감정을 한시혁도 고스란히 느끼고 있었다.
아니, 몇 배나 더 충격이었다.
왜?
왜 잘하는 거지?
한시하는 지금 백마법과 흑마법의 연관성에서 도출해 낸 아이디어 초안에 대해 말을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그 말투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드워프의 독성 저항에서 착안한 원리입니다. 드워프는 체내에 저장된 마력을 사용하여 독성 마법에 저항합니다. 마치 해독 포션과 같은 작용이죠. 비슷한 원리로 정화 마법으로 독성 마법을 상쇄할 수 있다면, 정화 마법을 농축해 둔 아티팩트를 통해서 언제든지 그 힘을 꺼내 쓸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적어도 듣기엔 그럴싸했다.
아니, 어쩌면 가능할 것 같았다.
겨우 2학년이 해낼 수 있는 발상이 아니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를 차용한 것은 아닌가.
그렇게 의심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비슷한 형태의 아이디어는 마법부에서 확인한 숱한 논문 중에서 본 적이 없었다.
한시혁은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가장 자신 넘치게 발표를 이어 가고 있는 한시하가 어설프게나마 저 원리를 생각해 냈음을 말이다.
“해독 포션은 값이 비쌀 뿐더러 일회용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아티팩트를 사용하게 되면 얘기가 다릅니다. 훨씬 더 경제적이며 효율적이지 않습니까?”
말도 안 된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한시하의 허점을 짚어 주겠다며 두 눈을 반짝이던 한시혁은 다른 의미로 흥분하고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쓰레기 같던 개망나니 녀석이 바뀌었다는 것쯤은 한시혁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재활용조차 불가했던 쓰레기가 재활용 쓰레기가 된 수준일 뿐이라 생각했다.
헌데, 지금은 이미 재활용을 마친 쓰레기가 아닌가.
아니, 이게 아닌가.
‘왜 자꾸 머릿속에서 쓰레기가….’
한시혁은 제 머리를 비워 내며 입을 떡 벌렸다.
묘한 기분이다.
저 스스로 나락의 길로 가길 꾸준히 바라왔거늘, 저놈이 사람 구실 하는 것이, 썩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반드시 떨궈야겠다 다짐하면서도 막상 잘하니 응원하게 되는 심리란 무엇인가.
제 이중적인 감정에 한시혁이 헛웃음을 터트릴 때였다.
한시하가 싱긋 웃으며 아티팩트를 꺼내 들었다.
“바로 이것이 저희 세 명이 임시적으로 만들어 낸 아티팩트입니다. 아직 불안정한 형태입니다만, 부분적으로 기능을 하고 있습니다.”
“어?”
한시혁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한시하의 말대로 조악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 실물이 앞에 있다는 것은 체감이 달랐다.
허무맹랑한 어린애의 상상에 불과하다 생각했던 이들도 당황한 듯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시혁을 포함한 다른 심사위원들이 크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저게 진짠가…?”
“허어어. 저걸 만들어 냈다고?”
“글쎄다. 기능을 할지는 모르겠군.”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사이즈의 목걸이 형태를 한 아티팩트.
한시하는 과감하게 반짝이는 목걸이를 한 손에 쥔 채, 제 손을 시커먼 물이 일렁이는 물통 위에서 까닥였다.
“제가 기능하는 걸 보여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어어어!”
꿀렁.
물이 꿈틀거리며 괴상한 소리를 뱉어 냈다.
저것이 단순한 폐수였다면 별 이상한 행동이냐며 그냥 넘어갔겠지만, 그 정체를 단번에 눈치챈 한시혁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위험하다. 멈춰라!”
“설마.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나요?”
오래전 흑마법사들이 독성 마법의 연구를 위해 오염시켰다던 리디바 강의 폐수였다.
아직까지도 해독하지 못해 방치해 둔 것이었다.
연구실에서 저 샘플을 구했는지는 몰라도 학생들이 사용하기에 더없이 위험했다.
치명적인 독이 들어 있을 뿐더러 잘못했다가는 해독 포션이 기능하지 않는 미지의 독이 침투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한시혁의 옆에 앉은 베켄 공작은 혀를 찼다.
“동감한다. 객기는 좋은데 여기서 네가 실려 가면 다음 순서를 볼 수가 없지 않나.”
“될 리가 없지.”
“내려놔라. 애들이 가지고 놀기엔 영 위험한 장난감이니.”
한시혁은 한숨을 내쉬며 한시하를 향해 손짓했다.
‘처음부터 저걸 계산했군.’
그럼 그렇지. 저 꼴통이 재활용이 되었을 리 만무했다.
모두들 이리 말릴 테니 저게 정말 아티팩트든, 근처 상점에서 산 목걸이든 확인할 방법이 없다.
어린애들 발표 대회에 실제 논문처럼 검증이 들어가지도 않을 테고.
말 그대로 쇼맨십에 불과한 것이다. 영리하게 머리는 굴렸으나 넘어가는 사람이 몇이나 되려나.
모두들 이미 입가에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런데.
쑤욱.
“아니 미친!”
그걸 처넣는 자가 여기 있었다.
꿀렁꿀렁.
검은 물이 요동치며 한시하의 팔을 휘감자 진행자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튀어 나갔다.
다른 교수들도 다를 바 없었다.
“끄아아악! 아니, 뭐 하는 거야, 학생!”
“지금 당장 사제를 불러… 어?”
한시하는 태연하게 웃으며 손을 털었다.
진행자를 따라 일어섰던 한시혁은 두 눈을 의심하며 그대로 멈춰 섰다.
“뭐야? 애야, 너 괜찮은 거냐?”
다른 교수들도 호들갑을 떨며 한시하의 팔을 붙들었다.
그 짧은 사이에 그의 건강 상태를 체크해 본 교수도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아도 모두들 직감한 뒤였다.
“아, 정말 괜찮습니다. 벌써 수십 번은 미리 테스트해 봤으니까요.”
더없이 멀쩡하다.
저 물에서 느껴지는 사악한 기운은 분명 리디바 강의 그것이 맞는데.
한시하는 정말 독성 저항이라도 있는 것처럼 멀쩡했다.
“어떻게 한 거야?”
“진짜 저 아티팩트가, 작용한 게 맞습니까?”
독성 저항을 얻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강제로 독소를 몸에 주입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면 당연히 저항력은 생긴다.
문제는 그 전에 중독되어 죽는다는 것.
그렇기에 아직까지 마법사들은 해독 포션 외에 다른 방안을 찾지 못했다.
때문에 흑마법사들이 집요하게 그 점을 노려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것이 아닌가.
저 아티팩트가 개발된다면 흑마법사들뿐만 아니라 비슷한 계열의 몬스터들을 상대할 때도 훨씬 유리해지지 않을까.
한시하는 모두의 탄성 속에서 담담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정화 능력은 확실하지만, 영구적이지는 않습니다. 아티팩트에 내재되어 있는 마력에 따라 제한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니 이 조악한 결과물로는 고작 3분일 뿐이지만 조금 더 연구하면 시간은 충분히 늘릴 수 있을 듯합니다.”
“쓸 만한데?”
“투자할 만한 물건이군.”
쇼맨십이 아니었다.
“진짜 미친놈이었어….”
겨우 학생 수준의 연구회에서 뜻밖의 아이디어를 발견해 낸 마법부의 직원들은 기특하다는 듯 한시하를 싸고돌았다.
“와아아아! 너 대단한 녀석이었구나.”
“이름이 뭐라고? 허허, 혹시 우리 연구실에 들어오지 않겠나.”
“뭐? 순서부터 지키지.”
“잠깐만. 아직 심사 중입니다. 다들 진정하시고!”
한시혁은 그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
겨우 사람 구실에 급급했어도 감탄했을 터인데.
재활용 쓰레기에 불과했던 녀석이 천재가 되어 돌아왔다.
“놀라운 수준이군.”
한시혁은 지금 이 감정이 환호인지 씁쓸함인지 알 수 없었다.
예언가로 지내며 숱한 이들의 인생을 봐 왔다.
그리고.
필시, 이 세상에서 천재는 일찍 죽는다.
그걸 한시혁은 알고 있었다.
* * *
다들 표정이 바뀌는 게 보인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일 게 분명하다며 고개를 젓던 이들도 흥분한 얼굴로 내 쪽을 돌아본다.
아마 내가 천재라고 생각하는 게 분명했다.
아예 대놓고 그리 말하는 이들도 있었고.
근데 사실 진짜 천재는 이쪽이다.
나는 지루하다는 듯 제 자료를 넘기고 있는 윤하을을 돌아보았다.
지금은 윤하을이 예언가로서만 이름을 떨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쟤는 거기에만 힘을 쏟기엔 너무 아까운 천재였다.
검술부터 마법, 예언, 그리고 심지어 제작까지도. 그냥 다 잘했으니까.
아, 근데 이 아이디어를 내가 냈으니 나도 천재라 보긴 해야 하나.
원작에서는 해독 포션의 원리를 짧게 설명했다.
드워프의 마력 체계와 다를 바가 없다고.
그 외에 다른 부가적인 설명은 없었으나 거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드워프의 마력 체계야. 나는 이해 안 가지만 네 눈엔 뭔가 보일 거 아니야.’
‘응, 그런 것 같기도?’
‘비슷한 형태를 구현해 낼 수 있을까? 이 물건에 새기는 거야.’
발표회 직전 며칠 밤낮을 새며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아델라는 미친 짓이라며 우리 둘을 말렸지만, 당연히 멈출 생각은 없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해서라도 만들어 두면 나쁘지 않은 물건이었다.
아니, 어쩌면 언젠가 꼭 필요해질 물건이었다.
빛이자 정화의 마법사 솔리아.
그녀는 뜻밖에도 전투에서 죽지 않는다.
전투를 끝내고, 힘겹게 살아남았지만.
흑마법사가 찔렀던 검에 묻어 있었던, 리디바 강의 독이 그녀의 몸 깊숙이 파고들어 죽게 된다.
2부 시작에서 모두를 충격에 빠지게 했던 솔리아의 허무한 죽음.
살릴 수 있다면 솔리아는 분명 큰 전력이 될 것이다.
그래서, 그걸 막아 볼 생각도 있었다.
우리의 허접한 기술로는 이런 조악한 결과물밖에 만들 수 없을 테지만.
천재 중 천재들만 모인 이곳의 교수들은 만들어 낼 수 있겠지.
일단 관심을 얻는 데에는 확실히 성공한 듯하다.
윤하을을 향해 피식 웃으며 엄지를 치켜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줄곧 한시혁의 옆에서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던 베켄 공작이 입을 열었다.
“질문하고 싶은 게 있네요.”
다른 이들과 달리 묘하게 서늘한 낯빛이었다.
* * *
“다들 저 조악한 아티팩트에 너무 과도한 평가를 하는 것 같다고 생각됩니다만.”
베켄 공작은 괜히 시비를 걸었다.
한시혁은 눈썹을 들썩이며 그런 그를 돌아보았다.
“일시적인 실드 마법으로 눈속임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되는군요.”
“한 번 더 담가 볼까요?”
한시하는 생글거리며 베켄 공작의 의심을 쳐 냈다.
“…됐군요.”
다들 베켄 공작이 별 트집을 잡는다 생각했다.
여기 그런 허접한 눈속임에 속아 넘어갈 정도로 멍청한 이는 없다.
방금 전에 한시하가 보인 것은 분명 제대로 된 정화 마법이었으니까.
“눈속임이 아니라 하더라도 고작 3분짜리 결과물입니다. 과연 충분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지, 그것도 의심이 되는군요. 그래 봤자 겨우 2학년의 망상일 뿐인 것을.”
“….”
옆에 앉은 한시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 생각보다 괜찮은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학생은 그런 걸 모르지 않습니까. 어른들의 사정이란, 돈이 되는 것에 시간과 자금을 투자하는 법이라는 걸? 그렇죠?”
저건 정말 괜한 꼬투리를 잡는 게 틀림없었다.
그제야 한시혁은 베켄 공작이 왜 저러는지를 깨달았다.
솔리아의 후원자라고 했던가.
‘제 후원자를 올리려고 애를 쓰는군.’
저런 인간이 심사위원을 맡으면 안 되지.
한시혁은 나직이 중얼거리면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한마디는.
그에게도 퍽 불쾌했다.
“그리고 일개 학생이 어찌 해독 포션의 작용 과정을 알고 있는지도 의문이군요.”
“예?”
“흑마법에 상당히 관심이 많다 들었는데 혹시 이전에 독성 마법을 시전해 본 것은….”
“거기까지.”
한시혁이 베켄 공작의 말을 잘랐다.
아까와는 달리 한시혁답지 않은 서늘함이 느껴지는 눈빛이었다.
“선은 넘지 마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