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24화(12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24화
한낮인데도 제법 추운 날씨.
에른스트 교수는 눈이 내리는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그의 옆에서 발걸음을 맞춰 걷고 있는 건, 지도학생 베티였다.
베티는 머리 위로 쌓이는 눈을 신기하다는 듯 올려다보다 교수의 한마디에 고개를 돌렸다.
“자네는 작년에 미로의 굴 학술회에 다녀왔던가?”
“미로의 굴… 학술회요?”
연휴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지만 에른스트 교수의 정신은 온통 그 학술회에 쏠려 있었다.
마법부 주관의 학술회 못지않게 유명한 행사였다.
훗날 마탑에 취직할 때 가산점으로 들어가는 학술회 중 하나, 그 신청기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아, 다녀왔었어요.”
베티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에른스트 교수의 추천서를 받아 다녀왔었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서 합격할 수 있었다.
전반적으로 까다롭고 빡센 커리큘럼에 2주간 따라가는 것도 꽤 벅찼으나, 유명 학술회답게 배운 점도 많았고 좋은 기억으로 남았던 자리였다.
“어땠나?”
“전… 정말 좋았어요. 가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갈 수 있다면 다시 가고 싶은… 그런 학술회였던 것 같아요.”
에른스트 교수는 적어도 제 눈에 든 학생들에 한해서는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는 편이었다.
그렇기에 베티는 은근히 떠보는 에른스트 교수의 말에서 의도를 짐작했다.
2학년의 한시하라고 했나.
에른스트 교수가 요새 애정하고 있는 그 학생을 저 학술회에 보내려고 하는 게 아닐까.
그런 베티의 예상은 옳았다.
“음… 테이머 지망의 학생에게도 도움이 되려나?”
마탑의 연구직을 희망하는 베티는 한시하와 분야가 조금 달랐다.
그렇기에 도움이 되는 부분도 분명 다를 것이다. 하지만, 베티는 단언할 수 있었다.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이론적인 것보다는 실습 위주로 진행되는 학술회였어요.”
미로의 굴.
학술회의 이름대로 첫 시작은 미로에서부터 시작한다.
일반적인 학술회장보다는 던전에 가까운 형태. 실전 경험을 쌓는 데에는 그만큼 잘 설계된 학술회가 없었다.
베티의 말에 에른스트 교수는 생각에 잠겼다.
마탑에 취직할 때의 가산점 같은 건, 학생에게나 중요하지 교수에겐 중요하지 않다.
에른스트 교수는 그보다 한시하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값진 것들을 얻어 갈 수 있는 학술회라면, 보내는 것이 옳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있으나….
그건 한시하에게 물어봐도 늦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생각해 봐야겠군.”
에른스트 교수는 베티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그때였다.
“으어어어어! 녹는다아!”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귀에 꽂혔다.
“바실아아아악!”
에른스트 교수가 찾고 있던 한시하의 목소리였다.
오랜만에 교수의 호기심을 동하게 한, 마법과의 유망주 한시하 학생.
그 녀석이… 웬 걸거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음?”
그것도 쓰러져 가는 눈사람을 붙들고서는.
* * *
에른스트 교수의 연구실.
“한시하 학생?”
에른스트 교수가 나를 불렀다.
솔직히 말해서, 왜 불렀는지는 모르겠다.
교수의 연구실에 불려온 상황.
백 번 생각해 봐도 달가운 상황은 아닌 듯싶은데.
왜 일이 더 늘어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
두 눈을 굴리며 눈치를 살피는데, 에른스트 교수가 입을 열었다.
“그… 눈사람.”
“눈사람에 관해 연구를 생각하신 게 있으신가요?”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네?
“눈사람에 진심이더군….”
에른스트 교수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끝을 흐렸다.
눈사람 붙들고 길거리에서 온갖 짓을 다하는 걸 들켰던 모양이다.
수치스러워서 귀가 빨개졌다.
“드래곤으로 눈사람을 다시 얼리려 드는 테이머는 내가 처음 봤네만.”
바실이 녹인 눈사람을 클로스티로 살려 보겠답시고, 온 정신을 집중했다.
…진짜 수치스럽다.
클로스티의 정교한 얼음 브레스로 녹은 눈사람을 다시 얼리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에른스트 교수는 모를 일이었다.
예민한 감각을 최대치까지 올렸다고!
눈… 눈사람 얼리려고!
솔직히 얼리면서 그 생각도 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눈사람을 얼리려 이 고생을….
자꾸만 수치스러운 생각이 내 머릿속을 좀먹던 와중.
“크흠. 어쨌든 그 얘기를 하러 부른 것은 아니고.”
에른스트 교수가 화제를 돌렸다.
“학술회에 나가고 싶진 않나?”
“학술회… 말입니까?”
“미로의 굴 학술회라고 들어 봤나? 꽤 유명할 텐데.”
두 손을 공손히 모은 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눈사람에 관한 건을 잊을 만치, 절로 정신이 맑아지는 이름이었다.
들어 봤다.
슬카데미에서도 메인 에피소드의 주요 배경이 되었던 학술회.
흑마법사 아첸트가 첫 번째로 출연했던 곳.
큐브의 약탈자. 아마도 이한과 아델라에게 감시가 붙기 시작한 순간도 그때부터일 터.
이 정도의 비중이면 메인 에피소드가 뜰 법도 한데….
떴다.
[Main episode 7: 미로의 굴] [흑마법사(아첸트)로부터 큐브를 지켜라.] [보상: 난이도 하향 조정] [실패 시: ??]반사적으로 말을 뱉었다.
“아, 익히 들어온 학술회라 가고 싶습니다.”
어색하게 웃으며 에른스트 교수를 돌아보았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 가야 했다. 저 정도 규모의 학술회라면 이한과 아델라는 분명 참석할 테고, 내 기억이 맞다면 윤하을도 자격이 될 것이다.
결사단 인원들 모아 회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저 자리에서 아첸트에게 큐브를 빼앗기는 것이 아닌, 그를 잡을 수 있다면.
무리를 해서라도 그리해야 하는 것이 맞다.
에른스트 교수는 다른 의미로 타오르고 있는 내 눈빛을 봤는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허허, 성적만 된다면야 내가 추천서를 써 주는 건 어렵지 않지.”
“…!”
“그런데, 그… 한시하 학생….”
자신감 넘치게 말을 뱉은 에른스트 교수가 갑자기 말끝을 흐리게 시작했다.
“학생의 1학년 성적을… 봤는데….”
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마법부의 학술회를 제외하고는 보통 전 학년의 성적이 들어가는 것이 국룰.
나도 모르게 두 눈을 끔뻑이고 말았다.
나는, 그게 들어가면 안 되지 않나?
2학년 내내 최상위권이었던 내 성적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 1학년 성적이었다.
구체적인 성적까지는 몰라도 대강 짐작은 갔다.
어, 개판인 건 알았는데.
어느 정도 개판인지는 모르고 있었다.
에른스트 교수가 주섬주섬 성적표를 꺼냈다.
“이게… 학생의 성적표가 맞긴 한 건지, 한 번 확인해 보겠나?”
1학년의 한시하가 재능 없기로 유명했다는 것쯤은 전교에 소문나 있었으니 에른스트 교수도 알고 있었을 터다.
그런데도 저렇게 망설이면서 말하는 걸 보면….
불안해진다.
에른스트 교수가 건네는 성적표를 조심스레 받아 들었다.
어디 얼마나 말아먹었는지 보자.
“이건가요?”
음.
[기초 점성술학 297/300]음.
[마법학의 이해 298/300]으음….
[마력운용학 299/300] [흑마법의 역사와 비판적 사고 300/300] [회로원리 300/300]….
크릭과 파비안을 욕할 게 아니었는데?
“미친.”
개빡대가리 아니야, 이 새끼!
올 1등급보다 힘들다는 전 과목 9등급.
아니, 그냥 9등급도 아니다.
이 정도면 거의 꼴지 아니야?
화려한 성적표에 말문이 막혔다.
이게… 이게 뭘 믿고 주인공들한테 깝쳤던 거야?
그러니까 시작하자마자 뒤진 게 아닐까?
믿기지를 않는다.
정말 무슨 배짱이었는지 모르겠다.
대체 왜 제 형한테 자격지심을 가졌는지도….
대체 왜 주인공한테 사사건건 시비를 걸었는지도….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간다.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게… 제… 성적인가요?”
파르르.
나도 모르게 성적표를 구겨 버렸다.
실수였다.
“…학생?”
“으… 으… 뭘 본 거지?”
이러니까 2학년 때 아무리 성적이 좋아도 통합 성적이 낮은 거 아니야!
정신이 혼미해진다.
“한시하 학생!”
에른스트 교수는 넋이 나간 나를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돌아보았다.
저거, 지가 시험 망해 놓고 왜 저러나 싶을 터.
하지만… 이건… 이건 내가 본 시험이 아니라고.
어지럽다.
너무 어지럽다.
“그래서… 이 성적으론 학술회에 못 나갈 듯싶은데….”
“제가 봐도 그럴 것 같습니다, 교수님.”
그 유명한 학술회에 전직 전교 꼴등이 나가면 그것도 볼만하겠다.
어이가 없는 나머지,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그때였다.
에른스트 교수의 눈빛이 비장하게 빛났다.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하네.”
“네?”
저, 저런 성적표로 학술회에 나갈 방법이 있다고?
“재수강.”
아.
종강했는데 계절학기 듣게 생겼다.
* * *
살얼음판을 걷는 것 같았던 1년.
마침내 찾아온 방학을 어떻게 보내느냐는 저마다 사뭇 달랐다.
아델라는 한시혁의 사무실에 들어왔다.
그것도 사무보조로.
“안녕하세요, 아르델 아카데미 2학년 마법과 소속 아델라입니다!”
명랑한 자기소개.
한시혁은 익숙한 얼굴을 보고선 눈썹을 들썩였다.
“누가 들어온다는 말은 들었는데.”
“네!”
“그게 학생일 줄은 몰랐군.”
아르델 아카데미 2학년의 유망주, 아델라.
다른 좋은 자리도 많았을 텐데 굳이 자신의 사무실까지 찾아왔을 줄은 몰랐다.
한시혁은 담담한 목소리로 아델라에게 물었다.
“이런 것도 가산점에 들어간다고 하던가?”
요새 마탑에서 종합형 인재를 추구한다고 했다.
단순히 성적만 보는 게 아니라, 스펙! 스펙!이 중요해진 시대가 도래했다.
아델라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수사관 업무가 가산점이 많이 들어가거든요.”
아델라의 목적은 복수이지만, 복수도 식후경인 법.
먹고 살라면 좋은 곳에 취직해야 했고, 가장 알아주는 곳은 단연 마탑이었다.
제국 전체를 뒤흔들 만한 마법사가 되어 돈도 쓸어모으고, 노후 준비도 하고, 그… 그다음에 복수를 해야 했다.
한시혁은 아델라의 포부 넘치는 대답에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아는 얼굴이 낫군.”
한시하의 옆에 있었기에 얼굴만 본 수준이긴 했지만, 그녀의 성정에서 한시혁은 짐작할 수 있었다.
놀라울 정도로 집요하고 성실한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껄렁껄렁하니 허구한 날 정신 팔고 다니는 제 동생과는 달랐다.
그 녀석은… 말을 말자.
어쨌든 아델라는 시키는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잘할 테니 걱정 없었다.
한시혁은 딱딱한 목소리로 아델라에게 해야 할 일을 명령했다.
“수사 자료는 책꽂이에, 기왕이면 제목순으로 깔끔하게 정리해 주고. 당연하지만 기밀문서는 열람하지 말 것. 흐트러지는 건 질색이니까 이미 정리된 건 건들지 말아 줬으면 싶군.”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창틀에 먼지 앉는 건 질색이니까. 어차피 내가 닦을 거지만 출장 시엔 제때 확인해 줄 것.”
그 외엔….
한시혁은 말끝을 흐렸다.
“한시하. 그 녀석은… 사고 안 치고 잘하고 있나?”
솔직히 그리 살가운 형제지간은 아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남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게 더 익숙하다.
예전에는 마냥 관심을 끊고 살았다면.
아르델 제국에 돌아와서 그런가, 괜히 궁금해졌다.
한시혁의 물음에 아델라는 피식 웃었다.
“아마 그럴걸요?”
“….”
“요새 수업 듣느라 정신없을 거예요. 1학년 때 말아먹었… 던 성적 다시 올리느라.”
계절학기에 듣는 수업이니, 아마 아직 정식 입학도 하지 않은 내년의 1학년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고 있겠지.
아델라는 한시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학기 초반에야 저한테 덤벼드는 녀석들을 물어뜯느라 정신없었지만, 적어도 약자는 건들지 않는다.
“심히 걱정이 되는군.”
한시혁의 한마디에, 아델라는 싱긋 웃으며 말을 더했다.
“에이, 후배들이랑 수업 듣는 건데요.”
아무리 한시하여도 그렇지.
“사고칠 리가 없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