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2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27화(12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27화
윤하을은 긍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근데 꼭… 학술회 가야 해?’
‘별거 아니야.’
‘나도 갈게.’
정말 알고 있었으니까.
미로의 굴 학술회에서 무언가 사고가 터진다는 것쯤은 윤하을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망설였고, 그리도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겠지.
미안하지만, 나는 윤하을의 예언을 이용해야 했다.
너는 알고 있으니까, 이걸 설득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다고.
강요 아닌 강요를 해야 했다.
“알고 있잖아, 윤하을.”
“….”
“숨기려 해도 티 나는 걸.”
내 말에 이한이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너 뭐 보였어?”
“별의 뜻이야?”
“왜 말 안 했어?”
윤하을은 쏟아지는 애들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손사래를 치며 말을 더했다.
“자세히… 보인 건 아니야! 큐브랑 연관된 건지도 잘 모르겠고…!”
그래서 말을 하지 않으려 했다.
그렇기에 내가 가지 않기를 바랐다.
꼭 가야 한다면, 자신이 함께 가기를 바랐다.
윤하을은 난처한 기색으로 말끝을 흐렸다.
“위험하다고는… 생각했어. 그런데… 한시하 네 말대로 정말 큐브랑 연관되어 있는 거라면… 그게 맞다면… 피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지.”
“미로의 굴 학술회가 일어나는 곳은 보안이 삼엄한 편이지만, 허점이 없는 건 아니야. 외부인이 출입할 수 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
여느 행사가 그렇듯, 스케일이 클수록 허점도 많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간 문제없이 운영된 이유는, 운영 방식에 문제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사고를 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똑똑한 학생들이 모인 학술회.
다른 여타의 행사들보다도 조금 더 학술적인 면모가 돋보이는 곳이기에, 더욱 그런 사건사고가 없었다.
마법부 주관의 학술회는 아무래도 각 아카데미의 대표 학생들이 초청받는 곳이다 보니, 학교끼리의 신경전이 상당했다.
허나, 미로의 굴은 단체전보다는 개인전에 가깝다.
다른 아카데미 학생들과 호흡을 맞춰야 할 때도 있고, 혼자만의 두뇌로 미로를 타파해 가야 하는 순간들도 있다.
누군가 사고를 치기엔 퍽 정적인 곳이란 얘기다.
그간은 그래 왔다.
흑마법사가 나타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윤하을 역시 나와 비슷한 가정을 한 것 같았다.
“한시하의 말이 맞다면, 막아야 한다고 나도… 생각하긴 해. 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윤하을은 혼자서라도 뭔가 해 보려 했던 모양이었다.
내 말이 그 결심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미래를 보기에 늘 앞서 나가려는 윤하을을 붙잡았다.
“같이 하면 되잖아.”
* * *
같은 시각, 나탈리는 오들오들 떨면서 캄캄한 복도를 내려가는 중이었다.
원래대로라면 허가 받은 학생 외에 기숙사 밖으로 나가면 안 되는 시각.
“으으, 으슬으슬하다….”
나탈리는 중얼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나탈리는 방학 특강을 듣는 중이었는데, 당장 내일까지 해야 할 과제를 동아리실에 두고 왔다.
오고 싶지 않았지만 올 수밖에 없었다.
“그걸 왜 두고 와서!”
나탈리는 후회하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새벽 시간만 아니었으면 친구를 데리고 왔을 터인데, 혼자 와서인지 가뜩이나 긴 복도가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새벽의 아카데미는 무섭고… 또 춥다.
옷을 두껍게 껴입은 것도 아니었기에 온몸이 덜덜 떨렸다.
끼이익. 끼익.
발을 내디딜 때마다 나무계단이 거슬릴 정도로 삐걱거렸다.
텅 빈 복도에서 그 소리까지 듣고 있으니 여간 살 딸리는 것이 아니다.
나탈리는 숨을 들이켜며 발소리를 낮췄다.
“너무 무서운 걸요.”
그때였다.
저 멀리서 환한 불빛이 보였다.
나탈리가 가려는 동아리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
“이 시간에?”
나탈리는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두고 온 과제를 찾기 위해서는 저 동아리실을 지나쳐 가야 하는데… 지금이 새벽 시간인 게 영 걸린다.
“어. 지하 동방에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소문이 있던데….”
꿀꺽.
나탈리는 달갑지 않은 소문을 떠올리며 조심스레 다가갔다.
여기까지 오는 것도 힘들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갈 수도 없다.
아랫입술을 꽉 깨문 나탈리가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후하… 후… 제발….”
귀신이든 사람이든 마주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소리를 죽이며 걸어가던 나탈리의 눈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동아리실의 틈새 창문으로 보이는 얼굴.
여러 사람이 모여 있는 듯했지만, 좁은 창문에는 한 사람의 얼굴만 보일 뿐이었다.
“한시하?”
예상 밖의 얼굴에 나탈리는 그대로 멈춰 섰다.
* * *
대체 이 시간에 뭘 하고 있는 거지?
원래대로라면 빠르게 동아리실을 지나쳐 갔을 나탈리였다.
이 시간에 여기에 숨어 있는 사람이라면 그건 그거대로 수상하고, 사람이 아니라면 더 무섭다.
하지만, 그 상대가 한시하라면 호기심이 일었다.
나탈리는 문틈으로 귀를 가져다 댔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거지?”
방음이 되긴 하는 모양인지 또렷이 들리진 않았으나, 나탈리는 곧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심각하게 가라앉은 한시하의 목소리였다.
-술?
-술이라면… 미XX의 술 말하는 거지?
나탈리는 두 눈을 끔뻑였다.
이한의 알고리즘 능력.
특정 음성을 포착해 전혀 다른 말로 변환해 내는 사운드 알고리즘은 ‘학술회’라는 단어에서 ‘술’만 추출해 냈다.
그걸 바탕으로 아예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변환해 낸다.
보안에는 확실한, 미친 알고리즘.
문제는 나탈리가 그걸 알 리가 없었다.
“술… 얘기를 왜 이 시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선배와 폭탄주 내기를 할 때부터.
아니, 대회용 물약에 술을 탈 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새벽에 동아리실에서 몰래 술판을 벌일 정도로 술에 진심일 줄은 몰랐다.
잘 보이진 않지만,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과 과한 제스처까지.
나탈리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취했구나!’
붉게 달아오른 한시하의 얼굴.
조명 때문인지는 몰라도… 어쩐지 취한 것 같았다.
한층 더 비장해진 목소리가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
-누가 죽을 수도 있고! XX를 뺏길 수도 있어.
“한 명 갈(?) 때까지 마시는구나!”
이거 혹시라도 가면 기다렸다가 데리고 나와야 하나.
나탈리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돌리기 시작했다.
-뺏기는 게 아니라, 우리가 뺏을 거야.
-빼돌릴 수 있다면, 반드시 그렇게 할 거야.
몰래 빼돌려서라도 마시겠다는 일념은 확실히 알았다.
거기에 더해, 잘못된 알고리즘은 그 와중에도 빛을 발하고 있었다.
변환된 단어가 만들어 내는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들.
-무조건 마셔야지.
-어… 당연히 마셔야지.
-뭔 일이 나도 마셔야지!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들이 저들끼리 진지하게 대화하고 있다.
나탈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듣다가 이내 어지러워졌다.
그 순간이었다.
창문 너머로 한시하의 얼굴이 다시 비쳤다.
덥썩.
한시하는 중앙에 서서 몹시도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누군가를 붙들었다.
안타까움과 걱정스러움. 온갖 미묘한 감정들이 한데 뒤섞인 한시하의 표정.
그의 입에서 나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같이 마시면 되잖아.
다 알겠는데.
저… 저 얘기를 저렇게 진지하게 한다고?
나탈리는 과제만 찾아서 다시 돌아나가기로 결심했다.
아무래도 한시하가 좀….
“취한 것 같아요.”
미친 것 같았다.
* * *
다음 날, 나탈리는 한참을 고민했다.
한시하가 학칙을 위반하고 새벽에 술판을 벌였다.
그 점은 충분히 지적받을 건이긴 했으나, 나탈리는 그것을 지적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니, 그보다 나탈리의 걱정은 따로 있었다.
조명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으나 지나치게 심각해 보이던 그 얼굴.
어제는 그저 취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어째… 아닌 것 같았다.
“너무 심각해 보였는데.”
나탈리가 본 한시하는 감정적이면서도 상당히 이성적인 편이었다. 최소한 자제력을 잃을 수준으로 마실 사람은 아니었다.
새벽 시간까지 그리도 심각한 얼굴로 술을 마시고 있었던 거라면….
한시하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나탈리는 고민 끝에 이한을 찾아갔다.
“어, 나탈리. 무슨 일이야?”
한시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어떤 걱정이 있는지.
설령 있다 해도 내색할 성격은 아니었기에.
차마 대놓고 물어볼 용기는 없어서 조언을 구하고자 했다.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이한은 한시하와도 가까이 지내는 편이었다.
오히려 나탈리 자신보다도 요새는 더 붙어 다니는 듯했다. 그러니 자신은 모르더라도 이한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혹시 한시하… 한테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요?”
“무슨 일?”
이한은 뜻밖의 물음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제 늦은 시각에 결사단 회의를 끝냈다. 지금 이 시각이면 퍼질러 자고 있을 터인데.
“걱정? 그런 게 있나?”
나탈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이한 역시 모르고 있는 듯했다.
“제 짐작이긴 한데… 저도 잘 모르겠어서요!”
“나도 딱히 감이 잡히는 건 없는데. 물어봐 줘?”
이한은 책을 덮으며 고개를 들었다.
나탈리의 생각보다 속 시원한 대답.
“네!”
“따라와. 물어보러 가자.”
이한은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나른한 오후 시간.
어제 밤을 새서인지 여간 피곤한 게 아니다.
“아, 죽을 거 같네.”
열다섯의 체력이라 버티고 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숨을 들이마셨다.
모두들 식사를 하러 간 시간.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아공간 가방 안에서 동글이를 꺼냈다.
바실의 양악수술로 다시 태어난 공허의 큐브.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돌멩이에 불과하지만, 공간을 창조할 수 있다.
막대한 양의 마력이 요구되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 대가도 현저히 적은 편이었다.
그래서, 감각의 큐브는 차치하고서라도 이 녀석은 제대로 길들여 보고 싶었다.
[친화도 3.7퍼센트]하지만 그런 내 바람과는 달리 생각처럼 잘되지가 않았다.
타고난 친화도로도 쉽게 길들여지지 않는….
어렵다, 너란 돌멩이.
“시발, 어떡하지.”
이 속도로는 실전에 써먹기 전에 큐브를 뺏길 것 같은데.
“뭘 해야 빨리 오를까….”
친화도의 시스템상 말을 걸거나, 이름을 불러 줘야 더 빠르게 오르는 것 같긴 하던데.
기숙사에서도 그렇고, 길거리에서도 돌멩이한테 이름 불러 주고 있으면 웬 미친놈처럼 볼 게 뻔해서 자제하던 참이었다.
“음.”
힐끗.
뒤를 돌아봤다.
다들 밥 먹으러 갈 시간이니까 누가 올 일은 없을 듯하고.
“후우… 다시 제대로 해 본다.”
바실과 클로스티에게 그러했듯.
동글이에게도 애정을 쏟아줘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주섬주섬.
시장에서 사 온 천 쪼가리를 집어 들었다.
“동글아.”
“야, 동글아. 대답 좀 해 봐라.”
이름 부르기는 국룰.
천 쪼가리를 옷 삼아 둘러준다.
바실이야 옷 입혀 놓으면 태워 버리지만 돌멩이는 괜찮지 않을까.
돌멩이가 드레스 입은 돌멩이가 되었다.
자기 세뇌를 해 본다.
공허의 큐브.
공간을 창조하는 엄청난 능력을 지닌 이것은, 그저 친화도를 올려야 할 돌멩이일 뿐이다.
“동글아… 손.”
동글이는 손이 없다.
일단 있다고 가정해 보자.
“동글이, 앉아.”
동글이는 발이 없다.
앉을 수 없지만 앉을 수 있을 거라 가정하자.
“동글… 하 시발.”
현타가 오는 건 어쩔 수 없다.
테이머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여느 테이머가 그렇듯 간지 나는 몬스터들 줄줄이 끌고 다닐 줄 알았건만.
사각이랑 동글이, 이딴 돌멩이나 길들이는 중이다.
하지만,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는 것도 테이머의 몫.
“옳지, 잘하네. 어우야, 잘했어요.”
칭찬과 보상은 필수다.
음.
음.
[친화도 3.8퍼센트]정체되어 있던 친화도가 오르기 시작한다.
이 페이스대로만 가면 올해 안에 큐브를 길들일 수 있을 것 같은데.
제법 희망적이다.
수치스러움을 감내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을.
내 목소리는 조금 더 과감해졌다.
비록 상대가 돌멩이일지라도 신뢰를 줘야 한다.
할 수 있다.
[친화도 3.9퍼센트] [친화도 4.0퍼센트]몇십 분가량 정신을 집중한 결과.
그것이 성과로 나타나는 중이다.
“와아… 이게 되냐?”
흐흐흐.
만족스러움에 웃음이 절로 새어 나온다.
정신은 조금 나갈 것 같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거 아니냐.
“하하하핳! 동글아!”
“옳지, 옳지. 으으응, 잘하네!”
“이야, 금방 오르네. 동글이, 손!”
쓰담쓰담.
동글이와 악수를 나누며 자축의 분위기에 취해 있을 때였다.
“한시하…?”
응?
으으응?
싸늘한 시선이 뒤편에서 느껴졌다.
“한시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