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6)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36화(136/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36화
뭐 하는 인간이냐.
한시혁은 한시하의 날이 선 한마디에 피식 웃었다.
“그냥 예언자지.”
“요새 예언자들은 사람 머리통을 깨부수나 봐. 상당히 과격한 방식으로 별의 뜻을 읽어 대네.”
“….”
“신의 뜻을 읽다가 신 곁으로 보내 버리는 거야?”
한시하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비아냥댔지만, 한시혁은 그 어떤 말로 추궁하든 입을 열 생각이 없었다.
아첸트의 고유능력을 무력화시키고 엄청난 괴력으로 그를 단숨에 제압한 힘.
한시하는 그 출처를 궁금해할 수밖에 없겠지만.
알아서 좋을 것 없다.
한시혁은 싸늘하게 읊조렸다.
“어린애들은 모르는 게 나아.”
“…어이가 없네.”
한시하가 인상을 찌푸리며 불쾌감을 드러냈지만, 한시혁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
“알면 다치는 게 있는 법이다.”
한시하는 눈치가 빠르다.
분명 제 힘에서 무언가를 읽어 낸 듯했지만, 그뿐이다.
자세히 알아챌 수는 없었을 것이다.
감정적인 말을 뱉어 내는 것만 해도 그랬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대진 않았길 빈다.”
“지금 나한테 훈수를 두는….”
“위험한 짓거리면 뒤에서 하고 다니지 마. 나중에 피곤하게 만들지 말고.”
한시하의 말은 거기까지였다.
“잠깐만….”
쾅.
어차피 한시혁이 입을 열지 않으리라는 걸 예감한 한시하는 냅다 문을 닫아 버렸다.
들어올 땐 노크 없이, 나갈 때는 인사 없이.
“후우, 저 싸가지.”
동생만 아니었어도 그냥 죽여 버렸을 것을.
문이 닫히자마자 한시혁은 강박적으로 유지하고 있던 꼿꼿한 자세를 풀었다.
그러고는 한시하가 했던 말을 천천히 곱씹었다.
“손대지 말아야 할 것에… 손대지 않았길 빈다고….”
한시혁은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미 늦은 것 같은데.”
한시혁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동시에, 역겨운 감각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쿨럭.
마력의 과부하를 버텨 내지 못한 몸이 이내 피를 토해 냈다.
아첸트를 한 방에 죽이기 위해 무리했던 후폭풍이 이제야 몰려왔다.
한시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었다.
“으.”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평온해 보이던 얼굴이 뒤늦게 일그러졌다.
마력을 타고나지 못해 줄곧 무시 받아 온 서자의 인생.
대륙 최고의 예언자가 되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강함을 탐했다.
그리고, 마침내 얻어 냈다.
하지만, 지금 그 능력은 자신을 좀먹고 있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조금씩 이 능력에 잠식되어 가는 듯한 느낌이지만.
한시혁은 피가 묻은 손수건을 던지고선 다시 서류를 펼쳤다.
“카타블람 미제사건….”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았다.
* * *
같은 시각, 솔리아는 1층 복도의 계단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한겨울이라 차디찬 계단은 혼자 앉아 있기엔 궁상맞아 보이는 위치였지만, 그걸 자각하기엔 너무 깊은 생각에 빠져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솔리아의 머릿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솔리아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의 방.
아첸트의 공간 왜곡으로 인해 솔리아도 그곳에 떨어졌었다.
솔리아가 받은 기억 소포는 한시하의 것.
솔리아 역시 그것을 열어젖혔다.
헌데, 아무것도 없었다.
말 그대로 ‘무의 공간’이었다.
그녀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이 없을 수가 있나?
완전한 무의 상태일 수가 있나?
솔리아는 온통 새하얀 빛무리만 가득한 공허에서 꽤 긴 시간을 갇혀 있었다.
“이상해… 이상해.”
원래 다 이런 건가 싶어서 시모어에게도 물어봤다.
‘너 혹시 내 기억… 봤니?’
솔리아의 소포를 열었던 시모어.
‘허… 너네 집 쫄딱 망했더라?’
‘괜찮아? 요새는 좀 살 만해?’
‘생각보다 심각한 상태던데. 어떡하냐.’
솔리아는 시모어의 직설적인 말에 한 대 후려쳐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좋은 정보는 얻었다.
기억 소포를 열면 당사자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게 맞다.
그렇게 생각하면 더 이상하다.
“한시하는 왜 기억이 없었던 거지?”
그것이 줄곧 의문이었기에, 솔리아는 벽에 기대 중얼거렸다.
“기억 상실… 증인가?”
비련의 주인공 같은 설정이 몇몇 떠올랐으나 너무 간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줄곧 고민하던 순간에,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다.
“단팥빵… 단팥빵… 신상… 단팥빵….”
생글거리며 매점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윤하을.
누구보다 이런 쪽엔 전문이다.
“윤하을!”
솔리아는 다급히 윤하을을 붙들었다.
“응? 솔리아?”
* * *
같은 결사대에 있긴 하지만 사적으로는 그리 친하지 않은 사이.
하지만 솔리아에게는 궁금한 것이 있었고, 윤하을은 들어 줄 시간이 충분했다.
윤하을은 솔리아의 얘기를 들으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니까 기억의 방에 들어갔는데… 그 사람의 기억이 안 보이는 경우가 뭐냐는 거지?”
“응, 그렇지.”
솔리아는 그게 한시하라고는 얘기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윤하을은 잠시 고민하다가 별생각 없이 말을 뱉었다.
“이세계 사람인가 보지.”
“응?”
“다른 세상 사람이면 과거의 기억이 안 보일 수 있지.”
솔리아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이세계 사람이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싶어서였다.
솔리아는 참지 못하고 재차 물었다.
“그게 뭔데?”
“글쎄. 귀신같은 거…?”
허업.
솔리아는 저도 모르게 제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곤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확실한 거야?”
“확실하진 않지. 근데 그런 경우 외엔… 딱히 떠오르지 않는걸? 평범한 인간이라면 정신계 마법에 면역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억까지 안 보이진 않아!”
윤하을은 싱긋 웃으며 솔리아를 돌아보았다.
귀신이라니.
솔리아가 받아들이기엔 다소 충격적인 주제였다.
솔리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어… 어… 그러니까… 귀신이면 안 만져지지 않아? 만질 수 있으면 귀신이 아닌 게 아닐까…?”
“아니, 인간의 몸을 빌리는 경우도 있어.”
솔리아는 전혀 모르는 영적인 영역.
윤하을은 아는 얘기가 나오자 두 눈을 반짝이며 설명을 이었다.
“그런 귀신들은 음… 그러니까 겉으로 봤을 때는 그냥 사람 같아 보일 수도 있는 거지. 구분 못해.”
“그… 그럴 수가 있구나… 구분하는 방법은 아예 없는 거야…?”
솔리아의 말에 윤하을은 턱을 쓸어내렸다.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 당연히 있긴 했다.
윤하을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귀신은 심장이 뛰지 않아. 인간의 몸을 빌려도 그건 마찬가지야. 겉껍데기를 뺏어 쓰는 느낌이라서.”
“으응.”
“근데 사실 그건 확인하기가 어렵잖아.”
“그치.”
“그렇다면… 팥.”
“팥…?”
“남부 지방에서 귀신을 쫓을 때 쓰는 요리인데. 귀신이 팥죽을 싫어한다고 들었어.”
솔리아에게는 그 이름조차 익숙하지 않은 음식이었다.
“팥죽?”
“그리고 소금. 귀신 쫓을 때 소금도 뿌린다고 하더라고. 나도 이쪽이 전문은 아니라 자세히는 모르겠네.”
윤하을은 별의 뜻을 해석하는 예언가지, 직접 귀신을 쫓고 다니는 퇴마사가 아니다.
그 이상은 윤하을도 잘 몰랐기에 말끝을 흐렸다.
그때까지 넋이 나간 얼굴로 윤하을의 말을 듣고 있던 솔리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팥죽, 소금… 응… 알았어….”
“근데 너 어디 아파?”
“아니… 괜찮아.”
“갑자기 귀신 얘기는 왜 한 거고?”
“아니야. 진짜로 아무것도 아니야!”
“열도 나는 거 같은데….”
한시하가 이런 쪽은 잘 보던데.
윤하을은 두 눈을 굴리며 물었다.
“한시하 부를까?”
“안… 안 돼!”
“왜 안 돼?”
“한시하는! 절대 안 돼!”
“어… 어…? 솔리아! 너 왜 그러는데?”
“나 가 볼게!”
총총총.
솔리아는 계단에서 벌떡 일어나 내달렸다.
그런 그녀의 뒤로 윤하을의 해맑은 인사가 들려왔다.
“솔리아, 잘 가!”
솔리아는 창백해진 얼굴로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괜히 께름칙한 기억들이 떠오른다.
‘성격이 달라지긴 했는데.’
자신이 어릴 적부터 만났던 한시하와는 달라진 게 마음에 걸렸다.
솔리아는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멀쩡하게 생겼는데 귀신일 리가.
솔리아는 저도 모르게 파르르 떨었다.
어쩐지 추운 것 같다.
“으으….”
그래도 확인해 볼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다.
“팥죽, 먹여 볼까?”
* * *
바실과 밤늦게까지 훈련장에 있었다.
생각할 것들이 너무 많아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런 잡생각들을 몰아내기 위해 몸을 굴렸다.
“허억… 헉. 뒤지겠네.”
대충 씻고 들어가서 잠이나 퍼질러 잘 생각이었다.
그런데.
“네가… 나한테 요리를 해 준다고?”
“으, 으응.”
솔리아가 난데없이 나를 부른 것이다.
그것도 단둘이 식사를 하잔다.
솔리아와 그래 본 적이 없어서 사뭇 당황했다. 이한과는 친하게 지내면서도 나와는 미묘하게 거리를 두던 솔리아였다.
난데없이 요리해 주겠다고 부르는 거, 좀 이상하긴 한데.
해 준다니 따라왔다.
“배고프긴 해.”
“그렇지?”
2층에는 학생들을 위한 요리 실습실이 있었다.
대부분 기숙사식을 먹느라 직접 만들어 먹는 학생들은 없었기에 당연히 텅 비어 있었다.
솔리아는 우물쭈물한 자세로 나를 돌아보았다.
“요리 처음이긴 한데… 괜찮지?”
“응. 주는 대로 잘 먹어. 근데 너 왜 그러고 서 있냐.”
덜덜덜.
조용조용한 성격이긴 해도 남 눈치 보는 애는 아니다.
오히려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애가 왠지 내 눈치를 잔뜩 살피며 떨고 있다.
“추… 추워서?”
“옷 입을래?”
“아니야, 괜찮아! 거기 있어!”
솔리아는 내가 일어나려 하니까 강제로 앉혔다.
얘, 오늘 진짜 뭐 잘못 먹은 건가.
어째 상태가 조금 이상하다.
나는 의자에 턱을 괴고 앉아 솔리아를 돌아보았다.
정말 뭔가를 준비해 오긴 했는지 잔뜩 분주하다.
나한테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할 이유가 없는데.
“갑자기 뭐 때문에 그러는 거….”
우당탕탕.
어라, 방금 뭐 박살 난 거 같은데.
“괜찮아?”
“괜찮아!”
“안 괜찮아 보여!”
쨍그랑!
진짜 안 괜찮아 보인다.
못 참겠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릇을 깨뜨린 솔리아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다.
“뭐 만들길래 이렇게 주방을 다 깨부수는 건데?”
“만… 만들긴 미리 만들어 놨는데 담다가….”
솔리아의 뒤편에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훈련할 동안 만들어 놓고 있었던 듯한데.
“그… 너 혹시….”
솔리아가 먼저 입을 뗐다.
“팥죽 좋아해?”
“아니?”
대답은 즉각적으로 튀어나왔다.
나, 단 거 싫어하는데.
“뭐?”
“팥죽 별로 안 좋아하긴 해.”
“히이이이이익!”
“왜 히이이익이야?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야?”
아니, 놀랄 건 나지.
슬카데미의 세계관은 대체 어떻게 되어먹었길래 솔리아가 팥죽을 끓이고 있는 거냐?
이거 맞아?
뭔가 이상한데?
“팥… 팥죽… 싫… 싫어한다고?”
“줘 봐, 내가 퍼 갈 테니까.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힘들게 만들었는데 먹어야지.”
솔리아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국자를 내게 넘겼다.
나는 멀쩡해 보이는 그릇을 하나 집고선 팥죽을 담았다.
방금 전까지 끓이고 있었는지 김이 확 하고 올라왔다.
이거 진짜 내가 아는 그 팥죽 맞는 거 같은데.
솔리아는 내가 팥죽을 담고서 식탁 앞에 앉을 때까지 나를 쭉 응시하고 있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길.
“너는… 안 먹어?”
“너 먹는 거 볼 거야. 어서 먹어.”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으로 챙겨 줄 줄은 몰라서 감동받았다.
끓이기도 힘들었을 텐데.
“먹어 본다?”
“으으응.”
후우-.
팥죽을 살짝 식히고, 한 숟가락을 떠서 입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솔리아의 빤한 시선은 나를 향해 있었다.
뜨거운 팥죽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그리고.
이거 뭐냐.
“우욱.”
팥에 물 탄 맛.
팥죽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선사하는 맛.
“야, 잠깐만. 너 뭘 만든… 커억!”
나는 그대로 휴지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