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1)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41화(141/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41화
쌀쌀한 날씨.
어설프게 지어진 건물 틈 사이로 찬바람이 그대로 들어왔다.
분명 실내인데 실내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어느덧 익숙해졌다.
나탈리는 조급했다.
원래는 오지 않아도 될 곳을 제 발로 찾아다니는 건 그 이유에서였다.
한시하도, 아델라도, 윤하을도. 저마다 바쁘게 제 일들을 하고 있었다.
학술회 참석에, 연구실까지 다니면서. 다들 뭔가를 하는데 자신만 하는 게 없어서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나탈리는 학술회에 참여할 성적이 안됐고.
한시혁의 사무보조는 지원했으나 떨어졌다.
그래서 뭐라도 악착같이 했다.
한시하의 말대로 바보 같은 조건이라는 걸 알면서도 일단 덤볐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는 것이, 훨씬 마음이 편했다.
나탈리의 주위에는 아르델의 역사에 남을 인재들밖에 없었다.
아무리 뛰어도 그들에겐 닿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에 나탈리는 무리했다.
내색하지 않았지만 지쳤다.
그럼에도 이것조차 안 하면.
정말 쓸모없는 마법사가 되어 버릴까 봐.
나탈리는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나탈리.”
한시하가 자신을 불렀다.
나탈리는 저도 모르게 지었던 굳은 표정을 풀었다.
“네!”
결국 한시하도 생명수 분할 공정에 지원했다.
오늘부터는 한시하도 같이 일하게 될 것이다.
애초에 까다로운 조건 없이 마법과 학생이면 대부분 받는 터라 오늘부터 바로 현장에 투입될 수 있었다.
그만큼 힘든 일이라 대부분 며칠 하고 도망가는 듯싶지만.
한시하는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컨베이어 벨트를 돌아보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상하차 끌려온 기분인데, 이거.”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비슷한 거 해 본 적 있어요?”
“아니, 그럴 리가.”
한시하는 탈탈탈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생수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어쩌다 보니 쥐 때려잡는 이미지가 되어서 그렇지, 나름 곱게 자랐거든?”
“아! 그러네요!”
나탈리는 한시하가 카스티카 가문 출신이라는 걸 가끔 잊곤 했다.
평민들에게도 스스럼없이 대하는 성격이라 그렇지, 아카데미에 들어오기 전까지 손 하나 까닥 안 하고 자랐을 터인데.
나탈리는 갑자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생명수 분할 공정은 일이 빡세기로 유명한데, 명문 귀족 출신의 한시하가 버틸 수 있을까?
물을 조종하는 나탈리는 생명수 펌프에서 물을 끌어와 통에 나누어 담는 일을 했다.
그 자체로도 마력을 많이 요하는 일이긴 하지만, 물을 다룰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지 차이다.
아마 한시하는 직접 생명수를 끌어오거나 나르는 담당을 하게 될 것이다.
“어… 저는 물을 다룰 수 있어서 조금 수월한데… 괜찮겠어요?”
“괜찮아. 나는 다 잘해.”
“역시!”
나탈리는 한시하의 자신감에 감탄했다.
하기야 더 힘들다는 교수 연구실도 드나드는 마법과의 인재가 물 나르는 걸 힘들어할 리가 없다.
이한은 그런 걸 한 손으로도 들고 다닌다는 소리를 들었다. 비슷한 성적의 한시하도 그럴 것이 분명했다.
나탈리는 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한 손으로 드실 건가요?”
“아니? 굳이?”
한시하는 피식 웃으며 어디서 주워들은 말을 읊었다.
“기초 염동으로 옮기면 되는 거 아냐?”
기초 마법이야 스크롤 덕에 익히고 있으니 염동으로 들어 옮기면 편하지 않냐는 지극히 마법적인 발상.
하지만, 나탈리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염동으로 들어 올리기엔 생각보다 많이 무거울 텐데…?”
“뜨으으앗!”
나탈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생명수가 가득찬 통을 염동으로 들어 올리려 했던 한시하는 당황했다.
“어라? 이, 이거 왜 안 들리냐?”
땅 속에 파묻혀 있는 돌도 슥슥 들어 올리는 아델라라면 모를까.
애초에 염동이 주 전공이 아닌 한시하가 쉽사리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나탈리는 뇌정지가 온 한시하를 향해 외쳤다.
“저도 못해요! 그, 그거 염동으로 드는 거 아니에요!”
“뭐? 이거 아니야?”
“네, 다들 그렇게는 못하던데요?”
“어… 어….”
나탈리의 말에 방금 전까지 여유를 부리고 있던 한시하의 얼굴이 굳었다.
잠깐만.
이거 마법으로 못 든다는 건.
“시발, 설마 내가 직접 드는 거야?”
* * *
상하차 같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상하차였다.
“으억!”
나탈리가 생명수를 끌어 올려 나누어 담는 작업을 하는 동안, 나는 바들거리며 생수통을 옮겨야 했다.
더 최악인 건 내가 아는 생수통보다도 크다는 점이었다.
양손으로 안아도 버거울 정도로 큰 사이즈에 당황했다.
죽… 죽여 줘.
덜덜덜.
“어억!”
하나를 옮기기가 무섭게 생명수로 가득찬 통이 하나 더 굴러 온다.
나탈리의 작업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고, 그 말인즉슨 굴러 오는 생수통의 양도 많았다는 소리다.
열 받으면 뒤엎어 버리려 왔는데.
어째 내 꾀에 내가 당한 느낌이다.
“한시하! 괜찮아요?”
“으응. 아마도.”
“한시하…!”
“시발, 유서는 쓰고 올 걸 그랬다.”
비틀비틀.
나탈리가 왜 좀비 꼴이 되어 돌아다녔는지 이제야 알았다.
심지어 이 넓은 공장에서 사람도 얼마 안 써!
구박은 겁나 해!
과로사로 또 뒈지면 책임져 줄 거야?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책임자가 혀를 차며 핀잔을 던졌다.
“학생, 이거! 이거 빨리 옮겨야 할 거 아니여!”
“잠, 잠깐만요.”
“새파랗게 어린놈이 뭐 그리 빠딱빠딱 들지를 못해!”
마법과의 인재가 생수통을 ‘직접’ 들어서 옮기고 있다.
되게 없어 보이는 느낌인데 이거 맞는지 모르겠다.
어지럽다.
“허억… 헉.”
꼴랑 일당 만 원 주면서 이 정도로 부려 먹는다는 생각에 두 다리가 파르르 떨렸다.
힘들어서 떨린 거 아니다.
열 받아서 떨린 거다.
진짜로.
“아.”
쉴 틈도 없이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간다.
숨도 제대로 못 돌렸지만 하는 수 없이 탈탈탈 굴러 온 생수통을 들었다.
“뜨아아아….”
옮기는 건 그래도 여러 명이지만 분할 공정은 나탈리 단독으로 진행한다.
그 편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지만 갈려 나가는 건 나탈리도 마찬가지다.
물을 조종하는 건 상당한 마력을 요하는 일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여느 마력 운용이 그러하듯 섬세한 조작과 컨트롤이 있어야 물을 나눠 담는 기초적인 작업이 가능해진다.
쉽게 말해서 이렇게 몇 시간 쉼 없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한 곳만 뚫어져라 노려보면서 몇 시간 내내 정신을 쏟아붓는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않은가.
나탈리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잠시 기대 쉬고 있는 나를 돌아보았다.
“괜히 데려온 거 같은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반 죽어 가는 얼굴로 그런 거 물어보지 말아줄래?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야.”
“….”
“내가 던전에 가서 몬스터도 막 때려잡는데, 고작 이거 쫌 드는 게 힘들 줄 알어?”
“되게 힘들어 보이던데요.”
“…잘못 봤겠지.”
나탈리는 나를 걱정하고, 나는 나탈리를 걱정한다.
탈진 상태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혹사시키는 건 건강에 결코 좋지 않다.
나는 혀를 찼다.
“혹시나 해서 말해 두는데, 일은 너처럼 하는 게 아니야.”
“네?”
나탈리는 이런 면에서 아직 서툴렀다.
순두부처럼 착해서 어딜 가서도 손해만 볼 타입이다.
나탈리는 세상을 교활하게 사는 법을 조금도 몰랐다.
나는 나탈리를 돌아보며 목소리를 낮췄다.
“사람이 일을 잘하면 어떻게 될 거 같냐?”
“유능하면… 좋은 거 아닐까요!”
“할 일이 많아져.”
“아?”
“다 너한테 시킨다고.”
“…!”
나탈리는 유능한 마법사다.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지만, 원래라면 세 사람이 할 일을 여기서 혼자 다 한다.
그래 놓고 일당은 똑같이 주는 책임자 놈이 진짜 순 날강도 새끼인데.
어쨌든.
나탈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적당히, 1인분만 해. 네가 2인분 일 한다고 일당 2인분 치 안 주더라.”
“헉.”
“그리고… 빨리 뒤져.”
과로사로 죽은 인간의 조언이니 신뢰 있게 받아들여도 좋다.
나탈리는 내 말에 충격이라도 받은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그러게요?”
“내 말 맞지?”
어, 그리고 네가 너무 열심히 하면.
내가 옮겨야 할 것도 많아져!
탈탈탈.
저 편에서 다시 굴러 오기 시작하는 생수통을 돌아보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업보 청산하러 갈 테니까, 너무 무리하진 마라.”
“네!”
* * *
사실 나탈리를 따라온 이유는 하나였다.
돈이 궁해서는 당연히 아니고, 그냥 건수 찾으러 온 거다.
아르델 제국 부속 공장의 부정고용과 횡령 건.
날강도 새끼들도 족칠 겸, 겸사겸사 한시혁이 새로이 들어간 수사의 보조 역할을 하러 왔다.
이렇게 개고생하는 건 내 계획에 없었지만 무튼.
열심히 일하는 척을 하면서 중간중간 작업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결정적인 증언을 따내는 데에도 성공했다.
이런 곳에는 구린 것이 한두 개가 아닌 법이다.
“여기 일당은 제대로 줘요?”
“일당?”
옆자리의 작업자에게 운을 살짝 띄우자, 망설임 없이 말이 줄줄 흘러나왔다.
허구한 날 학생들을 쥐 잡듯이 잡는 책임자에, 그리 좋지 않은 근무환경.
척 봐도 쌓인 게 많아 보였다.
“학생이 오늘 들어와서 잘 모르는데, 떼먹기도 잘 떼먹지.”
“떼먹어요?”
“특히 학생 같이 딱 봐도 어려 보이는 애들은 만만하니까. 지난 달이었나, 어떤 애들은 절반도 못 받았지.”
꼴랑 일당 만 원 주는 걸 떼먹기도 한단다.
이제는 기가 막힌 걸 넘어 말문이 막힐 지경이었다.
“모르기는 몰라도 남는 돈을 빼돌린다는 소리도 있어. 사무실에 들어가 보면 거기 금고에 금화가 그득히 쌓여 있다던데.”
“돈도 빼돌려요?”
“다들 아는데 쉬쉬하는 거지. 애초에 다 저 아는 사람들만 뽑아 놨잖나. 우리는 찍소리도 못해요. 책임자도 그렇고, 다들 어찌나 기세등등하던지.”
작업자는 생명수 공장에서 꽤 오래 일한 듯했다.
그만큼 아는 것도 많았다. 작업자는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덧붙였다.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공장주 바뀌면서 맛이 갔지. 지난번에는 생명수에 아예 물을 타라고 시켜 먹드라니깐. 그래야 양이 많이 나온다고. 지금 팔리는 거 다 물 탄 생명수야. 포션은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원.”
“엄청나네요.”
미성년자 착취에 부정고용, 횡령, 생명수 희석까지.
전적이 아주 화려해서 기가 막혔다.
그대로 돌아가서 한시혁에게 보고하면, 여기도 싹 엎어 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르델 제국 직속으로 수사가 들어갈 테니 발뺌할 수는 없을 것이다.
“거기 고만 떠들고, 빨리빨리 안 옮겨!”
삿대질과 함께 소리를 질러 대는 책임자를 노려보고는 다시 생수통을 들었다.
오늘까지만 나오고 관둔다.
수사 때문이라 해도 두 번 할 짓은 아니야.
끙끙.
어느덧 캄캄해진 창밖을 돌아보며 거친 숨을 들이쉬었다.
새벽 1시다.
이 때까지 부려 먹는 것도 기가 찰 노릇인데, 아직 일이 다 끝나지도 않았다.
혼자서 앞선 공정을 다 마무리한 나탈리는 지쳤는지 잠시 벽에 기대어 쉬고 있었다.
원래는 세 사람을 시켜서 생명수를 나눠 담았을 것을.
나탈리가 있으니 나탈리 한 명에게 다 시킨다.
나탈리가 멈추면, 다음 작업이 진행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잠시도 숨을 고를 수 없다.
“으… 으….”
나탈리는 피곤한 얼굴로 다시 자리에 앉았다.
너무 제 몸을 갈아 넣지 말라고 했는데, 하여간 내 말을 지지리도 안 듣는다.
착해서 반항조차 못하는 아이.
그게 나탈리라서 하는 수 없이 웃었다.
나는 조금 먼 거리에서 나탈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였다.
“나탈리!”
“네?”
인상이 구겨진 책임자가 신경질적으로 나탈리를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