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4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44화(14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44화
다음 날, 나탈리는 풀이 죽은 채 벤치에 앉아 있었다.
나탈리가 기분을 환기시키기 위해 찾는 인적 드문 벤치.
이 위치를 알고 있는 건 한시하도 마찬가지다.
“나탈리!”
이런 일이 터졌으니 나탈리의 기가 죽어 있을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납치를 당해도 낙관적이었던 애가 이상한 구석에선 자신감이 없는 편이다.
“한시하?”
한시하가 주머니에 손을 꽂고선 물었다. 나탈리가 왜 여기에 앉아 있었는지, 이미 전부 알고 있었다는 투였다.
“오늘은 왜 여기 있… 냐?”
“그냥… 어제 일이 생각 나서요!”
나탈리의 표정이 잠깐 어두워졌다.
어제 한시하가 생수통을 갈기는 걸 보면서 얼마나 통쾌했는지 몰랐다. 한편으론, 자신이 그러지 못한 게 부끄러웠다.
그러지 않으려 했는데, 또 바보같이 당하고 말았다.
나탈리는 한시하가 궁금했다.
언제 어디서든, 잃지 않는 그 자신감이 부러웠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부러웠다.
닮고 싶었다.
그래서 용기 내어 물었다.
“어떻게 하면 어제처럼 그렇게….”
“깽판을 잘 칠 수 있냐는 거지?”
“네?”
“다니는 곳마다 어쩜 그렇게 사고를 잘 치는지, 그게 궁금했던 거 아니야?”
“그거 아닌데요! 절대 아니에요!”
아니, 궁극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게 맞기도 했기에 격하게 두 손으로 부정하던 나탈리는 이내 손을 멈추고 눈을 끔뻑였다.
“이젠 가만히 당하지 않을래요.”
그리고, 결심한 듯 말을 덧붙였다.
“손해 보고 살기 싫어요.”
나탈리에겐 그 말을 꺼내는 것조차 엄청난 용기다.
한시하는 그런 나탈리를 어린애 보듯 흐뭇해하며 피식 웃었다.
“인생은 원래 손해 보면서 사는 건데?”
“그래요?”
고작 열여섯 또래 입에서 인생이 나오는 것이 우스울 법도 하지만, 나탈리는 웃지 않았다.
한시하는 이따금 아주 어른 같았기에 나탈리는 한시하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받는 게 꼭 좋은 건 아니잖냐.”
“나무가 너무 곧으면, 꺾여.”
“너는 누구도 널 다치게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부드러운 사람이고. 그게 나탈리다운 거잖아.”
나탈리답다.
나탈리는 그 말이 어렵다고 생각했지만, 왠지 알 것 같았다.
한시하는 씨익 웃으며 읊조리듯 말을 뱉었다.
“나탈리는 나탈리다울 때가 가장 어울려.”
“진짜요?”
아델라와 이한, 솔리아. 그런 괴물들만 다니는 아카데미에서 나탈리는 약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나탈리가 슬카데미에서 해냈던 것들을 한시하는 기억한다.
모두가 절망에 빠졌을 때.
분노와 투지만으로 힘겹게 하루하루를 버틸 때.
저 해맑음은 유일한 방패가 되어 함께 싸워줬다.
그것이 나탈리다움이기에, 한시하는 나탈리가 영원히 그런 모습으로 남았으면 하고 바랐다.
한시하는 나탈리를 똑바로 돌아보며 말을 뱉었다.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이상한 곳은 가지를 마.”
“생명수 분할 공정이요?”
“그게 어디가 되었든.”
솔직히 말해서 나탈리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탈리, 너 잘 살잖아.”
나탈리 윌로우.
어디에도 꿇리지 않을 정도로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는 윌로우 가문의 외동딸이자 훗날 아티팩트 상가를 통째로 물려받게 될 아이.
한시하는 인생의 진리를 뱉었다.
“돈이 많으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굳이 뭘 하려고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 할 수 있으면 더 좋은 거야.”
나탈리는 한시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멈칫했다.
한시하의 말대로 나탈리는 굳이 마탑에 들어갈 필요 없이 가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처지긴 했다.
그러니, 편히 아카데미를 졸업해도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란 현실적인 조언은 옳다.
그런데.
“한시하는 저보다 돈 많잖아요.”
“…!”
아티팩트 개발로 떼돈을 벌고 상가를 호령하는 윌로우 가문이라 할지라도.
개국공신이나 다름없는 피의 백작을 따라갈 수 있을 리 없다.
한태수는 카스티카 령뿐만 아니라 아르델 제국 곳곳에 영지를 지니고 있는 귀족이자, 휴양지로 섬 하나를 통째로 삼을 만한 부자다.
나탈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런데 맨날 바쁘고….”
“항상 일하고 있고….”
“한시하?”
한시하는 나탈리의 말에 넋이 나간 듯 멈춰 있었다.
“미친.”
이 곳에서 먹고 살려면 일단 아카데미를 졸업해야 하고, 마탑에 들어가야 하고. 실력 있는 테이머가 되어야 한다.
가문에 버려질 위기에 처했을 때야 그 말이 맞는 말이었지만, 지금처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이상 그럴 이유가 없다.
한태수의 유일한 적자이자, 카스티카 가문을 물려받을 후계자.
서열싸움을 할 다른 자식도 없으니 자연히 모든 것은 자신의 것이 될 것이다.
제 지위를 완전히 망각하고 있었다.
“그러네.”
한시하는 머리를 얻어맞은 듯 멍해졌다.
그것도 잠시.
본능에 충실한 미소가 새어 나왔다.
“하하하….”
“왜 그래요?”
“하하하….”
한시하는 감격에 찬 눈빛으로 두 손을 모았다.
“나 존나 부자였어….”
* * *
다음 날, 한시혁의 마법 수사관실은 평상시와 달리 퍽 고요했다.
“….”
숨 막힐 정도의 정적.
이상한 일이다.
한시하가 이곳에 현장 보조로 들어온 뒤에는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한시하는 한시혁을 열 받게 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이 있었고, 한시혁 역시 그런 걸 무시하고 넘어갈 성격이 아니었다.
그리하여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던 사무실이 조용해졌다.
아델라는 이질감에 복도를 내다보았다.
원래라면 출근해야 했을 한시하가 보이지 않는다.
아델라는 대걸레를 바닥에 내려 두고 서류를 넘기고 있는 한시혁에게 물었다.
“한시하는 오늘 어디 있어요?”
“집으로 갔다.”
딱딱한 목소리가 돌아왔다.
집?
돌아갈 곳이 없는 아델라 같은 경우가 아니라면 저마다 하루 이틀 시간을 내어 본가에 다녀올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시하의 휴가가 그리 이상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이유는 상당히 뜬금없었다.
“요양… 을 하겠다더군.”
“네에?”
아델라는 당황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그걸 말하는 한시혁의 두 눈이 살벌하게 빛났다. 그는 부들거리며 나직이 읊조렸다.
“요양이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인 와중에 요양을 하겠다며 본가에 돌아갔다.
“이 팔자 편한 소리가 대체 어디 있지?”
기왕 쉬는 김에 영원히 쉬게 만들어 줄 자신은 있다.
한시혁은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죽여 버릴까?”
“…!”
“역시 그때 죽여 버렸어야 했는데….”
한시혁은 이를 까득 악물었다.
* * *
같은 시각, 한시혁의 분노를 알 리 없는 한시하는 생글거리며 카스티카 령에 도착했다.
이 드넓은 영지를 찾은 것은 두 번째다.
이전에는 시모어를 끌고 찾아와 문전박대를 당할 뻔했으나, 이제는 다르다.
“어… 어! 도련님… 이다!”
저편에서 잔디를 가꾸던 하인 하나가 한시하를 발견하곤 외쳤다.
“어어어억!”
어릴 적의 한시하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정원사는 아예 사색이 되었다.
아르델 아카데미로 보내진 뒤, 가문에 버려질 위기까지 처했었던 유일의 후계자가 돌아왔다.
기쁘게 생각해야 할 일이었으나… 그렇지 않은 하인들이 더 많았다.
‘도련님! 그러시면… 그러시면 안 됩니다!’
‘내 땅인데? 죽고 싶냐?’
‘아닙니다아악!’
빠각.
정원사가 가꿔 놓은 꽃들을 뿌리째로 뽑고 도망 다니기 일쑤였으며.
‘돼지 머리 없어? 사람 머리도 상관없는데.’
‘사… 사, 사람 머리라니!’
‘네 머리도 되는데.’
‘어찌… 어찌 그리 흉악한 것을 구하려 하십니까!’
어느 정도 머리가 컸을 때에는 괴기한 주술을 배워 왔다며 하인들을 실험체로 사용했다.
도련님의 저주로 사람이 죽었다는 흉흉한 소문마저 돌았다.
그러니까.
어릴 적의 한시하는….
쉽게 말해서 이 구역의 미친놈이었다.
그런 도련님의 복귀란 두렵고도 공포스런 일이다.
하인들은 단체로 혼비백산이 되어 사라졌다.
“다들 어디 갔지?”
사사사삭.
방금 전까진 인기척이 느껴졌는데 돌아보니 아무도 없다.
한시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다 튀었네.”
있어도 성가셨을 테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오래 있을 것도 아니다.
한시하가 여길 찾은 이유는 하나였다.
한시하는 커다란 대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아버지?”
사실 효도하러 왔다.
* * *
“먹어라.”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휘황찬란한 비주얼의 만찬이 나왔다.
여기 차린 것만 해도 다 먹기 힘들어 보이는데 끝도 없이 새로운 요리가 채워진다.
“잘 먹겠습니다.”
“그래.”
특별히 내색하지는 않아도 극진한 대접인 건 틀림없었다.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 한 입에 넣었다.
최상급의 고기가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
아카데미에서 나오는 실험적인 기숙사식에 비할 수 없는 감동적인 맛. 아예 여기에 눌러앉고 싶어질 뻔했다.
오물오물.
스테이크를 잘 먹고 있는 나를 빤히 바라보던 한태수가 무심하게 랍스터 구이를 접시에 올려놓았다.
“이것도 먹어라.”
“감사합니다.”
“…이것도.”
온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말투.
그러면서도 한태수는 쉼 없이 내 접시 위에 먹을 걸 올려놓는다.
배불러 뒤질 거 같은데?
“먹어라.”
사육당하는 느낌이라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도 맛은 있어서 쉬지 않고 입에 들어간다.
한태수는 꾸준히 잘 먹고 있는 나를 응시하다가 흐뭇하게 말을 덧붙였다.
“잘 먹는군.”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물어 온다.
“아카데미에서는 밥이 잘 안 나오나?”
“솔직히… 맛이 영… 그렇긴 한데요. 그래도 살기 위해 먹긴 합니다.”
한태수는 내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잠시 고민하더니, 중얼거렸다.
“영양사를 바꿔야겠군.”
음?
아니… 네?
학교 영양사를 그렇게 당신 마음대로 바꿀 수가 있는 거였어?
“자라나는 애들한테 맛없는 걸 먹이다니. 깡그리 갈아엎어 버려야….”
“아니. 그렇게 할 필요까진!”
방금 한 사람 잘린 것 같은데.
눈앞의 이 인간이 아카데미의 최대 후원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한태수는 심각한 얼굴로 재차 물었다.
“그 영양사 이름이 뭐지?”
“….”
“전체를 잘라 버려야 하나?”
더 얘기했다가는 단체 실직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 화제를 돌렸다.
“사실, 저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뭐지?”
나탈리의 말대로 상당한 영지를 거느리고 있는 부자라는 건 알고 있다.
근데 그 땅덩어리가 얼마나 되는지는 모른단 말이지.
한태수의 눈치를 살피며 물었다.
“카스티카 령이 어디부터 어디까지죠?”
“저기 있다.”
한태수는 내 등 뒤를 가리켰고, 그곳에는 벽 한편을 꽉 채우고 있는 거대한 지도가 있었다.
아르델 제국 전체 지도였다.
한태수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붉은 색으로 표시된 영역이 카스티카 령이다.”
“붉은 색이요?”
미친.
제국 지도에서도 상당한 넓이를 차지하고 있는 부분.
저게 다 카스티카 령이라고?
“그래. 저게 다 카스티카 령이다.”
“혹시… 제 지분은….”
한태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다 네 거다.”
와.
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