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7화(1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7화
크릭은 바들바들 떨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모세의 기적처럼 내 주위로 학생들이 갈라졌다.
어서 데려가라는 거겠지.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됐다.
내가 생각해도 썩 괜찮은 구경거리였다.
내기의 조건을 알고 있는 녀석들에게는 더더욱.
“한시하가 이긴 거야?”
“미친.”
“크릭, 저 자식 뒈졌네. 그냥.”
이미 주사위가 던져진 내기에서 크릭이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하물며 내기의 조건도 제 입으로 뱉은 것이니.
크릭은 새파랗게 질린 입술로 악을 썼다.
“뭘 봐.”
“뭘 보냐고!”
“뭘… 보냐고….”
갈수록 목소리가 작아진다.
너를 보고 있지, 이 건방진 자식아.
내가 어덥테온한테 한 방 먹이려고 화살을 몇 번을 쐈는 줄 아냐. 아델라한테 몇 번을 처맞았는 줄 아냐.
바로 이 순간을 위해 그토록 굴렀다고!
나는 생글거리며 말문을 뗐다.
“1 더하기 1이 뭔지 아나, 평민?”
파르르.
크릭은 내 도발에 찍소리도 못하고 이를 악물었다.
“2… 가 아닐까.”
“11등이다. 알겠냐, 32등.”
거기에 비수를 꽂았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했으면 잘한다고. 이 빡대가리야.”
미친 가성비.
크릭의 얼굴이 붉어지다 못해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올랐다. 뒤편에서 킥킥 대는 웃음소리가 들렸다.
솔직히 어느 쪽이 이기든 지든 재밌는 광경이다.
기왕이면 여기 있는 대부분이 내가 지길 바랐겠지만.
어쨌든 이번 내기의 승자는 나였다.
이제는 처분을 기다릴 차례.
크릭은 울상이 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저렇게 기가 잔뜩 죽은 걸 보니까, 조금 불쌍해지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마음에 안드는 녀석인 건 맞다. 한시하의 입장에선 거기에 더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놈이었겠지.
그런데 나는 한시하가 아니고, 이 녀석은 나한테 시비를 턴 게 전부다.
죽일 정도로 괴롭힌 적은 없다. 개처럼 짖는 거, 그게 그렇게 보고 싶으면 좀 변태 새끼 아닌가.
그러니, 나는 다른 조건을 내걸어 보려 한다.
‘한시하. 네 마력은 전혀 정제되어 있지 않아. 네가 원하는 대로 마구잡이로 분출되는 느낌이 강해.’
마력의 양은 충분하지만 질이 떨어진다는 아델라의 지적.
나는 그 해답을 이미 알고 있었다. 대략 이 시기쯤, 장터에서 쓸 만한 물건을 경매에 올렸던 걸로 기억하는데.
마력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물약이 하나 있다.
지금은 돌팔이 취급을 받는 데다 아무도 쓰질 않지만, 일정 조건을 지킨다는 가정하에 해당 물약은 딱 한 번 영구적인 질을 향상시킨다.
문제는 꽤 비쌌다.
당장 기숙사를 떨어지면 밥 먹을 돈도 없는 내가 사기에는 말이다.
가문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마땅히 살 방법이 없었는데, 얼마 전에 좋은 생각이 났다.
그러기 위해선 인성은 글러먹었어도 발이 넓은 크릭의 도움이 필요했다.
추가로 더 물어볼 것도 있고.
“야.”
물론 겁은 줄 필요가 있었다.
다시는 못 기어오르게.
“준비됐으면 해 보든가.”
내 한마디에 우르르 모여든 학생들이 술렁거린다.
웃음소리가 점점 학생들 틈에 섞여든다. 인상을 찌푸린 몇몇 애들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이 상황을 그저 하나의 오락거리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야, 하라잖아.”
“재밌겠다, 죽이네.”
“어느 쪽이든 이기면 볼만할 거라고 했잖아.”
파비안은 재수 없는 얼굴을 들이밀고선 크릭에게 압박을 주었다.
크릭과 친하던 녀석들도 등을 돌린 채 말없이 이 광경을 방관하고 있었다. 녀석의 배경이 조금 더 고귀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
크릭은 덜덜 떨며 내 눈치를 살폈다. 이미 자존심은 내버린 듯 묘하게 결연한 눈빛이 돌았다.
어디선가 말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하라고, 크릭.”
부추기고, 즐거워하며, 죄책감 없이 동조한다.
나는 거기서 묘한 환멸을 느꼈다.
죽어도 못하겠다고 하면 피할 수는 있을 텐데.
위압에 짓눌려서.
크릭은 어쩔 수 없이 입을 뗀다.
방금, 정말 하려 했다.
빡.
나는 크릭의 뒤통수를 갈겼다.
“선 넘지 마.”
“어엉…?”
크릭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두 눈을 굴렸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타박하듯 말했다.
“개는 귀여워. 너처럼 안 생겼다고 이 새끼야.”
“뭐…?”
“방금 네가 하려던 짓, 개에 대한 모독이라고.”
“그, 그럼 하지 말라고?”
어쨌든 녀석에겐 잘된 일이다. 크릭 못지않게 넋이 나간 황족 녀석을 노려보며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새끼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 나중에 차차 조지도록 하자.
나는 크릭을 향해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여기서 짖고 싶은 거 아니면 따라와. 너 시켜먹을 거 하나 있으니까.”
따라가는 게 옳은 선택일지 고민하는 눈빛.
그것도 잠시.
크릭은 덜덜 떨면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 * *
아르델 아카데미의 외진 동아리방.
반지하에 위치하고 있는 터라 창틈으로 희미한 빛이 흘러들어온다.
크릭은 긴장한 기색으로 침을 삼키며 빈 자리에 앉았다. 오랫동안 방치되었는지 책상 위에선 희뿌연 먼지가 묻어 나왔다.
크릭은 저를 살벌하게 응시하고 있는 바실을 돌아본다.
“왜, 왜 여기까지 부른 건데.”
여기까지 자신을 끌고 온 거면 사람들의 눈을 피해서 본격적으로 손을 보고자 함이 아닐까.
나름의 추측을 마친 크릭은 이를 악문 채 한시하에게 물었다.
한시하는 성가시다는 듯 말을 뱉었다.
“배려해 준 건데.”
“뭐?”
“강의실에서 그렇게 짖고 싶었냐? 그런 거 좋아해?”
멍해진 크릭을 향해 한시하는 다시 다그치듯 물었다.
“다시 올라갈까?”
도리도리.
크릭은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한시하의 표정은 상당히 사악해 보였으므로.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는 다시 끌려갈 것 같은 싸늘한 눈빛.
크릭은 한시하의 눈치를 살피며 입을 뗐다.
“그럼… 대체 왜.”
한시하에게 설설 기는 거, 이전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시하가 파문될 거라는 소문이 돌았고, 실제로 그럴 만한 정황을 목격했다.
그 기세를 몰아 녀석을 싫어하던 놈들이 하나둘씩 달라붙었고, 크릭도 그중 하나였다.
한시하가 정말 가문에 버려진 게 아니라면.
자신은 죽을죄를 지었다.
그렇기에 한시하의 한마디는 크릭의 심장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내가 가문에서 버려졌다는 소문, 그건 네가 냈냐?”
“…나는 그냥 주워들은 건데.”
“아, 그러냐?”
“정, 정말이다.”
역시 이곳까지 저를 끌고 온 건 처음부터 이럴 셈이었나.
크릭은 살살 눈치를 보며 대답했다.
한시하는 질문을 바꿨다.
“내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
“그건 카, 카스티카 령에….”
이걸 왜 묻는 거냐.
답은 하나였다.
크릭의 팔다리가 불쌍해 보일 정도로 빠르게 떨리기 시작했다.
달달달.
이걸 굳이 자신에게 물어봄으로써 제 지위를 확인시킨다는 건….
크릭은 울먹거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무래도 카스티카 영지에 자신을 묻어 버리려는 게 분명했다.
“그러면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는 알고?”
“어… 어어?”
한태수 백작.
아르델 제국의 개국공신 중 하나이자, 흑마법사 대전쟁에서 그들을 몰살시킨 피의 백작.
모를 리가 없었다. 크릭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리다 못해 창백해졌다.
크릭은 작년 입학식에서 그를 봤다.
그는 아르델 아카데미의 후원자 자격으로 교내에 왔었으니.
먼 발치에서 본 한태수는 찌질하고 음침한 막내 아들과는 달리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이었다.
한시하가 교내에서 있었던 일을 전한다면 겨우 자신 따위는 쥐죽은 듯 사라져도 아무도 모를 터.
입 안이 바싹 말라 갔다.
그는 후회했다.
귀족을 너무 만만하게 봤다.
치기어린 자격지심이 불러 온 결과에 크릭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잘, 잘못했습니다!”
“아니, 그냥 묻는 건데.”
“한 번만 살려 줘… 아니, 살려 주세요!”
“아니, 그래서 누구냐고.”
삼류악역인 한시하의 세부설정까지는 슬카데미 내에서 다루지 않았기에, 한시하가 궁금해서 묻는 한마디 한마디가 크릭의 심장을 조여 온다.
크릭은 울먹거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한, 한태수 백작….”
한시하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아, 그 인간이구만. 거, 땅덩어리가 어디 붙어 있었더라. 나름 넓은가?”
저 하나 묻기엔 충분히 넓다.
“흐읍. 시, 시키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한 번만 봐 주세요….”
한시하는 싹싹 빌며 울먹거리는 크릭을 내려다보았다.
뭔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는 대강 감이 잡히는데.
‘그냥 물어보는 거라니까.’
더 묻고 싶어도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처럼 굴어서 물어보기도 애매했다.
“음.”
대신, 한시하는 크릭의 뒷말에 두 눈을 반짝였다.
“시키는 대로 다 한다며. 너 발 넓잖아. 소문 좀 내 봐라.”
아르델의 눈과 귀. 사소한 소문일지라도 이 이야기가 흘러들어갈 인간이 있다.
한시하는 그에게 자신의 좋은 평판이 향하길 바란다.
그에 가장 적합할 만한 인재. 입이 싼 크릭이야말로 제법 도움이 될 듯했다.
“뭐, 뭐라고 소문내면 되는 건데?”
크릭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일단 뭔지는 몰라도 시키는 대로만 하면 양지바른 카스티카 영지에 묻히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뭐,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크릭은 일단 시키는 대로 할 자신이 있었다.
“자, 따라 해 봐.”
한시하는 씨익 웃으며 손을 까닥였다.
“어엉.”
악마의 손짓처럼 느껴지는 제스처에 크릭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고선 자세를 낮췄다.
그리고.
소근소근.
“….”
한시하가 퍼트리라는 소문.
그 내용을 들은 크릭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
“그, 그걸 애들에게 말하고 다니면 된다고?”
미친놈 아냐, 저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