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0)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70화(170/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70화
잠깐만.
지금 내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지금… 뭐….
뭐라고 한 거야?
“네 약혼 상대다.”
아르케넨트 백작이 확인 사살을 했다.
호탕하게 웃으며 뱉는 한마디에 솔리아는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올 때까지 아무 말도 못 듣고 온 건… 솔리아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약… 약혼이요? 지… 지지지지금요?”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만 곧이겠지.”
“네에… 에에?”
마른하늘의 날벼락 같은 소리다.
예상 못하고 끌려온 나도 이렇게 기겁하는데, 나와의 약혼이 좆같다고 생각한 솔리아는 얼마나 놀랐을까.
“어… 어어어어… 그게….”
봐봐, 식겁하잖아.
쟤 나 진심으로 싫어한다고.
이게 무슨 약혼이냐.
흡사 도살장에 끌려가는 듯한 솔리아의 표정에 나까지 미안해질 지경이었다.
싫어하는 애를 왜 억지로 끌고 와!
“허허.”
“허허허.”
우리는 지금 폭탄이라도 맞은 기분인데, 정작 이 자리를 만들어 낸 당사자들은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새 와인잔을 꺼내 온 아르케넨트 백작과 한태수는 식탁에 앉아 잔을 부딪혔다.
그러더니 이내 우리를 돌아보며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다들 그런 얼굴이냐?”
솔리아가 우물쭈물한 자세로 서 있자, 아르케넨트 백작이 웃으며 말했다.
“어릴 적부터 어른들이 약조했던 일이니, 그리 놀랄 것도 없지 않느냐.”
그게 그렇게 태연해질 일이 아니지 않나요?
“나는 둘이 퍽 잘 어울린다 생각하는데.”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아르케넨트 백작과 한태수는 이미 저들끼리 신이 났다.
아델라 생각만 해도 머릿속이 복잡한데, 눈앞에선 더 충격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아르케넨트 백작은 어서 앉으라는 듯 의자를 툭툭 손으로 쳤다.
솔리아는 어색한 자세로 그 자리에 앉았다.
“너도 앉아라.”
한태수의 눈빛이 내 쪽을 향한다.
분위기상, 일단 앉아야겠다.
“저도 잠시 착석하겠습니다.”
의자에 걸터앉은 상태로 공손히 두 손을 모았다.
상당히 불편한 자리에 억지로 낀 기분.
아르케넨트 백작은 뻘쭘하게 앉아 있는 우리 둘을 번갈아 돌아보며 허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애들이 부끄러운가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원래도 퍽 각별한 녀석들이었는데… 막상 판을 깔아 주니 부끄러워하는군요.”
그거 아냐!
한태수는 뒤집어지는 내 속도 모르고 내 쪽을 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제게 직접 아르케넨트 령의 일을 부탁할 정도면… 확실히 그러했겠죠. 어떠냐, 약혼이 마음에 드느냐?”
이걸 뭐라 답해?
나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애.
“아….”
“그렇게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그게 아니라….”
“허허, 너무 재촉하지는 마시죠. 이것 참, 우리가 나가주어야 대화들을 나누려나?”
아르케넨트 백작은 이상한 결론을 내리고선 솔리아의 어깨를 토닥였다.
“나가 줬으면 싶니?”
“아니… 그건 아닌데요….”
솔리아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아르케넨트 백작은 그 모습마저 귀엽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집에서 시하 얘기를 그렇게 해 놓고선, 여기선 왜 그러고 앉아 있느냐.”
“네? 제가 언제…!”
“백작님, 이 아이가 하루 종일 시하 얘기를 한 적도 있었습니… 왜 그러냐?”
“아니! 아니에요!”
솔리아가 다급히 아르케넨트 백작의 옷을 잡아당겼다.
언성을 높이려다 한태수의 눈치를 살피며 다급히 목소리를 줄인다.
“그, 그런 적 없거든요….”
솔리아가 하루 종일 내 얘기를 했다니.
좆같다고 욕한 거면 몰라도 그건 좀 말이 안 되는데.
사실 여부를 확인해야 할 이야기다.
아무래도 아르케넨트 백작이 지어 낸 것일 확률이 높아 보이지만 말이다.
솔리아가 저렇게 난처해하고, 나 역시 가시방석에 앉은 기분이라 일단 마무리를 해야 했다.
솔리아는 새하얗게 질려서는 아무 말도 못할 게 뻔했다.
하, 미치겠네….
결국 내가 나설 수밖에 없다.
두 사람은 와인잔을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내버려 두고, 우리는 뒤로 빠진다.
나는 한태수를 바라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희끼리 잠시 어디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잠시 머리를 식히려는 제안에, 한태수가 흐뭇하게 웃었다.
아르케넨트 백작도 웃으며 말을 얹었다.
“얼마든지.”
“허허, 벌써부터 어울리는구만? 시하가 아주 잘 챙겨.”
“둘이 아주 보기가 좋습니다.”
저 망할 주책들.
멍하니 앉아 있는 솔리아의 손목을 낚아채듯 잡았다.
“으응?”
일단 가자.
나는 눈짓으로 그리 말했고, 솔리아는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 * *
“약혼? 미친 거 아니냐?”
벼락 맞은 건 이쪽도 마찬가지다.
솔리아는 충격에 말을 잇지 못했다.
“이… 이거 어떻게 해야 해…?”
얘도 놀랐겠지.
아니, 인간적으로 우리가 열여섯인데 약혼이 여기서 왜 나와!
솔리아 지금 당황해서 숨도 제대로 못 쉬잖아.
입술이 파리하게 질린 솔리아가 간신히 입을 떼었다.
“네… 네 말이 사실이었어.”
“아니, 나도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지.”
“응?”
“최소한 한 4년 뒤. 아니 적어도 2년 뒤는 될 줄 알았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나올 줄은… 야, 인간적으로 나도 예상 못 했어.”
“어떡하지….”
솔리아는 이마를 짚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는 아직 약혼할 나이는 아니라고….”
“응?”
“너무 이르잖아.”
분명… 분명 맞는 말이긴 한데.
그렇게 질색하면서 말하니까 갑자기 열 받네?
괜히 찔려서 솔리아의 말을 받아쳤다.
“야, 나도 약혼할 나이는 아니거든?”
나도 앞자리는 2라서, 아직 막! 벌써부터! 그런 소리 들을 나이는 아니거든?
명절에 가면 취직은 했니, 는 기본 패시브로 들어도 아직 장가가라는 소리까진 안 나오거든?
어… 나는 왜 약혼할 나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뭔가… 뭔가 찔리네?
괜히 찔려서 한마디 더 덧붙였다.
“나 진짜로 약혼할 나이 아니야.”
“왜 발끈해? 우리 동갑이잖아.”
어….
어….
그렇지.
“…?”
“아, 아무것도 아니야.”
순간 잊을 뻔했다.
흥분했던 걸 빠르게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말을 뱉었다.
“그냥… 그렇다고… 어, 이 심각한 사안에 대해 같이 고민해 보자는 얘기지.”
“으응.”
고개를 끄덕이는 솔리아.
후, 일단 넘어갔나.
나는 화단에 걸터앉아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이 쉽지, 퍽 떠오르는 방도는 없었다.
모름지기 귀족사회에서는 가문과 가문 사이의 약혼이, 단순한 약혼 관계 그 이상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거기에 우리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될지는 의문이 들었던 탓이다.
조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한태수가 당장 리니아 황제와의 약혼을 주선한다 해도 나는 끌려가야….
아니, 그건 좀.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어쨌든 솔리아도 특별한 방도는 없어 보였고, 우리는 화단에 쭈그려 앉아 한참 동안 머리를 맞대었다.
이대로는 정말 그대로 약혼식에 끌려가야 할 판인데….
그 순간, 솔리아가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한시혁 교수님을 찾아가보자.”
“…뭐?”
“교수님은 뭘… 알고 계시지 않을까?”
솔리아가 한참의 고민 끝에 내린 결론.
한시혁을 찾아간다.
그 이유는 이러했다.
“어른이잖아.”
“…?”
한시혁이… 가오 잡아서 그렇지, 굳이 따지자면 나보다 세 살이나 어린데….
어른 같다는 건 부정할 수 없어.
뭐지?
정신도 열여섯이 되어 가는 건가?
“음.”
나는 턱을 쓸어내리며 잠시 고민했다.
한시혁도 지금 신경 써야 할 것이 워낙 많은 터라 어린애들의 약혼 고민에 조언을 해 줄지는 모르겠으나.
솔리아가 저렇게 간절히 두 손을 모으고 있으니, 한 번 말이라도 꺼내 봐야겠다 싶었다.
“알았어. 한 번 물어보자.”
솔리아의 말마따나 예언가의 식견은 다를 수도 있는 법이다.
* * *
끼이이익.
수사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에, 한시혁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변두리에 위치해 있어 평상시에는 거의 사람이 들어오지 않는 곳이지만, 요즘 들어 찾는 사람이 많다.
지난번에는 아델라였으나, 이번에는 한시하가 자신을 찾아왔다.
“물어볼 게 있어서 왔어.”
“무엇이냐.”
한시혁은 언제나처럼 담담한 목소리로 한시하를 맞았다.
애초에 각별하지 않았던 형제 관계다.
그러니 형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도, 크게 달라질 것은 없었다.
한시하는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 약혼 예정이래서.”
“약혼?”
“그게… 얘기하자면 좀 긴데. 아르케넨트 가문과 약혼 일정이 잡혔어. 그것도 당장 다음 달이래.”
이제는 피가 섞인 형제도 아니고, 이런 고민 상담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이가 되었건만.
한시혁은 별말 없이 한시하의 말을 들었다.
카스티카 가문과 아르케넨트 가문 사이의 약혼.
급작스럽긴 하나 특이한 일도 아니다.
아르케넨트 가문이 조금 부족하긴 하지만, 솔리아는 장차 대단한 마법사가 될 아이니, 그 정도면 꽤 괜찮은 약혼 상대기도 했다.
하지만, 한시하는 약혼을 깰 생각인 듯했다.
“이 약혼은 나도 솔리아도 반대야. 어떻게든 막으려고 머리를 써 보려는데, 딱히 생각나는 방법이 없어. 혹시 괜찮은 게 있을까, 물어보려 온 거지.”
“음.”
왜 자신을 찾아왔는지는 알 것 같았다.
헌데, 궁금한 게 있다.
한시하의 상황을 들은 한시혁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약혼을 반대하는 거냐.”
“그건….”
“아르케넨트 가문이 확실히… 그래. 네 눈에는 안 찰 수 있지.”
곰곰이 생각해 봐도 가문의 수준 차이 때문이 아닐까.
가문과의 약혼에서 사사로운 감정을 따지지는 않을 테니.
그리 판단한 한시혁이 단정 짓듯 뱉는 말에 한시하는 손사래를 쳤다.
“그런 이유 아니라니까?”
“그럼 다른 이유냐? 뭐, 따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 아델라 때문인가 싶었는데, 한시하는 즉각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도 아니고….”
“그러면?”
“하… 그게… 좀 이상하게 들릴 수 있긴 한데….”
한시하가 말끝을 흐리더니, 난처한 얼굴로 덧붙였다.
“나이… 나이 때문에….”
“뭐?”
한시혁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어린애 좋아하나?”
열여섯보다 어린 나이라면.
열하나, 열둘? 극단적으로 나이를 낮춘 한시혁은 질색하고 말았다.
생각이 얼굴에 다 나타난다.
한시하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짚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줄래?”
“흠.”
“그게 아니라 그래도 비슷한 나이대를 만나야 하는 게 아닌가, 뭐 그런 거지….”
무슨 소리지.
솔리아와 동급생일 텐데, 비슷한 나이대라면 뭘 말하는 건가.
한시혁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재차 물었다.
“잘 모르겠군. 구체적으로 몇 살을 말하는 거냐.”
“그래도 한 20대 중반은 되어야….”
“뭐… 뭐?”
한시혁은 한시하의 말에 멈칫하고 말았다.
그 정도면 거의 제 또래가 아닌가.
족히 열 살은 차이 날 텐데.
연상… 연상이 취향인가.
아니 아무리 연상이 취향이어도 위로 열 살은….
뭐 본인이 그렇다는데 뭐라 할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왜?”
“아니… 아니다….”
한시하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한시혁은 조용히 중얼거렸다.
“취향이… 음….”
힘들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