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3)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73화(173/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73화
당장 내일이 약혼식이다.
약혼식 때 손 붙잡고 튀자던 계획은 아직 유효했고, 그렇기에 실제 약혼을 한다기보다는 사고 치러 간다는 느낌이 더 강하게 들지만….
괜스레 묘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다.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부유했다.
사라지지 않는 잡념에는 아델라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약혼 안 했으면 좋겠어.’
매정하게 아델라를 떨쳐 냈다.
그 뒤론 의무적으로 사마트폰 개발을 함께 할 뿐, 아델라는 같은 얘기를 내게 꺼내지 않았다.
겉으로는 예전처럼 봉합된 관계지만, 분명한 거리감이 있었다.
약혼식을 파기하고 튀겠다는 계획도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
대체 앞으로 나는 몇 개의 거짓말을 더 해야 하는 걸까.
“하.”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한숨을 뱉었다.
왠지 다리가 무겁다.
터벅터벅.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층계를 올랐다.
원은 늦은 밤까지 광장에 남겠다고 했으니, 기숙사에 돌아가면 텅 빈 방이 기다릴 것이다.
약혼식이 오기 전까지 그 안에 틀어박혀서, 생각, 또 생각을 하면서 밤을 버티면 된다.
외롭고 비참한 밤이겠지만 견딜 수 있다.
약혼식 전날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조금 아이러니하긴 하네.
나는 피식 웃으며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멈춰 섰다.
별생각 없이 문고리를 잡았다.
짙은 어둠이 발목을 휘감았다.
“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기숙사방.
나는 한 발짝, 앞으로 내디뎠다.
두 발짝, 앞으로 걸어갔다.
처음엔 별생각 없이 방 안으로 들어섰으나, 이내 한 가지 기억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잠깐만.”
내가….
갈 때 불을 꺼두고 갔었던가?
이질감을 느낌과 동시에 멈춰 섰다.
그 순간이었다.
스윽-.
차가운 검날이 목에 닿았다.
섬뜩한 감촉이 목덜미를 스쳤다.
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파르르.
검날이 위아래로 심각하게 요동치고 있다.
누군가를 베어 버리기엔 지나친 망설임이 묻어 있는 검.
어둠이 삼켜 버린 방에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내려 내 목덜미를 옥죄고 있는 검의 정체를 확인했다.
지금 이 검은, 한태수가 내게 줬던 검이다.
카타블람을 무너뜨린 검이다.
그 검이 지금 나를 겨누고 있다.
“너… 너….”
아델라가 울먹이며 검을 움켜쥔다.
나를 베어 버릴 수도 없는 낡은 검으로.
아델라가 슬픈 눈으로 나를 노려본다.
목에 검날이 들어왔는데도 두렵지는 않았다.
그저….
나는 서글프게 말을 뱉었다.
“알았구나, 너.”
알아 버렸구나.
* * *
챙-.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힘없이 검을 놓쳐 버린 아델라가 나를 돌아본다.
붉게 충혈된 눈이 무언가를 말하려 하지만 쉬이 뱉지 못한다.
“대체… 왜….”
“도대체… 왜….”
아델라는 울음을 삼키며 이를 악문다.
말 한마디, 한마디를 이어 가기가 힘겨운 듯 아델라가 힘겹게 말을 토해 냈다.
“왜 하필 너인 건데….”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말없이, 아델라를 쳐다볼 뿐이었다.
“그 누구여도 상관없었어. 그 누구여도, 나는 싸울 수 있었어. 어떻게든 복수할 생각이었어. 솔리아여도 좋고, 이한이어도 상관없고, 원이어도 괜찮아.”
“….”
“그런데… 왜 하필 너야?”
떨리는 목소리.
더 상처를 주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피하려 했다.
헌데, 너무 늦었다.
“이 세상 누구여도 상관없는데! 왜 하필 너냐고!”
진작에 끊었어야 했다.
어차피 이렇게 될 거라면, 적이 되었어야 했다.
삼류 엑스트라 한시하가 그러했듯.
그 길을 따라 걸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적어도 저렇게 절망하는 얼굴은 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미안해.”
다 알았는데.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았는데도 끊어 내지 못한 게 잘못이다.
붙잡으려 한 게 잘못이다.
한때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이, 지금은 최악의 선택이 되었다.
할 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그저, 너를 기만해서 미안하다는 말.
“미안해, 아델라.”
아델라는 그 말에 더 흔들렸다.
견딜 수 없다는 듯 비틀거렸다. 절망으로 가득찬 눈빛이 나를 노려보았다.
“왜… 왜… 다 알고 있었다는 듯이 말해?”
아델라가 이 방에 들어왔을 때.
나는 그 눈빛만 보고 이미 모든 걸 알아챘다.
그제야 내가 무슨 실수를 했는지 알아 버렸다.
“너… 몰랐잖아.”
아델라는 바닥에 떨어진 검을 증오스럽다는 듯이 노려보았다.
그러곤 세차게 고개를 젓는다.
“너는… 몰랐을 거야.”
“아델라.”
“너는 아무것도 몰랐지. 너무 어릴 때니까. 네가 한 일도 아니니까. 너도 나만큼이나 너무 어릴 때의 일이니까, 그래서… 그러니까… 절대….”
“….”
“미안하다고 하지 마.”
아델라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쉴 새 없이 말을 쏟아 내던 아델라가 털썩 주저앉았다.
“네가 나한테 미안해하면 안 되는 거잖아.”
“네 잘못이 아니잖아.”
“너는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네 아버지가 한 일일 뿐이니까.”
그 말이 비수에 되어 심장이 꽂힌다.
아델라는 흔들리는 내 눈빛을 보며 울먹였다.
투명한 눈물이 아델라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몰랐다고 해 줘, 한시하.”
“….”
“제발….”
그 말에 나는 답을 할 수 없었다.
아델라는 어둠 속에서 내 대답을 기다렸고, 내겐 더 이상 남은 변명이 없었기에.
우리는 그렇게 한참을 멈춰 있었다.
* * *
약혼식 당일.
마차가 탈탈거리며 약혼식장으로 들어섰다.
나는 줄곧 넋을 놓고 있었다.
아직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은 이유였다.
“어떡하지. 나 떨리는데.”
“아.”
솔리아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선 고개를 돌렸다.
“이런 곳은 처음이란 말이야….”
솔리아는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발목까지 닿는 새하얀 드레스와 아카데미에선 볼 수 없었던 발그레한 얼굴. 솔리아의 은발이 햇살에 닿아 반짝였다.
칙칙한 교복이나 입고 다니던 애가 저러고 있으니….
“예쁘네.”
“어… 응… 고마워.”
나는 담담하게 말을 뱉고선 창밖을 내다보았다.
어색하게 낀 넥타이가 불편하게 느껴져서 살짝 매만졌다.
솔리아만큼이나 이 자리가 낯선 건 나도 마찬가지다.
아카데미 친구들도 몇몇 참석한 자리다.
원은 흔쾌히 시간을 내어 이곳에 왔고.
윤하을 역시 깽판을 치기 위해 오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하지만, 아델라는 없었다.
당연히 올 수 있을 리가 없겠지.
어둠 속에서 한참을 울다가 끝내 나를 베지 못하고 돌아선 아이다. 순식간에 사라지던 아델라를 붙잡지 못했다.
아마 영원히 붙잡지 못하겠지.
나는 씁쓸한 미소를 흘리며 턱을 쓸어내렸다.
밖에선 한태수가 다른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서인지 여기까지 대화 내용이 꽤 잘 들렸다.
베켄 공작의 목소리도 들렸다.
“허허, 백작님. 뭐 그리 약혼을 서두르셨습니까. 아르케넨트 가문과 해 둔 약조라도 있으셨습니까?”
“두 녀석이 어울려서 맺어 주려 했을 뿐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아르케넨트 가문은 좀 그렇지 않습니까….”
주절주절.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제 가문이 오르내리는 건 그다지 달가운 일이 아니다.
솔리아는 눈치를 살피며 내 쪽을 힐끗 돌아보았다.
역시 이 약혼은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굳이 그런 쪽으로 내 눈치를 볼 필요는 없는데.
선수는 내가 쳤다.
“어떻게 생각해?”
“어?”
“이 약혼.”
우리는 이 약혼을 깨고 손 붙잡고 튈 생각이다.
한태수와 아르케넨트 백작이 극대노를 하겠지만 그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더한 사고도 수없이 쳤다. 그만한 패기는 아직 남아 있다는 소리다.
하지만, 솔리아의 생각이 궁금했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 계획도 내가 독단적으로 주장한 거니까.
솔리아는 약혼을 하기 싫어한다.
좆같다고 할 정도였으니 그 사실은 분명하겠지.
하지만, 가문의 필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고 싶었을 수도 있다.
한시하는 싫어도 카스티카 가문은 좋을 수 있으니까.
그 의견은 물어본 적이 없었다.
아델라에게 진작 말하지 못해서 이 지경까지 와 버렸는데도. 나는 또 내 멋대로 판단하고, 내 최선을 운운했는지도 모른다.
솔리아를 돌아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고 보니 네 생각을 못 들어 봤네.”
“…뭐를?”
“너는, 여기서 도망가고 싶은지.”
“어?”
솔리아는 내 말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런 솔리아의 눈을 빤히 응시하며 물었다.
“약혼이 하고 싶지는 않아?”
* * *
좁은 마차 안.
거의 연회장처럼 꾸며진 밖은 사람들의 인파로 분주했지만, 단둘이 앉아 있는 이 안은 고요할 뿐이었다.
탈탈탈.
내리막길을 가느라 덜컹대는 마차 안에서, 솔리아는 한참을 말없이 굳어 있었다.
한시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약혼이 하고 싶지는 않아?”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약혼이라 생각했었다.
얘기가 나온 것조차 기적이라 생각했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 차이나는 가문이야.’
아르케넨트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다.
카스티카 가문의 힘과 권력이 탐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히려 탐이 나기에, 더 말이 안 되는 약혼이라 느꼈다.
그렇기에 한시하가 약혼의 파기를 원했을 때, 솔리아는 그 계획에 동조했다.
애초에 너무 이른 약혼이었고.
조건조차 맞지 않은 약혼이니 파기하는 게 맞다.
그런데.
약혼 그 자체만 놓고 본다면….
자신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는… 뭘 원했던 거지?’
솔리아는 무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한 시간 후면 한바탕 깽판을 치고 저 자리를 빠져나가야 한다.
이곳에서 도망쳐서, 지금 이 약혼을 무효로 만들 예정이다. 억지로라도 약혼을 파기하게 만들 것이다.
그게 내가 원했던 거라고?
솔리아는 마른침을 삼켰다.
애써 외면해 왔던 감정이지만.
어쩌면….
자신은 이 약혼이… 마냥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하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가문의 조건.
귀족들의 시선.
조금은 이른 시기.
그 모든 걸 내려놓고 생각한다면….
솔리아는 한시하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레 입을 뗐다.
“하고 싶어.”
솔직해지자.
“약혼, 하고 싶어.”
“…다행이네.”
한시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뱉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흔쾌한 대답이었다.
“그럼 하자.”
“어… 응? 뭐… 뭐라고?”
솔리아는 갑작스런 한시하의 말에 그대로 멈춰 버렸다.
“진, 진짜로?”
잘못 들은 건 아닌가,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한시하의 얼굴엔 한 점의 장난기도 없었다.
한시하는 마차 의자에 기대어 앉은 채, 담담하게 말을 더했다.
“우리, 약혼할 거야.”
약혼, 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사람치곤 한없이 슬퍼 보이는 얼굴.
한시하가 흐릿하게 웃으며 자신을 돌아본다.
솔리아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왈칵 두려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