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74화(17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74화
귀족들의 연회는 고상하면서도 가식적이다.
내 얼굴은 알지도 못하면서 어떻게든 눈에 띄어 보겠다고 찾아온 인간들이 꽤 많았다.
하나같이 이름도 들어 보지 못한 잔챙이들 뿐이었다.
그런 고상한 약혼식에서도 자기 색깔 뚜렷한 사람들이 있는 법이다.
“어어, 야. 오늘… 유난히 죽인다?”
원은 아래 위로 나를 스캔하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어울리지도 않은 양복을 억지로 입었더니 졸업식 날처럼 불편할 지경인데, 보기엔 썩 괜찮았던 모양이었다.
물론 더 이상의 칭찬은 없었다.
디저트로 나온 팬케이크를 한입에 우겨 넣은 원은 감탄과 함께 혀를 내둘렀다.
“여기 음식 맛있다. 역시 부잣집은 달라?”
“…야, 너만 입이냐?”
시모어는 투덜거리며 원의 앞에 나온 접시를 뺏었다.
투닥대는 꼴이 아카데미에서와 여간 다를 바가 없다.
“꾸우꾸우….”
“삣!”
바실과 클로스티는 친남매처럼 머리를 치대며 조금이라도 더 얻어먹으려 싸우는 중이었다.
어설프게 지은 양복을 걸친 바실이 불편한지 바둥거렸다.
“잠시만 그러고 있어라.”
“꾸우우욱!”
“응, 절대 안 빼 줄 거야.”
그 모습이 더 귀여워서 일부러 안 빼 주고 놔뒀다.
바실은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볼을 부풀렸다.
잠깐만.
저거 비싼 거라 또 태워 버리면 곤란한데.
“야, 너 또 그거 태우지 마라….”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르륵-.
시장에서 고가로 산 드래곤 전용 양복이 재가 되어 날아가 버렸다.
후두둑.
바실의 몸에서 떨어져 내리는 잿가루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
살림살이 태워 먹는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뭘.
아이고, 내 팔자야.
“개는 물어뜯긴 해도 태우진 않던데….”
이로써 육아 난이도는 드래곤이 더 높다는 것이 증명됐다.
나는 이마를 손으로 짚고선 의자에 걸터앉았다.
도착하자마자 쉬지 않고 귀족들과 인사를 나누다 보니 조금 지쳐 있던 탓이었다.
하지만, 쉴 시간은 조금도 주어지지 않았다.
“아아- 약혼식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야, 너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시모어가 굳이 일깨워 주지 않아도 알고 있다.
한태수가 이쪽을 향해 눈짓했고, 나는 옷소매를 정리하고선 앞으로 나섰다.
지금 이 순간, 모두가 이쪽을 돌아본다.
솔리아 역시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나왔다.
짝짝짝-.
우리 둘이 나란히 서자마자 박수 갈채가 터져 나온다.
아르케넨트 백작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눈짓을 보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곤 마이크를 잡았다.
“자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약혼식은 처음이나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안다. 예의를 갖추고 입에 발린 말을 올린다.
나는 웃으며 약혼식장을 찾은 이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유명한 두 가문의 약혼이니 꽤 많은 귀족들이 참석해 있었다. 그중엔 지난 연회장에서 봤던 이들도 있었다.
“식을 시작하도록 하죠.”
약혼식이니 거창하게 갈 것은 없고, 연회를 열고 약혼을 공표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니, 그렇게 얘기가 되어 있었다.
헌데.
한태수가 내 쪽을 향해 손을 들었다.
“아. 식에 앞서서 준비한 게 하나 있습니다만.”
“예?”
“들어오시죠.”
한태수의 한마디에 뒤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 몸만 한 현악기를 든 악대가 이쪽으로 몰려온다. 얘기된 내용이 아니라 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 뭐 하는 거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눈짓으로 물었지만, 한태수가 가만히 있으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약혼을 공표하는 자리에 현악단이 들어와 앉는다.
멀뚱히 서 있던 와중에 제자리에 착석한 악단이 첼로를 켜기 시작한다.
거대한 그 악기를 품에 앉은 채 시작된 교향곡 연주. 나도 모르게 입을 떡 벌렸다.
소, 소박하게 한다며!
“…누가 준비한 거야?”
솔리아도 당황했는지 내 옆에 슬쩍 다가와 물었다.
나는 쓰게 웃으며 솔리아의 말에 답했다.
“기왕 하는 약혼 제대로 하려나 보지.”
원래는 이 타이밍에 딱 손을 붙잡고 튈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을 셈이니 거창해도 상관 없었다.
부끄러워서 문제지.
나는 빳빳한 자세로 악단을 돌아보았다.
귀족들의 연회 그 자체의 광경이다.
“썩 달갑진 않지만….”
약혼식장을 울리던 첼로의 선율 위로 바이올린이 간질간질하게 음을 더한다.
플룻의 음이 새소리처럼 더해지며 약혼식장으로 내려앉는다.
웃으며 떠드는 이들, 자연스런 말소리가 교향곡의 한편을 차지하듯 어우러진다.
지휘자는 격하게 팔을 움직였다.
그의 손짓을 따라 선율이 꽃처럼 피어올랐다.
경쾌한 트럼펫의 사운드가 분위기를 띄웠고, 비올라가 웅장하게 음을 깔았다.
약혼식을 위해 한태수가 준비한 밝은 분위기의 교향곡.
통통 튀는 선율이 사람들 사이로 녹아든다.
몇몇 귀족들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와인잔을 부딪혔고.
그 중앙에 선 우리는 몹시도 어색한 자세로 연주가 끝나길 기다릴 뿐이다.
교양 따위는 원래도 없는 인간이라 클래식엔 별다른 감흥이 없다.
나는 따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까는 몰랐는데, 나를 제외하고 모두의 입가에는 웃음이 묻어 있었다.
윤하을은 주먹을 쥔 채 부들거리면서도 진정한 훼방은 놓지 않고 있었으며, 솔리아는 이 거창한 약혼이 싫지는 않은지 그새 선율에 맞춰 고개를 까닥인다.
시모어나 원은 생글거리며 식사에 주력하고 있다.
“….”
그리고 나는, 이 자리에 없는 사람, 아델라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솔리아의 약혼.
솔리아의 의사를 묻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그 이면엔 그리 떳떳하지 않은 저의가 숨겨져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내 필요에 의해서 하는 약혼이다.
내 우유부단함이 더한 상처를 주지 않길 바라며, 확실히 이 자리에서 아델라를 끊어 내기 위함이다.
웅장한 교향곡이 심장을 울린다.
새소리 같은 플룻의 속삭임이 마음 한구석을 간질인다.
평화롭지만 평화롭지 않은 광경.
나는 폭풍우가 밀려오는 것 같다는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즐거워야 할 약혼식장에서 나 홀로 굳어 있으므로.
나는 자책감과 함께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꺄아아아악!”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로 날카로운 비명이 귓가를 때렸다.
* * *
즐겁게 웃고 떠들던 모든 이들을 얼어붙게 하기에 충분한 비명 소리.
관현악단은 연주를 멈췄다.
바이올린의 끼이익-하는 소리가 괴기하게 울려 퍼졌다.
몇몇은 그 비명의 출처를 살피며 고개를 내밀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이유를 모두가 알 수 있었다.
한태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입니까.”
“습격입니다.”
“예?”
아르케넨트 백작 역시 창백히 질린 얼굴로 이를 악물었다.
저편에서부터 몰려오는 검은 아우라.
짙은 안개 속에서 낯선 자들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었다.
약혼식장 한가운데에 서 있는 한시하 역시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뽑았다.
충실한 바실은 곧바로 한시하를 엄호했다.
검은 로브를 쓴 자들. 흑마법사들을 한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떼로 맞이한 적은 없다.
한눈에 봐도 약혼식장을 둘러싼 이들의 숫자는 최소 열댓 명은 넘어 보였다.
잔챙이들이 아니다.
한태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위험하다.’
피의 백작 한태수. 그와 전장을 함께했던 아르케넨트 백작.
수많은 흑마법사들을 제 손으로 썰었다. 그러니 두려울 것은 없다.
여기에는 그들을 지킬 기사들도 충분하며, 전투가 가능한 마법사인 귀족들도 여럿이다. 상대의 수가 평상시보다 많다 해서 이기지 못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민간인이 너무 많다.’
저들이 공격해 오면 필히 몇 명은 죽거나 다친다.
‘누구를 노리는 거지?’
한태수는 그게 높은 확률로 자신일 거라 생각했으나 확신할 수는 없었다.
검은 로브를 입은 자들이 주위를 둘러쌌다.
열댓 명이라 생각했는데 그새 늘은 듯하다. 최소 스물은 넘어 보인다.
저들을 한 번에 폭사시킬 만한 광역마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존재한다 한들, 저들이 저지하겠지. 상당히 수준 높은 마법사들이 섞여 있다.
이길 수 있다 해도 피해가 없을 수는 없다.
한태수는 그걸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저벅저벅-.
와중에도 검은 로브를 쓴 자들을 두려움 없이 그들을 조여 온다.
어떤 귀족 하나가 언성을 높이며 지팡이를 들었다.
“누… 누구냐!”
“….”
“네놈들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포위하는 것….”
쾅-.
굉음이 울려 퍼졌다.
“꺄아아악!”
누군가의 비명 소리와 동시에, 야외 약혼식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예고도 없이 벌어진 공격.
귀족은 비틀거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의 품에서 짙은 색의 피가 배어 나왔다.
마력구를 정면에서 맞았다.
“커억….”
“괜, 괜찮으세요?”
“꺄아아악!”
이윽고 입에서도 피를 토해 냈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으냐!”
“정체를 드러내라!”
뒤편에서 몇몇 귀족들이 눈치를 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그 모습을 확인한 한태수가 인상을 찌푸렸다.
선공을 당했다면 더는 피할 수 없는 싸움이다.
한태수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다들 비켜라.”
쾅-.
검은 마력구가 지면을 때린다.
한태수는 자신을 향하는 마력구를 마치 비웃듯 노련하게 피해서 옆으로 치고 나갔다.
서걱-.
검이 하늘에 들리자마자 마력구를 날렸던 남자가 힘없이 쓰러진다.
날카로운 파공음이 공기를 베었다.
서걱-.
한태수는 침착하게 앞으로 걸어간다.
저에게 달려오는 적들을 차분히 제껴 낸다.
“같이 가지.”
아르케넨트 백작은 한태수를 지원하기 위해 앞으로 튀어나왔다.
후방에는 솔리아와 한시하가 있다. 마법을 쓸 줄 모르는 이들은 벌벌 떨며 테이블 아래에 숨어 있고, 그렇지 않은 이들은 지키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잘 얻어먹고 있었는데 이게 갑자기 뭔 난리냐.”
원과 시모어는 본능적으로 지팡이를 들고 습격자들을 막아 내기 시작했다.
쾅-.
쾅-.
사방에서 비명 소리와 함께 마력구가 터져 나갔다.
평화롭던 약혼식장은 순식간에 폭풍우에 휘말렸다.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도 폭풍우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한태수는 검을 높이 들고 한 손으로 상대를 베었다.
아르케넨트 백작은 마력구를 날리며 배리어를 깔았다.
무슨 수작을 부리고 있는지 몰라도 저 검은 마력구는 상당히 위험했다.
흑마법을 쓰는 이들이다.
저들의 마법에 어떤 변칙이 있을지 모르기에, 아르케넨트 백작은 신중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태수는 폭풍처럼 전장을 휩쓸었다.
‘나는 전장에 다시 나가기엔 너무 늙었다.’
한태수는 그렇게 말했지만, 그의 날렵한 몸놀림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의 백작이라는 명성답게 그는 피 앞에서도 망설이지 않는다.
그저 베어 내고,
막으며,
쳐낼 뿐이다.
“으아악!”
“공격하라!”
“와아아아악!”
스무 명의 흑마법사들은 빠르게 그 수가 줄어들어 갔다.
사실상 한태수 혼자 처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의 공격은 과감하면서도 빈틈이 없었다. 보지도 않고 휘두르는 검은 정확히 적을 꿰뚫었고 자신을 향한 습격을 전부 쳐 내었다.
거기에 주저함은 없었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수십 년을 싸웠다면, 이제는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
한태수는 코트를 펄럭이며 저를 둘러싼 적들을 천천히 돌아본다.
“복제술인가.”
한태수는 빠르게 충원되는 로브를 보며 비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여기, 복제술을 쓰는 흑마법사가 한 명 숨어 있다.
실제 정원은 스무 명임이 분명한데, 그새 빠른 속도로 불어나 있었다.
그래 봤자 전황이 달라질 이유는 없다.
성가신 흑마법사들은 수없이 상대해 왔다.
서걱-.
복제술을 쓰는 영악한 놈을 찾기 위해서, 한태수는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놈들을 학살했다.
“온통 허수아비들뿐이군.”
허수아비와 다른 점이라면, 하나하나의 목숨이 어찌나 질긴지 잘 쓰러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 웬만한 마법사들은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점이었다.
원본의 능력을 그대로 빼다 박은 인형들이 수십 개가 있다.
한태수는 정신을 집중하고선 검을 움켜쥐었다.
“허수아비들 따위 몇이 온들, 나를 어찌할 수 있을 것 같더냐.”
모든 것을 베어 버리겠다는 듯 결연한 눈빛은 보는 이를 섬뜩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다.
한태수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허나, 그는 분명히 늙었다.
여전히 노련하나 예전과 같지는 않다.
채앵-.
한태수는 정신없이 눈앞의 적을 쓰러뜨리다가 무언가 놓쳤음을 직감했다.
상당히 뒤쪽으로 빠진 전력.
로브를 쓴 사내의 눈이 미묘하게 반짝였다.
그 눈빛이 불쾌해서, 한태수는 그의 목을 썰어 버렸다.
서걱-.
피가 튀며 남자의 목이 땅으로 떨어졌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뒤편에 고정되어 있었다.
한태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한태수는 그들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 알았다.
제 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