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6)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76화(176/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76화
제 자식을 죽일 아이가, 제 자식을 살리러 이곳에 왔다.
한태수는 흑마법사들을 몰아세우는 아델라를 보며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훗날 대마법사가 될 재능을 타고난 아이다.
그 천부적인 재능에 아카데미에서 배운 기본기가 더해졌다.
아델라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저를 향해 달려드는 이들을 쳐 내고, 또 묻었다.
한태수의 발이 묶인 상황에서도 아델라는 지원군 없이 혼자 싸워나갔다.
낡은 검을 하나 들고선 허공을 가르고, 적을 가르면서 망설임 없이 달려든다.
“….”
한태수는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아델라가 찾아온 건 감사할 일이지만, 혼자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한시하도 솔리아도 시모어도 무력하게 만들어 버린 흑마법사들의 군단을, 아델라 혼자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복제술을 쓰는 놈을 어서 찾아내야 끝날 싸움.
한태수는 아델라가 발악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크게 기대하진 않았다.
고마운 마음이야, 당연히 있다.
미안한 마음 역시…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감정들이 전투의 승패를 가르는 것은 아니다.
‘도와야 한다.’
한태수는 저에게 달려드는 흑마법사의 마력구를 맞아 주었다.
무리해서라도 아델라가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사실상 무력화된 제 아들을 지켜야 한다.
그런 급박함에 한태수는 제게 달려드는 이들을 무시했다.
뒤편으로 마력구가 쏟아진다.
배리어가 적들의 공격을 어느 정도 막아 주었으나 그래 봤자 시간문제일 뿐.
한태수는 몰아치는 고통을 애써 무시하며 이를 악물었다.
‘내가 지원해야 해.’
그 사이, 아델라는 한계에 다다랐다.
고작 낡은 검 하나로 저들을 전부 베어 낼 수 없다.
한눈에 봐도 지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한시하를 채가기 위해 번들거리는 시선들이 그쪽으로 쏠렸고, 사실상 대부분의 전력은 아델라가 있는 쪽으로 몰린 상태다.
자신이 무너지면 이 전투는 진다.
아델라의 눈빛엔 결연함마저 묻어 있었다.
물론 그 결연함은, 때론 객기일 뿐이다.
한태수는 그렇게 판단했다.
아델라의 손에 들린 것이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서기 전까지는.
“저… 저건….”
한태수는 저도 모르게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았다.
그저 낡은 검을 들고 싸운다고 생각했는데.
아델라가 악착같이 붙들고 있는 저 검은, 파동의 검.
제 마을을 무너뜨린 저주 받은 검이었다.
‘저 아이가 저걸 어떻게 가지고 있는 거지?’
아니, 그걸 떠나서.
카스티카 가문의 가보인 검을, 외부인은 쓸 수 없었을 텐데….
아델라가 쥐고 있는 검에선 흐릿하게나마 마력이 감돌고 있었다.
대지의 마법사.
그 이름에 걸맞게 아델라는 대지의 검을 쓰고 있었다.
아니, 쓰는 법을 알고 있었다.
한태수는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제자리에 멈춰 섰다.
순간, 아델라와 눈이 마주쳤다.
증오인지, 복수심인지, 회한인지, 용서인지.
알 수 없는 오묘한 눈빛으로 아델라가 자신을 돌아본다.
그러고는.
검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린다.
되지도 않을 싸움을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제 쪽으로 흑마법사들을 유인하고 있는 것이었다.
더 많은 이들을 묻을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을 지킬 수 있도록.
십여 년 전의 한태수가 그러하였듯이.
아델라는 이를 악물고선 검을 내리꽂았다.
동시에, 대지가 흔들린다.
모든 이들을 삼킬 듯이 격렬하게 요동친다.
드드드드-.
심상치 않은 땅의 진동에 혼비백산한 흑마법사들이 뒤늦게 후퇴했지만.
“함, 함정이라고 새끼들아!”
“으아아악!”
미처 피할 새도 없이, 지반이 무너져 내린다. 수많은 흑마법사들을 삼키려는 듯, 대지가 입을 벌리며 요동쳤다.
동시에, 그들이 서 있는 땅이 통째로 가라앉는다.
그렇게 누군가의 절규와 비명 속에서.
아델라는 무너져 가는 땅 아래로,
망설임 없이 몸을 던졌다.
* * *
아델라는 기절한 한시하와 솔리아를 땅속에서 꺼냈다.
한태수는 폐허가 된 약혼식장의 끝에 서서 그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땅에 파묻히려는 순간에 아델라가 뛰어들었다.
그리고 무사히 제 자식을 구해 냈다.
한태수는 이 감정을 뭐라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자신은 저 아이의 모든 것을 앗아 갔을 터인데.
저 검을 들고 있다는 건,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는 의미일 텐데.
대체 왜.
무슨 이유로 제 자식을 살렸나.
그런 아이 앞에서, 자신은 어찌 고개를 들어야 하나.
어린아이도 할 수 있었던 것을 자신은 하지 못해서, 죄 없는 이들을 흙 속에 파묻어야 했다.
심장이 쿡쿡 쑤셔오는 기분이다.
너무도 아려서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이 감정은….
한태수는 그것이 자책감이라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
짙은 감정이 배어 있는 아델라의 두 눈이 자신에게 닿았다.
“….”
누구 하나 입을 뗄 수 없었던 침묵 속에서.
저벅저벅.
아델라는 낡은 검을 손에 움켜쥔 채 한태수를 향해 걸어왔다.
한태수는 아델라가 그 검으로 자신을 베려 한들 이상할 게 없다 생각했다.
“….”
하지만 아델라는 한태수에게 달려드는 대신, 알 수 없는 눈빛으로 검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힘겹게 입을 뗐다.
“이 검으로 당신을 베는 걸, 십 년을 기다렸어.”
알고 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한시혁이라면 몰라도, 눈앞의 이 아이는 그때의 모든 순간을 또렷이 기억하니까.
그 누구라 해도 저 검을 쥐었다면, 자신을 베었을 것이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들을 처참하게 잃으면서.”
“그 땅에 파묻히는 꼴을 보고 싶었어.”
한태수는 그런 아델라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했겠지.”
이해를 가장한 가증스러운 공감이 아니다.
한태수는 최대한 말을 아꼈다.
아델라는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당신은 죄 없는 이들을 흙 속에 파묻은 사람이니까. 그런 고통을 받아도 마땅한 인간이니까.”
“당신도, 당신 자식도… 내가 느꼈던 그 고통을 고스란히 느끼면서……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길 바랐어.”
아델라는 정말 그렇게 할 생각이었다.
복수를 위해 십 년의 시간을 버텨 왔으니까.
오직 그게 살아가는 이유였으니까.
“근데… 근데….”
아델라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못하겠어.”
툭.
아델라의 손에서 낡은 검이 떨어진다.
한때는 제 가족을 묻었던 그 검으로, 원수의 아들을 살려야만 했다.
비참해야 했다.
저들의 손에 놀아난 것이나 다름없으니, 후회스러워야 했다.
헌데, 왜.
안도감이 느껴지는 걸까.
아델라는 쓰러진 한시하를 돌아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저 여기서 한 걸음, 한태수에게 다가가 그의 목을 그어 버리면 그만이다.
실제로 한태수는 그리해도 된다는 듯, 가만히 있지 않나.
제 아들을 살려 준 자신에게 제 목숨을 내놓고 있는데.
아델라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그를 노려볼 뿐이다.
“여기서 내가… 내가… 당신을 죽여 버리면.”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아델라는 힘겹게 숨을 몰아쉰다.
“그건 싫어.”
한시하가 깨어났을 때, 그를 보고 싶다.
영원한 적이 되어 검을 겨누고 싶지 않다.
두 번 다시는, 그 체념한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한태수를 죽이고 싶은 만큼,
그 아들을 살리고 싶었다.
“그러니 평생을 나한테 미안해해.”
그래서,
아델라는 용서할 수 없는 이를 용서하기로 했다.
* * *
진실을 알게 된 어젯밤, 로브를 쓴 여자가 제 방에 찾아왔다.
말없이 사라졌다가 한 달 만에 나타난 주제에 그녀는 뻔뻔하게 제안했다.
“네게 복수할 기회를 줄게.”
악마처럼 제 귓가에 속삭였다.
아니, 그건 악마가 아니라 구원의 속삭임일지도 모른다.
아델라는 이미 모든 걸 알아 버렸고, 한시하는 그 모든 걸 인정했다.
“흐읍….”
눈물이 앞을 가려서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모든 걸 알고도 묵인했다는 배신감. 치가 떨리는 그 감정에 완전히 휩싸이고 말았다.
모든 걸 걸고서라도 죽였어야 했을 이가,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다.
아델라는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다. 애써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부정하면 하려 할수록.
그 사실은 선명하게도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가증스럽지 않니?”
로브를 쓴 여자는 웃으며 그리 말했다.
“마을 하나를 통째로 생매장시키고도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아. 정작 그들은 그런 사실이 있었는지조차 잊고 살지.”
“하아… 하.”
“아델라. 너는 10년 전에 잡은 날파리 한 마리를 기억하니?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겠지. 누가 제가 잡은 날파리까지 신경 쓰면서 인생을 피곤하게 살겠니. 그들에겐 그래. 우리가 날파리 같은 존재라고.”
“….”
“기억하지 못하는 건 당연한 일이야. 한시하 그 아이도, 네게 말할 필요성을 못 느꼈겠지. 그만큼이나 무가치한 일이니까.”
“그럴 리 없어요.”
아델라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그때 보인 그 눈빛이, 그 자책감이. 한시하에게 무가치한 일일 리 없었다.
“네 말이 맞다면, 왜 그 아이는 그걸 숨겼지?”
미안해서.
차마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안해서.
아델라는 그게 이유라고 생각했지만, 로브를 쓴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귀족들한테 여전히 많은 것을 기대하는구나.”
“….”
“그러면 너만 상처받을 뿐이지.”
로브를 쓴 여자는 창가에 걸터앉은 채 비장하게 말을 뱉었다.
그녀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는 아델라를 조롱하기 위함이 아니다. 숭고한 계획을 아델라에게 전하기 위함이었다.
“아델라, 내일 우리는 약혼식장을 습격할 거다.”
아델라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
“우리의 목적은 그 아들이지, 아버지는 아니라서.”
“예?”
“원한다면 카스티카를 네 손으로 무너뜨리는 걸 허락하마.”
“잠, 잠깐만요!”
아델라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눈앞을 가리던 눈물은 어느새 새벽바람에 말라 있었다.
매력적인 목소리가 아델라에게 말했다.
“남은 건 네 선택이야.”
“아델라, 우리가 내일 적으로 만나지 않길 빌어야겠구나.”
떠나려는 로브 자락을 붙잡을 새도 없이, 로브를 쓴 여자는 창문에서 뛰어내렸다.
그것이 어젯밤의 일이었다.
* * *
아카데미의 양호실.
새하얀 천막이 하늘거리며 시야를 가렸다.
꼬박 사흘을 누워 있었다.
한시하는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으음….”
아직 정신은 덜 깼지만, 눈앞에 누가 있는지는 알 수 있었다.
아델라가 걱정스런 눈길로 내려다보며, 그때처럼 제 앞에 앉아 있었다.
한시하는 입에 푸석푸석한 식감이 느껴져서 오물거렸다.
“초코파이인가….”
“흙이야.”
아.
한시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엑!”
순간, 정신이 확 들었기 때문이었다.
어쩐지 텁텁하더라니.
한시하는 인상을 찌푸리며 물로 입안을 헹궜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땅속에 파묻혔던 기억이 흐릿하게나마 남아 있었다.
한태수조차 무리하고 있던 급박한 상황에 아델라가 자신을 도왔다.
“아.”
덕분에 살았다.
어렴풋이 모든 걸 기억해 낸 한시하가 다급히 아델라를 살폈다.
“야, 몸은 괜찮아?”
“그건… 내가 물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혼자서 대부분의 전력을 감당해야 했던 한시하다.
자신이 오기 전까지 몸이 갈려 나갈 정도로 무리해야 했다.
실제로 기절해 버리기도 했고.
아델라는 황당하다는 듯 한시하를 돌아봤으나, 한시하는 한없이 당당했다.
[치유의 빛].이 능력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한시하는 팔을 걷어서는 돌에 긁힌 상처를 보여 주었다.
오른손을 살짝 얹는 것만으로, 새하얀 빛무리가 팔을 감싼다.
아까 전까지는 있었던 상처가 싹 사라졌다.
내상은 완벽하게 치료할 수준은 아니어도, 미약한 정도의 외상은 즉각 치료된다.
그새 많이 익숙해진 능력을 보여 주면서, 한시하는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야, 봤지?”
“뭐?”
“걱정할 사람을 걱정하라고.”
괜히 허세가 담긴 한마디에.
“뭐래, 되게 걱정되거든?”
피식, 아델라는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순간이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깊은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한다.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이 있다.
지금, 이 감정이 그러해서.
둘은 그렇게 한참 동안을 말없이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