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17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177화(17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177화
상황은 대강 마무리되었으나, 미뤘던 대화를 나눠야 할 사람은 있었다.
한태수와 아델라, 두 사람이 그러했다.
한태수는 아델라를 한시혁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한시혁도 그 의도를 이해하고 자리를 비워 줬으니, 간단한 얘기를 나눌 시간은 충분할 터였다.
아델라를 부른 이유는 하나다.
한태수는 아델라를 빤히 바라보다가 입을 뗐다.
“너는 평생 나를 원망하겠지.”
날이 선 한마디가 돌아왔다.
“죽이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 할 텐데.”
“죽이지 않은 것에 감사해야 할 거다.”
한태수는 미세하게 다른 말로 받아쳤다. 아델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한태수를 노려보았다.
“네?”
한태수는 아델라에게 빚을 진 상황이다.
거기에 죄 없는 아이의 삶의 파괴한 것에 대한 죄책감마저 남아 있다.
그럼에도.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었다.”
전후 상황을 모르는 아델라의 이마가 한층 더 찌푸려졌다.
“그 이유를 말해 주마.”
거기서부터 시작되는 얘기는 아델라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고, 실로 충격적인 것이었다.
모든 것을 황제가 사주했으며 한태수는 신하로서 그 사건을 떠맡았다.
전적으로 한태수의 잘못이나, 한태수는 숨김없이 모든 비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십여 년 전, 분명 예언가는 그리 말했다.
카타블람의 생존자가 제 아들을 죽일 것이라고.
그래서 모든 비극을 제 손으로 처리해야 했던 일을 설명했다.
지난 일에 불과하다.
하지만, 여전히 그 사건의 생존자는 살아가고 있다. 그날을 기억하면서 살아가는 이에게, 모든 걸 말해 주는 건 못할 일이었으나 해야만 했다.
더 이상 숨길 수는 없기에, 한태수는 담담하지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쓰린 현실을 아델라에게 자각시킨다.
“생존자는 한시혁, 그리고 너. 둘뿐이지 않나.”
솔직하고도 잔인한 말에 아델라는 멈칫했다.
한태수의 말대로 생존자는 그 둘이다.
아델라는 인상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저희 둘 중에… 누군가 시하를 죽인다고요?”
한시혁이 한시하를 죽일 정도로 싫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동생으로서 퍽 아끼는 듯했다.
그렇다면 자신은…?
자신이 한시하를 죽일 리가 없지 않나.
“예언이 잘못된 거 아니에요?”
아델라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태수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의 낯빛에 알 수 없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예언가의 예언은 웬만해선 틀리지 않지.’
예언가는 평범한 점쟁이가 아니다.
예언가의 예언은 그저 불확실한 추측일 뿐이지만, 놀랍도록 정확한 결말을 맞이한다.
예언이 현실이 되는 것을 숱하게 봐 온 한태수는 아델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러기를 바라야겠지.”
한태수는 제 앞에 서 있는 단발의 아이를 천천히 살펴보았다.
아델라는 그 시선조차 불쾌하다는 듯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지만, 그걸 탓할 생각은 없었다.
아델라의 말마따나 언젠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아이다.
제 가문을 무너뜨릴 수 있는 아이다.
그러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아델라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참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있었기에.
한태수는 조심스러운 부탁을 입에 올렸다.
“내가 밉겠지.”
당연한 거 아니냐는 듯, 아델라는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나를 증오해도 좋다, 내 목에 칼을 들이대도 좋다. 하지만….”
“….”
“내 아들을 배신하지만 말아라.”
한태수는 힘겹게 말을 이었다.
“부탁이다.”
* * *
카스티카 령, 저택의 지하 감옥.
약혼식장에서 소란을 일으킨 흑마법사들은 이곳에 구금되어 있었다.
처분이 정해지면 황도로 향할 것이다.
그 전에 간단한 심문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건, 내가 직접 한다.
저벅저벅.
지하계단을 내려가자마자 익숙한 얼굴이 모습을 비추었다.
밧줄에 두 팔이 묶인 상태로 벽에 기대어 헐떡이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전투 중에 몇 번이고 베었던 인형들의 원본, 흑마법사 세미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세미르는 나를 보자마자 부들거렸다.
살벌한 그 눈빛에는 공포심 따위 느껴지지 않았다. 대의를 위해 희생한다는 듯, 결연함마저 느껴졌다.
퉤.
내가 다가서자마자 세미르는 불쾌했는지 침을 뱉었다.
그래 봤자 다 묶여 있는 이의 발악이라, 별로 거슬리지도 않았지만.
나는 세미르와 눈을 마주치고선 물었다.
“무슨 생각으로 이런 미친 짓을 벌인 거야?”
솔직히 말해서 죽을 게 뻔한 미친 짓이 아닌가.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건가?”
내 말에 세미르는 이를 악물었다.
“그냥… 죽여라.”
그의 옆에는 함께 온 다른 흑마법사들도 묶여 있었다.
몇몇은 전투 중에 이미 죽었고, 살아남은 이들도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나는 그들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동시에, 비명에 가까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나도 죽여라.”
“죽여라!”
세미르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포박된 포로들이 울부짖듯 외쳤다.
자신들의 희망이 꺾인 것 마냥 절규하듯 내뱉는다.
“목숨을 구걸할 생각은 없다! 그냥 죽이라고!”
“뭐?”
듣고 있자니, 조금 어이가 없다.
“멀쩡히 약혼하는 인간, 죽이겠다고 달려든 건 니들 아니냐?”
아델라가 아니었으면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
최소한 어디론가 끌려가서 큐브에 대한 정보를 토해 내라고 협박당하고 있었겠지.
“어? 교양 있게 클래식 쫙 들으면서, 손 붙잡고 약혼 한 번 해 보겠다는데… 난데없이 습격해서 그걸 망쳐 놓고선, 뭐 그리 다들 날 죽일 놈 취급을 할까?”
가만히 있다가 처맞은 건 나란 말이지.
“여기서 죽일 놈이 나냐, 니들이냐?”
“….”
여기엔 세미르도 할 말이 없었는지 꾹 입을 닫아 버렸다.
“입이 있으면 말을 좀 해 보시지?”
꼴에 자존심 세우겠답시고 죽여 달라 성원하는 모양인데.
약혼식장에서 귀족들을 습격한 것은 중죄다.
황제가 나서지 않아도 한태수 선에서 이들을 전부 정리할 수 있다.
아니, 내 선에서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굳이 그리 죽음을 구걸하지 않아도 죽을 예정이라는 소리다.
나는 혀를 차며 세미르를 노려보았다.
“죽어 보지도 않은 것들이 입만 살아 설치는군.”
유경험자로선 기가 찰 노릇이다.
한 번 죽어 보면, 죽여 달라 난리 치진 않을 텐데.
어… 한 번 잘못 죽어서.
여기 떨어져서 개고생하는 사람도 있는데!
지난 일을 떠올리며 한탄하는데, 세미르가 입을 열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한 일이니, 그리 말하는 것이다.”
“죽음을 각오하고 남을 죽이는 게, 니들이 하는 짓거리라고?”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
약혼식장을 습격하여 나를 잡아갈 생각이었지만, 애초에 피를 볼 생각은 없었다고.
세미르는 그렇게 말했다.
“나는 명령대로 네게 큐브를 받아갈 의무가 있었다.”
결론은 큐브를 얻기 위함이었다.
고작 그 돌덩이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건 너무 과하지 않나.
그래 봤자 그 힘은 1부의 최종보스, 아바돈이 쟁취할 텐데.
대체 무슨 신념으로.
무슨 대의 때문에, 그리도 큐브에 집착하는 건가.
그 돌덩이가 뭐가 그리 좋다고.
나는 세미르의 말을 비웃으며 물었다.
“큐브로 뭘 하려는 건데?”
“평등한 사회를 만들 거다.”
“뭐?”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대답에 적잖이 당황했다.
“그건 또 뭔 개소리야?”
처음 듣는 소리였다.
내가 알고 있는 한, 큐브를 모으는 원래 목적은 그저 힘을 얻기 위해서.
십여 년 전의 패배를 복수하고, 아르델 제국을 손에 넣기 위함일 텐데.
“진심인가 본데.”
하지만, 결연해 보이는 세미르의 눈빛은 분명 거짓을 말하고 있지 않았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아바돈은 큐브를 이용해 전쟁을 준비했다.
거기에 인류는 평등하니, 어쩌니 하는 거창한 뜻은 없었다.
온 세상 사람을 제 아래에 두는 것도 평등이라면 평등이겠다만….
세미르의 말은 분명히 그 의미와 달랐다.
그가 나를 노려보며 물었다.
“귀족의 존재 의의가 뭐라고 생각하나?”
“….”
“답할 수 없겠지. 애초에 없으니까.”
세미르는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들었다. 다른 포로들 역시 비슷한 눈빛을 하고서, 나를 돌아본다.
처음 저 계단을 내려왔을 때, 다들 내게 왜 그리도 적대적이었는지 알 것 같았다.
“가지고 태어난 건 핏줄밖에 없는 것들이, 너무 편하게 설치고 다니는 세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너무 당연하게도, <슬카데미>는 흑마법사들을 조명하지 않는다.
어떤 심정으로 전투에 참여했는지. 대체 왜 그리도 절박했는지.
그저 불나방처럼 달려들다 이한의 손에 죽어 갔을 뿐, 그 이유는 서술되지 않았다.
세미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건, 그가 이름조차 언급되지 않고 죽어 나간 엑스트라 중 하나였다는 의미겠지.
그러니, 내가 세미르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처음이다.
“너 같은 녀석들은 제 눈밖에 벗어나면 죽여 버리면 그만이겠지.”
“그럼에도 처벌을 받지 않아. 당연한 거겠지. 날 때부터 잘나고 고귀한 존재였을 테니.”
나는 세미르를 빤히 바라보며 그의 말을 기다렸다.
세미르는 내게 물었다.
“전쟁이 일어났을 때, 나는 몇 살이었는지 아나?”
“글쎄. 노안인 것 같아서 헷갈리는데.”
“…네 나이보다 어렸다.”
세미르는 십여 년 전에 열다섯이었고,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흑마법사였던 그의 아버지 역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국은 다 잡아 가뒀지. 살기 위해 도망쳤다. 잘못을 했든, 하지 않았든, 전쟁 후의 삶은 지옥이었다. 숨어 다녀야 했고, 잡혀간 가족들은 전부 죽었지.”
“….”
“그렇게 쉼 없이 우리들을 학살하다가… 몇 년이 지나서 아카데미에 강령과가 만들어졌다. 나 역시 강제로 그곳에 보내졌지. 강령과의 존재 의의가 뭔지… 너는 알고 있나?”
강령과는 제국법상으로 금기된 흑마법을 배울 수도, 사용할 수도 없다.
그만한 제약을 가지고도 지금껏 유지되어 왔다.
그 금기를 깨고 사고를 치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표면적으로는 분명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아예 만들 필요가 없던 강령과를 만들고 유지하는 이유라….
세미르는 비릿하게 웃으며 말을 뱉었다.
“감시하기 위함이지.”
“한데 모아두는 편이, 감시하기도 편하니까.”
“죄를 짓지도 않은 아이들한테까지 그리하는 게… 역겹진 않나?”
뿌리 깊은 차별 때문에, 강령과는 늘 불만을 품고 살았다.
그렇기에 마법과와 강령과는 땅이 무너져도 화해할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애초에 그런 관계를 설정한 것조차 제국이 계획한 것이라면 확실히 섬뜩하긴 했다.
세미르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을 이었다.
“황제가 있고, 귀족이 있고, 평민이 있고, 그 아래에 우리들이 있는데. 어떻게 이 사회가 평등할 수 있지?”
그러곤, 이를 악물었다.
“이 사회는 우리를 악으로 규정하겠지.”
헌데,
“우리를 악으로 만든 건 제국이 아닌가.”
신념에 돌아 버린 사람은 설득할 수 없다.
세미르는 큐브가 그 구원이라 생각했고, 죽을 것을 알면서도 발악하듯 말을 뱉었다.
“태초부터 잘못되었으니 바꾸려는 거다. 너는 네 형 한시혁이… 왜 마법부 위원 이상으로 못 올라갔는지 아나? 서자이기 때문이지. 너보다 판단력이 뛰어난 데다, 강할 뿐더러, 제국의 제일가는 예언가여도. 결국, 별 볼 일 없는 아카데미의 교수 나부랭이나 하고 있지 않나?”
“….”
“네 형은 천재였지, 허나 평생 너를 뛰어넘을 수는 없을 거다. 그 천한 출신 때문에.”
“….”
“불쌍한 일이지. 안타까운 일이지. 하지만, 그게 현실이야.”
세미르는 묶인 채 제 신념을 뱉어 냈다.
제국이 어찌나 불공평한지, 죄 없는 자신들을 옭아매었는지 따위의.
틀린 말은 아니나 뒤끝이 씁쓸한 변명 같은 말들.
나는 붉게 충혈된 세미르의 눈을 응시하며 그의 말을 끊어 냈다.
“네 생각에 어느 정도는 동감해. 아니, 맞는 말이지. 인간은 평등하니까.”
“뭐?”
“어차피 뒈지면 다 흙바닥이거든.”
변명은 이만큼 들었으면 되었다.
나는 세미르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근데, 내가 조선시대에 태어났다면 같은 말은 안 했을 거거든. 딱 단명하기 좋은 소리니까.”
세미르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는 한쪽 무릎을 굽혀 세미르와 눈높이를 맞췄다.
“주절주절 변명한다고 네 살육이 정당화되진 않는다고.”
큐브를 위해서는 그 누구도 죽일 수 있으면서, 정의를 표방하는 점이 어이가 없었다.
나는 세미르의 신념을 지적했다.
“인간은 평등하다면서, 왜 내 희생은 강요하냐? 너네들의 반역은 숭고하고, 큐브를 위해 나를 죽여 버리는 건 괜찮고?”
“그… 그건….”
“그런 정의가 어디 있지? 아니, 그딴 걸… 정의라 부를 수 있나?”
먼지를 털고 일어나며,
나는 세미르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전에 없던 혼란스러움이 잔뜩 묻어 있었다.
아니, 그걸 애써 부정하려 하고 있었다.
“내겐 그게 정의다! 그 정의를 위해 평생을 싸웠는데… 너희들이 비참하게 밟은 생명들에 복수하기 위해 얼마나….”
“네 입으로 말했네. 그건 정의가 아니라 복수겠지.”
“…!”
“네 복수에 신념을 넣지 마.”
그건 합리화가 되고, 광기가 되며,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된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부풀어 오른 얼굴을 향해, 싸늘하게 인사를 뱉었다.
“후. 그래, 잘 알겠으니까. 평등하게 흙바닥에서 만나자고.”
저들의 처분은 한태수가 맡아서 할 테고, 굳이 내가 끼어들 필요는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그만 이 피곤한 지하 감옥을 뜰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아, 정정할 게 하나 있는데.”
생각해 보니 아주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두 눈을 크게 치켜뜬 세미르를 향해 지적했다.
뭐, 한시혁이 나보다 뛰어나며 강하고, 천재인데 서자라서 뜨질 못했다는.
아까 그 선넘은 발언.
…어이가 없네.
“한시혁보단 내가 낫지.”
친형제가 아님에도 묘하게 아니꼬운 감정은 감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