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1)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01화(201/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01화
점을 보고 왔더니 상단이 난리가 났다.
시장 한복판에 시끌시끌하게 모여 있는 사람들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프리드 상단답지 않게 시끌시끌했고,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이마를 손으로 짚은 채 한숨을 푹푹 내쉬고 있는 엘리사.
검은 머리의 그녀를 발견하자마자 불러 세웠다.
“갑자기 무슨 일이에요?”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뭔 일이 터진 건 맞는 것 같고.
단체로 해결해 보려 머리를 싸매고 있는 상황이다. 나는 경계를 늦추지 않은 상태로 살얼음장 같은 프리드 상단의 분위기를 확인했다.
얼핏 봐서는 세멘트 상단과 싸움이 벌어졌을 때보다도 심각해 보이는 얼굴들이다.
엘리사는 잔뜩 굳은 얼굴로 입을 떼었다.
“오늘 들어왔어야 할 물건이 안 들어왔거든.”
“물건이요?”
“어, 세멘트 상단 쪽에서 빼돌린 것 같아. 지난번 건에 대한 보복이었는지, 상인 몇 명이 돌아오지 않고 있어.”
“그러면 어떻게 해요?”
윤하을이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상인 몇 명이 납치되었는지, 죽었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거기에 더해 당장 내일까지 납품해야 할 물건이 안 들어왔단다.
그 물건을 받아가야 할 엘리사 입장에서는 속이 터질 노릇. 창백해진 얼굴만 봐도 심각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직접 되찾으러 가야지. 별수 있나.”
“…안 위험해요?”
“위험하지. 그러니까, 애들은 빠져 있어.”
엘리사는 당황한 기색의 윤하을과 아델라를 돌아보며 말을 뱉었다.
그러고는, 한숨을 내쉬며 나를 쓰윽 돌아본다.
“걱정 마. 수습도 데려갈 생각은 없어. 싸움도 못해서 세멘트 상단에 끌려갔던 놈들 데려가 봤자, 그냥 개죽음이야.”
이건 조금 억울한데.
어찌 되었건, 마력도 대놓고 못 쓰는 상태에서 따라가 봤자 전력에 큰 도움이 되진 않을 테니 그 말에 수긍하려던 찰나.
잠시 움찔거리던 윤하을이 내 손을 붙잡았다.
“저희도 가면 안 될까요?”
“뭐? 너네가?”
엘리사는 질색하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웬 패기냐는 듯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놓고 하는 비웃음은 아니었지만, 어이가 없다는 뜻임은 분명했다.
“애들 소꿉장난이 아니야. 올 때 봤잖아. 운 나쁘면 죽을 수도 있어.”
“저희도 잘 숨어 다닐게요. 그냥… 뭐, 도움이 될 게 있나 싶어서.”
피곤한 일은 절대적으로 피해 다니는 윤하을이다.
뜻밖의 적극적인 한마디에 이상함을 감지한 아델라도 거들었다.
“싸움은 좀 할 줄 알아요. 검만 주시면 돼요.”
“하… 하하… 패기는 좋은데, 얘들아. 지금 너네 말이 되게 신빙성이 없거든? 저기, 저 친구가 말하면 모를까.”
나?
갑자기 나를 지목하길래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도 싸움은 한가락 하죠.”
“어, 그래서 단체로 얻어터지고 거기 끌려가 있었어?”
아.
“뭔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무리 손이 부족하다지만 너네는 안 끌고 가. 뭐, 죽고 싶은 생각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나는 천천히 윤하을을 돌아보았다.
느닷없이 저 말을 꺼낸 데엔 생각이 있을 터.
어서 말해 보라는 듯한 내 눈빛에, 윤하을은 애매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표정에 확신은 없었지만….
일단 가는 게 좋다, 라고 판단한 얼굴이었다.
오드리세의 점쟁이보단, 예언가 윤하을을 믿는 게 낫겠지.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엘리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사고치지 말고 안전한 여기에나 꼭 붙어 있어라. 어차피 몇 사람 가지 않을 거야.”
“아, 그럼요.”
“물론이죠.”
당연하지만….
우리는 원래 말을 드럽게 안 듣는 놈들이라서.
이번에도 들을 생각은 없었다.
* * *
삐쭉삐쭉 튀어나온 머리에 험악한 인상의 얼굴.
남들보다 체격이 월등한 것은 아니지만, 말테의 눈에는 은은한 광기가 서려 있었다.
그렇기에 세멘트 상단의 누구도 말테를 쉬이 건드리진 못했다.
그런 그의 눈이, 오늘은 온전한 광기로 빛나고 있었다.
“하아… 이게 다 얼마짜리냐?”
커다란 상자에 수북이 쌓여 있는 흑요석.
말테는 기분이 좋은 듯 깔깔거리며 검은 광택을 내는 그것들을 손으로 쓸어 담았다.
프리드 상단에서 흑요석을 비싼 값어치로 올려 팔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배알이 꼴려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
“요새는 구하기도 힘들 텐데. 이 자식들이 이걸 어디서 구해 온 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흑요석의 수요가 요즘 들어 급격히 증가했다.
채굴장을 샅샅이 뒤져도 흑요석을 찾아낼 수가 없으니 발만 동동 굴리고 있던 찰나에, 프리드 상단의 뒤통수를 거하게 쳤다.
“병신 새끼들. 지금쯤 이걸 찾으려고 난리가 났을 거야, 그렇지?”
“어디로 납품해 온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저희와도 거래하겠죠?”
“안할 이유가 뭐가 있어? 근데, 나는 여전히 이 지랄맞은 보석으로 뭔 짓을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목걸이로 하고 다니기엔 색깔이 영… 저주받은 기분 드는데.”
“독특한 취향의 귀족들인가 보죠.”
“하기야 그 양반들 대가리를 들어갔다 나올 수는 없으니.”
말테는 낄낄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서 그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무명은 이를 악물었다.
“또 지랄났네.”
프리드 상단 측 상인 두 명을 납치해서 살해.
시체는 아무렇게나 창고에 던져 두고 물건부터 확인하고 있는 꼴이 역겨웠다.
그리도 역겨운 와중에 이들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점이 가장 역겨웠다.
프리드 상단 사람들이 오늘 내로 보복해 올 것이다.
그러니, 미리 준비해 둬라.
상인들이 시키는 대로 낡은 검을 갈고 있던 무명은 날카로워진 검날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아… 튈까.”
이번으로 여섯 번째 도주가 될 것이다.
지난번처럼 프리드 상단이 또 습격해 오면 손에 쥔 검으로 냅다 아무나 찌르고 도주할까.
무명은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
헌데,
주변이 이상하게 고요하다.
“음?”
생각에 잠겨 있던 무명은 뒤늦게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시야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들어왔다.
“커억… 컥!”
아까 전까지 흑요석을 만지작거리며 즐거워하던 말테가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어?”
검에 찔린 것도, 누구에게 얻어맞은 것도 아니다.
물리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순식간의 상황이었다.
무명은 두 눈을 부릅뜬 채 제자리에서 일어났다.
위험하다.
세멘트 상단의 상인들에게 붙잡혀서 얻어터지는 것보다도 훨씬 더.
무명은 욕지거리를 뱉으며 이를 악물었다.
“시발, 뭐야.”
뒷걸음질을 치며 몸을 숨길 곳을 찾았다.
손에 들린 어설픈 검은 이런 상황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도 않았다.
애초에, 무명은 검을 쓸 줄 모른다.
그리고, 여기는 지금 검을 쓸 줄 아는 이들이 무력하게 죽어 나가고 있다.
“커어어억!”
검을 쥐고 무작정 달려들던 상인 하나가 그대로 목이 꺾여 죽었다.
바르작거리며 바닥에서 날뛰는 상인을 본 무명은 저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았다.
허구한 날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쟁터 같은 마을.
이런 광경을 어려서부터 봐 온 무명이었지만, 이토록 압도적인 학살은 처음이다.
“너네 뭐 하는 것들이야!”
저벅저벅.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로브들이 이곳으로 다가온다.
악 소리를 지르며 뒷걸음질 치던 상인 하나가, 말테와 다를 것 없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런 그를 로브를 쓴 인간이 무참히 베어 버렸다.
촤악-.
서걱.
저들은 아직 뒤에 있던 무명을 발견하지 못한 눈치였으나, 피가 코앞까지 튀었다.
“제길.”
무명은 이를 악물고선 발소리를 죽였다.
검은 로브를 쓴 인간들이 세멘트 상단의 창고 터를 둘러싼다.
지난번 습격으로 재가 된 창고는 더 이상 몸을 숨겨 줄 공간이 충분치 않았다.
무명은 잿더미가 되어 버린 물건들 뒤로 몸을 피했다.
그 상태로 입을 틀어막은 채 밖을 살폈다.
그저 처참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로브를 쓴 한 명이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목격자를 남기지 마라.”
그 말인즉슨, 이 자리에 있는 모두를 죽인다는 의미.
살아남은 몇몇 상인은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멈춰 있었다.
벌벌 떨던 그웰이 용기를 내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누… 누구십니까. 용건이 대체… 억!”
유감스럽게도 그웰은 더 말을 잇지 못했다.
뚝.
로브를 쓴 이가 그의 목을 움켜쥐고선 비틀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차가운 목소리가 섬뜩하게 답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우리의 물건을 가져간 대가겠지.”
그웰의 질문에 대한 대답인 듯했으나, 대답을 들을 이는 바닥에 나동그라져 있었다.
콰직.
콰직.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잔혹한 소리가 가까운 곳에서 울려 퍼졌다가 이내 잠잠해진다.
상인 하나가, 둘이, 아니 열댓 명이 무참히 쓰러진다.
차원이 다른 공포다.
무명은 질끈 두 눈을 감았다.
저 섬뜩한 시선이 이곳을 향하는 순간, 제 목숨도 여기까지다.
“제발… 제발….”
그냥 지나가 주길 바라며.
무명은 영원 같은 순간을 기다렸다.
그때였다.
가장 앞줄에서 로브를 쓴 이가 검은 로브를 벗어 내렸다.
스르륵.
로브가 벗겨지며 검은 머리의 여자가 얼굴을 드러냈다.
한 손으로 멀쩡한 인간의 목을 비틀어 버렸다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얼굴.
아니, 그보다 더.
자신에게 너무도 익숙한 얼굴.
무명은 제 눈을 의심하며 고개를 들었다.
“누나…?”
자신을 두고 죽어 버린 최악의 보호자.
제 누나가 살아서 돌아왔다.
* * *
다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 있었나.
소란에 고개를 돌린 엘리사 역시 얼어붙은 것은 마찬가지였다.
“….”
몇 년이 지났다.
허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맞아 죽을 뻔한 바람에 세멘트 상단을 쫓기듯 도망쳤을 때.
데리고 가지 못했던 유일한 가족.
무책임한 보호자였던 엘리사는 몇 년이 지나서 제 동생을 다시 마주했다.
“네… 네가 왜 여기에….”
살아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질긴 목숨일지라도, 세멘트 상단에서 죽어 나간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힘이 없고, 나약하며, 눈치까지 없는 제 동생이.
살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엘리사는 동생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안은 채 평생을 살아왔다.
그런데.
어째서.
여기서 이런 모습으로, 이렇게 만나는가.
무명이 떨리는 소리로 물었다.
“여… 여기서 뭘 하는 거야? 방금… 했… 했던 것은 뭐고?”
엘리사가 썼던 마법은 흑마법이다.
마법이라는 개념을 좀처럼 이해하지 못하는 무명의 눈에는 그저 경악스런 광경일 뿐이다.
엘리사는 그 개념을 설명해 줄 수 없다.
동생을 몇 년 만에 마주쳤지만 감동적인 재회를 할 시간도 없다.
그저, 무명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간절하게 외칠 뿐이었다.
무명에겐 이름이 있다.
본인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이름을, 엘리사는 기억했다.
“에덴, 도망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무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평생 바라 왔지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왔던 순간이었다.
누나와의 재회.
“죽…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몇 년 만에 살아서 돌아왔는데… 내… 내가 이 세상에서 믿고 기댈 사람이 여전히 아무도 없는데. 내… 내가 왜 누나를 두고 도망쳐야 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자신을 구하러 돌아왔다.
무명은 그리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구원이 아니다.
“도망쳐야 해. 여기는 위험해.”
엘리사는 그런 무명을 잔인하게 내친다.
너무 많은 것을 봐 버린 아이. 그런 아이를 살려 둘 수 없다.
이미 한 번을 버린 동생이지만, 살리기 위해 두 번을 버려야 한다.
아직 어린아이가, 홀로 살아가기엔 너무도 녹록치 않은 세상이지만.
그럼에도 살려야 한다.
엘리사는 눈물을 흘리며 무명을 떠밀었다.
“어서! 어서! 도망치라고!”
로브를 쓴 다른 이들이 항의하려는 듯 앞으로 나섰지만, 엘리사가 그들을 막아 세웠다.
단 한 사람만 오지 않으면, 무명을 보낼 수 있다.
말이 나온다 해도 자신이 책임질 것이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그러니, 너는 가라.
무명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눈치 없는 무명이지만, 엘리사의 눈에 서린 공포는 그를 행동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무명은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검은 그림자가 두 사람 위에 드리웠다.
“나는 물건을 찾으러 왔는데, 불청객이 있었네?”
살벌한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명랑한 목소리.
절대 이 자리에 와서는 안 되었을 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엘리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그… 그… 그게….”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
늘 웃고 있지만 웃는 것으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그런 괴이한 미소.
로브를 쓴 여자가 무심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말없이 지팡이를 들었다.
엘리사는 몸을 날려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안, 안 됩니다! 제 동생입니다! 제… 제 친동생이에요.”
세멘트 상단을 나온 뒤로 평생을 헌신했다.
엘리사는 꽤 유능한 마법사였다.
수틀린다고 자신 정도의 전력을 죽여 버리지는 않을 거라는 판단 하에 애원했다.
그런 엘리사의 판단은 틀렸다.
그녀는 엘리사를 죽이지 않았다.
다만,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을 뿐이었다.
“…그래서?”
“예… 예?”
소름 끼칠 정도의 적막이 공터를 휩쓸었다.
이미 수많은 상인들이 죽어 나간 세멘트 상단의 터.
그 섬뜩한 땅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던 여자가 엘리사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로브에 가려진 얼굴 틈으로 비치는 눈빛만은, 흑요석보다 깊고 서늘했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
그녀는 웃으며 손을 뻗었다.
“커억!”
풀썩.
그 서늘한 한마디와 함께, 무명이 피를 토하며 고꾸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