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04화(20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04화
아르케넨트 령에 함정을 설치했을 때, 비단 솔리아만을 노린 것은 아닐 터다.
설령 솔리아만을 납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한들, 그녀를 미끼로 결국 나와 이한을 끌어냈겠지.
그들의 수작은 뻔했다.
소수이지만 대적하기 버거울 정도로 강한 흑마법사들.
로브에 가려져 저들의 정체를 알 수는 없었으나, 저들 하나하나가 아첸트 수준의 전력은 되겠지.
하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모든 상황이 계획한 대로만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솔리아를 손쉽게 꺾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자리에, 결사단 전원이 모였다.
아카데미의 최강자, 이한이 바람처럼 앞으로 달려 나간다.
마치 공간을 파훼할 듯한 일격.
로브를 쓴 이들이 당황한 듯 뒤로 물러선다.
그런 이한을 지원하듯 치고 나가는 시모어.
그리고 이 숲의 대지를 엎어 버릴 듯 염동으로 상대를 몰아치는 아델라와 6학년 수석을 빠르게 따라잡으며 성장하고 있는 윤하을이 뒤따랐다.
“…불청객이 많이 모였군.”
불쾌한 듯 읊조리는 음성이 바람을 타고 흘러들어 왔으나, 지금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전투는 이한과 아델라에게 맡겨 두어도 충분하다. 최소한 저들의 발을 묶어 둘 정도는 될 테니까.
내가 신경 써야 할 사람은 오직 한 명.
나는 한달음에 솔리아를 향해 달려갔다.
“한… 시하?”
솔리아답지 않게 메마른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 왔다. 침을 삼키는 것조차 버거운 듯 솔리아는 파리하게 질린 입술을 달싹였다.
더 볼 것도 없이 상태는 최악이다.
“솔리아, 말 안 해도 돼.”
“어어….”
“잠깐만. 여기 누워 봐.”
나는 다급히 솔리아를 제자리에 눕혔다.
더 안전한 장소를 찾을 수 있다면 그리했겠지만, 이 상태로 움직이는 것은 무리다.
부욱-.
과감히 셔츠의 팔을 찢었다.
휑하니 드러난 왼팔 사이로 서늘한 바람이 통했다. 너덜너덜해진 셔츠의 천을 두 손으로 팽팽하게 늘렸다.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독이 더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솔리아의 다리를 묶었다.
“아… 악!”
고통스러운지 솔리아가 이를 악물었다. 그런 솔리아를 진정시키며 되뇌듯 말을 뱉었다.
“괜찮아.”
“으윽….”
“괜찮아, 솔리아. 괜찮아….”
해 줄 수 없는 말이 이것밖에 없다.
괜찮다는 말이 솔리아에게 하는 위로인지, 자기 암시인지조차 알 수 없다.
“괜찮을 거야….”
폭탄처럼 일시에 폭발한 마기가 솔리아의 발끝에서부터 퍼져 나가는 중이다.
해독 아티팩트는 이미 한계에 이르렀으니 임시방편은 더 이상 무의미하다. 한시라도 빨리 아카데미로 복귀해야 한다.
나는 아랫입술을 악물고선 솔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업혀, 가자.”
다른 녀석들이 이를 악물고 버텨 내고 있는 중이나, 저들이 노리는 것은 결국 나일 확률이 높았다.
언제 습격해 올지 모르는 와중에 솔리아를 업고 피신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다.
짐이 되리라는 것을, 솔리아도 모를 리 없었다.
떨리는 눈꺼풀로 힘겹게 고개를 든 솔리아가 입을 뗐다.
내 이름을 불렀다.
“한시하.”
“응?”
“위험하잖아… 왜… 왔어?”
솔리아를 살려야 하는 이유는 사실 확실하다.
흑마법사들이 가장 거슬려할 상대 중 하나이자, 잃기에는 더없이 아까운 전력이니까.
그렇기에 솔리아를 살린다면 스토리의 난이도 역시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그래, 그런 게 이유였던 적이 있었다.
“왜냐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찾아와, 적들의 한복판에서 몸을 내놓고 있다. 이 말도 안 되는 개짓거리에 다른 구차한 이유 따윈 없다.
그냥… 그냥….
네가 살았으면 좋겠어서야.
다른 이유 다 필요 없이, 너를 잃고 싶지 않아서.
빛의 마법사를 잃은 세상엔 어둠뿐일 테니.
나는 그 어둠에서 살고 싶지 않다.
“너를 살리러 왔어.”
나는 솔리아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웃었다.
이번에도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어서, 나는 아무 이유나 뱉었다.
“네가 내 약혼자라서.”
대충 둘러댔는데, 솔리아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잖아. 그 약혼, 하기 싫어했던 거 알아.”
“뭐?”
“변명은… 괜찮아. 처음부터 알고 있었으니까.”
약혼만은 막아 보겠다고 그리도 투닥였던 우리다.
솔리아는 그때를 회상하듯, 실눈을 뜬 채 말을 이었다.
“근데… 그거 알아?”
“나는… 나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좋았어.”
그리고, 힘겹게 말을 토해 낸다.
“나, 너와 약혼하고 싶었어.”
몰랐다.
그저 싫어하는 줄 알았다.
내 필요 때문에 그 약혼을 원했던 건데, 솔리아만은 그 자리에서 진심이었다.
솔리아가 떨리는 손으로 목걸이를 움켜쥐었다. 솔리아를 닮은 목걸이는 이 순간에 서럽게도 빛나고 있었다.
솔리아는 나는 올려다보며 확신하듯 물었다.
“이거… 청혼 선물은 아닌 거잖아. 그렇지?”
대답이 없는 나에게, 솔리아가 슬프게 웃어 보였다.
“나는 네 약혼자도 아닌데….”
“너한테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래도 와 줘서 고마워.”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울 텐데.
그 한마디, 한마디가 소중하다는 듯 뱉어 내는 솔리아에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솔리아는 흐릿한 미소를 흐리며 말했다.
“아픈데, 외롭진 않아.”
“당연하지. 나, 여기 있어.”
“응… 응….”
멍한 눈의 솔리아가 숨을 헐떡이며 내 팔을 붙들었다.
차마, 그 여린 손을 놓을까 봐. 나는 그 손을 더 세게 움켜쥐며 말했다.
“어디 가지 않아.”
“어… 어. 고마워….”
이렇게 숨을 쉬기도 힘들어하는데.
독이 퍼져 나가 고통스러워하는데.
너는 왜 내게 고맙다고 하는 걸까.
투욱-.
솔리아가 힘없이 나를 잡고 있던 손을 떨구었다.
“네가 좋아, 한시하.”
그러고는, 웃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그런 솔리아를 부서질 듯 껴안았다.
* * *
흰 커튼이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마치 환영처럼, 좌우로 흔들흔들.
경박스러운 움직임에 절로 눈이 떠졌다.
그런데.
“어…?”
커튼이 아니라 은발의 머리카락이었다.
찰랑찰랑한 머리카락에 반짝이는 자색의 눈동자….
누군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어… 어어?
“히이이익!”
그 사실을 깨달은 순간, 나는 기겁하듯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때문에, 나를 따라서 지레 놀란 솔리아가 두 팔을 저으며 뒤로 자빠진다.
어… 어….
솔리아는 그대로 균형을 잃고 말았다.
우당탕탕.
“으아아악!”
“어어억!”
그걸 붙잡겠다고 팔을 뻗는 바람에 나도 같이 침대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악!”
침대 모서리에 무릎을 박는 바람에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잠이 확 깰 만한 통증이 순식간에 정신을 휩쓸었다. 마찬가지로 바닥에 데구루루 구른 솔리아가 악 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다.
“괜찮냐?”
“아악….”
솔리아의 병간호 때문에 며칠 밤을 지새웠더니, 누운 지도 모르고 그대로 쓰러져 자 버렸다.
몸이 조금 회복되어 일어났더니 내가 침대에 누워 퍼질러 잠만 자고 있으니, 궁금해서 찾아온 모양이었다.
근데 냅다 비명부터 질러 버렸네.
“깜짝이야. 놀랐잖아.”
“미, 미안!”
나는 뒤늦게 가슴을 쓸어내리며 솔리아의 상태를 확인했다.
방금은 무슨 처녀귀신처럼, 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부터 냅다 들이밀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일단, 때깔은 다행히 살아 있는 사람 같아 보인다.
“일어났구나.”
“으응….”
저주받은 숲에서 그대로 기절해 버린 솔리아를 안고 뛰었다.
기차를 잡겠다고 날뛰면서 아르델 아카데미까지 정신없이 내달렸다.
고비가 몇 번이고 있었지만 솔리아는 잘 버텨 주었다.
한눈에 봐도 호전된 것 같은 상태에 흐뭇한 미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다행이다….”
정말 위험할 뻔했는데 살아 줘서.
무사히 버텨 줘서 정말 다행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솔리아를 빤히 바라보는데….
잔상처럼 솔리아의 말이 귓가에서 맴돌았다.
‘네가 좋아, 한시하.’
이게 이 상황에서 왜 갑자기 떠오르는 거냐.
나는 헛기침을 하며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크흠.”
“왜?”
“아니, 아무것도 아닌데.”
원래 독 기운이 오르면 사람이 헛소리도 하고 그러는 법이지.
어, 그럴 수 있어.
근데….
근데….
맨정신인 나는 이러고 있으면 안 되는 거 아니냐!
너는 어디 아픈 것도 아니잖아!
‘네가 좋아, 한시하.’
‘네가 좋아, 한시하.’
아니야, 그거 아니야!
미치겠네.
퍽-.
무슨 반복재생처럼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생생한 음성에 냅다 귀를 때렸다. 거의 미친놈 같아 보이는 행동이다.
솔리아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내 팔을 붙들었다.
내 돌발행동에 기겁한 기색이 역력했다.
“너 왜 그래? 혹시 귀 아파? 마기에 너무 노출되어서 그런 거 아니야? 마기의 부작용… 뭐 그런 건가?”
“…아니. 멀쩡한데.”
“진짜로?”
“이 팔을 놔주면 진짜 멀쩡해질 것 같은데.”
나는 솔리아가 꼬옥 붙잡고 있는 내 손목을 돌아보았다.
“으으응?”
“아니야, 미안.”
와중에도 솔리아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내 머릿속을 헤집고 있었다.
나도 약 기운에 취했나….
침을 삼키며 솔리아의 얼굴을 빤히 응시했다.
아침 햇살 때문인지, 뒤늦게 돌아온 혈색 덕분인지.
솔리아의 두 눈이 오늘따라 유독 반짝인다.
마치….
내가 선물로 줬던 목걸이처럼….
“돌은 게 분명하네.”
“응? 갑자기?”
“신경 쓰지 마. 노망나서 그래.”
“…?”
착. 착.
정신 좀 차리라고 뺨을 두들겼더니 조금 생각이 맑아진다.
그래, 내가 미친놈이지.
“아… 정신이 좀 드네.”
후하.
심호흡을 하며 말을 돌렸다.
솔리아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아무튼 상태 조금 좋아졌어도 지금은 무리하면 안 되니까. 당분간 양호실에 꼭 붙어 있어. 어디 나가지 말고….”
그리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한 눈길에 다시 말문이 막힐 뻔했는데, 구세주처럼 양호실 선생이 커튼을 젖히고 들어왔다.
“어, 괜찮아졌나 보네?”
“어, 선생님!”
아르델 아카데미의 양호실을 전담하는 수준급 치료사, 다나 선생이 솔리아의 안색을 확인하며 말했다.
응급처치는 내가 했지만, 몇 날 며칠을 지극정성으로 솔리아를 보살펴준 감사한 사람이다.
덕분에 죽을 뻔했던 고비도 무사히 넘길 수 있었고.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네, 조금 괜찮아졌나 봅니다.”
“다행이네. 살 만한 얼굴이야.”
“네에….”
“아직 죽을 때는 안 됐나 보다.”
“하핳….”
솔리아는 멋쩍게 웃어 보였고, 다나 선생은 그런 솔리아를 보며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정확히는 솔리아의 목걸이를 손으로 가리키면서였다.
“아. 맞다. 올 때부터 궁금했었는데 그 아티팩트는 뭐야? 고급 아티팩트인가?”
“어… 그게… 이 친구가 직접 만들어….”
“뭔지는 몰라도 그게 사람 살렸다.”
“네?”
다나 선생은 소탈하게 웃으며 말을 얹었다.
“네가 쓰러졌을 때, 무슨 부적 마냥 너 지켜 주려는 것처럼 쉼 없이 돌더라고.”
“정… 정말요?”
“그게 아니었으면 정말 죽을 뻔했어. 어디서 사 온 물건이면 판 사람한테 절이라도 하러 가.”
능청스런 다나 선생의 말에 솔리아가 슬쩍 나를 돌아보았다.
딱히 별다른 말은 얹진 않았지만, 반짝 빛나는 저 눈빛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있었다.
“네, 절이라도 하러 갈게요.”
솔리아가 내 쪽을 돌아보며 배시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