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05)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05화(205/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05화
방학이 끝났다.
등교 첫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브런치를 즐기고, 일찌감치 수업을 준비하며 여유롭게 기숙사를 나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유난히 따스하게 느껴지는 햇살과, 귓가에서 짹짹거리는 참새의 노랫소리.
“…어라?”
뭐냐, 이 등골이 싸한 기분은?
나는 더듬거리며 책상의 시계를 확인했다.
음.
8시… 48분?
“시발.”
“어어어어억!”
내가 욕지거리를 뱉자마자, 원이 침대에서 튀어 올랐다.
까치가 와서 집을 짓고 가도 될 정도로 삐쭉 튀어나온 앞머리에, 잠이 덜 깬 듯 몽롱한 얼굴.
아.
이 새끼도 같이 좆됐구나.
“일어나아아악!”
“미친, 뛰어! 뛰라고!”
우당탕탕.
짐을 챙길 새도 없이 일단 보이는 것을 집어 들고 방을 나갈 채비를 한다.
비명을 지르며 냅다 문을 열어젖히려는데….
원이 절규하듯 소리를 질러 댔다.
“나 바지! 바지 어디 있어!”
“새끼야, 그걸 왜 나한테 찾아!”
“없어졌어! 찾아 줘!”
“네가 찾아!”
아, 미친.
늦었다고!
나는 대충 바닥에 굴러다니는 바지 비슷한 무언가를 집어서 원의 머리로 던졌다.
“억!”
“입고 튀어나와!”
쾅.
그다음부터는 스피드다.
열댓 개의 계단을 순식간에 뛰어내리고선 강의실을 향해 내달린다.
무릎 관절이 시큰거리지 않는 걸 보면 역시 젊음이 최고다.
아,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으아아악!”
“허억… 허억….”
아직 수업이 시작되지 않은 시각.
무사히 강의실이 있는 1층에 도착하는 데에 성공했다.
됐다….
안 늦었어….
하아, 하…
“뒤질 뻔했다.”
짝.
원과 숨을 헐떡이며 손뼉을 마주쳤다.
거친 숨을 고르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강의실 문이 아직 열리지 않았는지, 복도에 모여 있는 애들이 눈에 들어왔다.
개강 첫날부터 혼잡한 복도.
“왜들 이리 모여 있는 거냐….”
나는 투덜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때, 원이 내 옆구리를 찌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그게 아니라 다들 뭐 보고 있는 거 같은데?”
“뭐?”
아, 그러네.
이제 보니 게시판 앞에 벽보가 붙어 있다.
개강 첫날부터 석차가 나오지는 않았을 테고.
다들 뭘 그렇게 보고 있나 싶어 조금씩 인파를 헤집고 들어간다.
“대체 뭐길래 다들 보고 있….”
그 순간, 내 얼굴을 확인한 녀석들이 기겁하듯 자리를 비켜선다.
“어… 어?”
창백하게 질린 얼굴들.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한데 모여 있던 놈들이 순순히 길을 터준다.
겁먹은 듯 움츠리며 내 눈치를 보는 녀석들.
이것들이 왜 그러는 거지?
거의 1년 만에 처음 보는 태도라 의아해하면서 앞으로 걸어 나갔다.
“뭔 일이야?”
게시판에 붙어 있는 것은 큼지막한 글씨로 써진 벽보였다.
나는 그 벽보 앞에서 멈춰 서서 천천히 벽보를 올려다보았다.
한시혁 교수는 카스티카의 서자 출신이다.
“한… 시혁?”
그 자체로도 충분히 충격적인 정보겠으나,
나는 입을 벌린 채 아래로 고개를 내렸다.
그리고, 그 밑에.
굵게 써진 글씨.
한시혁 교수는….
흑마법사다.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 * *
불쾌할 정도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쏟아졌다.
양옆으로 갈라져 서 있는 인파는 마치 인터뷰장을 방불케 했다.
곧 마이크라도 들고 다가올 기색이다.
아니, 이미 그러고 있구나.
덱과 하릴.
평상시엔 내 눈치를 살피느라 급급했던 놈들이 가장 먼저 나섰다.
마치 저게 사실인 양 나를 취조하는 듯한 날 선 말투.
덱이 입을 떼자마자, 우르르 질문이 쏟아졌다.
“야, 한시하. 어떻게 된 거냐?”
“알고 있던 사실이야?”
“저거 진짜야? 해명 좀 해 봐.”
해명….
해명이라.
“해명은 지랄.”
내 한마디에 해명 운운하던 하릴이 슬금슬금 다른 녀석 뒤로 숨었다.
살벌한 눈빛으로 덱을 노려보자, 녀석도 움찔하더니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폈다.
유감스럽게도 카스티카를 싫어하는 놈들은 이 학교에 많았다.
주로 별 볼 일 없는 귀족가 자제들이 가지는 자격지심이기에, 내가 강하게 나가면 대응할 놈은 없다.
그중에 그나마 용기 있는 녀석이 주춤하며 손을 들었다.
얘는 내가 얼굴도 모르는 놈인데.
“헛소문이면… 카스티카의 명예에 누가 가는 셈인데, 그래도 확인해 봐야 하는 거 아니야? 뭐, 아니면 아니라고 말하면 되잖아… 의심하는 건 아니고, 걱정되어서 그러는 거지.”
말을 예쁘게 포장한다고 다 예쁜 말은 아닌데 말이야.
녀석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걱정된다고?”
“어… 어.”
“그래서 해명해 달라고?”
“말은… 그렇다는 건데….”
“정 그렇다면 해 줘야지, 뭐.”
나는 벽보를 스윽 돌아보고선 문제의 첫 문장을 읊었다.
한시혁 교수는 카스티카의 서자 출신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인정했다.
엄연히 따지면 틀린 말이지만 일단 대외적으로는….
“맞는 말이네.”
“응… 응? 뭐라고?
그러면, 그다음 거.
한시혁 교수는 흑마법사다.
“음. 이건 사실 본인한테 확인해 봐야 하는데.”
흠.
“그럴싸하네.”
“네?”
“뭐?”
“뭐… 뭐라고?”
해명하라고 지랄하던 것들이 경기를 일으키듯 놀란다.
뭐, 어쩌라는 거냐.
갑자기 덜덜 떨어 대길래 쯧, 혀를 차고선 말을 덧붙였다.
“내가 흑마법사랬냐? 소문치곤 신빙성이 높다는 거지.”
어버버.
제대로 말도 못하던 놈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선 말을 뱉었다.
여전히 머리가 텅 빈 듯한 실속 없는 헛소리였지만.
이번엔 덱이었다.
“그, 그럼 당장 가서 물어봐야 하잖아!”
“오… 내가?”
“네가 아니면 누가 물어보는데?”
“다시 한번 말해 봐. 내가 물어보고 오라고?”
“어… 그게….”
스윽. 슥.
대충 옆에 있던 종이에 주소를 적어서 녀석에게 던졌다.
덱이 두 눈을 크게 뜬 채 되물었다.
“이게 뭔데?”
“한시혁 사는 곳.”
“뭐… 뭐?”
한시혁의 위치를 모르니 당연히 거짓 주소지만, 그래 봤자 진짜 흑마법사가 나타나면 찍소리도 못하고 지릴 놈들이다.
“니들이 가서 물어보든가.”
“…!”
“꼭 찾아가라. 알았지?”
“내… 내내내내가? 직접?”
“궁금하다며. 교수님이 면담은 늘 환영이란다.”
됐지?
자, 대충 용건 끝났으면.
“뭘 봐, 새끼들아. 그거 들고 꺼져.”
후다다닥.
내 한마디에 녀석들이 줄행랑을 쳐버렸다.
* * *
수군수군.
친히 주소까지 적어서 줬건만, 벽보의 여파가 생각보다 컸는지 어디 갈 때마다 유명 인사가 되었다.
물론, 믿는 놈 반, 안 믿는 놈 반 같기는 했다.
너무 뻔뻔하게 나가서 그런가.
솔직하게 말해 줘도 안 믿더라.
문밖에서 수군대는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대다수는 이 사안의 신빙성을 따지고 있었다.
“야, 그게 말이 되냐?”
“서자라기엔 애초에 둘이 닮지도 않았고… 나이 차도 꽤 나잖아.”
“그것만 문제냐? 흑마법사는? 그건 사실 맞아?”
“교수님이 그럴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갑론을박이 오고 가길래 깔끔히 무시하고선 연구 샘플을 마력 증폭기에 넣고 돌렸다.
실험 세팅을 다 해 두자, 베티 선배가 어두워진 낯빛으로 다가왔다.
개강과 함께 에른스트 교수의 연구실에 재출근하게 되었고, 6학년이 된 베티 선배는 여전히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채 연구실에 붙박여 있다.
“피곤하겠다. 괜찮아?”
“어떻게 된 거냐고는 안 물어보시네요.”
“…가십거리엔 별 관심이 없어서. 어차피 잘 모르는 애들이 아무렇게나 주워섬기는 것뿐이잖아.”
베티 선배는 여러모로 참 괜찮은 사람이다.
내게 말을 꺼내는 것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기색이다. 늘 신중하고 섬세한 성격의 베티 선배.
사실 워낙에 낯을 가리는 편이라 이 정도 대화를 하기까지 1년이 걸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네, 그렇죠. 감사합니다.”
“그래, 너무 신경 쓰지는 말고… 우선 연구에 집중하자!”
베티 선배는 연구 샘플을 정신없이 라벨링하다가 내 말에 슬며시 웃었다.
그러다가 문득 무언가 떠올랐는지 화제를 돌렸다. 한시혁의 벽보 건보다는 훨씬 내 마음이 편한 주제였다.
“아, 그런데 시하야.”
“네?”
“너네 학년에 나탈리라는 친구 있지?”
“나탈리요?”
나탈리가 발이 넓기는 해도 베티 선배와는 연이 없을 줄 알았는데. 느닷없이 나온 나탈리의 이름에 놀란 얼굴로 되물었다.
둘이 사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닌 듯했고, 무슨 일 있나?
“아, 다름이 아니고… 졸업 논문이 아티팩트 관련이라… 혹시 지원을 받을 수 있나 해서 물어봤어. 작업장이 어디 있는지 알아?”
아.
윌로우 가문이 아티팩트로 유명하긴 하지.
“네. 광장 쪽에… 별로 멀리 있지는 않은데 소개해 드릴까요?”
밥 먹듯이 간 곳이니 지리는 꿰고 있다.
베티 선배는 사소한 선의에도 감격한 얼굴로 고마워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라 대충 슥슥 약도를 그려 베티 선배에게 건넸다.
“자세한 건 나탈리한테 물어보세요. 아티팩트 관련으론 저보다 그 친구가 더 잘 알 거예요.”
해독 아티팩트를 내 손으로 만든 입장에서 많이 겸손한 소리긴 했지만, 적어도 그 분야 관련으론 나탈리를 따라올 자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베티 선배의 졸업논문이 뭔지는 몰라도 나탈리가 퍽 도움이 될 터였다.
워낙 다른 사람을 돕는 걸 좋아하는 애기도 하고. 선배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설 애겠지.
“별거는 아니고 외부의 마력을 저장할 수 있는 아티팩트를 연구하는 중이라….”
“아, 네.”
“실현 가능성이 조금 떨어지긴 해도 원론적인 분석이라도 해 보려고!”
“아, 그렇군요.”
졸업논문은 아직 먼 얘기라서 퍽 와닿지는 않는다.
탈탈거리면서 불안하게 돌아가는 마력증폭기를 살피느라 베티 선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의 완성되어 가는 연구 샘플을 확인하던 그때였다.
베티 선배가 두 손을 만지작거리더니 말을 뱉었다.
“그래서 말인데… 너도 도와줄 수 있어?”
“네?”
별생각 없이 되물었을 뿐인데, 베티 선배가 화들짝 놀란 얼굴로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괜히 부담 준 거 같아서 미안해! 그… 그냥 네가 이쪽 잘 아는 것 같아서 그런 건데… 혹시나 싶어서….”
아, 생각해 보니 나탈리한테 직접 부탁하기엔 낯가리는 성격상 조금 어렵겠구나.
아마 작업장 문밖에서 쭈뼛거리다가 돌아올 것이 뻔했다.
에른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잡일이란 잡일은 알아서 떠맡아 도와주는 선배인데. 별로 어려운 게 아니라면 도와주고 싶다. 당분간은 시간도 좀 널널하고.
“저 괜찮아요.”
“진… 진짜로?”
아까 주제가 뭐라고 했더라.
아티팩트… 저장? 무튼.
“나탈리한테 물어보기 불편하면 저한테 물어보셔도 돼요.”
툭.
팔랑팔랑-.
베티 선배는 감격에 젖은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놀랐는지 손에 쥔 종이까지 떨궈 버렸다.
“시하… 너는 천사일지도 몰라….”
갑자기?
“…난생처음 듣는 소린데요.”
흑마법사 같다는 소리는 많이 들었는데 말이지.
“아냐! 넌 천사야!”
이런 사소한 걸로?
저 선배도 은근 소박한 구석이 있다니까.
베티 선배는 내 손을 움켜쥔 채 거듭 고마워했다.
“바쁜 와중에 정말 고마워.”
“아, 네네.”
“진… 진짜야. 너무 고마워.”
아아, 네.
너무 고마워해서 오히려 내가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 되었다.
베티 선배답지 않게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 냈다.
“너무 어려운 주제를 잘못 잡아서 하마터면 졸업하지 못할 뻔했거든. 나 혼자 머리 싸매 봤는데도 결론이 안 나와서… 주위에 제조학 전공인 친구들도 없고… 그래서….”
베티 선배는 침을 삼키고선 두 눈을 반짝였다.
“주제 초안 잡아 오면 너한테 가장 먼저 물어볼게!”
“네!”
“이번 주 안으로 써 올게. 약속해!”
환하게 웃으며 새끼손가락을 흔들거리던 베티 선배.
그 말에 나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네, 천천히 주셔도 돼요.”
베티 선배의 졸업논문을 컨펌해 주겠다는 약속.
사실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는데.
슬프게도,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