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1)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11화(211/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11화
폴짝.
윤하을은 가볍게 2층 난간으로 내려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새벽에 가까운 시간이었고, 제아무리 강령과 애들이 C동을 점령하고 있다한들 조용히 빠져나가면 들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응?”
머리 위로 드리우는 그림자.
머리카락이 곤두서는 듯한 불쾌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설마.
윤하을은 불길한 예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그림자의 정체를 마주하고 말았다.
“….”
훤칠한 키에 더없이 온화해 보이는 얼굴. 지극히 차분해 보이는 눈빛까지.
하필 이 상황에서 만난 것이 아니라면 반갑게 인사했을 5학년 선배.
강령과의 베르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 어어….”
윤하을은 당황한 탓에 저도 모르게 우물거렸다.
어쩌지?
어떻게 하지?
꼬옥-.
한 손으로 조이를 품에 안은 윤하을은 경계하는 눈빛으로 베르거를 바라보았다.
다른 강령과 놈들이라면 제치고 도망갔을 텐데.
왜 하필 베르거가….
이 시간에 여기에….
절대 좋다고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윤하을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 갔다.
물론 놀란 것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이것 참, 우연이라고 해야 하나. 필연이라고 해야 하나.
하늘에서 갑자기 사람이 떨어지길래 봤더니 윤하을이었다.
베르거는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뱉었다.
“직접 찾아갈 생각이긴 했지만, 이렇게 찾아와줄 줄은 몰랐는데?”
이건 또 무슨 소리야.
굳이 따지자면 강령과의 베르거가 자신에게 볼일이 있을 리 없었다.
마법과처럼 개인적인 악감정이 있는 사이도 아니며, 신학과는 이런 상황에서 별로 써먹을 데도 없을 테니.
“저한테… 볼일이 있으세요?”
윤하을은 의아하다는 듯 되물었고, 베르거는 그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그러면….”
주섬주섬.
윤하을은 바닥에 떨어진 제 지갑을 줍고선 어색하게 웃었다.
“전… 다시… 들어가 봐도 되나요?”
“….”
“길을 잃었지 뭐예요. 아이 참. 여기 길이 쫌 복잡하네… 어휴, 아무래도 길치였나 봐, 난….”
일단 탈출하고 보자.
윤하을은 비틀거리며 이마에 손을 짚었다.
누가 봐도 몰래 도망치려던 것 같은 모습으로 저리 너스레를 떨고 있자, 베르거는 황당하다는 듯 인상을 찡그렸다.
“아… 길이 이쪽이었나….”
비틀.
한 걸음 더 옆으로 돌아간 윤하을은 나름 저대로 계산을 하는 중이었다.
여차해서 안 되면 한 대 후려치고서라도 도망갈 생각으로.
‘싸우면 이길 수 있나?’
‘해 볼 만한가?’
‘아냐, 차라리 냅다 튀는 게 낫지!’
그런 온갖 생각을 정리한 것은 베르거의 담담한 한마디였다.
“거기 서지.”
베르거는 고개를 까닥이며 윤하을을 불러 세웠다.
망할.
윤하을은 얼굴을 구기면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역시 한 대 후려치고 튀어야 하나?
지팡이에 손이 가려던 순간, 선수를 친 것은 다름 아닌 베르거였다.
“걱정 마. 어디로 끌고 갈 생각은 없으니까. 애초에 너에겐 볼일도 없어.”
“….”
“다만 지금 상황에선 꽤 괜찮은 미끼로 써먹을 수 있을 듯해서.”
베르거는 그 말과 함께 담담히 시선을 돌렸다.
미끼?
“뭘 낚으려고요?”
“저기 오는군.”
베르거가 입을 닫기 무섭게, 윤하을은 그를 따라 고개를 돌렸고.
저편에서 걸어오는 익숙한 실루엣을 마주했다.
“…!”
분명 보고 싶어서 뛰쳐나온 건 맞는데….
이 상황에서 마주치니 뭔가 좀 그런….
한시하가 거기 서 있었다.
‘뭐야?’
“아, 망했다….”
왜 나와 있냐는 듯한 눈짓이 이쪽에 닿자마자, 윤하을은 제 발이 저린 듯 우물쭈물하며 뒤로 물러섰다.
* * *
한시하는 두 눈을 끔뻑이며 제자리에 멈춰 섰다.
베르거를 찾아온 것도 맞고,
윤하을을 데리러 온 것도 맞다.
근데…
왜 둘이 같이 있는데?
이건 조금 이상한 조합 아냐?
누가 봐도 도망치다가 걸린 것 같은 윤하을과, 한없이 태연하게 이쪽을 돌아보고 있는 베르거.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냐.’
한시하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정리했다.
저 둘이 저기 나란히 서서 기분 좋은 대화를 나눌 상황은 아닐 테니, 윤하을이 몰래 빠져나오다가 걸렸을 확률이 더 높아 보인다.
그리고 아직 무력으로 진압하지 않을 걸 보면, 발견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고.
‘일단 아직 맛탱이는 안 갔네.’
크릭을 말을 듣고서 대강 베르거의 상태를 추측해 보긴 했지만, 생각보단 훨씬 더 좋아 보였다.
적어도 지금은 이성적인 대화가 된다는 점에서 늦지 않았음은 분명했다.
그리고 눈빛을 봐서는 자신을 그리 나쁘게 보고 있지 않는 듯했다.
원래부터 심성이 포악한 인간은 아니었지.
대화는 좀 되겠다.
한시하는 베르거를 바라보며 말을 뱉었다.
“찾는 게 이쪽이라면서요. 얘기나 들어 보죠.”
베르거는 한시하의 말을 기다렸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금방이라도 윤하을을 잡아채려고 뻗었던 지팡이는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
대화가 필요한 건 양측 다 마찬가지다.
한시하는 베르거의 말을 기다렸다.
“황자를 만났으면 싶은데.”
“퍽 무리한 요구를 하시네요.”
“황제가 직접 와도 좋아.”
“그건 대놓고 단명하고 싶다는 소리로 들립니다만.”
“그게 안 된다면, 너를 미끼로 삼아서 카스티카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도 있겠지.”
한시하는 차분한 눈의 베르거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협박삼아 하는 말이 아니다. 계획적인 인간이니 아마 저것도 숱한 플랜 중 하나일 테지.
하지만, 한시하는 어깨를 으쓱이며 그 말을 받아쳤다.
“저를 잡아 가두면 카스티카가 움직이긴 하겠지만… 썩 좋은 쪽으로 움직이진 않을 것 같은데요?”
C동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한이 있어도 자신을 구해 낼 백작이었다.
한시하의 말이 꽤 그럴싸하다고 판단했는지 베르거도 별 딴지는 걸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입장을 거듭 밝힐 뿐이었다.
“사실 누가 오든 그게 별로 중요한 건 아니야. 그 결과가 중요하지. 우리가 처음부터 요구하는 건 같았어.”
대충 알고는 있었다.
“이번 사건의 진상을 확실히 밝혀내는 것, 그 배후에 강령과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것. 다른 과와 동등하게 대우하는 것. 제약된 흑마법을 부활시키는 것까지.”
“꽤 많네요.”
“애초부터 당연한 것들이었으니까.”
리니아 황제라면 단 하나도 들어줄 생각이 없을 것이다.
특히 흑마법의 제약을 푸는 것이라면, 현 강령과의 힘을 키워 주겠다는 것밖에 되질 않으니.
하지만, 굳이 그런 현실을 자각시켜 주면서 도발할 필요는 없다.
차라리 지금 상황의 심각성을 입에 올리는 편이 낫지.
한시하는 자연스레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그걸 요구하려고 학교 전체에 마법진을 두를 생각이세요?”
“뭐?”
“여기부터 저기까지. 아주 빙 둘러서 크게 만들어 놨던데.”
“그걸 어떻게….”
“피비린내가 저렇게 느껴지는데, 모를 수가 없죠.”
강령과 전 학생이 갈아 넣어 만든 마법진.
아마 이 근처의 마기를 전부 끌어모아 폭발적인 반격을 할 생각인 듯했다. 마기를 사용하지 않는 공격을 감지하면 폭사시켜 버리는 방향으로.
C동을 완전히 바리케이드로 삼아 C동 전체를 일종의 트랩으로 만든 셈이었다.
“처음에는 닭을 잡았을 거고, 그다음엔 돼지 멱을 땄겠고. 마지막엔 사람인가?”
자신의 생명들까지 갈아 넣어서 구축해 놓은 마법진.
실제로 저 마법진이 발동되면서 초반 공격에 상당히 애를 먹었더랬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직 완성되진 못한 듯한데.
미약하게나마 기능은 하겠지.
한시하가 대놓고 여기서 도발을 삼가는 이유도 그러해서였다.
한태수 정도의 인간이라면 모를까, 아마 자신은 제 마력을 변환시켜 부메랑처럼 돌아오는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당해 버릴 테니.
“견고한 데다가 영리한 공격이라서, 아마 그쪽들 머리에서 나온 건 아닐 거예요. 그렇죠?”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모르겠는데. 우리의 수를 훤히 꿰뚫었으니… 뭐 알아서 항복해라 그런 건가?”
“그럴 리가요. 애초부터 협박이 아니라 대화를 하러 왔다니깐.”
한시하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낱장의 종이를 꺼내었다.
책에서 뜯어냈는지 끝면이 다소 너덜너덜한 종이었다.
“주절주절 말할 것도 없고, 그 마법진 당장 해체하라고 말하러 왔어요.”
“뭐?”
생명을 깎아 만드는 위험한 마법진이라는 것쯤은 저들도 안다.
부족한 마기는 사람 몇 명을 제물로 바쳐서까지 감수할 생각이었던 듯하고.
허나, 이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시전자들을 전부 잠식시키는 마법이거든요.”
자신들의 요구를 위해 마법을 써먹을 생각이었지, 마법에게 조종당할 거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놔두면 놔둘수록 인간들을 잡아먹어요. 미쳐 돌아가서 피아식별 못하고 지들끼리 물고 뜯게 된다고. 그때 가서 막으려고 해 봤자 각 안 나와요. 결과는 어차피 자멸이니까.”
서적들을 싹 다 뒤져서 찾아왔다.
현재 C동에 설치되어 있는 마법진과 가장 유사한 형태의 주술 해체법을.
베르거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시하가 건넨 종이를 눈으로 훑었다.
“…무슨 수작이야?”
“그게 개수작이 아니라는 건 이미 눈치채신 듯한데요. 거기 써 있잖아요. 믿는 건 자유겠지만.”
베르거는 아랫입술을 악문 채 한시하를 노려보았다.
한시하는 쉬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누가 그 마법진을 당신들에게 알려 줬든, 어차피 그 상대는 애초에 저희는 안중에도 없었을 겁니다. 강령과가 죽어 나가든, 마법과가 죽어 나가든, 학교 전체가 쑥대밭이 되든. 본인들의 목적은 달성한 걸 테니까.”
쉽게 말해서 강령과는 이용당하고 있는 중이다.
일이 커져 봤자, 흑마법사들에겐 직접적인 타격이 없을 테니 말이다.
강령과를 방패로 써서 아르델 제국에 엿을 먹이고 자신들은 빠져나간다.
이 얘기만은 사실이었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전부 거짓말이지만.
“제가 들은 정보가 조금 있는데요.”
한시하는 베르거를 향해 말을 뱉었다.
“황제 측에서 제안이 올 겁니다.”
리니아 황제와의 접점은 없다.
제안이 온다 한들, 베르거가 원하는 쪽은 아닐 테지만….
우선 저 마법진을 해체시키는 게 먼저였다.
“차라리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게 훨씬 나을 거예요. 흑마법사들한테 이용만 당하다가 자멸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죠.”
베르거는 이성적인 인물이다. 그라면 분노에 눈이 멀어 자멸의 길을 택하지는 않을 거라 믿었다.
“황제가 직접… 제안을 했다고?”
한시하는 말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강령과에서도 받아들일 만한 황제의 괜찮은 제안.
“단, 마법진을 해체하는 조건입니다.”
한시하가 판단했을 때에는, 베르거가 제 말을 믿을 거라 생각했다.
아니, 적어도 진지하게 고려는 해 보리라 믿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영 좋지 않았다.
“그래, 무슨 제안을 하던가?”
방금 전까지 종이를 한 손으로 꽉 쥐고 있던 베르거의 표정이 차갑게 식어 버렸다.
그의 서늘한 시선이 뒤편을 향했다.
한시하는 이상함을 직감하고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 제안이 저거라면, 유감인데.”
시선이 닿은 곳에는, 한태수가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