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5)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15화(215/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15화
강령과 폭동이 있은 지 일주일 후, 황제가 나를 불렀다.
이 사건을 수습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이한도 아니고, 다른 학년의 학생회장도 아니고. 왜 하필 나를?
여러모로 의문이 드는 초청이었지만 황제가 까라면 까야 하는 법.
결국 갈 수밖에 없다.
“황제…? 황제 폐하를 뵈러 간다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그대로 저승길 아니야?”
“와… 벌써 출세하는 거야?”
나보다 더 호들갑을 떨어댄 것은 옆에 있는 녀석들이었다.
명색이 황제와의 알현인데 차마 그냥 보낼 수는 없단다. 오늘은 아예 옷을 골라 주겠다며 찾아왔다.
솔리아가 옷을 들고선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
고급진 검은색의 정장이었다.
“검은색 옷이 낫지 않을까?”
“…너무 초상집 같은데?”
“최근에 아르델에 불미스러운 일이 많았잖아. 너무 밝은 옷을 입고 가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아냐, 그래도 너무 초상집이야. 얼굴이 안 살잖아, 칙칙하게.”
아델라의 지적에 솔리아는 툭 튀어나온 입술로 투덜거렸다.
“고급 원단인데….”
한편, 윤하을은 전혀 다른 포인트로 그 말을 받아쳤다.
“응, 아냐. 둘 다 괜찮아. 뭘 입어도 잘생겼어.”
쟤 말은 신빙성이 없어서 조금 더 객관적인 시선을 빌릴 필요가 있었다.
솔리아가 가져온 것은 조금 더 정장 느낌이 강한 검은색 옷이고, 아델라는 회색빛으로 포인트를 살린 적당히 격식 있는 복장이었다.
솔직히 내 눈엔 그게 그거야.
양복이 양복이지. 뭐가 다르냐?
그래도 아무거나 입고 가는 건 골라 준 애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나는 원의 옆구리를 툭 치며 물었다.
“야, 뭐가 낫냐?”
내 물음에 진지하게 고민하던 원이 턱을 쓸어내렸다.
“으음….”
옷을 꼼꼼하게 훑는 걸 보니 나름 정성스런 조언을 해 줄 모양인데.
“아무거나 입어라, 좀.”
하나도 도움 안 돼!
그러면 그렇지. 나는 혀를 차며 다시 윤하을을 돌아보았다.
엄지손가락까지 치켜세운 윤하을이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응, 둘 다 좋다니까?”
결국 내가 결정해야 하네.
아델라의 말대로 칙칙한 감이 없잖아 있긴 한데, 나는 기본적으로 검은색이 얼굴에 잘 받는 것 같으니….
음.
“역시 검은색이 낫겠다.”
“…센스 봐. 완전 마음에 안 들어!”
아델라는 툴툴대며 회색 정장을 옆으로 치워 버렸다.
좀 삐진 것 같긴 한데 어쩔 수 없다.
“야, 반은 검은색, 반은 회색으로 입고 갈 수는 없잖냐.”
“그것도 좋아! 완전 새로운 시도! 한 번 입어 볼래?”
“아니야, 됐어.”
지나치게 적극적인 윤하을의 말에 나는 그대로 탈주를 감행했다.
원은 혀를 차면서 제자리에서 꿍얼대었다.
“어휴, 그게 뭐가 중요하냐. 아무거나 입으라니깐, 아무거나.”
그래, 그 말이 맞긴 하지.
원의 말대로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근데 황제 폐하가 왜 부르시는 거냐?”
그건 나도 모른다.
전에 썩 좋은 이유로 불려 갔던 건 아니라서 PTSD가 올 것 같긴 한데.
“에이, 설마 죽겠냐?”
“괜, 괜찮은 거 맞지?”
“뭐야, 출세하러 가는 게 아니었어?”
잘못한 게 좀 많긴 해도….
어, 그래.
그간 내가 했던 발언들을 떠올리면 언제 잡혀가도 이상하지 않긴 한데.
그래도 죽을죄는 안 졌을 거라고 감히 믿어 본다.
“음.”
그게 아니라면….
화원에서 깽판 친 게 소문으로 들어갔나?
* * *
“한시하 그 녀석이 아바돈의 뒤통수를 쳤다고?”
한시하의 예상대로 화원에 관한 소식은 뒤늦게 황제의 귀에 들어갔다.
외곽의 화원이 잿더미가 되었는데, 조사 후에 흑마법사들의 소유임이 밝혀졌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걸 불태운 것이 한태수의 아들, 한시하.
덤으로 아바돈이 이를 갈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그런 걸 외곽에 숨겨 두고 있었는 줄도 몰랐군.”
그 맹랑한 녀석이 무슨 수로 화원을 찾아냈는지는 몰라도, 그 행동은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야, 아바돈의 화원에 불을 질러 버렸단 말이지?
아바돈의 얼굴만 떠올려도 치가 떨리게 싫은 것은 황제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말이다.
전쟁이 일어나기 전.
아르델이 건국되기 전.
황제가 황제이지 않았던 시절, 두 사람은 동문으로 만났던 사이였다.
지금은 완전한 적이 되었으나, 결벽에 가까운 아바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황제는 깔깔거리며 배를 잡았다.
“한 방 먹은 그 표정을 봐야 하는데, 직접 보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야. 얼마나 분해했으려나.”
상황이 이러하니 아바돈을 물 먹인 한시하가 기특해 죽을 지경이었다.
“그래, 이번에도 한시하 그 녀석이란 말이지?”
리니아 황제는 입가의 웃음을 감추지 못하고 중얼거렸다.
“역시 한태수의 자식다워.”
그 아버지와는 달리 조금 괴짜인 듯하나, 그 당돌함이 퍽 마음에 들었다.
황제 앞에서 보여 줬던 그 떳떳함은 저보다 몇 배는 강한 흑마법사 앞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게 진짜 마법사지.”
비굴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카스티카의 피가 흐르는 적자임을 증명하고 있지 않나.
그 아이는 카스티카의 훌륭한 후계자가 될 것이다.
그런 이유로 황제는 친히 한시하를 알현실에 불렀다.
칭찬과 함께 몇 가지 선택권을 주기 위함이었다.
아직은 어린 아카데미생에 불과하지만, 제 아들이 황위를 물려받을 때쯤이면 꽤 든든한 신하가 되어 있지 않겠는가.
한시하를 향한 신뢰가 어느 정도 있었기에 내릴 수 있었던 결정이었다.
헌데.
“한태수 백작이 알현을 요청했습니다.”
“음? 한태수가?”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아들을 불렀는데 그 아버지가 찾아왔다.
황제는 뜻밖의 이름에 눈썹을 들썩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태수는 제 영지에 있는 것을 선호하지, 아부를 위해 밥 먹듯이 자신을 찾아오는 대신들과는 달랐다.
그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가 필히 있을 터였기에, 황제는 갑작스러운 알현 요청에도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들라 해라.”
끼익-.
문이 열리고, 한태수가 들어왔다.
언제나처럼 꼿꼿이 편 허리와 깔끔하게 각이 진 정장.
지난번 추궁 이후로 조금은 껄끄러워진 사이였으나, 한태수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듯했다.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저를 마주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폐하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무엇이지?”
스윽-.
한태수는 양복에서 새하얀 봉투를 꺼내었다.
알 수 없는 표정으로 공손히 봉투를 내미는 것까지 자신이 알던 한태수의 모습 그대로였으나, 봉투에 적혀 있는 글귀를 확인한 리니아 황제의 낯빛이 싸늘하게 식었다.
“이게 뭔가?”
“사직서입니다, 폐하.”
갑자기 사직서라니.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며 한태수를 바라보았다.
“아직 은퇴할 나이는 아닐 텐데?”
“나이가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 제가 부족하여 이것이 최선이라 생각했을 뿐입니다.”
“받아줄 수 없다.”
“부탁드립니다.”
너무도 갑작스러웠기에 황제는 쉽게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황제의 충직한 신하로서 늘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카스티카 가문이기에, 이 일은 황제에게도 큰 타격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고선 말을 뱉었다.
“…이러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닌가.”
“자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대체 무엇이. 자네 실력에 자신이 없다는 소리는 하지 말게. 믿지도 않을 터이니.”
“저의 능력에 자신이 없는 것이 맞습니다, 폐하. 더는… 폐하의 명령을 제가 만족스럽게 처리할 자신이 없습니다.”
한태수는 담담하게 말을 더했다.
“그러니 받아주십시오.”
“절대 안 된다. 용납할 수 없다. 이 사직서는 내가 처리할 수가 없어.”
한태수는 슬픈 눈으로 황제를 바라보았다.
“송구합니다.”
이미 모든 것을 결정한 눈빛이었다. 뜻을 바꿀 생각이 없다고 강력히 말하는 듯했다.
하지만 리니아 황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대우가 부족했나? 아니면, 내가 섭하게 했나?”
그것도 아니라면 지난번에 한시혁의 문제로 추궁한 탓인가?
황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짚으며 다급히 말을 쏟아 내었다.
“어떤 이유여도 좋다. 부족하지 않게, 섭섭지 않게 챙겨 주겠다. 이 결정은 재고해 봐라.”
“폐하….”
“아무 이유 없이 그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겠지. 뭐라도, 정말 뭐라도 이유가 있을 것이 아닌가!”
“붙잡는다 하여 모든 것이 잡히는 것은 아닙니다.”
한태수는 잠긴 목소리로 리니아 황제의 부탁을 끊어 내었다.
“그저 떠날 때가 되어 물러날 뿐입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죄악을 저질렀고,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
막고 싶었던 일들은 막아지지 않았고,
붙잡으려 했던 사람은 잡히지 않았다.
한태수는 고개를 숙이며 알현실을 돌아 나가려 하였고, 사직서를 손에 움켜쥔 채 굳어 있던 황제가 그를 불러 세웠다.
“내가 부른 사람이 있다.”
“…예?”
표정을 보아하니 아직 모르는 모양.
황제는 미간을 움찔거리는 한태수를 빤히 응시하며 말을 뱉었다.
“만나고 가는 것이 좋을 것이다.”
마침 복도 끝에서 발소리가 들려온다.
황제는 퍽 타이밍이 좋았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까닥였다.
“저 녀석들도 어서 들라 해라.”
* * *
끼이익-.
한시하는 옆을 힐끔거리며 황제의 알현실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벌써 두 번째이니 이 휘황찬란함에 놀랄 것도 없으나, 옆에 있는 얼굴은 상당히 놀라웠다.
“네가 여기 왜 있냐?”
강령과 소속이었던 황족 파비안.
정확히는 황족의 타이틀만 지니고 있는 녀석이지만, 자신과 나란히 부른 것은 조금 특이하다.
이게 대체 무슨 조합이냐고.
그렇게 생각하며 파비안을 보고 있던 한시하는 알현실의 문이 열리자 더 놀라고 말았다.
“…!”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한태수였기 때문이었다.
한태수 역시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두 눈을 끔뻑였다.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맞닿았다.
“앉아라.”
순간 얼 타고 있었는데 황제의 목소리에 정신이 깼다.
한시하는 공손한 자세로 파비안의 옆에 앉았다. 잔뜩 굳어 있는 한태수의 표정이 신경 쓰이긴 했으나, 최소한 황제는 자신에게 호의적인 듯했다.
“아바돈의 화원에 불을 질렀다고?”
“…들으셨습니까?”
“너무 훌륭한 일이라 이리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방화도 칭찬받는 세상이라니.
한시하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황제는 쉬지 않고 칭찬을 이어 갔다.
그 성격파탄 황제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부담스러운 칭찬들이었다.
“아카데미에서 성적도 우수하고, 교우관계도 원만하더구나. 교수들의 평도 좋고… 학교생활을 아주 잘하고 있어. 그렇지 않나, 파비안?”
“아… 예! 그렇습니다!”
파비안은 화들짝 놀라 애써 우렁차게 답했다.
황제는 거기에 한술 더 떴다.
“동급생이지? 네가 보고 배울 점이 아주 많았겠구나.”
배운 점이라고는 ‘한시하에게 깝치면 맞는다’ 밖에 없었던 파비안은 다급히 눈을 굴렸다.
제 옆에는 한시하가, 그 앞에는 한시하의 아버지가, 그 옆에는 황제까지.
몹시도 불편한 이 자리에서 파비안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무한 긍정밖에 없었다.
“물론입니다. 보고 배울 점이… 아주 많았습니다.”
한시하는 인상을 찡그리며 파비안을 돌아보았다.
‘너무 영혼이 없는데?’
파비안은 그런 한시하의 눈치를 살피며 굳게 입을 다물었다.
그때, 황제가 한시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래, 카스티카의 후계자가 아주 훌륭하게 자라 주었어. 헌데, 내가 고작 이런 말을 하려 자네를 부르진 않았겠지.”
“네.”
“그러면 왜 불렀을 것 같나?”
한시하는 파비안과 한태수를 번갈아 보았다.
표정을 보아하니 두 사람도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황제가 학생인 자신을 친히 알현실까지 부른 이유라….
그 이유를 애들이 열심히 추측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원과 윤하을이 너무 호들갑을 떨어 대서 그렇지, 꽤 그럴싸했는데?
그거 나름 합리적인 추측이었다고.
역시 맞는 듯하다.
이것밖에 없어.
“음.”
고민을 마친 한시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당당하게 말을 뱉었다.
“저, 혹시 출세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