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3)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23화(223/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23화
한시하는 원과 함께 말을 타고 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베른이라는 작자를 백 프로 믿는 것은 아니었다.
황자를 핑계로 혹시 이상한 곳에 끌고 갈까 봐 사마트폰까지 켜 두었는데, 다행히도 도착한 곳은 우선 황궁이 맞았다.
다만, 살갗으로 느껴지는 이 기이한 이질감은 뭘까.
이상하리만치 섬뜩하고 고요한 황궁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한시하는 그곳에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연등회에서 만났던 팬클럽 회장.
유난히 적극적이었던 꼬마아이, 루비아 황녀가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는 얼굴로 서 있었다.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잔뜩 겁에 질려 있다.
한시하는 말에서 내려 루비아에게 달려갔다.
이 황궁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다.
“무슨 일이야?”
“그… 그게….”
제대로 대답도 하지 못하는 루비아를 보며 한시하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충격적인 것을 보았는지 두 눈 가득 공포가 서려 있었다.
차마 입을 열 수 없어서 입만 뻥긋거리던 루비아에게서 떨리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폐, 폐하가… 아파요….”
“뭐?”
“그게… 어떤 사람들이 와서… 폐하한테….”
한시하의 표정이 차갑게 식었다.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 황궁.
쎄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기 때문이었다.
“한시하!”
뒤에서 들리는 원의 목소리.
루비아의 손을 뿌리친 한시하는 곧바로 황궁 안에 뛰어 들어갔다.
문을 열어젖히자마자, 주저앉아 있는 마르셀이 눈에 들어왔다.
고귀한 출신에 맞게 늘 흐트러지지 않았던 황자 마르셀은 창백해진 안색으로 아예 넋을 놓고 있었다.
그 뒤로 쓰러져 있는 한 사람의 모습.
바로 황제였다.
뒤늦게 들어온 원은 충격에 빠진 얼굴로 굳어 버렸다.
마르셀이 간절한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도와줘, 한시하. 어떻게든 해 봐.”
“….”
한시하는 이를 악물고선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유감스럽게도 상태는 최악이었다.
습격을 당했는지 찔린 복부에서는 계속해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고, 이미 꽤 많은 피를 흘린 탓에 축축한 웅덩이처럼 고여 있었다.
어찌 되었건, 아직 죽지는 않았다.
“윽….”
리니아 황제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토해 내었다.
한시하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한시하는 흰 면티를 잡아 찢으며 다급하게 물었다.
대답은 베른이 했다.
“갑자기 습격당했습니다. 황실의 기사들이 먹는 식사에 독약을 탄 것 같습니다.”
전원이 먹진 않았으나 기사단이 아수라장이 된 사이에, 갑작스레 황궁이 습격받았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기사는 베른을 포함한 몇 명.
황제를 노린 자객을 막아 내지 못했다.
독약부터 자객까지. 황실의 엄중한 경비를 생각한다면, 필시 내부자의 소행이었다.
한시하는 베른의 설명을 들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원작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리니아 황제는 전쟁 중에 죽을 운명이었으나, 그 시기가 이렇게 이르지는 않았다.
한시하는 포션을 다급히 들이부으며 상처를 살폈다.
“으… 으윽….”
고통스러운지 몸을 비트는 황제의 안색은 이미 창백해져 있었다.
“황궁의들은 다 어디 갔지?”
“그쪽도 습격을 받았습니다.”
“개 같은 치안이군.”
시기상으로는 말이 되긴 했다.
전쟁을 앞둔 시기.
흑마법사들로부터 황궁에 뒷돈을 받아먹은 새끼들이 슬슬 활개를 칠 무렵이었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놈들이 있었을 것이고, 실제로 독살 시도도 몇 번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이 시기에 죽진 않았던 거 같은데.
아바돈 입장에서도 위험을 각오하고 던진 승부수일 것이었다.
‘큐브를 뺏겨서인가?’
‘유리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원래대로라면 차분히 전쟁을 준비했을 아바돈이 이렇게 전면전을 펼쳐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 자신이 만들어 낸 변수들에 의한 결론이겠지.
지금쯤이면 큐브를 다 손에 쥐었어야 할 아바돈이 절반도 얻지 못하였고, 그마저도 큐브의 힘이 미약해졌다는 것을 눈치챘을 터.
한시하는 마음이 무거웠다.
폭군이긴 하나, 능력은 뛰어난 군주다.
황제의 공백은 전쟁의 판세를 치명적으로 바꾸어 놓을지도 몰랐다.
“윽!”
천을 세게 묶자 황제가 침음을 토해 내었다.
한시하는 베른에게 다급히 명령했다.
“황궁의가 없으면 다른 의원을 찾아봅시다. 샅샅이 뒤져 봐요.”
“네, 알겠습니다.”
“저, 저도 가겠습니다!”
원마저 하얗게 질린 안색으로 베른을 따라가려던 순간.
누군가가 한시하의 팔을 붙들었다.
황제였다.
“….”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폐하… 폐하….”
루비아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울먹였다.
한시하는 굳은 얼굴로 황제를 내려다보았다.
사실 황제를 보자마자 알았다.
그녀를 살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곧 죽을 운명이라는 것은 누구보다 그녀 자신이 잘 알 것이기에, 황제는 피를 토하며 한시하를 막아 세웠다.
한시하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폐하를 보며 아르델의 미래가 참 어둡겠다 싶었습니다.”
“허….”
리니아 황제는 죽어 가는 와중에도 어이가 없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한시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헌데, 폐하가 없는 제국의 미래가 더 어두워지겠군요.”
열여덟의 황자. 뇌물 먹은 대신들.
필연적으로 예정된 전쟁까지.
황제 역시 아르델의 미래가 그려지는지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한시하는 씁쓸한 심정으로 침을 삼켰다.
고요한 황궁.
“하… 하아….”
차마 눈이 감기지 않는지, 진작에 숨이 끊어졌어야 할 황제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아무도 쉬이 입을 떼지 못하던 순간.
황제가 힘겹게 말을 뱉었다.
“한시하.”
마르셀을 부른 것도 아니고, 루비아를 부른 것도 아니다.
황제가 자신을 찾았다.
“네.”
얼굴을 가까이 대자, 황제가 거칠어진 목소리로 속삭였다.
“황자를 부탁한다….”
그녀의 시선이 마르셀과 루비아에 번갈아 닿았다.
다른 지원군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왜 베른을 시켜 자신을 불렀는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알겠다.
황궁이 안전하지 않다고 한다면, 현재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겠는가.
카스티카 령.
황자를 지켜달라는 말도, 가장 위험해질 황자를 피신시켜 달라는 의미겠지.
“예, 제게 맡기십시오.”
한시하는 황제를 내버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넋을 놓은 마르셀과 루비아는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
자신은 충성스러운 신하와는 거리가 먼 인간상이다.
새삼스럽게 그런 거 할 생각도 없고, 성격상 맞지도 않는다.
하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인간으로서 저들을 살려야 할 강한 책임감을 느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카스티카 령으로 가자.”
한시하는 말에 두 사람을 태웠다.
* * *
야반도주나 다름없는 피신이었다.
한시하는 원과 황제를 베른에게 맡겨 두고 루비아를 제 말에 태웠다.
그렇게 마르셀과 함께 말을 달려 카스티카 령에 도착했다.
당연히도 모두가 자고 있을 시각이었다.
“저 왔습니다.”
쿵쿵쿵.
한시하는 굳게 닫힌 저택의 문을 두드렸다.
“….”
대답이 없다.
쿵쿵쿵.
“급합니다.”
제길.
한시하는 짧게 혀를 차고선, 여차하면 문을 부수겠다는 생각으로 있는 힘껏 문고리를 내리쳤다.
쾅!
이번에는 소음이 다소 컸다.
예상대로 잠에서 깬 하인들이 황급히 달려 나왔다.
“무, 무슨 일입니까!”
“문 열어.”
철문 너머에서 한시하를 알아본 하인이 당황한 얼굴로 멈추어 섰다.
웬 깡패 같은 놈이 남의 집 문 앞에서 깽판을 치나 했더니 이 집 도련님이다.
한시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두 번은 말 안 해. 당장 부숴 버리기 전에 문 열어.”
“잠, 잠시만요!”
이 늦은 시각에 백작을 깨워야 하나.
난처한 기색의 하인이 울먹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였다.
“하.”
낮게 깔린 목소리가 갑작스레 끼어들었다.
“이게 무슨 무례한 짓이냐.”
한시하는 놀란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방금 잠에서 깬 것인지 잔뜩 잠긴 목소리의 한태수가 문고리를 잡았다.
딸깍.
일단 열어 주긴 하나 쉽게 들여보내 주진 않는다.
한태수는 문 앞을 막고서 한시하를 노려보았다.
“무슨 무례한 짓이냐고 물었다.”
“들어가야 합니다.”
“대화가 통하질 않는구나.”
“새삼스럽지도 않잖습니까.”
싸가지 없는 제 자식의 버르장머리를 오늘은 고쳐 놓겠다는 생각.
한태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한시하의 뒤에 선 일행을 발견한 순간.
한태수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 버렸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피투성이가 된 황자 마르셀과 황녀 루비아.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한태수는 침음을 삼키며 말을 뱉었다.
“들어와라.”
* * *
불과 하룻밤 새에 일어난 일이 믿기지 않는지, 마르셀은 한참 동안 떨고 있었으나 표정만큼은 의연함을 유지했다.
넋을 놓은 루비아를 대신해서라도 자신은 정신을 차려야 했다.
흑마법사들과의 오랜 전쟁을 끝내고 세워진 제국이다.
비록 짧은 역사를 지닌 제국이지만 그 명운이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했다.
고심해 보아도 결론은 하나다.
지금의 황궁은 너무 위험하다.
마르셀은 힘겹게 황제의 뜻을 전했다.
“폐하께선 피신하라 하셨습니다.”
황제가 죽어 가면서 유일하게 신뢰한 것은 카스티카였고, 마르셀은 그 뜻을 따라 한시하를 찾았다.
그 결정은 후회하진 않았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이 순간에도 한태수는 더없이 굳건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황자는 한태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하여 당분간 이곳에서 지낼 생각입니다.”
받아달라는 부탁도 아니고, 양해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남의 집에 처들어 와서 선전 포고를 하는 느낌에 가까웠다.
정작 한태수는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지만 말이다.
충성심 따위 없는 한시하와 달리, 그는 개국 이후로 황제의 명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받들었던 충신이었으니까.
황제는 죽었고, 이제는 황자가 황제가 되었다.
한태수가 마르셀의 말을 거절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안 됩니다.”
한태수는 짧게 제 의사를 전했다.
“…예?”
마르셀의 두 눈이 번쩍 뜨였다.
지낼 곳이라고는 여기밖에 없다.
어딜 가도,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카스티카에게도 버려진다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상황.
마르셀은 카스티카의 배신에 차마 말을 잇지 못하였다.
떨리는 음성이 힘겹게 새어 나왔다.
“그러면… 지금 저희더러 황궁으로 돌아가라, 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안전하지도 않고… 호위 기사들도 다 죽어 버린… 그곳에 다시 돌아가라는 겁니까?”
“예.”
한태수는 마르셀을 똑바로 응시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덧붙였다.
“대신, 저도 함께 갑니다.”
카스티카는 황실을 버리지 않았다.
제국이 살아 있는 한, 그 사실은 변함이 없을 것이다.
다만, 한태수가 생각한 방향이 마르셀과 달랐을 뿐.
지금 황궁을 비우는 것이야말로, 놈들이 원하는 일일 것이다.
위험하다고 해서 이 제국을 놓아줄 수는 없다.
파렴치한 이들에게 황궁만큼은 뺏기지 않겠다.
한태수는 깍지를 낀 채 확고하게 말을 뱉었다.
“저희는 황궁으로 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