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24화(22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24화
고작 일주일의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이 변했다.
드넓게 펼쳐진 오드리세 산맥 아래의 평원을 내려다보며 세피아가 말했다.
“카스티카가 황제의 편에 섰다더군요. 아, 이제 그 황제는 없으니 황자라 불러야 할까요?”
이곳에서 지내면서 외부와는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황제가 죽고, 새로운 황제가 즉위했으며 카스티카 가문이 새 황제를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시혁이 들어도 가히 충격적이었다.
“세상이 요동치고 있군요.”
한시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그 장본인이 바로 지금 제 옆에 있는데도, 여전히 실감이 나지 않는 사실이었다.
한시혁은 언제나 그렇듯 늘 환하게 웃고 있는 세피아를 돌아보았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좋으나 싫으나 그녀와 붙어 있었다.
그녀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고,
신념을 들었으며.
그 모든 것들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세피아, 그녀 자체는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아무 말 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한시혁의 말대로 요동치는 이 세상의 물결에, 두 사람 역시 휩쓸려 가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먼저 적막을 깬 것은 세피아였다.
“한시혁 씨.”
그토록 하고 싶지 않았던 말을, 오늘은 해야 했다.
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세피아는 한시혁을 놓아줄 생각이었다.
세피아는 힘겹게 입을 떼었다.
“아바돈은 전쟁을 시작할 거예요.”
예언가 한시혁은 진작부터 예감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 땅 전체에 감도는 전운을 몰랐을 리 없으니.
그다지 놀라지도 않은 듯한 눈빛이 세피아를 돌아보았다.
한시혁은 대답 없이 찻잔을 들었다.
참으로 태연한 표정이다.
한시혁이 차분하게 차 한 모금을 넘기는 동안, 세피아는 아랫입술을 꽉 악물었다.
“많은 사람들이 죽을 거고… 그게 내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이 될 수도 있어요.”
아바돈이 저지를 죄악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세피아 또한 그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벗어날 생각도 없었다.
후회하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으므로.
하지만.
한시혁마저 그 길을 걷지 않길 바랐다.
‘분명 버티지 못할 거야.’
아바돈은 한시하를 잡기 위해 반드시 한시혁을 이용하려 들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아는 한시혁은 그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고통스러워 할 것이다.
그 모습을 차마 볼 수 없기에, 세피아는 최선을 다해 한시혁을 숨길 생각이었다.
아바돈이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단, 자신 역시 볼 수 없는 곳으로.
앞으로의 여정에서 한시혁은 함께 할 수 없겠지만.
세피아는 이 이별이 옳은 선택이라고 믿었다.
“한시혁 씨, 마지막 기회를 줄게요.”
데려온 것은 자신이니, 얼마든지 보내 주겠다.
세피아는 떨어지지 않은 입술을 떼었다.
“나를 떠나요.”
더 시간이 지나면 도로 붙잡을 것 같으니까.
그땐 정말 돌이킬 수 없을 테니까.
더 늦기 전에.
자신이 보내 줄 때.
제발 자신을 떠나 주길 바랐으나,
한시혁은 미동도 없었다.
“왜… 그러고 있어요?”
세피아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한시혁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이 슬프게 빛나고 있었다.
“이미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요.”
한시혁은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 * *
오드리세 산맥 지하에 마련된 작은 서재.
한시혁을 위해 세피아가 만들어 준 서재는 그답지 않게 아기자기한 것이 참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오는 공간이었다.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귀한 서적은 물론이고, 한시혁의 전공인 점성술 서적들이 가득하다. 한시혁은 온기가 묻어 있는 책장을 천천히 손으로 쓸었다.
벌써 세 번의 이사를 했고, 이번에는 아예 먼 곳으로 떠나 버릴 예정이니 다시 이곳을 들를 일은 없을 것이다.
한시혁은 미련 가득한 눈길로 책들을 눈으로 훑었다.
떠날 수 있을 때 떠나라 말했던 세피아.
하지만, 한시혁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천벌을 받을 짓이겠지.’
한시혁은 세피아를 떠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그들과 함께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늘 그렇듯 모든 일은 생각한 대로 굴러가지 않는 법.
결국 그 쓰나미에 자신 역시 휩쓸리게 될 것이다.
이곳에 틀어박혀 시간을 보내는 동안, 한시혁은 대부분의 시간을 예언하는 데에 보냈다.
세피아는 그때마다 호기심 가득한 눈길로 물어 오곤 했었다.
사람이라면 당연히 궁금한 종류의 것들이었다.
‘저는 늙어 죽을 때 뭘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모르겠습니다.’
‘예언가가 그런 미래는 못 봐요?’
‘예언가가 모든 미래를 보는 건 아니니까요.’
거짓말이었다.
한시혁은 세피아의 미래를 보았고, 한시하의 미래를 보았으며.
제 미래를 추측했다.
슬픈 미래를 너무 많이 읽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별의 뜻을 읽는 것도 포기해 버렸다.
보고 싶지 않은 미래라 덮어 버렸다.
“벌써 먼지가 쌓였군.”
한시혁은 책장에서 책 하나를 꺼내었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점성술 입문서였다.
점성술을 처음 배웠을 적,
그러니까 아르델 아카데미에 입학하던 첫 해에 늘 옆구리에 끼고 다녔던 책이다.
그 원본은 지금 제 손에 없지만, 절판된 책을 세피아가 힘들게 구해 온 것이다.
모든 책들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한때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끼고 다녔던 이 책만은 챙기고 싶었다.
한시혁은 점성술 입문서를 상자에 넣고서 서재를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만나야 할 사람이 하나 있었다.
* * *
즉위식은 급하게 이뤄졌고, 한태수는 그런 황제를 보좌하는 핵심 인물이 되었다.
결코 순탄한 여정은 아니었다.
황제를 배신한 대신들이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상황.
한태수는 노련한 눈으로 믿을 만한 이들을 추려내었다.
냉정한 그의 결단력은 최악의 순간에 빛을 발했다.
한태수는 흑마법사와 결탁한 대신들을 속속들이 잡아내었다.
마르셀이 권위를 다시 세울 수 있도록, 반역자들을 처형하고 황궁 내를 정리하는 것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여전히 황궁 내부는 어수선했지만 카스티카 가문은 황가에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었다.
아르케넨트 가문 역시 적극적으로 힘을 실어 주었다.
그리고….
나 또한 덩달아 바빠졌다.
아르델 아카데미에 휴교령이 내려지면서 학생들이 뿔뿔이 훑어졌다.
그사이, 황제로 즉위한 마르셀은 나를 밥 먹듯이 찾아 댔다.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나.
“이한!”
나는 황제의 알현실에서 좀비처럼 걸어 나오는 이한을 발견하곤 손을 들었다. 저 녀석도 힘들어 죽어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둘이서 나란히 꼬박 삼일 밤낮을 샜다.
늘 파이팅이 넘치던 이한도 오늘따라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반란을 일으키는 무리들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지방으로 내려갔었다가 오늘 올라왔더니 또 내려가란다.
지옥 같은 스케줄에 혀를 내둘렀다.
황궁의 쓸 만한 사람들이 줄줄이 사라져 버렸으니, 그나마 믿을 구석을 찾는다는 게 이쪽이었다.
같은 학교를 다니면서 능력이 출중했던 후배들.
그러니까 만만한 나랑 이한이라 이 말이지.
“아무리 쓸 만한 사람이 없어도 인간적으로 애새끼들 부려 먹는 건 너무하지 않냐?”
“애새끼라니… 알현실 앞에서 말조심해.”
“우리 나이는 객관적으로 애새끼가 맞거든?”
“….”
당연히 황자도 애새끼다.
열여덟 살한테 나라를 맡겨 놓다니 통탄스러울 지경이지.
그래도 코피 쏟아 가면서 나름 열심히 하는 것 같긴 한데.
유감스럽게도 전쟁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마르셀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전개상으로 막을 수 없는 이벤트니까.
이미 황권은 약해질 대로 약해진 상태에, 크고 작은 반란들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먹고 살기 힘들다고 일으키는 반란과는 차원이 다르다.
대다수가 지방 곳곳에 침투한 흑마법사들이 조직적으로 일으키는 반란이고, 강력하게 진압한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도 어쩌겠나.
비록 삽질이라 해도 최선을 다해 막아 볼 수밖에.
시간을 버는 중이다.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는 전혀 가늠이 가지 않았지만 말이다.
“내일은 아르케넨트 령으로 가 볼 생각이야.”
“거기는 이미 백작님이 꽉 잡고 있지 않아?”
“그래도 시끌시끌한가 봐.”
이제는 제국의 핵심이 된 아르케넨트 령과 카스티카 령에서까지 움직임이 보일 지경이니 사태의 심각성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바쁠 텐데 너무 붙잡아 놨다.
나는 이한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을 뱉었다.
“들어가 봐. 나도 내일 아델라랑 같이 갈게.”
“어, 솔리아에게 말해 둘게.”
“그래, 수고해라.”
나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기에 바삐 움직여야 했다.
그렇게 급한 대로 이한을 먼저 보내고.
나는 황제의 알현실에 들리려다가, 노선을 바꿨다.
“아.”
기숙사에 두고 왔던 물건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검 챙겼어야 했는데.”
한태수가 넘겨줬었던 가문의 가보.
대지의 검을 기숙사에 두고 와 버렸다.
아카데미가 임시 휴교 중이긴 해도 아직 대부분의 짐은 기숙사에 있었다.
당장 쓸 만한 물건은 아니지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니 우선 챙기는 편이 낫겠지.
귀찮긴 한데….
황궁과 아르델 아카데미까지는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가자.”
나는 곧장 짐을 챙겨 아르델 아카데미로 향했다.
* * *
아르델 아카데미 내부는 더없이 고요했다.
체감상 강령과 폭동 직후보다도 더 조용한 듯하다.
그 많던 학생들로 들어찼던 복도는 휴교령이 내려진 뒤 텅텅 비었고, 기숙사에 남아 있는 학생들도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적었다.
오죽하면 기숙사 방에 들렀다가 내려오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다.
한적하니 나쁘진 않다.
나는 검을 챙기고선 빠른 속도로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게 1층까지 한달음에 도착했다.
단 한 사람도 마주치지 못하고 나올 줄 알았는데.
마차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다.
나는 쎄한 느낌에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
어딘가에서 시선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손이 허리춤의 지팡이로 향했다.
아무리 휴교령이 내려진 학교라 해도, 아카데미 운동장 한복판에서 습격하는 미친놈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가.
황궁에서 황제를 죽여 버리는데 아예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양립하고 있을 무렵.
검은 그림자가 건물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아.”
너무 익숙한 얼굴이라서, 말문이 턱 막혔다.
나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언젠가는 다시 보리라 생각했지만, 여기서 만날 줄은 몰랐던 얼굴.
한시혁이 서 있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아카데미를 떠나놓고선 혈색이 잘 도는 것이, 별로 고생하진 않은 것 같았다.
걱정했는데.
살아서 다행이긴 한데.
“…왜 여기서 나오냐?”
한시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꽤 오랜만에 만난 것 같은데. 그게 첫 질문이냐.”
“….”
그 당당한 말에 대한 내 감상은 이러했다.
“미친 새낀가?”
여기가 어디라고 당당히 쳐들어와!
당신 수배자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