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5)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25화(225/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25화
한시혁과 아르델 아카데미 정문에서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다. 이쪽은 보는 눈이 너무 많다.
그렇기에 택한 곳은 아카데미 밖의 외진 공터였다.
나는 한시혁을 바라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뭐 하자는 거야?”
긴히 할 말이 있다며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한시혁이다.
적잖은 시간 동안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는 모르지만, 흑마법사들에게 물들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니 이런 외진 곳에 한시혁을 맨몸으로 따라왔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무모한 짓이었다.
하지만, 믿었다.
이걸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이런 식으로 나를 엿 먹일 인간은 아니라고 믿었다.
“그래서 할 말이 뭔데?”
내 믿음대로 한시혁이 나를 끌고 간 공터에는 별다른 함정도, 대기 중인 흑마법사도 없었다.
정말 단 둘뿐이다.
그런데.
한시혁이 뜬금없는 말을 뱉었다.
“지팡이 들어라.”
지팡이?
내가 지팡이를 내려다보며 얼 타고 있자, 한시혁이 재촉하듯 말했다.
“일종의 대련이라고 생각해라. 가르칠 것이 있으니.”
겨우 대련 한 번 하겠다고 이 위험한 곳을 쳐들어왔다고?
한시혁의 말이 어이가 없어서 괜히 한 번 비꼬았다.
“교수직도 잘린 인간이 갑자기 웬 선생질이야?”
여기에는 한시혁도 욱했다.
“잘린 건 아니지.”
“잘린 거지.”
“아니다.”
“어차피 곧 잘렸을 걸?”
비아냥거리며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던 순간.
“어… 어!”
홱-.
한시혁이 순식간에 파고들어 왔다.
갑작스러운 선제공격에 당황한 나머지 몸이 균형을 잃고 말았다.
정확히 옆구리를 가격한 공격.
한시혁이 구둣발로 나를 걷어찼다.
“억!”
피하긴 피했다.
하지만, 스쳐 간 옆구리가 여간 얼얼한 것이 아니었다.
교수직 잘린 게 그렇게 억울했어?
아니, 화풀이를 왜 나한테 하는 건데?
“갑자기 왜 지랄이야!”
“지팡이 들 기회 줬던 것 같은데.”
퍽-.
말할 때는 건드리지 않는 게 암묵적 도리 아냐?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들어오는 기습에 두 번째로 걷어차였다.
지팡이를 들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별다른 무기를 쓰는 것도 아닌데 마치 돌덩이에 맞은 듯한 고통이 밀려온다.
“잠, 잠깐만.”
다급히 배리어로 한시혁의 공격을 막았지만, 한시혁이 그걸 박살 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강한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는 아니었잖아?
그 짧은 시간 동안 대체 뭔 짓거리를 한 거냐.
괴물인가 싶은 괴력에 절로 입이 벌어졌다.
물론 편하게 앉아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컥!”
이번엔 머리다.
마력을 실은 것인지 아까보다 더 파괴적인 공격.
피할 수 없어 두 팔을 들어 막아 내었다.
“으윽….”
이윽고, 두 팔이 부서질 듯한 고통이 몰려와 이를 악물었다.
곧바로 이어지는 공격.
한시혁은 압도적인 힘으로 나를 몰아붙였고, 나는 그 공격을 막기에만 급급했다.
이젠 힘 조절도 안 한다.
한 대 잘못 맞았다가는 정말 갈 것 같아서, 조금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건 대련이 아니라 실전에 더 가까웠다.
아니, 왜 그러는지 말이나 해 달라고.
오랜만에 불쑥 나타나서 주먹부터 갈기면 다냐?
흑마법에 잠식당했나?
아니면 애초부터 이러려고 나를 끌고 온 건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던 순간, 한시혁이 나직이 읊조렸다.
“너는 약해.”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왜 본인이 무식하게 강한 거라고는 생각을 못하는 거지?
흑마법사도 혼자 때려잡던 미친 인간이 그새 몸에 무슨 짓을 한 건지 더 강해져서 돌아왔다.
애초에 약한 상대를 이 악물고 몰아붙이는 중인 셈이다.
심지어 봐주는 기색조차 없다.
간신히 공격을 막아 냈으나, 한시혁은 그다음을 준비할 뿐이다.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오던 한시혁이 짧게 혀를 차며 말했다.
“겨우 예언가인 나 따위에게 밀리나?”
그렇게 말하는 한시혁의 뒤로 일렁거리는 검은 아우라.
“시발, 저게 무슨 예언가야.”
신의 뜻을 읽는 예언가가 아니라, 악마에게 신을 팔아넘겼다는 말이 더 합리적으로 들릴 만큼 범접할 수 없는 비주얼이다.
한시혁은 대답 대신 나를 노려보았다.
“….”
은은하게 일렁이던 검은 아우라가 급작스럽게 요동치기 시작하였고,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아, 좆됐다.
저건 폭주에 가까운 마기였고, 한시혁은 나를 봐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그가 싸늘하게 말을 뱉었다.
“이 움직임을 기억해라.”
“내가 교수로서, 그 전에 네 형으로서. 마지막으로 알려 주는 강의다.”
비교적 이성적인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한시혁이 손을 뻗음과 동시에, 검은 마기가 흉부를 때렸다.
“커억….”
시야가 가려져서 주춤하던 찰나에 한시혁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조금의 틈도 놓치지 않는 맹렬한 공격. 이번에는 내 목덜미를 움켜쥔 채 땅에 내리꽂는다.
뼈마디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에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무슨 대련을 봐줄 생각도 없이 몰아치냐, 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봐준 것이었다.
반쯤 이성을 놓은 한시혁은 최대 출력으로 나를 몰아쳤고,
당연하지만 내가 이길 수 있는 수준은 아득히 넘어선 상태였다.
나는 한시혁을 향해 마력을 쏟아 내었다.
분명 공격은 먹혔을 텐데, 조금의 미동도 없다.
“제길.”
두어 번 한시혁을 가격한 마력구.
그를 옥죄기 위해 결속 마법을 썼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배리어도 불가능. 결속도 불가능.
마법이라는 게 통하지 않는 건 아닐 테니, 막대한 출력으로 전부 튕겨 내고 있는 중일 것이다.
마력도 없던 인간이 무슨 미친 힘을 쥐어 버린 건지.
한시혁은 한 손으로 나를 제압한 채 두어 번 더 땅에 내리찍었고, 이어서 마기를 쏟아냈다.
머리가 깨질 것 같다.
겨우 몇 번의 합으로 이렇게 밀릴 줄은 몰랐는데.
나는 이를 악문 채 기침을 쿨럭쿨럭 뱉었다.
와중에도 나는 한시혁의 전력을 파악하는 중이었다.
한시혁은 내가 약한 거라고 했지만, 아니다.
그냥 저 인간이 괴물이 되어 돌아온 것이 분명했다.
체감상으로는 한태수보다도 강해 보였고, 최소 세 사람.
아델라와 솔리아는 데려왔어야 승산이 있는 싸움이었다.
근데, 내가 왜 머릿속으로 이런 걸 계산해야 하는 건데.
이런 말 같지도 않은 대련에 왜 얻어터져야 하는 거냐고.
그런 한시혁의 공격을 흘려내는 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으윽….”
폐부를 짓누르는 마기에 판단력을 흐려질 대로 흐려졌고,
그나마 민첩했던 팔다리마저도 서서히 둔해진다.
퍽-.
퍽-.
한시혁의 공격을 두 번이나 막지 못하고 정면에서 당했다. 이미 약해진 상태에선 최악의 타격이었다.
두 다리가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후들거렸다.
버티지 못할 것이다.
여기서 끝내야 한다.
“그만.”
퍽-.
“그만하라고!”
한시혁이 내 목을 손으로 움켜쥐었다.
“진짜 죽일 셈이야? 커억…!”
한시혁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력을 최대치로 뿜어내려던 그 순간.
판단을 바꾸었다.
이성을 잃은 것인지, 아니면 나를 진짜 죽일 생각인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한시혁은 스스로의 힘도 조절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선 살아야 한다.
지팡이를 잡으려던 손을 더듬거리며 다른 것을 찾았다.
“으… 으윽….”
대지의 검.
단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카스티카의 가보.
이게 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나는 간절하다.
대련하다 뒤지는 희대의 병신이 되고 싶지는 않으므로.
나는 온 힘을 다해 한시혁을 밀쳐 냈다.
“시발, 죽어도 난 모른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그것을 휘둘렀다.
“…!”
그렇게 흙먼지가 한시혁을 삼켜 버렸다.
* * *
꾸물꾸물.
저편의 땅이 꿈틀거리는 듯하다.
나는 지팡이를 한 손에 쥐고선 경계했다.
도와줘야 할 것 같은데, 도와주면 또 죽이려고 달려오는 거 아닐까?
양가적인 감정이 들려던 순간.
파앗-.
한시혁이 흙 위로 얼굴을 내밀었다.
“입에서 흙 맛이 나는군.”
일단 살아 있었다.
퉤.
침을 뱉은 한시혁은 비틀거리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카타블람에서 죽지 않았던 사람이라 겨우 이 정도에 죽지 않을 건 알았지만, 몇 미터 흙을 뚫고 사람이 올라오는 걸 눈앞에서 직관하니 기이하긴 했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땅에 파묻힌 사람치곤 태연하네.”
“대련 중의 돌발 상황에 당황하는 건 하수다.”
“…방금은 대련이 아니었잖아.”
“그럴 리가.”
눈빛을 보아하니 이성은 돌아온 것 같았다.
나는 지팡이를 내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간신히 서 있는 것일 뿐, 지금 내 상태는 최악이었다.
아마 뼈가 몇 개는 작살났을 텐데.
“대련은 핑계였고, 그냥 내가 패고 싶었던 거 아니지?”
“네가 그동안 맞을 짓을 많이 했으니 제 발이 저린 것이겠지.”
반박할 수가 없어서 더 열 받는다.
나는 이를 악문 채 한시혁을 노려보았으나, 그는 침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는 분명 마지막 수업이라 했고, 네게 알려 줬다.”
“뭘 알려 줬는데? 신나게 얻어터지는 법? 아니면 일방적으로 개작살나는 법을 알려 준거야? 덕분에 자존감이 개같이 바닥을 찍었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넌 나한테 처맞았지만 이 대련은 네 승리다. 나를 무력화시켰으니까.”
나는 대지의 검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기왕이면 못 나오게 깊숙이 파묻어야 했겠지만 말이다.”
“템빨도 실력이라면 그 말도 맞긴 하네.”
하지만, 대련에 대지의 검을 쓰는 건 미친 짓이 맞았다.
한시혁이 진짜 죽어 버렸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던 상황이었으니까.
나도 일단 살아야겠다 싶어 썼을 뿐.
하지만, 한시혁은 저를 죽일 뻔한 상황에 도리어 칭찬을 하고 있었다.
어떠한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말고,
망설이지도 말고,
“규칙은 실전에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해라.”
듣자 하니 어이가 없다.
“겨우 그걸 알려 주려고 온 거야?”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뱉는 말에, 한시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음에는 조금 더 세부적인 코멘트가 이어졌다.
한시혁은 방금 전의 대련에서 내 약점을 짚어 주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너는 너무 안일하게 생각했다. 왜 내가 전력을 다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
“….”
“그 안일함 때문에 시작부터 빈틈을 보였다. 목숨이 달렸으면 처음부터 최대 출력으로 내게 맞섰어야지. 내가 폭주한다 한들, 네 타고난 마력도 크게 뒤처지지 않아. 그걸 이용해라.”
한시혁의 조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너는 노련함이 부족하지만 반사 신경은 좋아. 네 잘난 주둥이에 비해 처맞고 자라질 않아서인지 맷집은 약하니까 차라리 피하는 걸 택해라.”
말에 뼈가 있는 것 같은데.
그래, 여기까지는 교수가 학생에게 으레 해 줄 수 있는 조언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뭔가 이상했다.
“나는 공격을 왼손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싸우게 된다면 왼팔을 노려라.”
“….”
“나는 장기전에 강하다. 뒤로 갈수록 네가 불리해질 테니, 나를 몰아붙일 거면 초반에 전력을 다해.”
표정을 읽을 수 없는 무심한 눈동자.
한시혁이 뱉어 내는 말들이, 하나같이 불길했다.
“이런 걸 왜 알려 주는 건데.”
싸늘히 굳어가는 내 표정에도, 한시혁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방금도 확인했겠지만 그 검으로는 나를 죽일 수는 없으니, 차라리 그것으로 발을 묶고 확인 사살을 하는 쪽을 택해라.”
“왜 알려 주는 거냐고.”
“그리고….”
한시혁은 똑바로 나를 응시한 채 입을 떼었다.
“나를 꺾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오늘처럼 망설이지 마라.”
아까까지는 미동도 없던 눈빛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최선을 다해.”
한시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땐, 네가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