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28)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28화(228/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28화
한태수가 사직서를 쓰고 물러나면서 카스티카 령의 총책임자는 한시하가 되었다.
백작은 여전히 영지를 다스리나, 전장에서 직접 뛰는 것은 그의 후계자인 한시하였으므로 대부분의 결정권은 한시하에게 가 있었다.
그러니까,
자신이 변방만 돌아다니며 일반 병사들을 상대하는 것도.
그 어떤 마법사들보다 개고생하며 직접 발로 뛰는 것도,
하루도 쉬지 않고 구르고 있는 것까지….
전부 한시하의 명령에 따른 것이란 말이다.
아델라는 주먹을 세게 움켜쥐었다.
전쟁 후 가장 먼저 카스티카 령에 지원했던 아델라였다.
하지만, 그 뒤로 정작 한시하가 있는 막사에는 가 보지도 못하고 이런 곳에 쫓겨나 뼈 빠지게 구르고만 있다.
‘내가 이러려고 온 게 아닌데.’
만나러 온 사람은 보지도 못하고, 육체적으로 굴러야 하는 전장에만 보내지다 보니 지칠 대로 지친 상황.
가장 힘든 곳에 보내 놓고선 얼굴 한 번 비춰 주질 않는다.
항의는 수없이 했다.
다짜고짜 찾아간 적도 있었다.
당연히 전부 묵살이었다.
그렇게 반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버린 것이다.
아델라는 아랫입술을 악물고선 한숨을 푹 내쉬었다.
“대체 이유가 뭔데?”
내가 뭘 잘못한 거면 말이라도 하면 되잖아.
어느 날 갑자기 그래 버리면,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조차 없는데.
한 한 달은 원망했다가, 한 달은 이해해 보려 했다.
무슨 일이 생긴 거라고, 그것도 아니면 전쟁에 지쳐 버린 거라고.
마음의 여유가 조금 필요한 것일 거라 믿었다.
그런 자기합리화도 어느덧 6개월이다.
언제 죽어도 치열하지 않은 전장에서 한시하의 명령 아래 싸워 왔다.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순간에도 단 한 번의 위로조차 받질 못했다.
그런 제 모습이 너무 비참해서 카스티카 령을 떠나 다른 곳에 배정받을까 생각도 했었다.
적어도 다른 영지에선 이렇게 푸대접을 받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훨씬 좋은 환경에서 영웅 취급을 받으며 비교적 편히 쉴 수 있겠지.
하지만, 아델라는 카스티카를 떠나지 못했다.
여길 떠나 버리면, 정말 평생 나를 만나주지 않을까 봐.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는 모르지만, 그 이유라도 알면 좋을 텐데.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다.
직접 붙잡아 묻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만나주지 않을 것은 물론이고 사마트폰 연락도 받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에 사흘 밤낮을 고민했다.
그리고, 아델라는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은 못 참겠어.”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채로 엉켜 있는 매듭.
그 매듭을 풀지 못해 잘라 버리는 한이 있어도, 더는 이렇게 못 살겠다.
아델라는 결심한 듯 책상 앞에 앉았다.
“편지를 보낼 거야.”
사마트폰 연락도 받질 않으니 답장은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그럼 직접 찾아갈 거야.”
입구에서 막든 말든 상관없다.
막사를 날려 버려서라도 뚫고 들어가면 되니까.
기다림의 시간은 끝났다.
아델라는 짧게 심호흡을 하며 얇은 종이를 펼쳤다.
직접 쳐들어가기 전에 보내는 일종의 경고장에 가깝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제 마음을 차분하게 전할 수 있는 기회니까.
직접 만나면 분하고 억울하고 슬퍼서 울어 버릴 지도 모른다.
적어도 편지로는 제 눈물을 가릴 수 있으니, 아델라는 날뛰는 심장을 진정시키면서 붓을 들었다.
무슨 말부터 전해야 할까.
어떤 감정부터 담아야 하는 걸까.
한참 동안 미동도 않고 고민하던 아델라는 조심스럽게 편지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꼼꼼한 성격만큼이나 더없이 단정한 글씨였다.
* * *
아델라에게서 편지가 왔다.
열어 보진 않았다.
아델라를 험한 전장에만 골라서 보낸 것도, 억지로 보지 않은 것도 전부 내가 선택한 결과였다.
내가 숨기고 있는 것들을, 막상 아델라를 마주하고 나면 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것 같아서.
나는 악착같이 아델라로부터 도망 다녔고, 아델라가 딴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조금의 쉴 틈도 주질 않은 것이다.
후회하는 선택은 아니었다.
다만, 아주 개새끼가 되었지.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쉼 없이 거짓말을 하는 결과를 낳아 버렸다.
그럼에도 돌이킬 수 없어서 여전히 아델라를 피하고 있다.
그렇게 하면 알아서 나가떨어질 줄 알았는데.
그건 내가 그 애를 너무 쉽게 본 탓이겠지.
아델라의 편지를 열어 보면 괜히 흔들릴 것 같아서, 애써 멀리하려 했다.
그렇게 꼬박 열흘을 편지함에 처박아 둔 채로 외면했건만….
“야, 독수리가 편지 물고 왔는데?”
원이 주워 왔다.
“벌써 열 번째야. 이 정도 정성이면 한 번만 읽어 줘라.”
읽을 생각 없다니까 내 앞에서 흔들거린다.
편지지 새로 비치는 아델라의 깔끔한 글씨가 눈앞을 아른 거린다.
대충 봐도 장문이다.
어떤 마음으로 저런 편지를 열 통이나 보냈는지 모르겠으나, 아직 읽을 용기가 나질 않았다. 원의 뒷말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이번에는 음성편지네. 연다? 열어…?”
“미친놈아.”
“열게.”
“절대 열지 마! 야, 이…!”
하지만, 편지가 음성이라는 점에서 선택지가 내게 있지는 않았고.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막사 안으로 아델라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단정한 글씨로 아델라가 또박또박 써내려갔을 편지의 첫 번째 구절.
벌써부터 죄책감에 가슴이 시려서 도무지 못 듣….
-야, 이 ■■야.”
으… 으응?
-한시하!
응?
-내가 너를 어떻게 ■■ 놓을지 고민하다가 내가 직접 ■■하는 거니까 ■■ 지금 당장 ■■말고 나와….
뚝-
“잠깐만!”
절절한 편지를 예상하고 음성편지를 열었던 원은 당황한 낯빛으로 다급히 편지를 집어넣었다.
“어, 어음. 편지가 잘못 왔나…?”
방금 무수한 욕의 향연을 들었던 것 같은데?
“쟤… 쟤가 저런 말도 할 줄 알았어?”
애가 성격이 더러워서 그렇지, 얼마나 순수한데.
욕도 조금 하고, 화도 가끔 내고 그러지만.
저건 그라데이션 분노 수준이 아니라 아예 풀 악셀로 밟았는데?
이거 맞아?
원래 저랬던 거 맞아?
순간, 당황해서 말문이 막혔다.
원은 말을 더듬으면서 상황을 수습했다.
“어… 어… 그러니까 많이 화났나 본데.”
“….”
“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건 내가 봐도 네가 너무했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원은 어느 정도는 편지 내용이 이해 간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전생에 원수가 진 것도 아니고, 걔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애를 굴리냐?”
원의 말에 잠자코 앉아 있던 윤하을 역시 말을 얹었다.
“잠도 제대로 못 잔다던데. 네가 힘든 곳만 골라 보내서.”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뿐이다.
“나는 강요한 적 없어.”
이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까지 카스티카 령에 오라고 멱살 잡고 협박한 적 없다.
“힘들면 본인이 다른 지역으로 발령받으면 되겠지.”
아델라를 찾는 영지는 널리고 널렸다.
“알아서 골라 가면 되겠네.”
“야, 그게 말처럼 쉽냐….”
별로 문제 될 것도 없다고, 애써 냉정하게 읊조리며 다시 수북이 쌓인 서류를 확인했다.
개자식이라고 욕먹을지언정, 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처리해야 일이 많은 건 나 역시 마찬가지기에, 편지에 대한 토론은 여기까지 하고 다시 집중할 뿐이다.
그런데.
왠지 등골이 서늘했다.
“…음?”
누가 쳐다보는 것 같은데.
머리 위에 불길한 그림자가 드리운다. 나는 슬쩍 고개를 돌려 그 그림자를 올려다보았고….
그곳에는 조금 길어진 단발에, 대지를 담은 듯 변함없이 무심한 눈동자.
여느 때처럼 검을 어깨춤에 메고 있는 한 여자애가 서 있었다.
“어… 어어?”
아델라였다.
“잘 만났다.”
“…흐이이익!”
* * *
우당탕탕.
하마터면 뒤로 고꾸라져 넘어질 뻔한 것을 간신히 붙잡았다.
얘가 왜 여기 있어?
대체 언제 온 건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힘겹게 말을 뱉었다.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놀랐잖아.”
“제 발 저려서 놀란 거겠지.”
내가 잘못한 건 맞는데.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데!
어찌 되었건 이 막사의 주인은 나다.
순간 잃을 뻔했던 이성을 간신히 붙잡고선 제법 차분하게 받아쳤다.
“여기에 오라고 허락한 적 없을 텐데.”
아델라는 조금의 흐트러짐도 없이 나를 내려다보았다.
이윽고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불편한 말투가 튀어나왔다.
“허락하지 않으셔도 올 생각이었습니다. 무려 공적인 일로요.”
아델라는 이를 까득 악물고선 덧붙였다.
“공적인 일…?”
“정식 대련을 신청하러 왔습니다.”
“합법적으로 나를 패고 싶었구나.”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예전처럼 땅에 묻어드리는 건 참 잘할 수 있는데요.”
“….”
“묻어드릴까요?”
“아니.”
저건 진심이다.
나는 침을 삼키며 손사래를 쳤다.
“말 좀 놓지. 더 무서워.”
내 말에 아델라는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없는 눈빛이 내게 닿았다.
“많이… 화났냐?”
아무 이유 없이 그런 건 아니라고.
나도 내 나름대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변명하고 싶지만.
때는 늦었고, 이제 와 그럴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건 사과밖에 없었는데.
“….”
아델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본 체도 안 하는데.”
“미안하다.”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 일과 어쩌면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을 사지에 몰아넣어야 하는 그곳.
가장 버겁고 힘든 곳에 홀로 던져졌던 아델라다.
“위로는 바라지도 않았어. 편의를 바란 것도 아니야.”
아델라는 떨리는 목소리로 힘겹게 입을 떼었다.
“그냥, 옆에 있어 주면 됐는데….”
그 모든 걸 매정하게 끊어 낸 나는 아델라에게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숨 막힐 듯한 침묵이 이어지던 순간.
아델라는 훌쩍이는 대신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됐어. 변명은 안 궁금해.”
여기까지 찾아온 거면 듣고 싶은 말이 있었을 터.
아델라는 이를 악문 채 말을 이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줘. 그래서 이유가 뭔데? 나를 변방에 처박아 두고 반년을 오지 않았으면 이유가 있었을 거 아니야.”
“그게….”
“여자 문제야?”
어?
“그렇긴 하지….”
그때, 아델라의 시선이 윤하을에게 닿았다.
“야.”
“왜? 나 뭐.”
윤하을은 사과를 오물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난 조용히 먹고 있었능뎅….”
잠깐이지만 다소 살벌한 눈빛이 오고간 듯하다.
“그래, 쟤는 아닐 거고.”
“….”
아델라는 한숨을 푹 내쉬며 다시 내 쪽을 돌아보았다.
“네가 잘못한 거야?”
“그것도 굳이 따지자면 맞는 말이지.”
“말 안 할 거야?”
“말하기 곤란한 문제야.”
억지로 숨기는 건 아니다.
지금은 때가 아니라 생각할 뿐이었다.
그런데.
아델라는 내 말을 곱씹듯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종합적으로 요약해 보자면 여자 문제인데 네가 잘못한 거고, 말하기 곤란한….”
순간, 아델라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그… 점쟁이가….”
오드리세 산맥의 용한 점쟁이.
그 인간이 내게 했던 그 예언.
그… 그러니까….
“너, 설마.”
아델라는 입을 틀어막았다.
“너… 결혼했어?”
뭐?
“…애도 있어?”
결론이 왜 그렇게 되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