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33)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33화(233/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33화
차가운 방이었다.
한시혁은 침음을 삼키며 무거운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마지막 기억이 끊겼던 장면을 생각해 보면, 지금 그가 이곳에 끌려온 것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숨이 막힐 듯한 적막과 폐부를 찌르는 듯한 짙은 마기.
“정신이 좀 드나?”
한시혁의 앞에는 아바돈이 앉아 있었다.
“생각보다 오래 기다렸는걸. 잠시 재웠을 뿐인데, 너무 오래 자더라고.”
능청스럽게 덧붙이는 말에 등골이 서늘해졌다.
한시혁은 고개를 돌려 제 팔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예상외로 자유롭다.
자신을 이곳까지 끌고 왔으면서 묶어 놓지 않고 가만히 내버려 둔 것.
그게 배려가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한시혁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나를… 조종할 생각입니까?”
알 수 없는 힘의 원천을 알게 되었다.
세피아에게서 받은 자신의 힘은 애초에 아바돈의 것이고.
그렇기에, 그는 자신을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마음만 먹으면 저를 제멋대로 할 수 있는 자가 눈앞에 있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세피아는 이 모든 걸 알았기에, 자신을 그토록 숨기려 했다.
아바돈은 비릿하게 웃으며 한시혁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실제로 보니 더 훤칠하게 생겼어. 세피아가 좋아할 스타일이야. 눈이 돌아갈 만해.”
“저를 조종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
아바돈은 한시혁을 빤히 바라보았다.
빨려 들어갈 정도로 깊어서, 도리어 섬뜩해지는 눈빛이다.
한시혁은 이를 악문 채 아바돈을 마주 보았다.
아바돈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할 수 있지.”
그러고는, 덧붙였다.
“네 말대로 나는 너를 통해 참 많은 것들을 할 수 있다.”
“네가 이성을 잃고 바닥을 기게 만들 수도 있고, 이 자리에서 자결을 시킬 수도 있지.”
아.
세피아.
“그래, 네 손으로 그 여자의 심장에 칼을 박아 넣게 만들 수도 있겠군.”
아바돈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재밌지 않나?”
“….”
일순간 교차하는 감정.
무너지는 한시혁을 보며 아바돈은 다시 한 번 더 웃었다.
방금 전까지 서슬 퍼런 눈으로 저를 노려봤던 한시혁이 무릎을 꿇었기 때문이었다.
아바돈은 이 상황이 웃겨죽겠다는 듯 배를 잡았다.
“아학… 학학학….”
조종이 특기한 아바돈이다.
조종당하기 전만 해도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이를 갈던 인간들이, 저리도 쉽게 굴복하는 걸 한두 번 본 것이 아니다.
수백, 아니 수천 번을 보았다.
“그게 나한테 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참으로 웃기는 일이다.
아바돈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어서 거칠게 숨을 들이마셨다.
한시혁은 그런 아바돈을 노려보며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악마 같은 인간에게 온정을 바라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빌고 있을 뿐이다.
그런 한시혁의 속내를 알 리 없는 아바돈은 그런 바람조차 짓밟았다.
“예언가들은 머리가 좋은 족속들이라고 들었는데, 네놈은 참 병신 같은 대가리를 달고 있구나.”
“….”
“이럴 때는 제안을 하는 거다, 멍청한 예언가야. 잘 생각해 봐. 내가 지금 가장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일 것 같나?”
뜸을 들이는 걸 보아하니 꿍꿍이가 있는 듯한 눈빛이었다.
아바돈은 서늘하게 웃으며 입을 떼었다.
“그놈의 목이지.”
누구를 지칭하는지 알고 있었다.
한시혁은 이죽거리는 아바돈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아바돈은 그런 한시혁을 독촉하듯 말을 이었다.
“어려울 것도 없어. 네가 한시하, 그놈의 목을 가져오면 이번 일은 없던 걸로 하지. 세피아와 둘이서 야반도주를 하든, 산속에 처박혀 살든. 나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소리야. 어떤가?”
“….”
“꽤 괜찮은 제안이지?”
한시혁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아바돈은 오히려 더 히죽거리며 어깨를 으쓱였다.
“왜? 꼴에 가족이었다고 죄책감이 드나? 피 한 방울도 한 섞인 사이인데?”
아바돈의 재촉에도 한시혁은 말이 없었다.
한참을 대답 대신 아바돈을 노려보던 한시혁.
“….”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악물고선 몸을 일으켰다.
먼지를 털고 일어서는 한시혁의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약속을 지킬 생각이 없군.”
처음부터 선택지가 없던 질문이었지 않나.
한시혁은 아바돈의 의중을 정확히 짚어 내었고, 그는 한시혁의 대답에 껄껄 웃었다.
“이래서 점쟁이들 상대로는 거짓말을 못하겠단 말이야.”
한시혁의 말이 맞다.
아바돈은 저를 배신한 부하를 살려 둘 이유가 없다.
그러니, 이 상황이 그저 우스울 뿐이다.
찰나였지만, 고민하던 저 눈빛조차 우습고.
서슬 퍼렇게 저를 노려보는 저 이성 잃은 눈빛은 더더욱 우습다.
이래서는 웃지 않을 수가 없잖아.
그 순간.
“컥!”
한시혁은 아바돈의 목을 움켜쥐었다.
어차피 죽이지 못하리라는 걸 알면서도, 이를 악문 채 그의 목을 짓눌렀다.
모든 증오와 원망이 담긴 눈빛.
아바돈은 한시혁의 분노를 고스란히 느끼며 실실 웃었다.
저항조차 하지 않는다.
한시혁은 그런 아바돈을 노려보며 한층 더 무력감을 느끼면서도, 차마 이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었다.
“개자식.”
죽이지 못해 통탄스럽고,
죽일 수 없어서 원망스럽다.
한시혁은 이를 까득거리며 아바돈을 벽에 몰아붙였다.
쾅. 쾅.
벽이 흔들릴 정도로 패대기를 치면서도,
아무것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조금의 타격도 그에게 가하지 못한다.
저 인간은, 아니 저 악마는.
세피아가 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히죽거릴 것이고.
미쳐가는 자신을 보며 웃어 대겠지.
카스티카가 무너지고, 아르델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동안에도.
저 악마는 마냥 즐거워할 테니.
한시혁은 아바돈의 목을 움켜쥔 채 힘겹게 말을 토해 내었다.
“예언자로서… 마지막 예언을 하지.”
역겨운 눈빛이 자신을 올려다본다.
한시혁은 아바돈의 낯빛에서 웃음기가 가실 예언을 뱉었다.
“그 애는 당신을 죽일 거야.”
나를 죽이고, 당신도 죽일 것이다.
“이 전쟁을 끝낼 거야.”
“말 같잖은 소리를 하는군. 뱉는다고 다 예언이라 생각하나.”
아니, 확신한다.
“너는 평생,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증오 가득한 음성.
한시혁은 저주를 퍼붓고선 아바돈의 목을 조르던 손을 놓았다.
깨질 듯한 두통이 몰려왔기 때문이었다.
한시혁은 머리를 움켜쥐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어윽….”
그게 그의 마지막 의식이었다.
* * *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역겨운 감각이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허억… 헉….”
한시혁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들었다.
조금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바돈이 앗아 간 정신.
그 사이에 들어온 자신이 아닌 자아가 이미 머릿속을 헤집어 두고 갔다.
그 여파로 깨질 듯한 두통은 여전히 가시질 않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지금의 현실을 자각시켜 줄 잔혹한 광경이 한시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
툭.
한시혁은 피가 흥건히 묻어 있는 검을 손에서 놓았다.
의식을 놓은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 것 같아서.
잠시, 숨이 멈췄다.
한시혁은 힘겹게 그 옆을 돌아보았다.
“세피아….”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세피아가 헐떡이면서 누워 있었다.
그 장면이 조금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한시혁은 공허한 눈으로 피가 묻은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제 손으로,
저를 구했던 여자를 찔렀다.
“내가… 왜….”
이성을 놓았어도 그 순간만큼은 잡고 있었어야지.
검을 비틀어서라도.
제 목을 찔러서라도.
이것만은 막았어야지.
자책과, 분노와, 증오의 감정들이 온몸을 휩쓸었다.
그 감정들을 이길 수 없어서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 순간, 세피아가 눈꺼풀을 파들거렸다.
고통스러운지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못하면서,
그녀가 힘겹게 말을 뱉었다.
“한… 시혁씨….”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한시혁은 세피아의 옆으로 기어갔다.
“말하지 말아요.”
차갑게 식어 버린 그녀의 손을 잡았다.
온기가 사라져 간다.
이대로 남아 있는 체온마저 다 식어 버리면, 그때는 정말 잡을 수 없을 것 같아서.
한시혁은 어떻게든 제 체온을 건네주려 세피아의 손목을 붙들었다.
“가만히 있어요. 버… 버텨야 합니다. 제가 의원을 불러오겠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곳에 의원이 있을 리도 없을 뿐더러, 지금 이 상황에 누가 오든 도움을 줄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까.
하지만, 한시혁은 말도 안 되는 말들을 읊조리면서 스스로를 세뇌했다.
그녀를 살릴 수 있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피아의 손은 곧 죽을 사람처럼 너무도 차가웠고.
한시혁이 잡는다 하여 잡히지 않았다.
그때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었는지, 아까부터 입술을 달싹이던 세피아가 움찔거렸다.
“한… 시혁씨….”
한시혁은 몸을 숙여 귀를 가져다대었다.
유언이라도 남길 것처럼,
그리 힘들게 뱉어 낸 말은 너무도 우스운 물음이었다.
“이 장면… 본 적 있어요….”
눈앞이 흐려지는 듯하다.
한시혁은 뺨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죽는 미래를 보았다.
이렇게 비참하게.
검이 박힌 채, 피를 흘리며 죽어 가는 미래를 보았다.
“봤… 습니다.”
세피아는 슬프게 웃으며 한시혁을 올려다보았다.
“참… 안타까워….”
세피아는 손을 뻗어 한시혁의 뺨을 쓸어내렸다.
떨리는 손이 자꾸만 허공을 휘저었다. 이조차도 마음대로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세피아는 한시혁을 원망하는 대신,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당신은 모든 걸 알지만… 아무것도 막을 수 없으니까….”
한시혁은 세피아의 죽음을 한참 전에 예견했다.
그녀의 신념 때문에, 아바돈이 그녀를 죽이게 될 거라는 걸 알았지만.
더 자세히 보지 못한 미래는 늘 후회로 남는다.
한시혁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그게 나 때문인지 알았더라면… 남아 있지 않았을 텐데….”
세피아와 함께하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 선택이었다.
그녀에게서 도망칠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
이 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 이유는 모른다.
카스티카의 서자로,
저주받은 마을의 생존자로,
빌어먹의 예언의 대상으로.
이 세상 그 어디에서도 속하지 못했던 자신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다.
갈 곳이 없어서.
그저 그런 이유로 남아 있던 게 맞을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적어도 그 마지막만큼은.
당신을 꽤 좋아했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결국 한시혁은 그 마지막 말조차 하지 못했다.
툭.
저를 움켜쥐려던 손이 힘없이 떨어진다.
“미안해.”
그 말을 끝으로, 그녀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