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4화(2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4화
나에게만 들리는 건가?
“나 다 챙겼어. 잠깐만! 아악, 무겁잖아!”
“진짜, 진짜 잠깐만!”
“내가 나가면 절할게, 잠깐마안!”
나는 돈에 눈이 돌아간 듯한 원을 돌아보며 확신했다.
내게만 들리는 건 맞는 듯했다.
그렇다면, 이건 환청인가 실재인가.
원작 속에서 말하는 마법서에 대한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는데.
…내가 드디어 미쳐 버린 건가.
[이방인이여.]내가 헛소리를 듣고 있는 게 아니라면, 떠오르는 가정이 하나 있기는 했다.
주인공 이한에게 한 번 나타난 적이 있는 카르멘의 예언서.
그것이 특별한 힘을 지닌 스크롤이나 서적에 깃든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있으니까.
예언이 필요할 때, 그 예언이 필요한 대상에게 나타난다는 절대적인 예언서.
헌데, 그게 왜 나에게 나타난 걸까.
[이방인….]“그만 불러. 미친놈아.”
나는 목소리를 낮추고서 조용히 복도를 빠져나왔다.
책을 보면서 나 혼자 중얼대고 있으면 저 새끼가 진짜 흑마법서라도 주웠나, 원이 오해할 게 뻔했다.
나는 이를 악문 채 기초마법주문서를 내려다보았다.
새하얀 빛이 감돌고 있는 걸 보니 확실했다. 이 책에 분명 무언가 깃들었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내가 외부인임을 알고 있다.
이방인이라는 단어 선택.
단순히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이상하지 않나.
의문의 목소리는 내 말에 대답하듯 말을 이었다.
[이방인이여.] [그대가 하려는 모든 행동은 세상을 비틀 것이다.]내 의심을 꿰뚫는 듯한 한마디.
“….”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내가 별생각 없이 하는 행동들이 원작의 전개를 뒤바꿔 놓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 이 자리엔 내가 있어서는 안 되었으니.
원래대로라면 나는 결코 살아남으면 안 되는 인물일 테니.
“세상을 비틀어?”
이 말을 하는 상대가 이 예언서만 아니었어도.
나는 그저 당연한 일이라 웃고 넘겼을 터였다.
이야기에 주축이 될 만한 주요 메인 에피소드.
큐브에 관한 건만 건드리지 않으면 조용히, 그저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카르멘은 절대적 예언서.
아무리 부정하더라도 예언서 속 내용은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이제부터라도 모든 일에 손을 떼야 하나?
아니, 애당초 아르델 아카데미에 나 같은 인간은 존재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방인이면 이방인답게. 에피소드와는 전혀 동떨어진 곳에서 혼자 처박혀 살아갔었어야 했는데.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되지 않을까 했던 것이 슬금슬금 원작의 미래를 바꿔 나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최악의 수로 자퇴까지 고려하고 있었을 때였다.
[허나, 이방인이여.]서늘한 음성이 다시 나를 불렀다.
[그것이 네게 주어진 역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세상은 멸망할 것이다.]그 말과 동시에.
핑-.
의식이 끊어졌다.
* * *
“괜찮은 거 맞아?”
원이 걱정스레 내 머리를 짚었다.
목소리를 듣고 그대로 쓰러진 지 반나절이 지나서였다.
“저주받은 동굴, 그런 거 아니야? 어쩐지 찜찜하더니만.”
“그런 것치곤 그 목걸이 너무 잘 끼고 다니는 거 아니냐?”
원은 내 타박에 생글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금은 저주도 이기는 거야. 반은 팔았어.”
“빠르군.”
“너 자는 동안 약속대로 절도 두 번 했다고.”
“…보내 버릴 생각이었던 건 아니지?”
“그럴 리가 있나.”
원의 말에 웃음을 흘리며 이불을 덮었다.
으슬으슬하니 몸 상태가 영 별로긴 하지만, 저주 때문은 아닐 것이다.
아마 예언의 대가일 것이다. 들어야 할 말을 들었고, 한편으로는 들어서는 안 될 소리를 들었다.
자연스레 생각이 복잡해졌다.
“나 조금 쉬고 있을게.”
“푹 쉬어라. 매점 다녀올 테니까.”
원을 향해 넌지시 말을 던지자, 눈치빠른 녀석이 자리를 비켰다.
쾅.
문이 닫히자마자 한숨이 절로 새어 나왔다.
이미 내가 저지른 일들은 적잖은 나비효과를 일으켰다.
내 행동의 여파로 메인 캐릭터가 죽을 수도 있으며, 흑마법사들이 전쟁에서 이길 수도 있고.
아르델이 무너질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내겐 최악의 가정일 뿐이다.
멸망한 세상에선 나도 살아남지 못할 테니까.
심호흡을 하며 나직이 말을 뱉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 건가.”
나는 분명.
이야기의 변두리에서 조용히 살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따금 깽판도 치면서, 내 몸을 지킬 정도로만 적당히 강해지면서.
그렇게 남들처럼 살아갈 생각이었다.
내 팔자 내가 꼬는 거면 전생에서 충분히 했다.
나서지 않아도 될 일에 나서면서 적을 만들고, 비참해지고, 나락으로 몰리면서.
몇 번이고 그러지 않기로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내 변수로 인해서 이 세상이 망한다면.
그걸 바로잡을 인간이 나밖에 없다면.
나는 가만히 있어야 하나?
아니, 가만히 있어도 되는가?
지그시 깨문 아랫입술에서 피가 배어나왔다.
슬카데미의 메인 스토리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빙의자이자, 외부인.
나는 그 사실을 상기하며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가.
“뭘 고민하고 앉아 있냐.”
어이없어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 들이받을 거면서.”
알고 있었다.
나는 결국 발을 들이리라는 걸.
살기 위해서라도, 나는 움직여야 했다.
* * *
“한시하지?”
“맞는 거 같은데?”
“어떻게 된 거야? 야, 한 번 물어봐봐.”
“네가 물어보든가.”
“아, 왜. 괜히 무섭단 말이야….”
다음 날, 한시하의 등장과 동시에 강의실이 술렁였다.
한시하가 아델라와 솔리아를 구해 냈다는 기가 막힌 스토리는 학교를 뒤집어 놓기에 충분했다.
앞으로 같은 강의실을 쓰게 될 마법과 학생들.
그들 틈에서 한시하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한시하가 정말 구한 게 맞다면, 그 주사위가 제대로 본 거 아닐까?”
2학년의 막차. 간신히 낙제를 면한 클로이는 두 손을 모은 채 나직이 중얼거렸다.
“주사위? 마법과에 배정한 거?”
“그렇지! 우리는 못 보는 걸 주사위는 봤을 거 아냐!”
“허억… 그러면 주사위는 어제 있었던 일도 다 알고 그런 걸까?”
“그럴지도 모르지.”
클로이의 한마디에 옆에 앉은 여자애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했다.
“요새 뭐랄까, 조금 달라진 거 같긴 해서. 나는 한시하가 마법과에 배정될 줄 알았어.”
“진짜?”
“크릭에 관해서 도는 소문도 그렇고, 강령과로 간 그 재수 없는… 황족 그분. 그분 울린 것도 한시하라며.”
“맞네!”
파비안에게 입학하자마자 머저리라고 독설을 들었던 클로이는 감격한 얼굴이 되었다.
그 사람을 응징해 준 것이 한시하라니. 역시 자랑스러운 마법과다웠다.
‘내가 저런 사람과 같은 과에…!’
막차를 탔어도 같은 과는 같은 과니까.
클로이는 멀찍이 앉은 한시하를 힐끗 바라보고선 고개를 푹 숙였다.
“아, 그런데.”
그때, 한 명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얹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솔직히 1학년 때도 한시하는 묘하게, 그, 퇴폐미가 있었어.”
“…너무 이제 와서 하는 말인데?”
“전혀 그런 거 없었을 걸?”
“아냐, 그건 진짜 아닌 것 같아.”
유감스럽게도 아무도 인정해 주진 않았지만, 어쨌든 모두들 지금의 한시하가 180도로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데에는 모두가 같은 생각이었다.
“역시 머리빨이… 앞머리만 쳐 내도 저렇게….”
“미쳤다….”
“저 얼굴을 대체 왜 가리고 다녔던 걸까.”
“으아악, 방금 이쪽 쳐다본 거 같은데!”
“눈 마주쳤어어!”
꺄아악!
한 명이 냅다 소리를 내지르자, 줄줄이 입을 틀어막는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고 있던 아델라는 혀를 내두르며 중얼거렸다.
“아침부터 지랄 났네.”
어찌 그런 말을.
“너… 언어 선택이….”
그녀를 따라 강의실에 들어서던 솔리아는 아침부터 과격한 말을 들은 탓에, 충격 먹은 듯 입을 떡 벌렸다.
“지랄을 지랄이라고 하지, 그럼.”
그러든지 말든지 아델라는 한숨을 내쉬며 책을 펼쳤다.
스윽. 슥.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지난 필기본을 훑어보며 공부를 시작한다.
어제 납치를 당했던 사람치고는 놀라울 정도의 평정심이다.
“원래… 저랬지. 아델라는.”
솔리아는 그런 아델라를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한시하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음… 왜일케 시끄럽냐.”
소란을 들었는지 잠시 강의실을 두리번거리던 한시하는 다시 철푸덕 책상 위에 엎드렸다.
어제 겪은 일이 꽤 피곤했기 때문일까. 금세 반기절 상태로 잠에 드는 듯했다.
꽤 가까운 자리.
솔리아는 한시하를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어제의 일이 떠올랐다.
‘네가 우리를, 싸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해.’
제법 어른스럽게 느껴지던 목소리.
솔리아는 그 목소리를 곱씹으며 두 눈을 끔뻑였다.
한시하가 제 목숨을 살렸다.
자신이 저주받은 나무에 정신을 홀라당 뺏겨 버리기 전에, 그 아찔한 상황 속에서.
한시하가 기적처럼 나타났고 자신과 아델라를 구했다.
솔리아는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른 사람 같아.”
솔리아는 저 애들이 말하는 1학년의 한시하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정확히는 신경을 안 썼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조용하고 음침하며 흑마법에 관심 있는 녀석이었다면 자신이 본능적으로 거리를 뒀을 테니까.
하지만, 솔리아는 그보다 훨씬 전.
어릴 적의 한시하를 기억한다.
전쟁으로 제 가문이 망하기 전에, 아르케넨트와 카스티카는 퍽 우호적인 관계였기 때문이었다.
솔리아는 그녀의 아버지와 한태수 백작이 나누었던 대화를 들은 적이 있었다.
만약 아르케넨트가 망하지 않았더라면, 둘은 아마도 아카데미 졸업 후에….
그러니까.
정략결혼 상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음.
하마터면 그럴 뻔했다.
-착한 척 하지 마아! 재수 없다고! 마력도 내 반토막인 주제에 나 이겨 먹지 말라고오오!
솔리아는 교양 없이 언성을 높이다가 한태수 백작에게 목덜미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갔던 과거의 한시하를 떠올렸다.
“아.”
그 모습이 어제의 얼굴과 오버랩되어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아무리 봐도, 같은 사람 아니다.
몇 년이 지났으니 그게 뭐가 중요하겠냐마는.
적어도 어제의 아찔한 순간에는, 구원자를 만난 듯 그 얼굴이 그토록 반가울 수 없었으니.
“정말 오랜만이야.”
솔리아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흐릿한 미소를 흘렸다.
여전히 한시하를 빤히 응시한 채였다.
그런데.
그 순간.
끔뻑.
한시하가 눈을 떴다.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시선을 돌릴 틈도 없이, 정면으로 눈이 마주친다.
솔리아는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어….”
깊은 갈색의 눈이 솔리아를 올려다본다.
한시하의 입에서 당황한 듯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뭘 그렇게… 빤히 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