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41)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41화(241/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41화
마지막 기억이 끊긴 지도 퍽 오래 되었다.
모든 감각이 차단된 무의 공간.
한시혁은 공허한 눈빛으로 가만히 앉아 있었다.
자신을 조금씩 좀먹던 아바돈의 정신은 제 육체를 차지하는 데에 성공하였고, 마침내 자신을 이곳에 가둬 버렸다.
세피아를 제 손으로 죽여야 했던 날.
한시혁은 그 검으로 제 목을 겨누었다.
피바람을 불러 올 연쇄의 사슬을 끊어 내기 위하여,
대륙의 희망이 될 그 아이만은 살려야 했으므로.
한시혁은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제 심장에 칼을 박아 넣으려 했다.
그러나,
빌어먹을 조종은 제 바람대로 죽을 자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영혼이 죽어 버린 제 몸뚱어리는 여전히 살아 있다.
살아서, 온 세상이 손가락질할 죄악들을 서슴없이 행하고 있을 테지.
바깥세상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곳에서.
한시혁은 쉼 없이 후회하고, 자책하다가, 읊조리듯 중얼거렸다.
‘너는 버텨 주어야 한다….’
자아가 완전히 먹혀 버린 한시혁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 아이가 아바돈의 도구가 되어 버린 자신의 생을 불쌍하게 여겨,
평안히 죽음을 선사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 * *
마기를 최대치로 출력해 낸 한시혁의 주변으로 검은 아우라가 일렁인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그 자리에서 쓰러졌을 만큼 짙은 마기의 농도.
아직 몸을 회복하지 못한 한시하에게도 치명적이다.
“으… 으윽….”
한시하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를 똑바로 마주한다.
한시혁에게서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욕망으로 번들거리는 눈빛이 자신에게 향한다.
한시하는 그 눈빛을 돌려내리라 다짐했다.
휘이이익-.
맹렬한 파공음과 함께 한시혁의 검이 날았고,
동시에, 바실이 슬픈 울음소리를 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턱없이 부족하다.
화르륵-.
바실의 불꽃은 한시혁의 마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재가 되어 버린다.
“그르르르-.”
쾅!
번쩍-.
하늘에서 소환해 낸 번개도, 한시혁의 몸에는 조금도 닿지 않았다.
점점 더 크게 일렁이는 저 아우라는 그의 육체를 공격하는 모든 것들을 태워 버린다.
그 어떤 공격도 통하지 않는 상대.
지난 2년 사이, 한시혁은 더욱 강해졌다.
홱-.
한시혁은 한시하의 빈틈으로 단숨에 파고들었고, 마기가 서린 검으로 그의 어깨를 베어 버린다.
“컥!”
피하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제 목덜미를 베어 버렸을 날카로운 검.
한시하는 비명을 억누르며 지팡이로 한시혁의 공격을 막았다.
“하… 하아….”
둔해진 몸은 피할 수 있는 공격도 너무 쉽게 허용하고 만다.
한시혁만을 노리는 바실의 브레스와, 아델라의 염동 공격.
둘이 공격에 합세했지만, 한시혁은 설계된 것처럼 한시하만을 노리고 있었다.
제 몸이 타들어 가고 무너지는 와중에도 한시하만을 죽이려 드는 것이다.
그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을 잃어버린 살육기계를 떠올리게 했다.
우우웅-.
염동으로 끌어 올린 돌들이 허공에서 빠르게 회전하며 한시혁을 가격한다.
그러나, 그는 마기가 서린 검으로 아델라의 돌을 쉽게 베어 버렸다.
순식간에 도약한 한시혁은 거리를 좁히며 들어왔다.
한시하의 목을 노리기 위한 공격.
빠르게 날아든 바실이 한시혁의 팔을 물었다.
쾅- 콰콰광-.
요동치는 마기와 함께 강렬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꾸우우!”
나가떨어진 바실은 고통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한시하는 이를 악문 채 한시혁을 바라보았다.
그 역시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다.
“정말 미쳐 버렸군.”
“….”
“이제는 내 말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지?”
한시혁은 어느 샌가 닿지 못할 정도의 괴물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두려워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도리어 차분해진다.
정신력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으나, 진작에 몸은 무너진 상태.
한시하가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직 ‘기억’뿐이었다.
한시혁과 싸워 본 기억.
마치 어제 일처럼 한시혁이 건넸던 조언이 귓가를 맴돌았다.
‘나는 공격을 왼손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싸우게 된다면 왼팔을 노려라.’
한시하는 한시혁의 약점을 알고 있다.
그에게 직접 들었으니까.
“왼쪽이야.”
한시하가 읊조리듯 말을 뱉자, 바실은 망가진 몸으로 다시 달려들었다.
한시혁의 왼팔을 물어뜯으려는 바실. 거기에 아델라가 가세한다.
그가 검을 뻗지 못하도록, 바실과 아델라는 그의 왼손을 묶어 버렸다.
한시혁이 당황한 기색으로 움찔거리는 사이, 한시하는 대지의 검을 꺼내었다.
‘나는 장기전에 강하다.’
‘뒤로 갈수록 네게 불리해질 테니, 초반에 전력을 다해.’
그의 아우라는 무섭도록 타올랐고, 마기는 점점 강해져 곧 자신을 집어삼킬 듯하다.
그의 말대로 한시혁은 공격받는 지금에도 조금씩 강해지고 있다.
“이 날이 올 걸 예견했으면, 그 조언. 나한테 하지 말았어야지.”
서로 검을 겨누어야 하는 상대가 되었고,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할 관계가 되었다.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시혁의 조언을 따르는 일뿐이다.
한시하는 중얼거리며 검을 들었다.
“한 번에 간다…!”
움직임이 읽힐 정도로 둔해진 몸이지만, 이를 악문 채 허공을 갈라 한시혁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아델라가 잠시 묶어 둔 그의 왼팔을 노려 검을 던진다.
“으아아아악!”
“피해!”
한시하는 바실에게 외쳤고, 녀석은 순식간에 자신을 잡아채 날아올랐다.
쾅-.
쾅-.
쾅-.
대지가 요동친다.
땅이 순식간에 꺼지면서 지하 1층 전체가 흔들린다.
단단하던 흙은 모래처럼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대지가 한시혁을 집어삼켰다.
드드드드.
지진이 난 것처럼 온 땅이 흔들린다.
툭-.
“꾸우우! 꾸!”
“으… 으윽….”
바실은 한시하를 입구 앞에 던져 놓았다.
흙에 묻히지 않았으니 몸은 괜찮다.
한시하는 곡소리를 내며 몸을 일으켰고, 한시혁. 아니, 그가 있었던 자리를 보았다.
“푸하…!”
대지의 마법사 아델라는 땅 속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그녀는 애초에 이 공격에도 당하지 않는 사람이니.
어찌 되었건, 한시혁은 보이지 않는다.
“…묻은 거야?”
“아니.”
한시혁의 마기가 잠잠하게 사그라진 지금에도, 한시하는 쉬지 않고 그의 조언을 되새김질한다.
“이걸로는 못 죽여.”
이미 겪어 본 대련이니, 실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시혁이 생각한 대로 굴러가고 있다.
‘그 검으로는 나를 죽일 수 없으니, 확인 사살을 해라.’
대지가 다시 꿈틀거린다.
폐허가 된 지하 1층의 벽을 뚫고 그의 마기가 올라온다.
검은 아우라가 그가 아직 살아 있음을 증명했다.
저벅저벅.
한시하는 땅에 파묻힌 한시혁을 꺼내 올렸다.
아직 기절했을 뿐, 여전히 숨을 쉬고 있다.
“봐봐, 살아 있잖아.”
“어떻게… 할 거야?”
아델라가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다.
필요 이상의 마기를 꺼내 썼으니 몸은 이미 부서지고 있는 상태.
그가 깨어나기 전에 확인 사살을 해야 한다.
“지금이 기회야.”
죽여야 한다.
한시하는 떨리는 손으로 한시혁의 목에 지팡이를 겨눈다.
죽여야 하는데….
망설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빌어먹을 예언가. 쓸데없이 실력은 좋아.”
망설이고 말았다.
“한시하!”
아델라의 다급한 외침.
그 순간, 한시혁의 두 눈이 번쩍 뜨였고,
“컥!”
정신을 잃을 듯한 마기가 그대로 한시하를 덮쳤다.
한시혁은 순식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한시하의 목에 검을 겨누었다.
“…!”
서늘한 감촉이 목에 닿는다.
이 각도에서 한시혁이 자신을 베어 버린다면, 살 수 없을 것이다.
한시하는 이를 악문 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끝났다고 생각한 순간.
“…망설이지 말라고 했을 텐데.”
익숙한 음성이 들렸다.
* * *
한시하는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시혁의 두 눈에 수많은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가, 사라진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한시하를 똑바로 응시했다.
“한시혁…?”
슬픔이 담겨 있는 눈동자.
“하아… 하….”
한시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가 돌아왔다.
허나, 조종이 끝난 것이 아니다.
힘겹게 버티고 있을 뿐이다.
정신력으로 버텨 내고 있을 뿐이다.
오래가지 못한다.
한시혁은 다시 이성을 놓을 것이고, 또다시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그 잔인한 현실에 대한 자책감이 그의 눈빛에 서려 있었으므로.
미래를 예감한 듯, 한시혁은 힘겹게 입을 떼었다.
“내가 알려 줬건만, 가르쳤건만. 너는 또 같은 실수를 반복하였다.”
“그렇게 쉽게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도 않았잖아.”
“하지만, 했어야 했지.”
한시혁은 미간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이성을 잃을수록 나는 강해질 거다.”
알고 있다.
“네가 망설이면 망설일수록, 네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강해질 거다.”
한시혁은 힘을 실어 말했다.
“그때가 되면, 너는 반드시 죽는다.”
예언이 그러했듯, 한시하는 이성을 놓은 한시혁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가능하다.
눈빛이 돌아온 지금에야, 자신은 그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이므로.
한시혁은 잔인한 말을 재촉한다.
“늦지 않았어. 지금 나를 죽여라.”
한시하는 한시혁이 건네는 검을 천천히 내려다본다.
이성을 잃은 와중에도 망설였는데, 하물며 눈빛이 돌아온 지금.
이대로 자신을 찔러달라고?
저렇게 슬픈 눈으로.
살고 싶어 하는 미련이 느껴지는 눈으로.
자신을 죽여 달라는 짐을 지워 주는데.
내가 무슨 수로, 어떻게.
한시하는 이를 악문 채 한시혁을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너무 잔인한 거 아니냐?”
“…어서.”
기가 찬다.
“죽여 달라고 찾아오면 기다렸다는 듯 찔러줄 줄 알았어? 뒈지고 싶었으면 어느 인적 드문 곳이나 가서 죽어 버리지 그랬냐고!”
“나 혼자 죽을 수 있었다면 그리했을 거다.”
“….”
“수백 번, 수천 번을 시도했으나 되지 않았어.”
한시혁의 눈에 자책의 빛이 서렸다.
“괴물이 될 바에 죽고 싶었다.”
“나는 괴물이 되었고, 이제는 죽어야 해.”
점쟁이의 예언은 맞았다.
별 볼 일 없던 예언가는 금지된 힘을 얻어서 카스티카의 후계자를 노리게 된다.
아니, 노릴 수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한시혁은 나를 죽일 수 있었다.
허나, 그걸 생각이 없을 뿐이지.
그렇기에, 그 무거운 짐은 이제 내 몫이 되었다.
한시하는 그 잔인한 현실 앞에 선택해야 했다.
죽일 것인가.
죽을 것인가.
고민하던 그 순간.
“어서!”
한시혁의 눈빛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아바돈의 자아가 다시 그의 몸을 차지하려 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대로 정신이 넘어가면 한시혁을 이길 수가 없기에,
한시하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었다.
“미안하다….”
진짜 가족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그 비슷한 존재는 되었다 생각했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세상에 진짜 혈육이 있던 것도 아니니까.
그러니까.
마지막은 편안하길 바라.
그렇게 읊조리면서,
한시혁을 찌르려던 그 순간.
슬픈 목소리가 귓가에서 속삭였다.
“너는 끝까지 망설이는구나.”
“…!”
한시혁은 한시하의 손을 빌려 검을 움켜쥐었고,
푹-.
그대로 자신의 심장에 찔러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