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7화(2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7화
우거진 담쟁이넝쿨에 막혀 햇빛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교수실.
턱을 괸 채 작게 중얼거리던 교수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델라가 돌아왔대. 솔리아도!’
‘기숙사에서 납치된 2학년생들? 무사히 돌아온 거야?’
탁자 위에 올려 둔 커다란 구에서는 학생들의 얘기가 반복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숙사에서 납치되었다고 학교 내에 한바탕 난리가 났던 두 우등생들.
기숙사를 뒤덮었던 검은 스모그가 흑마법이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학교가 한바탕 뒤집혔었다.
뭐, 그게 맞긴 하지만.
교수가 관심 있는 파트는 이쪽이 아니었다.
위이잉-.
손을 뻗어 시점을 조금 뒤로 돌렸다.
살짝 흥분한 듯한 여학생의 목소리가 짧은 진동을 내며 울려 퍼졌다.
‘한시하라고…? 아델라를 구해 낸 게?’
흥미로운 사실이다.
아르델 아카데미의 그 훌륭하고 뛰어난 학생들 사이에서.
학교 전체가 뒤집힐 만한 이 사건을 해결한 사람이 한시하라는 것이.
비로소 흐트러져 있던 퍼즐이 짜맞춰지는 기분이다.
“재밌군.”
너무 재밌다.
교수는 명단을 천천히 손으로 훑어 내렸다.
이한, 시모어, 솔리아. 그리고 다른 상위권 우등생들까지.
그가 유심히 지켜봐 왔던 학생들의 리스트가 거기에 나열되어 있었다.
그가 그 리스트를 살피고 있는 이유.
흑마법사의 본거지.
간도 크게 그곳에 쳐들어왔다가 도망친 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달을 샅샅이 뒤져도 심증만 있을 뿐, 딱 맞아떨어지는 녀석이 없었는데.
그 이유가 녀석이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었다니.
“후우, 그래….”
불 마법을 쓰는 데다가, 실험체를 데리고 튀기까지.
그래서 여러 마법을 자유롭게 다루는 이한일줄 알았더니만….
이건 예상하지 못했다.
음산한 웃음을 터트리던 교수의 손이 이윽고 한시하의 사진에서 멈췄다.
“결국 네 녀석이라니.”
이 맹랑한 꼬맹이가 데리고 다니던 드래곤이 불 속성이었던가?
“어서 제대로 만나보고 싶군.”
거기서 생각이 멈춘 교수의 두 눈이 이내 서늘하게 빛났다.
* * *
같은 시각.
아르델 아카데미 후문에서는 환희에 찬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우어어어억!”
마력 ATM기. 나는 통장에 적힌 금액을 확인하고선 입을 틀어막았다.
야광석도 팔고, 늪지대에서 주워 온 보석도 팔아서 당분간의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은 모아뒀었지만, 통장에 찍힌 돈은 그 단위부터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악!”
내 아버지는 아니지만 어쨌든.
한태수의 재력은 굉장했다. 가문빨… 진짜 죽인다.
나는 마력 ATM기 앞에서 경건하게 절을 올리고선 필요한 금액을 출금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이렇게 된 이상, 오늘 그것을 사러 간다.
마력의 질 자체를 올려 주는 명약!
천문학적인 금액의 포션!
이맘때쯤 경매장에 가면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수량이 얼마 되지 않을 테니 발 빠르게 움직여야겠지. 발걸음이 가볍다.
그런데.
종종종.
“왜 따라오는 건데?”
아까부터 불편해 죽겠다.
아델라는 두 눈을 끔뻑이며 내 말에 무심하게 답했다.
“그냥.”
“아, 그냥이야?”
“궁금해서.”
대체 뭐가 궁금하다는 건지.
나는 피식 웃으며 기지개를 켰다.
“자, 기분이다.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사는 건 내가 사고?”
짜게 식은 눈.
가문으로부터 버려진 비련의 막내아들 컨셉으로 너무 오래 살았던 부작용이다.
얘는 또 지가 내는 줄 안다.
“아니, 내가 살 건데?”
“응?”
아델라가 기겁하며 나를 돌아보았다.
“진짜로?”
“엉.”
“어디 아픈 거야? 아니, 최후의 만찬이야?”
아니, 이게 이렇게까지 놀랄 일이냐고.
잘못했다, 내가.
“야야, 그러지 말고.”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허세 가득한 말을 뱉었다.
“먹고 싶은 거 리스트 쫙 뽑아 봐라.”
* * *
이세계의 파스타 비스무리한 걸 점심으로 먹었다.
아무래도 가성비가 떨어지는 듯하다.
“같은 가격이면 뜨끈하고 든든한 국밥이 몇 그릇이냐….”
내 중얼거림을 들은 모양인지 아델라가 물었다.
“응? 국밥? 그게 뭐야?”
“아, 아니야. 많이 먹어라.”
내 입장에서 백 프로 만족스러운 식사는 아니었다만 아델라는 맛있게 먹은 것 같았다. 그럼 됐다.
식사를 마치고 나선 원래 목적지였던 경매장으로 향했다.
벌써 경매가 시작된 모양인지, 멀찍이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스타흐의 액자! 2골드에 경매 시작합니다!”
“2골드 13번!”
“29번!”
“더 없습니까? 모스타흐의 액자, 한정판입니다. 3골드. 예, 3골드 갑니다!”
아델라는 시끌시끌한 경매장을 두리번거리며 내게 물었다.
“예술품에 관심 있었어?”
귀족들이 이런 곳에 와서 돈자랑하는 게 하루 이틀은 아니다.
아델라는 당연히 내가 괜찮아 보이는 미술품 하나 낙찰 받으려고 온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니다.
오늘 내가 볼일이 있는 물건은 경매장 외곽, 경매로 나오지도 못한 떨이들이 모여 있는 곳에 있으니.
똑똑. 어설프게 조형된 천막의 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물건 사러 왔는데요.”
끼이익.
신발을 끄는 섬뜩한 소리와 함께 남다른 포스의 아주머니가 고개를 내밀었다.
“흐음.”
사방으로 뻗친 머리.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잔뜩 찌푸린 미간. 은근한 광기가 느껴지는 눈빛까지.
괜히 훗날 마녀의 물약이라고 불린 게 아니었다.
솔직히 조금 쫄린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물어 왔다.
“비싼데. 학생, 돈 있어?”
대답 대신 아르델 아카데미 학생증을 내밀었다. 충분한 답이 되었을 거다.
아주머니는 콧소리를 내며 물었다.
“흐응… 뭘 보러 왔는데?”
“가장 좋은 걸로요. 추천 받으러 왔습니다.”
다짜고짜 마력의 질을 향상시켜 주는 물약을 구하러 왔다고 하면 의심받을 게 뻔했다. 그러니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은 채 태연하게 기다린다.
“학생, 마력이 넘쳐흐르네?”
살벌한 시선이 아래위로 나를 훑었다.
그새 내 마력의 흐름을 알아챈 모양이다.
“아.”
“속 빈 강정 같아서 그렇지. 그리 어설픈 마력을 어디에 쓰나, 쯧.”
역시.
아주머니는 보랏빛이 일렁이는 물약 하나를 툭 내밀었다.
“네 글러먹은 마력부터 싹 바꿔 주는 물약이여. 살 거면 사고, 말거면 말고.”
“아, 네.”
“어깨 힘을 풀어 봐. 자, 그렇게 몸을 딱 비워 주고 마력을 정화하는 것이여.”
“네엡.”
“피와 정신을 맑게. 어, 그런 식으로.”
이게 뭔지 알고 들어도 영 사이비 같다.
“이 물약이 그걸 도와줘. 조금 까다로워서 그렇지.”
그렇게 그녀의 설명을 듣는 도중, 아델라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몸 안을 도는 마력의 성분 자체를 정제하는 물약. 최상급 효능을 지닌 이 물약의 가치를 아델라 역시 알아본 건가.
하지만, 그녀의 입모양을 본 나는 착각했다는 걸 깨달았다.
‘사기꾼 같아.’
아, 사기꾼인 줄 알았구나.
‘어서, 나가자.’
더 있다가는 팔랑거리는 내 귀가 저 약팔이한테 넘어갈 거라 생각했는지 아델라는 다급하게 내 팔을 톡톡 쳤다.
“살 거여, 말 거여.”
“살게요.”
“으… 으응?”
아델라의 입술이 다시 달싹거린다. 이번에는 입모양도 과격했다.
‘이, 이 호구자식아!’
‘빡대가리야!’
저거는 내 전용 멘트인데 왜 네가 뺏어 갔냐.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이미 결제를 마친 뒤 아주머니에게 주의사항을 듣는 중이었다.
“걱정 마. 다 생각이 있어서 산 거니깐.”
“아니, 그래도… 누가 봐도 사기인데….”
나는 꿍얼거리는 아델라를 무시하고 설명에 집중했다.
이 물약은 까다로운 조건을 모두 지켜야 효과가 있다. 그러니 시키는 게 뭐든 일단 따르는 게 좋다.
아주머니는 비급을 전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굶어야 해.”
“예?”
“3일 동안 쫄딱 굶어야 해.”
솔직히 조금 걱정했었다. 이만하면 까다롭다는 조건치곤 나름 할 만할지도?
“네,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이는데 아델라가 진지한 얼굴로 턱을 쓸어내리고 있었다.
“효과는 있는 것 같네….”
“어?”
드디어 이 물약의 가치를 알아본 듯했다.
-라고 생각하려던 찰나, 예상치 못한 말이 그녀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다이어트 물약인거지?”
…결론이 왜 그렇게 되냐?
* * *
기숙사의 휴게실.
지지직거리는 흑백 TV에서는 지난주에 방영되었던 다큐멘터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가 있습니다.
“하이에나… 맛있지.”
-하이에나가 노루의 목을 낚아챕니다. 잔인한 야생의 법칙. 노루는 끝내 하이에나의 먹이가 됩니다.
“노루… 맛있지….”
꼬박 사흘을 굶었다. 지금 나는 조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21세기에는 돈도 주고 다이어트를 하는데, 강해지려고 사흘 정도 굶는 건 아무것도 아닐 줄 알았다.
“배고파.”
뭐라도 먹고 싶다.
진짜 정신 나갈 것 같애.
마침 노란 치즈를 입안에 넣고 우물거리는 바실과 눈이 마주쳤다.
“어쩌면… 드래곤 고기도 맛있을지도?”
“끼엑!”
쟤 알아들었다.
잔뜩 화난 바실이 허공에 브레스를 뿜었다.
구워 버리겠다, 인간.
뭐, 그런 눈빛.
거기에 격하게 반응한 건 내가 아니라 원이었다.
“악! 침대 시트 다 탄다고!”
원이랑은 룸메이트로 원만하게 잘 지내고 있는 중이었다. 심성 자체가 착한 놈이라 웬만해서는 부딪힐 일이 없었다.
응, 그래. 이럴 때만 빼고.
내가 사흘 꼬박 굶었는데 내 앞에서 면치기를 하는 중이다.
후루루룩.
“이게 동부에서 유행하는 음식이라던데.”
짜장면이다. 진짜 미치도록 맛있어 보인다.
저 접시마저 씹어 먹고 싶다.
“맛있넹.”
“야, 너만 입이냐.”
우물우물.
정신없이 짜장면을 흡입하던 원은 포크를 내 쪽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한 입 드실? 그러게 무슨 바람이 들어서 굶어. 허구한 날 뭐 시켜 먹자고 난리 칠 때는 언제고.”
열다섯 살의 한시하로 빙의하고 나서 식탐이 늘었다.
아무래도 성장기라 그런가, 조금만 굶어도 미친 듯이 먹을 게 땡겼다. 그 상태로 꼬박 사흘을 버틴 상태다.
마력이 정화되어 가는 기분이 드냐고?
손끝에 조금씩 푸른 마력이 감도는 걸로 봐선 효과가 없진 않은 것 같은데.
질적 상승이 있는지는 아직 체감이 되지 않았다.
다른 거 다 둘째 치고, 이건 인내심 훈련에 가까운 듯하다.
이 고요한 평정심. 며칠 더 참았다가는 아주 성자가 될 것 같다.
“그래도 세 시간만 더 버티면 돼.”
오늘이 대망의 마지막 날이다.
나는 시계만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오전 수업만 마치면 점심 식사는 인간답게 먹을 수 있을 테니까.
세 시간만….
세 시간만….
중얼거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가고 있을 때였다.
원이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야, 맞다. 오늘 오전 수업 체력 훈련으로 바뀌었다던데?”
한 달에 두 번.
마법사들의 기초체력을 기르기 위해 실시되는 특별 강습.
그런 설명 다 필요 없고.
뭐?
배고파서 돌아가시겠는데.
검은커녕 나뭇가지 하나 쥘 힘도 없는데.
운동장에서 뛰고, 구르고, 온갖 지랄을 하라고?
“이런 시발.”
평정심이 바로 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