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28)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28화(28/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28화
사람이 배고프면 예민해지는 법이다.
그 정도로 배고팠던 적이 없어서 평생 실감한 적이 없던 말을, 지금 몸소 느끼고 있다.
맞다. 사람은 배고프면 예민해진다.
폭력을 그리 좋아하진 않지만, 나는 지금 허수아비가 아니라 사람도 후려 팰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내심은 이미 한계에 다다랐다.
아니, 기숙사 안에서부터 정신을 반쯤 놓은 상태였는데 훈련 덕분에 내 마지막 정신줄과는 이미 작별 인사를 고했다.
시키는 대로 운동장을 돌았다.
시키는 대로 검을 쥐었다.
구르라는 대로 굴렀다.
“근데 왜 안 끝내 주냐! 이 그지 같은 학교 진짜!”
내 표정이 썩어 들어가고 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맨 뒷줄에서 설렁설렁 넘어가려 할 때마다 교수들이 나를 불렀다.
‘학생이 잘할 것 같은데? 나와서 해 보는 건 어떤가?’
‘한시하 학생! 시범 좀 보여 줄 수 있나?’
‘저기… 잘생긴 친구! 앞으로 좀 나와 볼까?’
왜 자꾸 날로 먹으려 하는데, 그것도 못하게 하냐고!
거의 절반을 앞에 불려 와서 시범을 보였다.
그걸 보는 애들은 의외로 잘한다며 기립박수까지 쳐 준다. 눈물겨워 미칠 지경이다.
그 뒤로는 잘한다며 두어 번 더 앞으로 불려 갔다.
파들파들.
팔과 다리가 떨린다.
그렇게 세 시간이 경과된 후.
이제 마지막 고비 앞에 섰다.
나는 목검을 손에 쥔 채 연습용 허수아비를 노려보았다. 이것만 끝내면 보내 준다길래 굳게 믿고 있었는데… 마지막 미션이라는 게 이런 거였냐.
허수아비 목검으로 쓰러뜨리기.
반 토막을 내든 머리를 날리든 상관없으니 일단 쓰러뜨리기만 하면 된다.
심지어 빨리 끝나는 순서대로 보내 준단다.
“시발.”
말이 쉽지 이게 팍 친다고 바로 쓰러지냐.
고개를 돌려보니 체력 훈련을 진행하던 교수들은 강해지는 오후 햇살을 피해 천막 아래로 기어 들어가 있었다.
뙤약볕 아래에서 사람이 죽어 가는데, 저리 태평한 모습을 보니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오른다.
열이 뻗친다. 이건 사람이 굶어서 그래.
아니, 애당초 말이 안 되는 걸 시키는 게 문제지.
나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외쳤다.
“교수라는 인간들은 이 세계나 저 세계나 하나같이 왜!”
“무에서 유를 창조하라고 지랄들이야!”
아아아악!
빡.
빡.
빡.
나는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강하게 내리쳤다.
힘 조절 자체가 아예 되질 않았다. 목검 자체에 마력을 싣는 걸 막아 둔 터라 편법으로 허수아비를 부수는 것도 안 된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그냥 힘으로 하는 수밖에.
빡!
빡!
감정을 고스란히 담은 일격.
하지만 그냥 검도 아니고 목검에 불과하다. 그렇게 쉽게 쓰러뜨리라고 내준 과제가 아니다.
그걸 알지만.
이성은 알고 있지만.
“배고파, 시발!”
그렇다. 나는 이성을 잃었다.
* * *
그린트 교수는 뒷짐을 진 채 운동장을 둘러보았다. 그의 곁에는 수리학 담당의 디버트 그루누이 교수도 함께였다.
디버트 교수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은 채 목검으로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는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마력까지 막아 놨으면 꽤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하군요.”
“한 열 명 정도 성공하면 멈출 생각입니다. 마냥 기다렸다간 일몰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겁니다.”
실제로 다들 꽤 지쳐 보였다.
마법사의 기본 소양에는 분명 튼튼한 육체가 포함된다.
이론적으로는 그러하나, 기사에 비해 마법사는 육체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다. 수련하는 분야가 전혀 달랐다.
마력을 이용해 육체를 보다 튼튼하게 보호할 수는 있겠으나, 기본적인 체력 자체는 기사들은 물론 산과 들을 노니는 모험가들보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소리였다.
마법사들의 체력, 이대로도 괜찮나.
그러지 않아도 마법 학회에서는 매번 저 주제로 토론이 이어졌다.
자기 때만 해도 기초 체력 훈련이 필수로 들어갔는데, 요즘은 아니라면서 요즘 것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게 토론의 주된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아르델 아카데미에서는 예전처럼 필수 과목은 아닐지라도 한 달에 두 번씩 빡센 체력 단련을 시킨다.
아무런 잡념 없이 땀을 흘리는 것은 마력 수련에도 도움이 된다.
“쯧쯧. 형편없는 수준이군.”
“요즘 애들이 다 그렇죠.”
몇 명은 진작에 나가떨어진 터라, 그린트 교수는 저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다.
저리 약해서야 던전에 나가서 제풀에 쓰러지는 건 아닐지 걱정되었다.
“그래도 나름 제법인 애들도 보이는 걸요.”
디버트 그루누이 교수가 은근히 물어 왔다.
“마법과 2학년은 그린트 교수 담당이 아닙니까? 눈에 띄는 학생들이 있나요?”
“몇 명은 있지만, 제 눈에 차는 학생들은 아직 없습니다. 그건 앞으로 더 지켜봐야….”
저벅저벅.
그린트 교수와 발을 맞춰 걷던 디버트 교수.
그의 인자한 웃음이 멈춘 건 그때였다.
빡빡빡!
허수아비를 후려 패고 있는 한 학생 때문이었다.
그린트 교수 역시 말을 멈춘 채 인상을 찌푸렸다.
“한시하?”
마법과에는 약골들밖에 없는 터라, 실전 경험이 있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다들 허수아비보다 먼저 쓰러져 가고 있는 실정인데, 홀로 결연한 눈빛을 한 채 살아남은 학생이 있었다.
“엄청난 열정이네요.”
한눈에 봐도 열정의 아우라부터 달랐다.
이를 악문 채 체력 훈련에 진심인 학생이라.
디버트 그루누이 교수는 제 눈을 의심하듯 말을 뱉었다.
“원래 저랬던가요?”
저 녀석은 수리학에서 27번 문제를 맞혔던 학생이다. 그린트 교수의 테이밍학 시험에서는 수석을 차지한 녀석이고.
무식한 힘으로 허수아비를 내리치는 와중에도 전혀 지치질 않는다.
그린트 교수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이번 년도에 들어 가장 불가사의한 학생을 꼽으라면 단연 한시하를 꼽을 것이다.
비단 체력 훈련뿐만 아니라 모든 수업에서 한시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제 수업에서도, 다른 교수의 수업에서도.
에른스트 교수마저 한시하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소문이 들려오고 있었다.
재수 없기는 해도 인재를 보는 눈은 확실한 인간이니, 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을 터.
그린트 교수의 표정을 읽은 듯, 디버트 교수가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얹었다.
“저 정도면 이쪽에도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요?”
“….”
그린트 교수는 생각에 잠긴 터라 디버트 교수의 흥분된 목소리에 답하지 못했다.
대신, 그린트 교수는 제 공격에 집중하고 있는 한시하를 돌아봤다.
그 어느 누가 뭐라 하든, 흐트러지지 않을 것 같은 집중력으로.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허수아비를 때리고 있다.
지치지 않는 체력.
바닥나지 않는 마력.
이전에 보여 준 빠른 판단력까지.
이론대로라면, 최고의 마법사가 될 재능을 타고난 아이였다.
* * *
한시하를 주시하고 있는 건 비단 교수들만은 아니었다.
같이 훈련 중이던 학생들은 계속해서 그를 흘낏거리고 있었다.
솔직히… 너무 눈에 튀었다.
무식할 정도로 허수아비를 후려패고 있는 녀석.
“으아앗!”
빡!
솔리아는 한시하를 돌아보며 혀를 내둘렀다. 어느새 한 시간 가까이 지났는데도 단 한 번도 쉬질 않았다.
실전 경험이 어느 정도 있는 터라, 남들보다 진행 속도가 빨랐던 솔리아조차 넋을 놓고 지켜보게 되는 끈기다.
무려 이한보다도 더 허수아비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한시하의 비장한 눈빛은 금방이라도 허수아비를 반으로 가를 것 같았다.
실제로도 거의 끝이 보였다.
이대로라면 2학년의 1등은 한시하가 될 것이다.
놀라웠다. 저주받은 나무에게서 자신을 구할 때만 해도 한시하의 운동 능력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빤히 읽혔던 나무의 공격도 피하지 못해 그대로 날아갔던 한시하가 아닌가.
저리 집요하게 공격했다면 진작에 나가떨어졌을 체력인데.
대체, 너는.
내가 모르는 모습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걸까.
왜 볼 때마다 이리도 낯설게 느껴질까.
솔리아는 나직이 중얼거리며 한시하를 빤히 응시했다.
여전한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시하가 저렇게 수련에 진심이었나?
오늘 하루 종일 시범을 보인 것도 그렇고, 지나치게 열심이라 조금은 놀랐다.
표정도 달라졌다.
마치 전투에 나가는 듯한 비장한 눈빛.
역시,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고서야 사람이 저리 바뀔 리가 없다.
그게 뭐였을까?
그때였다.
빠각!
드디어 우렁찬 파열음이 운동장 한가운데에서 울려 퍼졌다.
바로 한시하가 있는 곳이었다.
그 앞에 세워져 있던 허수아비가 쓰러져 있었다.
“아아아….”
좋아할 법도 한데, 한시하는 별 호들갑도 없이 굳은 얼굴로 그린트 교수에게 향했다.
“한시하 학생, 첫 번째로 통과입니다.”
나자빠진 학생들이 술렁대기 시작했다.
경악에 가까운 반응들이다.
“아, 벌써?”
“미친, 쉬지도 않고 때린 거야?”
“마력도 안 쓰고 저게 된다고?”
“아니, 말도 안 돼.”
한시하는 이미 발걸음을 재촉해 운동장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벌써 저기까지 갔다.
솔리아는 목검을 내팽개친 채 한시하를 따라갔다.
“한시하!”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 비장함의 이유를 알고 싶었다.
최근에 가장 큰 사건을 꼽자면 단연 납치 사건일 테니까. 실전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한시하에게 그 건은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을 수도 있었다.
막상 책상 앞에서는 태연하다가도 검을 잡은 순간 밀려오는 조급함.
혹시 육체를 혹사할 정도로 고된 수련의 이유가, 저번 사건의 트라우마 때문이라면.
도와주고 싶었다.
사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저도 모르게 이끌려 왔다.
“왜?”
한시하는 앞을 막아선 솔리아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장한 눈빛이 자신을 향했다.
늘상 생글거리고 다니기나 했지, 단 한 번도 저런 눈을 본 적은 없었기에 솔리아는 퍽 당황했다.
집중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건드리면 그대로 터지는 건가.
자신이 한시하의 수련을 방해한 건 아닐까.
솔리아는 미안한 기색으로 입을 뗐다.
“그….”
사과하려던 그 순간.
한시하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을 뱉었다.
“비켜. 나 배고파.”
역시 자신이 괜히 말을 걸어서 한시하의 심기를 건드렸다.
자신 때문에 집중력이 깨진 것이 분명….
응?
방금 뭐라고 그랬지?
“배고프다고?”
솔리아는 멀어지는 한시하를 돌아보며 멍해졌다.
한시하는 누구보다 빠르게.
혼신의 힘을 다해서….
급식실로 뛰어가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