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4화(4/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4화
“허억… 헉.”
늦을 뻔했다.
숨을 헐떡이며 다급히 강의실 뒷자리에 앉았다. 동시에 미리 앉아 있던 녀석들의 시선이 내게로 쏠렸다.
오늘이 개강 첫날인 줄 알았다면 좀 더 급하게 오는 건데.
본의 아니게 제대로 어그로를 끌어 버렸다.
뭐, 이름 모를 동굴에 갇혀 죽을 뻔했던 터라 알았더라도 내 맘대로 되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급히 목을 축이며 딱딱한 의자에 허리를 기댔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주인공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인간.
그게 바로 나였다.
노골적인 술렁거림이 내 귀에도 들렸다.
“쟤… 한시하 아냐?”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음음.
“저 자식은 어떻게 진급한 거야?”
“싹싹 빌고서 나온 건가?”
“성적 미달 아니었어?”
저 정도의 관심은 예상했다.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태연하게 시선을 받아쳤다.
아마 저들의 예상대로 한시하는 학교에서 쫓겨날 위기가 맞았을 테니까.
가문의 뒷배로 돈을 찔러 넣은 건지, 압도적인 마력에서 조금이나마 가능성을 본 건지. 교수들의 추천서로 간신히 1학년을 생존해 올라왔을 터였다.
그것도 일회용이니 2학년에서는 행운을 바랄 수 없겠지만.
조급함에 먹히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조금 여유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원목으로 된 칠판과 잘 다듬어진 책상들.
현대와 중세가 오묘하게 섞여 있는 원작 속 세계관을 그대로 구현해 놓은 분위기에 잠시 눈을 굴렸다.
이 거지 같은 몸뚱어리로.
이런 고급지고 살벌한 무대 위에서 살아남으려면 무얼 해야 할까.
마냥 감탄하고 있기엔 생각할 것들이 많았다.
여유는 가지되, 나태해지지는 말자.
“냅둬, 개강시험부터 떨어지지 않겠냐.”
“으… 설마 같은 과로 배정되지는 않을 거 아니야?”
“강령과로 가지 않을까?”
“그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바로 탈락할 거 같은데.”
저 헛소리들이 알려 주는 정황상 과를 정하는 2학년 개강시험이 얼마 남지 않은 듯했고,
우선 내 최우선 목표는 두 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 살아남는다.
두 번째, 학교를 졸업한다.
비록 아르델 아카데미가 살벌한 경쟁의 현장일지라도 나는 이곳에서 졸업해야 했다.
왜?
먹고 살아야 하니까.
제아무리 한시하가 부유한 가문에서 자란 허접쓰레기라지만, 본인의 무수한 트롤짓으로 가문에서 내쳐진 바.
탱자탱자 놀다가 낙제당하면 아마 가문에서 뼈도 못 추리고 쫓겨날 게 뻔했다.
가문의 도움은 기대하지 말자.
오히려 졸업장 하나가 든든하게 밥 먹여 줄 테니까.
아르델 아카데미 졸업생은 그 지위 자체로 웬만한 곳에선 두 팔 벌려 환영할 정도의 인재다.
낯선 세상에 떨어진 내 입장에선 놓기 싫은 전문직이나 다름없는데… 어떻게든 낙제만 간신히 면해서라도 무사히 졸업장을 따낼 필요가 있었다.
메인 캐릭터들과 엮여서 저들의 전쟁에 휘말려드는 대신.
아주 조용히.
제발 조용히.
그렇게 살아가면서 한시하가 죽을 경우의 수를 모조리 차단한다.
“왜, 죽었을까.”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슬카데미 속 한 대사가 머릿속을 스쳤다.
한시하가 나쁜 짓들만 골라서 하다가 죽는 건 맞는데.
그건 맞긴 한데.
그렇게 단정 짓기엔 분명 석연찮은 떡밥이 있어서.
“조심해야 할 것 같은데.”
‘조용히 살자’에 ‘조심히 살자’가 패시브로 추가되었다.
나는 아직 한시하가 무슨 이유로 왜, 죽게 되는지 정확히 모르므로.
연중된 원작에서 풀리지 않은 떡밥의 변수들을 파악해 둘 필요가 있었다.
벌써부터 제대로 돌아가지도 않는 머리를 굴리는 이유는 단순하다.
“….”
죽고 싶지 않다.
이기적이고 폭력적이고 게다가 무능하기까지 한.
삼류 악역 엑스트라 한시하는 처절한 고통 속에 생매장된다.
차라리 두 번 과로사할지언정, 그딴 죽음을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나는 애써 태연하게 고개를 들었다.
교수의 구두 소리가 복도에서 울려 퍼졌다.
벌컥.
강의실의 문이 열렸다.
* * *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등장과 동시에 학생들을 집중시키는 묘한 위압감.
각진 양복에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워 보일 정도로 인위적인 분위기의 교수가 교탁으로 향했다.
입가에 걸린 미소는 한없이 침착했다. 그조차 퍽 인위적으로 느껴졌지만.
짙은 남색 머리에 저런 독특한 의상이라. 마치 중세시대의 영국신사를 따라 한 것 같은 비주얼인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날카로운 눈빛이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짚이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린트 교수님 아냐?”
“맞네. 저분 엄청 까다로우시다던데.”
“오늘 여기 들어오신 거 보면 2학년 담당이신가?”
“와… 저분 시험 장난 아닌데.”
맞네, 마법과의 그린트 교수.
그냥 보기에도 까다로워 보이는 인상이지만, 실제로도 그렇다.
진짜 성격 자체가 악하다기보다는….
학생들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욕심이 과했던…?
시험 난이도가 상당하고 까다롭기도 장난이 아닌 터라, 주인공 이한도 혀를 내둘렀던 교수 중에 하나였다.
원작 상에서도 개강 시험은 저 사람이 냈던 거 같은데.
“자자, 집중.”
낮게 깔린 목소리가 학생들의 입을 한 번에 다물게 했다.
저벅저벅.
그린트 교수는 구두 소리를 내며 교탁 한가운데에 섰다.
“이번 진급생들은 제법이더군요.”
“….”
“여러분의 진급 자료를 상당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벌써부터 두각을 나타내는 학생들이 보이기도 하고….”
구구절절. 대충 뿌듯하다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야, 당연하지.
작가가 해당 학년에 주연급 캐릭터들을 쏟아부었을 테니까.
하지만, 이번 학년의 수준이 높다는 건 결코 내게 좋은 소식은 아니었다.
그만큼 내 위치가 간당간당하는 소리니까.
14세부터 19세까지 다양한 나이대의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는 아르델 아카데미는 총 6년제 과정으로, 빡센 커리큘럼으로 유명했다.
여기는 학교를 표방했을 뿐, 하나의 살벌한 서바이벌 경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이 많은 학생들 중 많아야 10분의 1 정도만이 유의미한 성적으로 무사히 이곳을 졸업할 수 있으니까.
내 경쟁자들의 수준이 높을수록, 내가 설 자리는 쪼그라든다는 소리였다.
“드럽게 빡세네.”
아니, 대체.
무슨 수로 주연급이랑 경쟁하라는 거야.
원작의 전개대로라면 흑화한 한시하가 빠른 속도로 성장해 초반 빌런의 위치를 노렸겠지만, 저들에게 밉보이지 말고 조용히 살아가야 하니 그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순수히, 편법을 쓰지 않고 강해져야 한다.
살아남는 것 못지않게 빡센 조건이다.
그린트 교수의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물론, 기준 미달의 학생들도 많더군요.”
크흠.
그린트 교수의 시선이 은근히 이쪽을 향한다. 이윽고 잔인한 한마디가 이어졌다.
“2학년부터는 여러분도 알겠지만, 능력 없는 학생은 함께할 수 없습니다.”
1학년까지는 낙제를 받을 뻔했던 한시하도 어떻게 간신히 버텼지만, 2학년부터는 일말의 여지도 없었다.
당장 코앞에 있는 개강 시험.
그것만 망해도 내 학위가 흔들거린다는 의미였다.
뭐, 비단 나만을 겨냥한 소리는 아니었다. 여기서 절반 이상이 2학년 진급에 실패할 예정이니.
주변을 둘러보니 이미 긴장한 얼굴로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녀석들이 몇몇 보였다.
그린트 교수는 나를 향하던 시선을 거두고선 지팡이를 들었다.
“자, 그래서. 첫 번째로 여러분의 자질을 가려낼 개강 시험 일정을 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파앗-.
그린트 교수가 치켜 올린 지팡이에서 환영이 튀어나왔다.
“이… 이건?”
주변이 크게 술렁였다.
내 첫 번째 존속 여부를 가릴 개강 시험의 평가 방식이었다.
* * *
“어… 어?”
“와, 이건 또 뭐야.”
공지문을 형상화한 마법.
마치 투명한 홀로그램 창처럼 이번 개강 시험의 공지사항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얼마나 복잡한 술식이기에 이런 정교한 환영을 만들어 낸 거냐.
평면적인 장면을 보여 주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정교하고 빼곡한 공지문을 띄워 주는 건 또 처음 본다.
역시 이게 아르델 아카데미의 수준인가.
소설 속에서만 봤던 걸 이렇게 직관하니 느낌이 다르다.
피식 웃으며 공지를 빠르게 정독하기 시작했다.
“아, 이런 식으로….”
여러 과목 중 자신 있는 세 과목 선택.
다만, 과목 선택 정원이 있어서 원한다고 다 볼 수 있는 건 아닌 거 같고. 그 외에는 특별히 신경 쓸 사항은 없어 보였다.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공지.
하지만, 그 시험 내용은 결코 평범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기에 침을 삼켰다.
첫 번째 개강 시험이 역대급 난이도였던가.
필기가 상당히 헬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마법 자식이 백지에 가까운 상태인데 잘 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순간.
그린트 교수의 입이 열렸다.
“확인이 끝났으면, 과목 선택으로 넘어가죠. 과목 선택은 선착순입니다. 단, 그 순서는 랜덤입니다.”
팟-.
그린트 교수의 간단한 손짓과 함께 허공에 떠 있던 공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
학생들은 놀란 눈을 굴리며 그린트 교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개강 시험의 난이도가 극악이라서도 있지만, 자신 없는 분야에 걸리게 되면 그야말로 최악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년간 아르델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혹은 입학도 하기 전부터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사실 이맘때쯤 되면 저마다 자신 있는 분야가 정해져 있기 마련이었다.
“제발.”
“아. 이론학만 안 걸렸으면 좋겠다.”
“난 약초학….”
“강령술은 자신 없는데.”
두 손까지 모은 채 기도하고 있는 학생들부터, 초조한 지 손톱을 물어뜯고 있는 학생들까지.
그린트 교수는 이쪽을 둘러보더니 커다란 나무상자에 손을 넣었다.
“….”
빠르게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단연 유리한 상황.
잔뜩 기대한 눈빛들이 나무상자를 향해 반짝였다. 나 역시 시선이 저쪽으로 향했다.
저 과목들 중에서 80프로 이상은 지금은 내가 소화해 낼 수 없는 과목임이 분명했다.
아르델 아카데미에서 정규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대한민국에서 펜대나 잡은 게 전부다.
애당초 마법이니 뭐니를 몇 주 안에 제대로 캐스팅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인생에서 운빨은 꽤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리고, 나는 운빨이 꽤 좋은 편이었다.
아.
좋았으면 지금 이 일도 없었으려나.
무튼.
이번에는 좋길 바랄 뿐이었다.
그린트 교수는 표정을 읽을 수 없는 얼굴로 나무상자에서 공을 꺼내 들었다.
“음.”
무언가를 발견한 듯 휘어지는 그린트 교수의 눈썹.
담담한 목소리가 천천히 입을 뗐다.
“첫 번째 기회는….”
나, 이 장면 기억 나는데.
“한시하 학생이군요.”
모두의 시선이 이쪽으로 쏠렸다.
* * *
2학년 첫 개강 시험 에피소드.
나는 이 장면을 텍스트로 읽은 적이 있었다.
무자비할 정도로 빡센 난이도의 개강 시험.
그래도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부터가 상당히 유리한 상황이었다.
“결정했습니까, 한시하 학생?”
그린트 교수가 부담스러운 시선으로 이쪽을 돌아보았다. 차라리 빨리 선택하고 대충 넘어가라는 듯한 눈빛이 느껴졌다.
다른 학생들의 반응도 비슷했다.
“뭘 하든 거기서 거기 아니려나.”
“그러게. 괜히 고민하는 척하고 있네.”
고민하는 게 아니라, 읽어 보는 중이다. 이 자식들아.
노골적인 무시에도 흔들리지 않고 빠르게 과목명을 훑었다.
[마력원리와 실험] [기초약초학의 이해] [치유관리학]들어도 모르겠는 과목은 칼같이 제낀다.
“으음.”
쉽게 갈 수 있는 과목이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아르델 아카데미 학생들의 기준엔 쉬워 보이는 것들도 내 입장에선 아니니까.
이거 차라리 한시하가 돌아와서 시험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그 자식이 개빡대가리였어도 개강 시험은 통과했다고!
마력의 구동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라, 실전 위주의 과목은 패스.
신체를 많이 쓰는 과목도 패스.
원작에서 언급되지 않았던 과목도 패스.
그렇게 슥슥 아래로 내려가다 보니, 뭔가 친숙한 과목명이 나오기 시작했다.
[수리학과 술식의 탐구]헬 수준으로 어려워 보이는 과목명이지만. 첫 번째 개강시험 당시 유일한 꿀과목으로 꼽혔다.
그 이유는 그린트 교수가 시험문제를 출제하지 않은 분야 중 하나였기 때문. 일단 이론 과목이니 공부하면 뭐라도 되겠지.
일단 킵해 두고.
“후우.”
“수리학을 선택한다고? 저거 1학년 때 안 배우지 않았어?”
“냅둬. 자기가 알아서 바닥 깔겠다잖아.”
하필 첫 번째 순서라 그런지 쏟아지는 관심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선 시선을 돌렸다.
나머지 두 과목을 똑바로 고르지 못하면 정말 퇴학 위기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아니까.
신중해야 했다.
능력이 안 되면 전략이라도 확실해야 하니.
“으으음….”
남은 두 개는 가만 보자….
턱을 괸 채 고민하고 있던 와중, 제법 끌리는 과목들이 나타났다.
어?
이건… 해 볼 만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