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4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47화(4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47화
신학과 2학년의 수석. 아니, 전 학년을 다 합치더라도 수석 자리에 당당히 오를 천재, 윤하을은 따분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요새 학교생활이 재미없다.
점성술 연구, 명리학 연구. 거기에 더해 신령을 분석하기까지.
무료하고 지루하다.
매일매일 같은 일상의 반복일 뿐.
“아으.”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난 그녀를 가두기에 신학과는 너무도 평화로웠다.
매일같이 스릴 넘치는 이벤트가 넘쳐흐르는 마법과.
해골군단을 우르르 몰고선 아르델 아카데미를 허구한 날 뒤집어 두는 강령과.
이론과 함께 이따금 실습을 나가는 자연학과와 달리, 신학과는 언제와 같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심지어 애들마저도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하니 무색무취의 신비로운 애들뿐.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 팔자에도 없는 근엄한 예언가 코스프레를 했지만, 몸이 슬슬 근질근질해지고 있었다.
‘예언가라고 폼들 잡기는.’
예언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
아르델 아카데미 뒤편 골목길에서 강령과 녀석들과 대판 주먹다짐을 하는 와중에도 받을 수 있는 게 예언이라고!
-라고 혼자 중얼대 봤자 바뀌는 것은 없었다.
따분하기 그지없는 신학과의 일상이란.
윤하을은 볼을 부풀리며 짜증 섞인 말을 뱉었다.
“아, 역시 적성에 안 맞아. 마법과에 갔어야 했는데!”
그렇게 추욱 늘어진 그녀의 어깨 너머로 평소와 달리 분주하게 움직이는 신학과 학생들이 보였다.
모처럼의 특별한 이벤트인가?
그녀는 홱 고개를 돌리고선 그들의 대화를 주워들었다.
신의 경지까진 평생 올라설 수 없겠지만, 그녀의 감각은 이미 인간의 영역을 훌쩍 뛰어넘은 상태였다.
신학과 학생들의 말소리가 그녀의 귓가로 또렷이 들려왔다.
“어셔가 실종됐대.”
“뭐? 어셔가?”
“대체 무슨 일이야?”
“혹시 뭐라도 보이는 거 있어?”
“아니.”
예언을 주 능력으로 갈고닦는 신학과의 학생들이었지만, 또렷한 예지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 학생은 적었다.
학과를 졸업할 때까지 수도 없이 배우는 점성술과 명리학. 그러니, 학문을 따라서 미래를 예언하는 자들이 많았다.
장면을 보는 개념이 아니라, 분석하는 개념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상황과 흐름을 바탕으로 미래를 계산하는 것.
다들 책을 펼쳐 둔 채 어셔의 미래를 점지해 보려 애를 쓰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아이가 조심스레 말을 뱉었다.
“나 문득 생각나는 게 있는데. 지난번 기숙사 실종 사건이랑 혹시 비슷한 사건 아니야? 자세한 경위는 모르지만, 느껴지는 분위기가 비슷한 걸?”
“흑마법사들이 작정하고 어셔를 납치했다고? 그런데 왜?”
“그 녀석이 별나잖아. 뭔가를 본 거 아니야?”
윤하을은 두 눈을 감았다.
계산이나 분석으로 미래를 점지하는 저들과 달리, 그녀는 직관으로 모든 것을 판단했다.
“…맞네.”
저 여자애의 말이 맞다.
윤하을은 의외라는 듯 두 눈을 끔뻑였다.
신학과에서 쓸 만한 몇 안 되는 인재 중 한 명이 어셔다.
자신과 비슷한 방식으로 미래를 예언하는, 될성부른 새싹.
“그 똑똑한 꼬맹이가 실종이라니, 뭐가 있는 거 같은데?”
그렇게 나직이 중얼거리던 순간.
“윤하을.”
누군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이러한 점심시간에 자신을 찾아오는 데에는 필히 이유가 하나뿐일 것이므로.
그녀는 다급히 검은 천을 눈에 둘렀다.
* * *
검은 머리에 창백한 피부. 오뚝하게 솟은 코가 흘러내리려는 검은 천을 잡아 주었다.
검은 머리가 거의 없는 이 세계에서는 그 자체로 충분히 신비로워 보이는 얼굴.
거기에 더해 한층 오묘한 분위기가 그녀를 휘감았다.
저 목소리마저도 그랬다.
“올 줄 알았다.”
물론 저 목소리에 홀리면 안 된다.
“모르셨잖아요.”
저, 약팔이 같으니라고.
“…!”
검은 천이 잠시 들썩인 것으로 보아 제대로 놀란 눈치다.
그렇다고 해서 저 약팔이가 쉽게 동요할 리는 없지만.
“지금 나를 의심하는 것이냐. 그러면 돌아가라.”
윤하을은 메인 캐릭터이자 천재 예언가가 맞다.
어셔도 천재로 이름을 날렸지만 메인 캐릭터엔 들지 못했을 정도의 존재감이니, 그것만 봐도 그녀의 재능의 크기를 감 잡을 수 있다.
신학과의 유일한 메인 캐릭터.
문제는 게으른 컨셉충이라는 것.
아마 저 천 뒤에선 저 새끼 뭐야, 와 같은 말을 속으로 지껄이고 있을 게 뻔했다.
그녀의 화려한 언변술에 말리지 않기 위해 차분히 말을 뱉었다.
“의심하진 않습니다. 아르델 최고의 예언가가 되실 분이 아니십니까.”
“….”
“예언을 들으러 왔습니다.”
“예언의 값은 비싸다. 너의 생명력과 마력과 결정된 미래의 일부를 지불해야 들을 수 있는 것. 그 변수는 오직 네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그럼에도 듣겠느냐.”
거창하게 말하지만 사실 그런 거 없다.
쟤, 귀찮아서 저러는 거다.
예언을 하는 데는 상당한 마력을 요구하므로 그럴 만도 했지만.
사실 녀석을 구워삶는 법은 쉬웠다.
스윽.
금화를 내밀자마자 검은 천이 다시 들썩였다.
아마 직감을 통해 읽은 것일 터.
윤하을은 살짝 검은 천을 내려 금화를 확인하고는 다시 분위기를 잡았다.
풋. 방금 입꼬리 살짝 올라간 거 되게 잘 보였거든?
뭐, 일단은 넘어가 주자.
음음.
목을 가다듬은 그녀의 목소리가 신비롭게 울려 퍼졌다.
“…충분한 대가를 치렀구나. 뭐가 궁금한가?”
* * *
나는 머릿속에서 두 가지 질문을 그렸다.
어차피 그 이상은 아직 2학년인 윤하을이 감당할 수 있는 선이 아닐 테니,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정확한 질문만 골라내려 애를 썼다.
그녀는 신의 말과 직관을 전달하는 예언가이지, 신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그녀가 답하는 대답은 신의 뜻일 터였다. 이 세계의 신은 자신에게 무어라 답할까.
그 뜻을 조금이나마 엿보기 위한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습니까?”
질문만 봤을 땐 모호하기 그지없는 질문이지만, 윤하을은 다르게 읽었을 것이다.
악마의 나무 사건 이후로 나는 생각을 바꾸었다.
그리고 유령의 숲 던전에서 확신했다.
악마의 나무 때도 그렇고, 겨우 일개 몬스터가 자신의 과거를 읽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그 던전에서 유령은 한국의 ‘한시하’를 알아선 안 되었다.
그건 섭리에 어긋나니까.
슬카데미 원작은 빙의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빙의에 대한 언급도 없었을 뿐더러 비슷한 상황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작자의 의도를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다만.
뭔가 이상했다.
그 과거를 다시 자신에게 보여 준 건….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앞으로 불어올 피의 전쟁에서 조금이나마 덧없는 희생을 줄이기 위해서.
가지고 있는 지식으로 비극을 막으라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라고 멋대로 해석했다.
그러니 그 확답을 받고 싶었다.
내가 이 섭리를 거스르고 이 세계에 끼어드는 것이 맞는 일일지.
그렇게 비틀어질 세계가 내가 바라던 방향이 맞을까.
그 답은.
“선택의 기로에 서 있구나.”
“네.”
“그 사람을 도울지, 말지 고민하고 있고.”
“…네!”
이 집 진짜 용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점을 보러 다니는구나.
한시하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윤하을의 말에 집중했다.
“조금 뒤틀렸다.”
“음?”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 너는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으려 했겠지만, 네 존재가 결국 변수다.”
“….”
“너는 죽었어야 했어. 허나, 살았군.”
섬뜩한 목소리가 한시하를 향해 꽂혔다.
살기가 담긴 듯한 그 목소리에 한시하는 몸을 흠칫했다.
윤하을은 검은 천을 다시 들어 올리고선 나직이 읊조렸다.
“목숨의 대가를 치러라.”
그만하면 뜻은 확실히 전달되었다.
한시하는 마른침을 삼키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점심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이상 지체되면 게으른 윤하을이 마음을 바꾸고 도망갈지도 모르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어셔는 어디에 있습니까?”
* * *
윤하을은 한시하가 돌아가자마자 기지개를 켜며 검은 천을 풀어 내려놓았다.
오랜만에 따분하지 않았다.
하나같이 허접한 재능의 녀석들을 보다가 저런 녀석을 마주하니 심장이 빠르게 뛸 지경이었다.
한시하의 질문 한마디 한마디에서 알 수 없는 긴장감을 느꼈다.
능력적으로도, 내면으로도 분명 만만치 않은 상대였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후음, 마법과의 한시하라.”
그 이름을 모르는 2학년생은 없었다.
작년까지는 그에 대한 온갖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가 최근 사그라지고 있었다. 하지만, 저렇게 대단한 녀석이라는 소문은 돈 적이 없었다.
‘제법이던데.’
윤하을은 신비롭게 빛나는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다시 떴다.
사실 한시하에겐 말하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그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처음 읽으려 했을 때, 머릿속을 웅웅 울린 한마디.
-마법과의 이방인, 그 사람이 세상을 구할 거다.
어셔가 들었던 것과 정확히 같은 신령.
그것에 대해 잠시 골똘히 생각해 보려던 윤하을은 이내 어깨를 으쓱였다.
“알 게 뭐야.”
괜히 이런 일에 끼어드는 것은 몹시도 귀찮은 일이다.
예언가는 조언만 던질 뿐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존재이므로.
윤하을은 진지한 얼굴로 한시하에게서 받은 금화를 움켜쥐었다.
지금 당장 중요한 문제는 바로 이거다.
모처럼 손 안에 들어온 행복한 고민.
“와, 이걸로 뭐 사 먹지?”
꺄아앗!
그녀는 행복한 비명을 지르며 아르델 아카데미의 매점을 향해 뛰어갔다.
* * *
가장 낡았지만 동시에 가장 새로운 곳.
“아, 수수께끼엔 진짜 소질 없는데.”
이과 특, 추상적인 거 별로 안 좋아한다.
그 때문에 아까부터 골머리가 썩을 지경이다.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윤하을의 예언을 해석하려 애썼다.
늘 예언은 저런 식으로 모호하게 주어진다. 어차피 그 이상은 그녀도 모를 테니 캐물을 수도 없고.
제한 시간은 겨우 24시간. 아니, 이제 22시간 남았으니, 도움을 좀 청해 보기로 했다.
원은 나 못지않게 심각해진 얼굴로 고민하다 고개를 벌떡 들었다.
“그거 그린트 교수의 연구실 아니야?”
“왜?”
“그린트 교수의 연구실이 에른스트 교수 연구실이랑 붙어 있잖아. 내가 들었는데 절반은 그린트 교수 영역이고, 절반은 이번에 확장하면서 에른스트 교수에게 넘겨주기로 했대.”
“그게 왜?”
“두 분 사이 안 좋잖아. 자기 구역만 조교 시켜서 깔끔히 치워 놓는다더라. 나머지는 입주하면 알아서 치우라는 거지.”
와, 그렇게 쪼잔할 수가.
“아, 그쪽에 아예 쓰레기 몰아 놓는다는 소문도 있어. 이거 완전 한쪽은 낡고, 한쪽은 새삥이지 않냐?”
일리 있는 말이지만 예언이 그렇게 조잡하진 않을 거 같다.
내 반응이 영 시원치 않자, 원은 한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였다.
“근데 두 분은 왜 사이가 안 좋으신 거지? 그 이유를 도통 모르겠단 말이야. 선배들이 말하는 거 보면 살벌한 거 같더만.”
으음, 뭐 그게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아니니….
“두 분이 싸우시는 바람에 입구까지 아주 난장판이 되어 있던데 언제 공사 들어갈지는 몰라도 그때까지 아주 난장판 예약….”
“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냐.
“왜?”
가장 낡았지만 동시에 가장 새로운 곳.
낡은 것을 엎으면서 새로운 것을 탄생시키는 곳.
막혔던 머리가 시원하게 뚫린 기분이다.
맙소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공사장!”
“뭐?”
“야, 우리 학교에 공사 중인 곳이 어디지?”
해답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