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69)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69화(69/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69화
솔리아는 침착한 얼굴로 다이어리를 덮었다.
언제나처럼 평온한 듯한 표정엔 미묘한 감정이 일렁이고 있었다.
빛의 마법사. 그녀가 그 지위를 꾸준히 지켜 온 데에는 빛처럼 흔들림 없는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정화의 마법은 정화의 마음에서 나오는 거다.’
그녀의 아버지는 마법으로 가문을 세운 귀족 출신이었고, 어렸을 적부터 그를 절대적으로 따랐던 솔리아는 전적으로 가르침에 동의했다.
어느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
적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 것.
욕심을 부리지 않고 마법에 접근할 것.
솔리아는 침을 삼키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죄송해요. 저는 그러지 못할 거 같아요.”
드레이크 토벌단에 참여하려 한 이유는, 솔직히 말해서 한시하 때문이었다.
고작 한 번 밀렸을 뿐이지만, 솔리아는 기말 평가에서도 그를 이길 자신이 없어졌다.
중간 평가에서 한시하가 보여 준 능력은 충분히 대단했다.
모든 학생들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무려 두 과목에서나 1위를 차지했으니까. 솔리아가 단 한 번도 빼앗을 수 없었던 자리였다.
악착같이 노력을 하고 연구를 한 덕분에 아르델에서 살아남았다.
비록 만년 3등이라 불리기는 했지만, 그 자리가 결코 쉽게 이루어 낸 것은 아니었다.
그 견고한 3등의 자리마저 위태로운 지금.
가산점 그리고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는 그녀의 명예.
솔리아는 그 두 가지를 도무지 놓을 수가 없었다.
차분한 생각이 머릿속을 때렸다.
‘어떻게 잡아야 하지?’
복잡한 걱정들보다는 조금 더 현실적인 고민. 솔리아는 다시 평정심을 찾았다.
그녀는 볼펜을 끄적이며 드레이크의 습성을 정리했다.
드레이크는 조심스러운 몬스터이다.
‘은신’이라는 특성을 지니고 있기에, 얼마든지 제 몸을 숨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솔리아가 리릴의 말을 믿는 이유였다.
둘째, 드레이크는 불과 빛에 약하다.
어둠 속에서 제 능력을 가장 잘 발휘하는 녀석이니 지하의 표본실에서 힘을 키우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마지막으로, 강하다.
아마 그녀의 상상보다 훨씬 강할 것이다.
붙어 본 적 없는 상대이니 경계, 또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어차피 드레이크 토벌단 녀석들 중 쓸 만한 인재는 없다.
실제로 드레이크가 나타났을 때, 도움은커녕 방해나 되지 않으면 다행일 터.
솔리아는 마음을 더 독하게 먹기로 했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조그마한 주먹을 세게 쥐었다.
“반드시 잡을 거야. 내 손으로.”
* * *
같은 시각, 한시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도서관을 찾았다.
솔리아 문제로 골치가 아팠다.
허접이들을 데리고 드레이크를 잡으러 가겠다니.
한시하는 진지하게 고민했다.
아무래도 지난 4위의 충격이 큰 것 같았다.
‘드디어 미친 걸까?’
지금 말려 봤자 역효과만 날 것이 뻔했다.
한시하는 머릿속에서 솔리아의 성격을 브리핑했다.
강철 멘탈의 선한 빛의 마법사.
그러나 그 이면에선 가장 유약한 캐릭터이기도 했다.
그녀가 최애 캐릭터 중 하나였기 때문에 그러한 성격은 이미 꿰뚫고 있었다.
그러나.
‘물론 다음에는 내가 갈 거야! 축하는 축하고 이건… 이거니까.’
그걸 대놓고 티냈다는 건 그 강철 멘탈이 서서히 부서지기 시작했다는 의미기도 했다.
사실 솔리아의 운명을 생각해 보면, 그녀는 죽는다.
주연들도 과감하게 죽여 버리는 피폐물 슬카데미에서 솔리아 하나 죽는 것쯤은 아무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솔리아의 죽음, 그 기점으로 스토리의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 버린다는 점이다.
흑마법사들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최고의 전력은 빛의 마법사 솔리아다.
어떻게 해서든 그녀가 죽는 미래를 바꿔야 할 판에, 자신의 변수로 예정보다도 일찍 죽어 버리면 그야말로 대참사가 벌어진다.
“절대 안 되지….”
진짜 큰일 난다.
한시하는 한숨을 내쉬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반드시 막아야겠다는 열망.
한시하는 현 상황을 정리하며 고개를 돌렸다.
저기 있다.
저벅저벅.
몇 걸음 더 다가서자 언제나 같은 자리에 앉아 있는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모카빵을 신나게 오물거리며 책을 받침대 삼아 턱을 괴고 있는 신학과의 자유로운 영혼.
윤하을은 한시하를 보고선 화들짝 놀라 검은 천을 눈에 덮었다.
안 보일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신박한 컨셉이네.’
저 천을 덮지 않고 있을 때는 나사 빠진 애처럼 보여도 능력만은 확실하다.
한시하는 조심스레 윤하을의 앞에 앉았다.
“무엇 때문에 찾아왔는가.”
근엄한 듯한 입꼬리에 방금 전까지 급하게 먹던 모카 크림이 묻어 있다.
한시하의 눈길이 느껴졌는지 입을 열기도 전에 윤하을이 책상 아래로 쑥 내려갔다 다시 올라온다.
“크흠.”
다시 위엄 있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예언의 값은 비싸다. 너의 생명력과 마력과 결정된 미래의 일부를 지불해야 들을 수 있는 것. 그 변수는 오직 네 스스로….”
“돈도 챙겨 왔습니다.”
“…말해 보아라.”
빠르네.
한시하는 웃음을 참으며 은화 한 닢을 내밀었다.
생각보다 큰 금액이었는지 작은 탄성이 들려왔다.
그 기세를 타 한시하는 준비해 두었던 질문을 꺼냈다.
“솔리아 혼자서 드레이크를 잡을 수 있을까요?”
“…!”
의미를 알 수 없는 침묵이 이어졌다.
검은 천 너머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윤하을은 질문을 잠시 곱씹었다.
‘왜 걔 걱정을 해?’
이 질문의 의미는 무엇일까.
잠시 뒤, 윤하을은 결론에 도달했다.
정신이 확 깨는 결론이었다.
아니, 미친.
“미친. 너 걔 좋아해?”
“네?”
벌떡.
윤하을의 눈에서 검은 천이 흘러내렸다.
본인도 눈치채지 못한 실수였다.
“…!”
뒤늦게 정신을 차린 윤하을은 기겁하며 다시 천을 덮었다.
어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별이 잠시 빙의했었다.”
“아. 그랬나요.”
“그러하였다….”
애써 평정심을 찾아보려 했지만 이미 글러먹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눈을 가리고 있는 천 덕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은 티가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한시하의 질문이 이어졌다.
“그래서, 드레이크를 잡을 수 있을까요?”
윤하을은 두 눈을 질끈 감은 채 나직이 주문을 읊었다.
김 빠지는 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새어 나왔다.
“아니.”
“넵.”
한시하의 표정이 잠시나마 싸늘하게 식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구하면 되겠지.’
그의 눈빛이 묘한 결의로 가득 찼다.
예전이라면 내빼고 봤겠지만, 지금은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감사합니다!”
한시하는 싱긋 웃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준비를 위해서는 발걸음을 재촉해야 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후다닥.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한시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하을은 검은 천을 내렸다.
“에잇.”
윤하을은 신경질적으로 모카빵을 한 입 베어 물고선 볼을 부풀렸다.
“오작교가 된 이 기분, 굉장히 언짢은데.”
으아아악!
쾅.
윤하을은 투덜거리며 책상 위에 얼굴을 처박았다.
오늘따라 모카빵이 맛이 없었다.
* * *
로브를 쓴 학생은 비릿하게 웃으며 체스판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아르델 아카데미의 5학년.
몇 안 되는 학생들이 걷고 있는 테이머의 길을 가고 있는 중이었다.
아르델의 마법과.
전공은 인기 없는 테이머, 무난한 재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르델 아카데미에서 5학년까지 진급했다는 것은, 어디 가서 무시 받을 실력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학교에 출석하던 그에게 모처럼만에 재미있는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학생은 체스판의 퀸을 손에 쥐고선 옆에 있는 말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잡았고.”
“….”
“잡았다.”
다 쓸어버린다.
오직 그 목표만을 두고 학생은 혼자만의 체스를 두고 있었다.
창밖에서 5학년 친구들의 목소리가 선명히 들어왔다.
“2학년들이 드레이크 토벌단 만들었다던데?”
“교수가 없다고 한 걸 믿어?”
“혈기 넘칠 나이지. 냅둬, 재밌잖아.”
“보나마나 허탕치고 오겠지.”
“있어도 문제지, 2학년들이 그거 상대할 수나 있어?”
평상시에는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는, 공기 취급하는 녀석들의 표정이 공포에 질릴 것을 생각하니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학생은 기분 좋게 웃으며 퀸으로 말 하나를 더 쓰러뜨렸다.
“후우… “
힘들게 구한 드레이크.
‘은신’ 스킬이 있는 터라 조종만 잘 하면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야생의 드레이크라면 진작에 날뛰며 학교를 헤집고 다녔을 테지만, 몇 년 동안 길들여온 녀석은 달랐다.
드레이크 중에서도 참을성이 있으며 난폭한 녀석을 골랐다.
고삐만 풀리면 심심하지 않은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툭. 데구루루.
쓰러진 말이 굴러가 바닥에 떨어졌다.
학생은 다시 한번 끌끌 웃었다.
교수들이 표본실에 잠시 들렀을 때는 혹여나 들킬까 마음을 졸였지만, 다들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생각한 모양인지 대충 훑고 다녀온 모양이었다.
조금만 신경 썼어도 감지했을 것을.
그의 입에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
“멍청한 것들….”
그의 아버지는 흑마법사 출신이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마법사들 간의 거대한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의 가문 역시 목숨을 잃었다.
흑마법사들을 무너뜨리는 데에 가장 크게 일조한 것이 아르델 아카데미 출신 마법사들.
자연히 아르델을 증오하게 되었다.
아르델 아카데미에 입학할 때부터 5년을 기다려 왔다.
아무도 표본실의 드레이크가 한 테이머에 의해 조종받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지 못할 테니,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일만 남았다.
“고작 2학년 애송이들이 죽여 보겠다고?”
학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가 다시 펴졌다.
섬뜩한 웃음소리와 함께 체스판이 바닥에 쓰러졌다.
“글쎄. 과연 누가 죽으려나.”
* * *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2학년 애송이들, 그러니까 드레이크 토벌단은 다소 처참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왕좌왕.
데릭이 언성을 높이며 리릴을 강제로 붙들었다.
유일한 목격자이자, 드레이크의 위치를 자세히 알고 있을 사람이 그녀밖에 없었다.
“같이 가자니까?”
“싫다고… 무섭다고!”
리릴은 붉게 충혈된 눈으로 데릭의 손을 뿌리쳤다.
데릭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놓고선 이를 악물었다. 서늘한 눈빛이 리릴에게 닿았다.
강제로라도 끌고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리릴은 겁에 질린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
“안 갈 거야… 진짜 있었다고 표본실에….”
“그러니까, 표본실 어디냐고. 네가 말해 줘야 우리가 잡지 않을까?”
“…무서워.”
“하, 혹시 뇌를 두고 다니는 거야? 말로 하니까 잘 안 들려?”
“위험하다고! 그건… 정말….”
지하의 표본실은 오랜 시간 방치되어 있었다.
학생들이 잘 드나들지 않는 곳이기도 했고 쓰레기와 고물덩어리들이 나뒹굴고 있어서 출입이 어려웠다.
게다가 창고방까지 여러 개여서 정확한 위치 파악이 필요했다.
데릭은 한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었다.
“야, 그거 잡으려면 위치는 알아야 할 거 아니야. 표본실이 한두 개야?”
“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그러면 네가 안내를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네 멍청한 대가리는 기억 못해도 몸은 기억하겠지.”
“싫어!”
“이게 진짜…!”
탁.
금방이라도 리릴을 한 대 칠 것 같던 순간, 데릭의 손목이 붙들렸다.
“넌 또 뭐 하는 새끼… 어?”
자신을 함부로 막을 사람이 토벌단 내에는 없었다.
데릭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들었다.
솔리아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솔, 솔리아?”
솔리아가 무심한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싫다잖아. 보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