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79)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79화(79/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79화
한시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앞으로 걸어 나갔다.
꼼짝없이 걸렸다. 당장 쫓겨난다 해도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뒤편에서 어기적거린다 한들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진 않았으므로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이었다.
그런데.
“학생 이름이?”
“한, 한… 수하입니다.”
“한수하 학생이군. 이쪽은?”
“윤하을입니다.”
아니 저 교수는 자기네 과 수석도 몰라?
그것도 신학과 역사상 손에 꼽히는 천재를 앞에 두고?
이거 바로 걸리는 게 아닌가 했는데 어쩌면 안 걸리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문제는 신학과 학생들인데….
“….”
놀라울 정도다. 이 무관심.
몇몇은 분명 알아본 듯한 얼굴인데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책상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나마 유의미한 반응을 보인 것은 윤하을뿐이었다.
“어…?”
쉿-.
한시하는 검지를 입에 가져다 대며 윤하을의 눈치를 살폈다.
윤하을은 두 눈을 굴리며 상황을 빠르게 정리했다.
딱 한 가지 경우의 수가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아.”
‘견학 왔구나.’
결론이 이상한 방향으로 갔다.
‘점성술에 관심이 많아서!’
의외인걸?
윤하을은 턱을 쓸어내리며 한시하의 새로운 관심사에 감탄했다.
‘심지어 잘하려나?’
윤하을이 봐 온 바, 한시하는 전혀 예상치 못하는 부분에서 놀라운 소질을 보여 주었던 녀석이었다.
어쩌면 점성술에서도 그럴지 몰랐다.
윤하을이 기대감을 품고 그를 돌아보고 있는 사이, 한시하는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원에게 괜찮다는 듯 신호를 보냈다.
시프림 교수는 동그란 안경을 들어 올리며 뒤틀린 미소를 지었다.
“오늘은 카드로 점을 쳐 볼 거예요. 그리 어렵진 않으니 따라 해 봐요.”
어렵다. 아니, 점성술이 뭔지도 모르는데.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한시하는 조용히 눈치만 살피다가 빠져나갈 생각으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을 때는 호응이라도 똑바로 해야 하는 법이다.
“오늘의 운세를 점쳐 보도록 하죠. 할 수 있겠어요?”
“네에… 네.”
“어렵지 않죠.”
“서로의 운세를 점쳐 볼까요?”
“넵!”
한시하의 운세라….
투욱.
바닥에 촤르르 깔린 카드에서 윤하을이 단호하게 한 장을 뽑아냈다.
나무 막대기를 들고 있는 여자.
윤하을은 빠르게 그 뜻을 읽어 냈다.
백양궁, 즉 양자리를 의미하는 카드였다.
윤하을은 눈을 감고선 복잡한 수식을 빠르게 계산해 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천구가 두어 번 회전했다.
화성의 위치를 분석한다. 마침내 그려낸 각도를 머릿속에 배치시키고선, 윤하을은 알겠다는 듯 확신의 두 눈을 반짝였다.
점성술은 수리학과 상당히 맞닿아 있었다.
그저 감만으로 맞히는 것은 아니다.
숱한 공부와 연습의 결과물이었다.
“길한 기운이 강하게 느껴지네요. 의욕을 북돋을 수 있는 오후가 될 거 같습니다. 화성이 머리 위에 위치했을 때 가장 기운이 좋으니 오후 3시쯤이 미뤄 뒀던 일을 하기 가장 좋겠네요. 뭐, 준비하고 있는 거 있어요?”
뜨끔.
한시하는 어색한 미소를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윤하을이 빤히 쳐다보더니, 카드 한 장을 더 뽑았다.
“안 들키고 잘하고 있다고 나오네요. 음, 혹시 사고 쳤어요?”
“그럴 리가요. 저는 되게 얌전하게 살고 있는데요.”
“…이상하다.”
윤하을은 서늘한 한마디를 중얼거리고선 두 손을 모았다.
시프림 교수를 올려다보는 눈빛은 마치 칭찬해 달라는 수달처럼 해맑게 반짝이고 있었다.
시프림 교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입을 뗐다.
“훌륭했어요. 잘하는데…? 요즘 학생들은 다 이 정도는 하는군요.”
아니야, 걔가 수석이야.
미친 듯한 부담감에 한시하는 실성한 미소를 흘렸다.
이제 슬프게도 자신의 차례였다.
“편하게 해 봐요. 느낌대로.”
‘제가 느낌대로 하면 헛소리가 돼요.’
약도 뭐라도 좀 아는 사람이 파는 거지, 자신 같은 사람이 약을 팔면 꼼짝없이 잡혀가는 것이다.
한시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한번 해 보겠습니다.”
한시하는 흐린 눈으로 카드를 뽑았다.
당연하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
‘입을 털어야 한다. 잘 털어 보자, 한시하.’
한시하는 카드를 살짝 가리며 뜸을 들였다.
괜히 카드를 보여 줬다가는 어설픈 해석이 다 들킬 것 같으니, 카드는 자신만 보기로 한 것이었다.
“그… 이게 뭐냐.”
총체적 난국이다.
한시하는 심장에 칼이 꽂혀 있는 듯한 살벌한 카드를 보고서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일단 별자리는 뭔지 모르겠지만….
“염소자리인 듯싶은데요.”
이유는 없었다. 자신이 염소자리에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저 똘망똘망한 눈동자들이 이 헛소리에 진지하게 집중하고 있다는 거.
그만 쳐다봐!
이거 다 개소리라고!
“어… 음.”
에라, 모르겠다. 당당하게 지르자!
심장에 칼이 꽂힌 거라면… 뭔가 많이 아파 보이긴 하는데.
생각나는 게.
그러니까.
“최근에 실연하셨어요?”
“…맞아요.”
아니, 이게 왜 진짠데.
“…와.”
“잘한다.”
“쟤 누구야?”
“한, 한수하?”
“처음 보는 얼굴인데.”
“아, 쟤 마법과 누구 닮은 것처럼 생겼네.”
“난 어디서 많이 봤어.”
웅성웅성.
한시하는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벌리고 윤하을을 바라보았다.
아니, 정말 이게 왜 진짜냐고.
“고백하지 않았지만 차인 것 같은 기분… 크흡.”
그, 뭐라고 위로를 해 줘야 하는 걸까.
한시하는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했다.
하지만 길게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그, 그 상대가 아무래도 염소자리인가 봐요.”
급기야 아무 말이 나갔다.
대충 앞서 뱉은 말과 조합해 보았는데.
물론 맞을 리가 없는 헛소리였다.
“…그것도 맞아요. 어, 어떻게 알았어요?”
아니, 이게 왜 자꾸 맞는 거냐고!
“저걸 맞혔다고?”
“와, 고급 점성술인데.”
“맞히기 어렵지 않나, 저건.”
감탄 따위 필요 없었다.
윤하을은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한시하는 어찌할 줄 모르며 원을 돌아보았다.
‘쟤 천재네.’
원은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한시하는 그런 원을 보며 한 대 때리고 싶었다.
지금 감탄할 때가 아니라니까.
급기야 앞자리에 앉은 녀석들이 윤하을에게 격려를 보내기 시작했다.
아니, 신학과 너네들 조용하다며.
남들한테 관심 없다며.
갑자기 왜 이러는데!
“울지 마! 울지 마! 울지 마!”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제길, 망했다.
한시하는 다급히 카드 한 장을 더 뽑았다.
솔직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위로는 해 줘야 할 듯싶어서였다.
“그 상대방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마음이 있을지도 모르는 거 같습니다.”
“정말요?”
잠시 시무룩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윤하을은 다시 생글거리며 두 눈을 반짝였다.
“힘내라! 힘내라! 힘내라!”
아까 풀이 죽어 있던 표정과는 180도로 달라진 얼굴이다.
위로가 잘 먹힌 모양인가.
한시하는 혼란스러웠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뭐, 내 일은 아니니 괜찮겠지.’
윤하을은 해맑게 웃으며 당차게 입을 열었다.
“저는 이제 괜찮습니다! 일방인 줄 알았는데, 쌍방이었어요!”
“으응?”
“상대도 제 마음을 알고 있어서 다행인 거 같아요.”
“아, 축하드립니다.”
잘 해결되었다니 다행입니다.
한시하는 죄인이 된 기분을 떨쳐 내며 카드를 내려놓았다.
그런데.
왠지 등골이 싸하다.
시프림 교수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을 부담스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두 학생 이름이 뭐라고 했었죠?”
“윤하을입니다!”
“한, 한수하요?”
“둘 다 혹시 내 실험실에서 점성술 연구를….”
“아뇨, 정말 괜찮습니다.”
정신이 바짝 드는 소리다.
한시하는 다급히 손사래를 치며 격하게 거절했다.
‘큰일날 뻔했네.’
…대학원 멈춰!
* * *
“뭐, 어떻게 한 거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신학과의 윤하을을 상대로. 그걸 그 자리에서 다 맞혀? 난 네가 돗자리 깐 줄 알았다.”
“…얻어 걸린 거야.”
“야, 네가 상황만 맞힌 것도 아니잖아. 실연한 건 그렇다 쳐도 좋아하는 사람 별자리를 어떻게 맞혀. 그걸 어떻게 얻어 걸리냐? 별자리가 12개야, 인마.”
원은 흥분한 투로 말을 쏟아 냈다.
한시하는 한숨을 내쉬며 원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아니, 진짜 얻어걸린 게 맞다.
주위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저희 할 만한 거 같아요!”
나탈리는 감격한 얼굴로 한시하의 팔을 붙들었다. 아델라가 혀를 내두르며 말을 얹었다.
“네 놀라운 점성술 실력에서 희망을 본 거 같대.”
“…절망이 아니었을까?”
“분명 희망이었어요!”
“잘못 봤어. 야, 다들 잘못 봤어. 눈이 삐었냐고.”
“너무… 희망적이에요!”
이 묵직한 부담감.
한시하는 손사래를 치며 미리 판을 깔았다.
점성술의 점 자도 몰랐다가 아델라와 원에게 달달 볶일 것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뒷감당이 안됐다.
“열심히 공부는 할게. 아, 근데 진짜 아무것도 모른다고.”
“제가 느낀 건데, 성적은 역시 겸손해야 나오는 거 같아요. 한시하처럼!”
“제발 부탁이야, 나탈리. 살려 줘.”
“저런 겸손함이요…!”
한시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다른 세 사람은 이미 축제 분위기였다.
“1등을 노려봅시다.”
“1등! 1등! 3학점! 3학점!”
“합법적 농땡이 최고지.”
이미 사실상 수상자가 된 듯한 단체 김칫국 드링킹.
한시하는 이 뜨거운 환호성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얘들아, 정신은 놓으면 안 된다.”
그때였다.
투욱.
벌써부터 호들갑을 떨어 대는 이들을 막아 보려 애쓰던 한시하는 실수로 복도에서 옆 사람과 부딪치고 말았다.
“어… 엇!”
자연히 고개를 숙였다.
“아, 죄송….”
스르륵.
검은 옷깃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다.
꽤 세게 부딪힌 거 같은데 개의치도 않는다는 뒷모습이다.
한시하는 아랫입술을 내밀고선 고개를 홱 돌렸다.
“으음….”
뭔가 낯설지가 않았다.
왠지 익숙한 기운이 느껴져서였다.
하지만, 한시하의 기억상으론 저런 비슷한 이미지의 지인이 없었다.
한시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뭐, 기분 탓이겠지.”
* * *
“외부 심사위원 분들은 다 도착하셨을까요?”
신학과의 연례행사 중 하나인 점성술 대회는 철저히 외부 심사위원들에 의해 평가되었다.
신학과는 비록 입학생의 수는 적은 편이지만, 그 아웃풋은 매우 좋은 편이었다.
마법사도 그렇지만 제대로 된 예언가의 수는 대륙에서 손을 꼽을 정도로 적었다.
때문에 마탑에서도 전문적인 심사위원들과 교수들을 배치해 예언가 인재를 키우려고 노력했다.
그 노력의 일환 중 하나가 점성술 대회였다.
비록 상금과 혜택은 교내 대회답게 별로 대단하지 않았지만, 그 의미는 매우 깊었다.
단순히 상금과 성적이 아닌, 새로운 시대를 열 인재를 뽑기 위해서니까.
“거의 다 도착하신 것 같은데.”
“아, 그분이 안 오셨군요.”
시프림 교수가 안경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지금쯤이면 올 시간이 되었는데. 나직한 투덜거림을 입 밖에 내뱉기 전, 고요한 회의장의 문이 드르륵 열렸다.
“아.”
더워지는 날씨에는 어울리지 않는, 다리까지 덮는 검은 옷깃.
품격이 느껴지는 걸음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가의 명품으로 휘감은 남자가 천천히 회의장에 걸어 들어왔다.
그들과 똑같은 지위에 있는 외부 심사위원들이지만, 누구도 남자의 지각을 탓하지 못했다.
오히려 잘 보이려 혈안이 된 눈빛이었다.
“오셨군요. 여기, 자리 대기해 두고 있었습니다.”
“오랜만입니다. 혈색이 더 좋으시네요.”
“허허, 처음 뵙습니다. 얼굴에서 빛이 나시네… 잘 부탁드립니다.”
시프림 교수마저도 예외는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시프림입니다.”
“회의부터 시작했으면 하는데.”
남자는 뻣뻣한 자세로 앉아 냅킨을 주머니에 넣었다.
모두의 시선을 주목시키기에 충분했던 고압적인 목소리.
남자는 비릿하게 웃으며 팔짱을 꼈다.
그의 말에 누군가가 공손하게 입을 열었다.
“한시혁 위원님, 회의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