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5)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85화(85/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85화
창고 납치 사건이 이틀 지난 후, 아카데미는 다시 여느 때처럼 잠잠해졌다.
바뀐 거라고는 시모어를 향한 다른 마법과 학생들의 시선 정도?
무작정 그를 싫어했던 아델라도 무뚝뚝하게라도 대화를 나누는 걸 보아 뭔가 바뀌긴 바뀐 모양이었다.
그러라는 의미에서 시모어를 창고에 보냈던 거긴 했다.
한시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찻잔을 들었다.
“흐음.”
그는 때마침 한시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이유는 몰랐다. 그가 부른 것이 아니었으므로.
다만, 그렇게 얻어맞고도 여기까지 찾아왔다면, 할 말이 있단 소리겠지.
‘원래 한시혁이 이 에피소드에서 나타났었나?’
뜨거운 차 한 모금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한시하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점을 곱씹었다.
한시혁을 단번에 알아보지 못한 이유도, 한시혁의 등장은 원작에선 다루지 않은 장면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그리 비중 있는 인간이 아니니 생략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심사나 보러 올 양반이 아닌데 무슨 이유였을까.
“도통 모르겠네.”
나직이 중얼거리며 찻잔을 내려놓던 순간.
끼이익.
나무문이 파열음을 내며 열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로브를 뒤집어쓴 한시혁이었다.
“음.”
한시하는 찻잔을 내려놓고선 껄렁하게 자세를 고쳤다.
점성술 대회부터 줄곧 의심하고 있었을 수도 있으니 망나니 한시하답게 굴어야겠다는 판단이었다.
한시하는 신경질적으로 말을 뱉었다.
“왜 부른 거야?”
“네게 해 줄 조언이 있어서였다.”
서로의 눈빛이 허공에서 교차했다. 입은 웃고 있지만 눈빛에선 묘한 신경전이 느껴졌다.
‘싸가지 없는 동생 새끼.’
‘몇 살이나 된다고. 거참 드럽게 가오 잡네.’
서로 그렇게 생각하던 중, 한시혁이 조심스레 입을 뗐다.
“가문에 들어가 있어라, 이번 방학에는.”
“…네가 왜?”
이건 시비가 아니라 진심이었다.
한시하의 얼굴이 팍 구겨지고 말았다.
한시하가 어떻게 된다면 가장 기뻐할 인간임이 분명한데.
대체 왜 가문에 들어가라는 거지?
그것도 누구 좋으라고?
한시하는 턱을 쓸어내리며 직설적으로 말을 뱉었다.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들어가 있으라면 들어갈 것이지.”
한시혁은 두 손에 깍지를 진 채 나직이 읊조렸다.
“내 말에 거역하는 건 질색이다.”
“….”
“건방진 것.”
-라고 눈이 밤탱이가 되어서 말하니 되게 없어 보이는데.
어째 그제보다 더 부어오른 것 같다.
한시하는 황당한 나머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
살기도 느껴지지 않은 눈빛으로 협박해 봐야 먹힐 리가 있나.
“뭐, 고려는 한 번 해 볼게.”
뜨아-.
한시하가 기지개를 펴려 팔을 뻗은 순간.
움찔.
한시혁이 티 나게 어깨를 움츠리더니 제 눈치를 살폈다.
설마.
‘지금 맞을 줄 알고 쫄은 거냐.’
대륙의 천재 예언가 체면이 말이 아니다.
한시혁은 헛기침을 하며 짐짓 근엄하게 덧붙였다.
“…분명 나는 가라고 하였다.”
“그래, 알겠다고.”
“가라고 하였다!”
“이거나 받아. 눈탱이 찜질이나 하고.”
한시하는 혀를 차며 한시혁을 향해 뜨거운 수건을 던졌다.
한시혁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수건을 받아 들었다.
“…?”
여전히 없어 보였다.
* * *
일주일 후, 아르델의 도서관은 짐을 싸는 학생들로 분주했다.
학생들을 죄여 온 기말 평가가 마침내 끝이 났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그 인파 속에 끼어들었다.
아공간 가방에서 필요 없는 책들을 하나씩 꺼냈다.
“마법실전학….”
버려.
점성술 대회로 3학점을 겟했으니 2학기는 그린트 교수 수업부터 드랍할 예정이었다.
저희 다시 보지 맙시다, 교수님.
“그리고 테이머학….”
이건 2학기에도 쭉 가져가야 할 듯싶다.
아직은 테이밍할 때마다 여전히 부족함을 많이 느끼는 터라, 이론 정립이 필요했다.
타고난 친화력으로 테이밍에 성공한다 해도 전투에 쓰이는 전략은 다른 개념이다 보니.
1학년 때 제대로 배운 다른 학생들에 비해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한시하!”
아델라가 손을 흔들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새 많이 친해졌는지 나탈리도 함께였다.
“시험은 잘 봤어요?”
“무난하게. 나탈리는?”
“낙제는 아닐 거 같아요. 확실해요!”
“원래 그 근처도 아니었으면서. 진짜 못하는 사람은 서러워서 살겠나.”
“원, 시험 다 끝난 거예요?”
“어어.”
원까지 합류하며 점성술학 대회조가 전부 한 자리에 모였다.
중간에 창고 납치 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겼을 법도 한데 다들 무사히 시험을 본 모양이었다.
원을 돌아보며 물었다.
“기숙사 짐은?”
“다 챙겼다. 너도 오늘 짐 뺄 거야?”
다들 방학 준비를 위해 본가에 내려가는 모양이었다.
‘가문에 들어가 있어라. 이번 방학에는.’
한시혁의 말을 차분히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이번 한 번만 들어 보지, 뭐.
특별히 이상한 꿍꿍이가 있는 것 같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가문에 돌아가려고.”
“…진짜?”
아델라가 놀랍다는 듯 탄성을 터트렸다.
한시하와 그의 가문 불화설은 이미 아르델 아카데미 내에 자자하게 퍼져 있었다.
1학년 때 흑마법을 연구하면서 낙제 위기까지 갔었고, 그 때문에 가문에서 버린 자식 취급 받는다는 그러한 이야기들.
최근에 가문의 지원을 다시 받으면서 그런 얘기들은 조금씩 사그라지고 있긴 했지만, 방학 때 얼굴을 볼 정도로 살가운 사이가 아니란 건 모두가 알았다.
아마 그래서인지 퍽 놀란 모양이었다.
아델라는 엄지를 치켜들며 진심으로 축하했다.
“잘됐네.”
“아델라는?”
원이 아델라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델라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안 가려고.”
“아.”
“나 오는 거 별로 안 좋아하셔. 허구한 날 온다고.”
“기숙사에서 지내게?”
“그러려고!”
말은 저렇게 해도 사실과는 다를 터였다.
아델라가… 본가가 있었던가?
원작에서도 늘 혼자 있던 모습만 봤던 것 같은데.
티를 내지 않으니 말을 얹을 수도 없다.
“방학 끝나고 보자고.”
“그래, 다들 잘 보내라!”
“한 달 뒤에 봐요!”
묵직한 가방을 한 손에 들고 반대편 손을 흔드는 원과 기숙사로 돌아가는 아델라.
마지막으로 후련한 발걸음으로 폴짝폴짝 뛰어가는 나탈리까지.
저들의 뒷모습이 한참을 멀어질 때까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지 않아서였다.
“하.”
가뜩이나 껄끄러운 가문.
말이 아버지고 가족이지, 생판 모르는 얼굴들과 불편하게 한 달을 맞대고 지내야 한다는 사실이 썩 달갑지는 않다.
차라리 아카데미의 친구들과 치열하게 한 학기를 살아남던 시간이 더 즐거웠다.
그 순간, 어쩌면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시모어 파커였다.
안절부절못한 기색으로 캐리어를 든 채 복도를 오고가고 있다.
저 녀석은 왜 저러냐.
목청을 높여 녀석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시모어!”
“…한시하?”
시모어 파커는 굳은 얼굴로 멈춰 섰다. 마법과에 완전히 스며들진 못했어도 요샌 나름 잘 어울리고 있는 모양이다.
나름의 고비는 넘겼지만, 아마 이 상황에서 막막한 건 시모어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가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빠져나오긴 했어도 그쪽과는 아직 껄끄러울 테고, 기숙사에 돌아갈 돈도 없겠지.
표정을 보아하니 대충 상황이 선하게 그려진다.
“갈 곳 없냐?”
“….”
시모어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많, 많은데.”
“야, 매번 느끼지만 넌 거짓말을 너무 티 나게 하더라.”
애가 표정만 봐도 투명하게 다 보인다.
시모어는 내 지적에 반박할 거리가 없는지 입을 굳게 다물었다.
복도의 시계를 돌아보았다. 열차 시간이 슬슬 가까워지고 있다.
녀석을 힐끗 보면서 잠시 고민했다. 쟤라도 끌고 가면 숨 막히는 공기가 좀 나아지려나 싶기도 했다.
지나가는 말로 슬쩍 던져 봤다.
“없으면 따라오든가.”
“어.”
생각보다 흔쾌한 대답이었다.
* * *
열차로 두세 시간 정도를 쉼 없이 달려 도착했다.
지도로 힘겹게 찾은 가문의 저택은 멀리서도 눈에 띌 만큼 거대했다.
대리석으로 된 멀끔한 바닥, 새하얀 돌로 쌓은 궁전 같은 저택. 옆에는 분수대도 있었다. 거기에 보석으로 된 꽃밭까지.
포션도 저택 안에서 따로 제작하는지 오두막집으로 된 별도의 작업실마저 따로 존재했다.
새끼, 잘 살았구나.
“한시하가 잘한 거 딱 하나 있네.”
수저 잘 물고 태어난 거.
이것 참 소설에서나 봤지, 실존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비주얼이다.
연신 감탄을 터트리며 저택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재벌 된 기분이다, 이거 진짜.
아니, 단언컨대 재벌도 이런 곳에서는 안 살 거 같은데.
말 그대로 입이 떡 벌어지는 비현실적인 광경들이 연이어 나타났다.
무슨 레드카펫만큼이나 길게 느껴지는 입구를 지나자, 내 키보다 훨씬 높아 보이는 대문이 보였다.
한시하는 왜 이런 데에서 살면서 흑마법을 연구하고 다닌 거냐.
나 같으면 평생 꿀 빨면서 조용하게 졸업했을 텐데.
엄청난 가문이라던데, 진짜 상상 이상이네.
생글거리며 대문 앞에 섰다.
“안녕하세요, 돌아왔습니다!”
“….”
반응이 영 없네.
“짜잔?”
여기까지 인사말을 더해 주자, 경호원들이 내 얼굴을 보고선 표정을 굳혔다.
‘이게 아닌데.’
드르륵.
시모어는 내 눈치를 살피며 캐리어를 질질 끌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한 듯했다.
당당하게 밀어붙일 생각으로 싱긋 웃어 보였다.
“요새는 본가에 돌아와도 길 안내 하나 안 해 주는 게 트렌드인가?”
“잠시만 대기해 주십시오.”
문 앞에 선 하인 하나가 표정을 구기고선 안으로 쪼르르 들어갔다.
“도련님이 오셨습니다.”
분명 멘트는 도련님인데, 말투는 개새끼가 오셨습니다로 느껴지는 건 내 착각일까.
쾅.
안에서 날이 선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직 들어오지 말라 하여라.”
“그렇답니다.”
이렇게 문전박대를 한다고?
1년 반 만에 돌아온 자식에게?
돈도 줬잖아!
얼굴 보는 건 아직 싫은 거냐고!
왜 아버지가 밀당을 해!
으억.
동시에 하인이 내 등을 훅 떠밀었다. 균형을 잡지 않았다면 그대로 대리석 바닥에 고꾸라질 뻔했다.
미친, 나한테 원한 있나.
나직이 욕설을 뱉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나를 돌아보는 저 싸늘한 눈빛들.
아, 정정해야겠다.
나한테, 아니 정확히는 한시하에겐 원한이 상당히 많은 자들이겠군.
하인과 경호원을 좀 못살게 굴었어야 말이지. 왜 일찍 죽었는지 깊이 공감이 된다.
이한에게 죽지 않았어도 필히 어디서든 맞아 죽었을 녀석이다.
이 새끼가 지랄한 건 왜 내가 수습해야 하냐고.
“하아….”
털썩.
귀찮음 가득한 얼굴로 차디찬 바닥에 주저앉았다.
시모어는 안절부절못하며 캐리어 가방을 꼭 붙들었다.
막막한 얼굴을 보아하니 이제 어쩔 거냐는 듯한 눈빛이다.
대수롭지 않게 녀석을 향해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아, 미안. 나도 갈 가문이 없었나 봐.”
“으응…?”
“쫓겨났네. 어쩌지?”
고개를 천천히 돌리며 문틈을 확인했다.
이 정도면 내 목소리는 충분히 들릴 것 같은데.
“음음.”
일부러 목소리를 키워 투덜대기 시작했다.
아무리 꼴 보기 싫은 자식이어도 하나밖에 없는 적자인데, 한시하가 죽었을 때 아르델 아카데미를 뒤집어 놨던 걸 생각하면 마냥 쫓아낼 리는 없을 거라 생각해서였다.
“이대로 한여름에 무거운 짐 들고 돌아다니다가 열사병으로 쓰러져 죽으면 누가 책임지려나. 아, 서러워서 살겠나… 인생.”
“….”
“차라리 쓰러져 뒈지는 게 낫지, 요새 산이 흉흉하던데. 납치라도 되어서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꿱하고 죽으면 그건 더 억울할 거 같기도 하고….”
“그치.”
“돈 한 푼도 없는데, 아카데미까지 걸어가야 하면 나는 그냥… 차라리 산에서 뒈질란다.”
벌컥-.
문이 열리고 상당한 풍채의 남자가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한시하의 아버지.
주름진 얼굴은 만만치 않은 세월을 담아내고 있었다.
말 한마디라도 잘못하면 모가지가 날아갈 것 같은 살벌한 시선이 내게 닿았다.
“들어와라.”
네, 감사합니다!
“아니, 그 전에.”
그의 시선이 시모어 파커를 향했다. 시모어는 침을 삼키며 두 손을 공손하게 모았다.
나름의 조심스러운 제스처에도 날이 선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누굴 데려온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