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6)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86화(86/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86화
“네 녀석은 아직도….”
한시하의 아버지, 한태수의 표정의 싸늘하게 식어 갔다.
일부러 가만히 있었건만, 단번에 알아챈 모양이었다.
“시모어 파커, 맞나?”
“네엡….”
“여기는 왜 왔지? 단체로 내 복장이라도 뒤집으러 왔나?”
그럴 리가.
일부러 생글거리며 고개를 저어 보였다.
“갈 데가 없었습니다!”
해맑은 내 대답에 한태수가 뒷목을 잡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그렇다 치고. 네 녀석은?”
한태수는 시모어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사실 가문의 위상을 놓고 봤을 때는 저쪽도 유서 깊은 가문이긴 하지만, 다른 가문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좋진 않았다.
더군다나 강령과에 다니는 친구라, 흑마법이라면 질색하는 한태수가 달갑게 생각할 리 없었다.
시모어 파커는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번에 마법과에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친해졌….”
“…그럴 수가 있다고?”
한태수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분명 강령과에 진학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아르델 아카데미 쪽은 자주 안 가는 터라 다른 학부모들에 비해 소식이 느린 편이긴 했지만, 시모어 파커가 대형 사고를 쳐서 아르델의 지하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은 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나와 있는 것도 의아한데, 마법과에 들어갔다고?
그런 한태수의 눈빛을 보며 나는 시모어를 다시 살폈다.
생각해 보니 정말 모든 부모가 싫어할 만한 친구의 조건을 완벽히 갖춘 녀석이다.
뭐, 사돈 남 말할 건 아닌 게 나도 막 그렇게 부모님들이 좋아하실 인물상은 아니잖아?
“하아.”
“….”
좋은 대접을 받기에는 조금 그른 듯싶다.
한태수는 싸늘한 눈빛으로 식탁에 앉았다.
식어가는 스테이크를 칼로 써는 손짓에 아무 말도 꺼내질 못했다.
여기서 괜히 헛소리를 뱉었다간 저 칼로 꽂아버릴 것 같아서였다.
정적을 깨고 한태수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부에서 사고까지 쳐서 재판이 열렸다는 소식이 들려오더군. 사실대로 보고해라.”
왜 싸늘해졌는지 알 것 같았다.
애가 성적이 오르길래 생각을 고쳐먹었나 했더니 그새 또 이상한 사고를 쳐서 징계를 받았다고 생각하겠지.
우걱우걱.
스테이크를 신경질적으로 물어뜯은 한태수가 엄포를 놓았다.
거참, 이상한 데에서는 소식이 빠르면서 이상한 데에서는 또 느리네.
표정을 보아하니 그 비하인드까진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분명 한시하를 싫어하는 주변 하인들이 좋지 않은 소식들만 모아서 칼같이 전달했을 터.
안 봐도 뻔했다.
두 손을 모은 채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보통의 아버지라면 마법부에는 왜 갔는지가 궁금하지 않을까요.”
“…뭐?”
툭.
한태수는 썰던 칼을 내려놓고선 내 쪽을 돌아보았다.
무섭다, 와. 진짜 칼로 찍어 버리는 건 아니겠지?
한시혁을 처음 봤을 때도 만만치 않은 기운을 느꼈지만 이쪽은 더하다.
사람을 꿰뚫을 것 같은 살벌한 눈동자. 내리까는 시선까지.
오히려 이런 유전자 사이에서 혼자 말랑말랑한 얼굴로 태어난 한시하가 신기하게 느껴질 따름이었다.
가만 보면 인상은 내가 가장 괜찮을지도?
“마법부가 주관하는 행사에 다녀왔습니다.”
“….”
미간을 찌푸리는 걸 보아하니 여전히 말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네가 거길 왜 간 거냐?”
대답 대신 가방에서 팔랑거리는 낱장의 성적표를 꺼내었다.
중간 평가 성적표였다. 기말 평가도 못지않게 잘 보긴 했지만 아직 나오질 않았으니.
물론 대답은 이것으로 충분할 터였다.
스윽.
성적표를 받아든 한태수의 두 눈이 거의 뒤집어졌다.
“이… 이게 대체….”
“….”
“어어어어?”
테이머학 1등, 마법 실전학 1등. 다른 과목들을 합친 종합 성적은 3등.
마법부 행사에 당당하게 참여할 수 있었던 중간 평가 성적이 그의 손에 쥐여 있었다.
그 분위기를 타 해맑게 덧붙였다.
“기말은 더 잘 봤습니다.”
“어어… 어어.”
한태수는 마치 버퍼링이라도 걸린 듯이 손을 바르르 떨었다.
아니, 이게 이렇게 충격적일 일인가.
감격에 젖은 듯 한태수의 눈이 붉어졌다.
그 순간, 전혀 예상치 못한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어디서 베낀 것이냐.”
네?
“…누구 걸 베꼈느냐.”
아니 내가 풀었다고.
억울하다. 미치도록 억울하다.
내 멍한 표정을 확인한 시모어가 대신 변명을 해 줬다.
“다 실습 시험이었을 겁니다. 베낄 수가 없는….”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있다구요.
사람이 다시 태어나면 가능한 걸요.
손사래를 치며 다시 한번 변명하려던 그때.
훌쩍.
…우세요?
“크흡….”
한태수가 갑자기 입을 틀어막기 시작했다.
시모어 파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선 그의 눈치를 살폈다.
아니, 이렇게 대놓고 감격할 줄은 몰랐는데.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네가… 드디어 정신을 차린 거냐.”
덥썩.
급기야 내 팔을 붙들고 오열한다.
“11등도 모자라… 3등… 3등을… 네가….”
대체 한시하 이 녀석은 어떤 인생을 살아온 걸까.
진지하게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시하야, 크흡….”
“네?”
뿌리치려다가 다시 덥썩 잡혀 버렸다.
“흐어어억… 시하야.”
“아, 넵.”
“네가 이제라도 철이 들어서… 굉장히 뿌듯하구나… 크흡.”
다 좋은데.
아니, 아저씨. 우리 아버지 아니세요.
* * *
그 뒤로 한태수의 태도는 180도 바뀌었다.
대놓고 무시하던 하인들도 이젠 찍소리도 못한 채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더 이상 가문의 버려진 자식이 아닌, 금의환향한 유일의 적자 정도 되려나.
한시혁의 말은 옳았다.
이번 방학에는 반드시 가문에 돌아가야 했다.
몇 수 앞을 내다본 거야, 그 인간.
하인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문을 두드렸다.
“도련님, 식사 준비되었습니다.”
와아.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온갖 진수성찬이 가득한 상이 눈에 들어온다.
“앉아.”
“넵.”
와중에 시모어 파커는 열심히 한태수의 눈치를 보고 있었지만, 적어도 내 한정으로는 눈치를 줄 인간이 없었다.
기지개를 켜며 포크를 집어 들었다.
“자아, 먹어 볼까?”
와, 죽여준다.
맨날 맛대가리 없는 아르델 아카데미의 급식만 먹다가 금가루가 뿌려져 있는 고급 스테이크를 입에 넣자니 눈물이 고일 지경이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는 스테이크, 바삭하게 구워진 감자튀김. 과일을 갈아 만든 에이드까지.
만족스러운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한태수가 헛기침을 하며 물었다.
어제의 싸늘한 시선은 온데간데없었다.
“따로 배우고 싶은 것이 있더냐.”
“우음… 승마?”
우물우물.
스테이크를 먹으며 대답하자, 한태수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말을 한 열 필 준비해 두지.”
“감사합니다.”
“따로 갖고 싶은 것은?”
“글쎄요.”
고개를 갸우뚱하며 대답하던 중, 머릿속에서 퍼뜩 생각이 스쳤다.
한시하의 저택. 생각해 보니 쓸 만한 게 있었던 거 같은데.
끄응.
생각을 되짚으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보석….”
아니, 그걸 내줄 리가 없지.
“뭐?”
“아닙니다.”
싱긋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오늘 밤,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 * *
달빛이 마당 아래를 비추는 새벽.
시모어 파커는 창밖을 내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말 그대로 갈 곳이 없어서 따라왔다.
은근한 구박을 받고 있는 중이긴 하지만 누구나 부러워할 저택에서 누구나 부러워할 식사를 하며 편히 지내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이 공허한 것은 어찌할 수 없었다.
달빛마저도 서늘하게 느껴졌다.
너무도 다른 가문의 모습. 거기서 느낀 묘한 자격지심 때문이었다.
“후우.”
아르델 아카데미에서 한시하가 가문의 버려진 자식이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시모어는 그가 자신과 비슷한 처지라고 생각했었다.
헌데, 직접 와서 본 가문의 모습은 달랐다.
‘진짜 버려진 자식은 나겠지.’
시모어는 확신했다.
만일, 지하 감옥에서 나오지 못했더라면.
아니, 그 전에 한시하가 전해 준 편지가 아니었다면 시모어는 가문으로부터 완전히 버려졌을 것이다.
지금은 가문의 자식이라는 명분 아래 부족하게나마 지원을 받고는 있지만, 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문의 흠이 된다면 그것이 누구든 가차 없이 내버린다.
선례는 그의 첫째 누나였다. 가문과 맞지 않는 남자를 구해 왔고, 그 결과 버려졌다.
가문에 발을 들이는 순간, 죽여도 좋다는 명령이 떨어졌다. 실제로 몇 번 암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가문의 흠을 완전히 지워 버리기 위해.
‘그깟 가문이 뭐라고.’
그 남자는 아르델 제국의 감시를 받으며 쫓기는 자라고 들었다.
그의 가문이 가장 싫어할 유형의 인간.
만일 자신도 같은 길을 걸었다면 비슷한 결과를 맞이하지 않았을까.
시모어는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그때였다.
우당탕탕.
음?
“뭐야?”
시모어는 인상을 찌푸리며 커튼을 확 쳐 버렸다.
그러곤 이내 제 눈을 의심하고 말았다.
“으아악… 잡아줘.”
대롱대롱.
한시하가 창문틀을 간신히 잡은 채 매달려 있었다.
시모어는 되묻기 전에 한시하를 오른손으로 잡아챘다. 더 매달려 있다가는 정말 떨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으어억!”
쾅.
한시하는 시모어가 열어 둔 창문으로 굴러떨어졌다.
시모어는 황당하다는 듯 밖을 내다보았다.
대체 어디서 날아온 거야?
아니, 그보다.
“이 시각에 뭔 짓을 하고 다니는 거야?”
“털 게 있어서. 본 김에 같이 가자.”
“뭐?”
이 미친놈은 뭘까.
시모어는 나직이 감탄을 터트렸다. 살다 살다 제 집을 터는 인간이 어디 있다고.
시모어는 격하게 손사래를 쳤다.
“걸릴 짓은 안 한다. 먹여 주고 재워 주는데 쫓겨날 일 있어?”
“먹여 주고 재워 주는 건 날 텐데.”
“….”
“이참에 쫓겨나쉴?”
망할.
뻔뻔한 녀석의 한마디에 시모어는 차마 받아칠 수가 없었다.
한시하는 생글거리며 밧줄을 다시 창문에 걸었다.
“같이 갈래? 10프로 떼 준다.”
“야, 잠깐만!”
가문의 창고, 한시하가 알고 있는 비밀금고에는 각종 비급들뿐만 아니라 그가 탐내고 있는 보석이 있었다.
치렁치렁 달고 다니기 위한 보석은 아니고, 소환수들의 마력을 응축해 둔 소환석이었다.
부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몬스터에게 먹이면 보석에 걸맞은 특성을 얻을 수 있는 물건.
원작에서도 많이 쓰이던 아이템 중 하나다.
문제가 있다면 그 희소성, 그리고 현 시점에선 그 보석이 불법이라는 것.
몬스터를 갈아 넣어 만든 것이다 보니 몬스터환경보호협회에서 반대하는 바람에, 원래는 잘 유통되던 것이 까다로워졌다.
마음 같아서는 당당하게 요구하고 싶었지만 애당초 그것의 습득 경로 자체가 그다지 떳떳하지 못한 전리품인 데다가, 비밀 금고의 존재 유무도 모르는 한시하가 당당히 그걸 요구했다간 괜한 의심을 살 수 있었다.
물론, 여기서 걸리면 더한 의심을 사겠지만.
“안 걸릴 자신 있어.”
한시하는 싱긋 웃으며 분수대가 있는 쪽으로 기어갔다.
시모어는 제 머리를 쥐어박으며 한시하를 따라갔다.
퍽. 퍽.
이건 진짜 미친 짓이다.
“지금이라도 돌아가는 건 어때…?”
“내가 열 거라고는 생각도 못할걸.”
해맑게 웃는 한시하를 보니, 시모어의 머릿속에서는 감격에 차 울던 한태수의 얼굴이 겹쳐졌다.
그… 아버님.
기특해하시던 댁의 자식이 집안 금고를 털고 있어요.
‘진짜 알려 주고 싶네.’
시모어는 울상이 된 얼굴로 한시하를 돌아보았다.
한시하는 침을 삼키며 나직이 주문을 읊고 있었다.
잘 되지 않는지 몇 번 시도하던 한시하가 시모어의 옆구리를 툭툭 쳤다.
“열어 봐.”
“너 진짜 짜증 나는 거 알지.”
“알면서 따라왔잖아.”
제기랄.
애당초 결계를 여는 데 자신이 능숙하다는 사실을 알고 끌고 온 것이 분명했다.
제 머리꼭대기에서 열심히 뛰놀고 있는 한시하를 돌아보며 시모어는 지팡이를 들었다.
“한 번에 간다.”
파아앗-.
검은빛이 퍼졌다가 금세 사그라졌다.
그와 동시에.
딸깍.
분수대 아랫부분이 열렸다.
개미굴처럼 작은 문이 그 자리에 있었다.
“아, 기가 막히게 털어 보자고.”
한시하는 기지개를 켜며 느긋하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