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8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87화(8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87화
사람 한 명 발 디딜 틈도 없이 좁은 복도가 이어졌다.
한시하는 발소리를 죽이며 안으로 들어갔다.
“라이트.”
지팡이 끝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조금이나마 시야가 확보됐다.
여길 알아냈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었다.
시모어는 연신 입을 벌리고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인들은 이쪽을 아예 모를 거야. 아버지 외엔 올 사람도 없어.”
“그래 보이긴 하네.”
가문의 중요한 물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걸 외부인에게 알려 줬을 한태수가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외부인이 아닌 내부인의 손에 들어가 있다.
한시하는 기분이 좋은지 고개를 까닥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복도는 생각보다 길지 않았다.
벌써 굳게 닫힌 철문이 한시하의 눈에 들어왔다.
“근데 진짜 양심에 안 찔리냐?”
한시하는 시모어를 빤히 돌아보았다.
이보다 더한 짓도 한 놈 입에서 양심이라는 소리가 나올 줄이야.
시모어는 스스로도 찔렸는지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피했다.
“어차피 내 건데 뭐.”
“네… 네 거였어?”
시모어가 놀란 눈으로 묻자 한시하는 당당하게 답했다.
“30년 후쯤엔 내 거겠지.”
“….”
할 말이 없다. 와중에 맞는 소리긴 했기에 시모어는 머리를 긁적였다.
“걸릴까 봐 걱정돼서. 뭐가 사라졌는지 딱 보면 알 텐데.”
“네가 저 안을 본 적이 없으니 그 소리가 나오지.”
그게 대체 무슨 소리….
끼익.
문이 열리고.
“어?”
시모어는 두 눈을 의심했다.
“어어어?”
금화를 아무리 많이 줘도 구하기 힘든 비급과 마법 스크롤이 마치 서재에 꽂힌 평범한 책들처럼 쌓여 있고, 그 뒤편에는 금뿐만 아니라 보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시모어는 제 입을 틀어막고선 호들갑을 떨었다.
“이 정도였냐? 와, 와. 진짜 미친.”
“숫자도 안 셀걸. 너무 많아서.”
이곳이 한태수의 관리 아래 유지된다는 사실은 이 상황에서 행운이었다.
세상 깐깐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한태수는 재물 관리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 편이었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불어나는 것을, 굳이 하나하나 세어 가면서 여길 관리할 성격은 아니다.
“적당히 빼 가자고.”
많이는 필요도 없다. 어차피 불법이라 밖에서 팔지 못할 물건.
한시하는 금괴 하나를 집어 시모어를 향해 던졌다.
“네 기숙사비.”
“어억!”
시모어는 감격에 찬 눈빛으로 한시하를 올려다보았다.
부담스럽다.
한시하는 눈을 피하며 구석의 보석을 살폈다.
그중 푸른 보석이 한시하의 눈에 들어왔다. 물 속성의 소환수로 만들어진 보석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프테라를 위한 것.
바실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이쪽 방향으로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딱 세 개. 한시하는 그것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다시 나갈 채비를 했다.
괜히 방을 비운 걸 들키면 둘러 댈 변명이 없다. 빨리 돌아가야 했다.
“가자.”
하지만 그때.
“…!”
저벅저벅.
들리지 말아야 할 발소리가 저편에서 들려왔다.
“어우, 문이 왜 이리 삐걱거려. 새로 달아야 하나.”
한태수가 분명했다.
여길 거의 찾지도 않는 인간이 왜 하필 지금.
미친.
금괴를 두 손으로 공손히 들고 있던 시모어 파커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미친, 아니 미친.”
한시하는 몰라도 자신이 걸리면 뒤질 게 뻔했다.
“야, 안 온다며.”
“어, 어. 왜 오지….”
“지금 그렇게 멍하니 있을 때냐?”
그건 맞다.
한시하는 이를 악물고선 나무 상자 뒤로 몸을 숨겼다.
복도에서부터 좁아터진 금고이긴 했지만, 그래도 이쪽은 공간이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여전히 버둥대고 있는 시모어를 다급히 낚아챘다.
“으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온 한태수가 금괴를 뒤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시하는 입을 틀어막고선 최대한 몸을 구겨앉았다. 여기서 한태수가 눈치채고 탐지 마법을 쓰기라도 하면 끝이다.
‘버티기만 하면 돼.’
솔직히 여기에 도둑이 들었을 거란 생각을 누가 하겠냐고.
사실 한태수의 금고가 원작에서 알려지는 순간도 한시하가 죽고 난 후, 이한이 복수를 위해 필요한 비급들을 몰래 빼내려 왔을 때였다.
“뭐지?”
한태수의 한마디에 심장이 덜컥 멈출 뻔했다.
시모어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선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으려 애를 썼다.
‘내가 왜 이 고생을.’
차라리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게 정신 건강엔 훨씬 낫지 않았을까?
한태수는 금괴 앞을 잠시 서성였다.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닥 달가운 상황은 아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모아놨군.”
이런 시발.
자기 재산에 감탄하는 거였냐.
“말 열 필이면 이 정도면 되겠지.”
한태수는 금괴 몇 개를 꺼내고는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돌아섰다.
살짝 열린 철문을 보고서는 말을 더하기까지 했다.
“문을 바꿔야겠어. 자꾸 열리는구만.”
“….”
그렇게 한태수가 저택으로 돌아간 지 10분이 지나서야, 한시하는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후하… 후하….”
“뒈질 뻔했다고. 너도 알지.”
“나는 안 죽었을걸. 죽는 건 너만이겠지.”
“…나쁜 새끼.”
중간에 숨을 어찌나 열심히 참았는지 그대로 골로 갈 뻔했다.
시모어는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들고선 다시 한시하의 손에 금괴를 건네주었다.
“야, 너 가져라.”
“왜? 네 기숙사비인데.”
“기숙사비가 모가지보다 중요하진 않은 거 같아.”
“진심으로?”
“…나가서 받을게.”
한시하는 피식 웃으며 금괴 역시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몇 개 더 챙겨 가고 싶긴 했으나….
“돈은 달라고 하면 주겠지.”
이제 돈에는 연연할 필요가 없었다.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만.
한시하와 시모어는 신속하게 금고를 빠져나왔다.
* * *
[프테라의 알(A급)]-프테라를 100프로의 확률로 반드시 부화시킨다.
부화율 99/100퍼센트
다음 날 아침.
쾅쾅쾅.
한시하는 상태창을 내려다보며 보석을 열심히 빻고 있었다.
“아, 이거 잘 안 되네.”
아델라가 있었으면 단번에 박살 냈을 것을, 그쪽 마법은 잘 모르는 터라 별 수 없다.
마법으로 잘게 쪼갠 뒤 작은 조각들은 직접 빻는 쪽을 택했다.
생각보다 많이 딱딱하진 않았다. 금세 가루를 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생후 2주 안에만 먹이면 되니까, 뭐.”
먹기 좋게 잘 빻아 놓은 보석을 옆으로 치우자 바실이 두 눈을 끔뻑이며 다가왔다.
킁킁.
“너 먹는 건 아니다.”
“꾸우….”
문제는 부화인데. 이제 정말 깨어날 때가 되었다.
온도와 습도, 주변 환경까지 알을 위해 완벽히 세팅해 두었으니 몇 시간 내로 분명 깨어날 것이었다.
프테라의 알이 A등급 취급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레드 드래곤인 바실에 비해서는 전투력이 약한 편이기는 하나, 운송 수단으로 유용할 뿐더러 한 번 길들이고 나면 그 충성심이 따라올 만한 몬스터가 없었다.
다만 테이밍이 드래곤보다도 어렵다는 것.
한시하는 마지막으로 테이밍학 교재를 빠르게 훑으며 녀석의 부화를 준비했다.
생각보다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았다.
“갓 태어난 프테라의 경우 테이밍에 1주에서 2주 사이의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이렇게 오래 걸린다고?
“길들이지 않은 프테라는 다소 파괴적인 성향을 가질 수 있다, 이것도 쉽지 않네.”
“꾸우!”
한시하는 책을 덮으며 알을 내려다보았다.
미세하게 금이 간 상태에, 지난주에 비해 훨씬 누렇게 변한 알.
부화를 얼마 남기지 않았다는 것을 대충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쾅쾅쾅.
보석이나 마저 빻기로 했다.
가루가 될 지경으로 보석을 내리치던 순간. 한시하는 이상함을 감지했다.
흔들-.
“음?”
‘내가 흔든 건 아닌 거 같은데.’
흔들흔들-.
책상이 통째로 흔들린 것이 분명했다.
한시하는 벌떡 고개를 들었다.
어라?
그 순간.
빠각-.
알껍데기가 청명한 소리를 내며 바스러졌다.
* * *
같은 시각, 1층.
한태수는 여느 때와 같은 대외용 미소를 머금은 채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한태수의 저택에는 다섯 명의 백작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오랜만의 모임이었다.
“요즘 아르델 아카데미는 좀 어떻습니까?”
“2학년들이 잘 해내고 있다는 소리는 돌더군요.”
“제 자식놈이 3학년인데,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허허.”
“아르델의 미래가 밝군요.”
저마다 지위도 달랐다.
아르델 아카데미가 아닌 다른 소규모 아카데미의 교수 출신도 있었고, 그냥 물려받은 영지에서 호의호식하는 이도 있었고, 마법부의 임원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대다수는 아르델에서 내로라하는 귀족 출신들이었다.
한태수는 손수건을 빳빳하게 펼치고선 입을 닦았다.
카론 백작이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은근히 물어 왔다.
“한시하, 그 녀석은 요즘 어찌 지냅니까?”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저자는 분명 묘한 자격지심이 있다.
가문의 규모도 재산도 한태수에 비해 한참 모자라니, 자랑할 거리라고는 이번에 마법부에 들어간 제 자식밖에 없을 터.
그래서인지 유독 한시하에게 관심이 많았다.
낙제 위기에 처했을 때는 어쩌냐면서 위로하는 척 말을 꺼냈으나, 그 뒤편에 느껴지는 은근한 고소함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다른 백작이 카론에게 눈치를 주었다.
“아이, 참. 왜 그 녀석 얘기를 여기서.”
“별 소리 없는 거 보니 아직 학교는 잘 다니고 있는 모양입니다?”
“시혁이는 마법부에 잘 나가나 보던데.”
“그만한 예언가가 이 시대가 없지.”
“제 형의 재능에 반만 닮았어도 좋았을 것을.”
예전 같았으면 애써 대답을 피했을 한태수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었다.
한태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운을 뗐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 철 든 거 같더군요.”
“예?”
“…그 녀석이?”
한태수는 능청스럽게 말을 이어 갔다.
“얼마 전에 마법부 행사인가, 거기서 우승을 했다고 그러던데. 하긴 중요한 대회는 아니니 이제 더 열심히 해야겠죠.”
“마법부 행사를…?”
카론 백작의 얼굴이 싸늘히 식었다.
제 자식이 마법부 임원이라 알고 있지만, 애당초 마법부 행사는 아무나 참여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이 자식은 나에게 왜 이런 말을 안 했지?’
이번 아르델 아카데미의 경우 각 학년당 세 명만 행사에 참여시켰다고 들었는데.
툭.
카론 백작은 저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떨구고 말았다.
“그 안에… 시하가 들었습니까?”
“하하, 3등을 했다고 했나. 기말 평가는 더 잘 봤다던데.”
“3등…?”
“2학년에서?”
다른 학년도 아니고, 죽음의 학년이라도 불리는 2학년이다.
이한과 아델라, 솔리아. 이 세 사람이 상위권을 나눠먹는 그 2학년.
그중 한 명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을 정도의 실력이라면, 다른 학년에서는 1등을 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 망나니 자식이?”
몇몇 백작은 한태수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잊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그만치 충격적인 일이었다.
한태수의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몰랐는데 요새는 뒤늦게 훌쩍 느는 녀석들도 많이 있답니다. 특히나 시하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마력을 타고났었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적성에 안 맞는 것만 시켜서….”
그 순간이었다.
쾅.
“으음?”
한태수는 자식 자랑을 늘어놓다가 잠시 멈칫했다.
다른 백작들 역시 두 눈을 크게 뜨고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쨍그랑.
“으아아악!”
2층 창문이 박살 나는 소리.
한태수의 미소가 다시 차갑게 식었다.
“…뭔 짓거리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