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Tamer of the Academy RAW novel - Chapter (97)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97화(97/252)
아카데미의 천재 테이머 97화
아마 이맘때쯤이었을 것이다.
마법부의 대대적인 논문 검열.
위에서 한 자리 꿰차고 계신 분이 허위 논문으로 교수직을 차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바람에 아르델 제국이 뒤집힌 뒤로 벌어진 조치였다.
필요 없는 연구여서 철퇴, 영양가가 없어서 철퇴.
어마어마하게 빡센 수준으로 논문을 빠꾸 먹이는 중이었다.
때문에 아르델 아카데미의 교수들도 날이 선 상태였으니, 한시혁이 그걸 피해갈 리가 없다.
한시혁은 뛰어난 예언가의 자질을 타고났으나 아르델 아카데미를 중퇴한 터라 이론적 기초가 매우 약했다.
그건 한시혁이 서자여서일 수도 있고, 본인 자체가 큰 관심이 없어서일지도 모른다.
그 내막까지야 자세히 모르겠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한시혁의 연구가 마법부의 마음에 들 수준은 아니었다는 거지.
그는 이론보다는 직관에 강한 편이니.
“…네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냥 찔러본 건데.”
한시혁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
거기에 생글거리며 말을 얹어 줬다. 대충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소리였다.
“설마 진짜야? 지원금도 다 끊긴 거고?”
“말,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말 같지도 않은 소리치곤 조금 신빙성 있기는 한데. 오늘따라 왠지 주머니가 가벼워 보여서.”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냐. 형편없는 연구주제에 형편없는 추측까지. 비약이 상당히 심한 편이었군.”
한시혁이 부들대며 고개를 돌렸다.
아직까진 본인의 위엄을 지키고 싶은 모양인데 이미 표정만 봐도 말려들었다. 거기에 묵직한 돌직구를 던져 주었다.
“여기는 대체 왜 온 거야?”
“내가 아르델 아카데미에 오는 것까지 네 녀석의 허락을 받아야 하나?”
아니, 그런 건 아닌데.
“설마 공동논문이라도 올리려고 괜찮은 교수 찾으러 온 건 아니겠지?”
“…!”
“에이, 서얼마.”
그냥 던진 건데 이것도 맞았네.
실전에 강한 한시혁이니 비슷한 처지의 교수 한 명을 붙들어 설득하려고 아르델을 찾은 거겠지.
어쩐지 이 시기에 여길 올 일이 없었을 텐데 왜 얼굴을 들이밀었나 했다.
“크흡.”
윤하을은 내 예상이 맞았음을 직감했는지 억지로 웃음을 삼켰다.
한시혁은 붉어지다 못해 달아오를 듯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상당히 빡친 모양이다. 단언컨대 저 인간이 예언가가 아니라 마법사였으면 이 자리에서 나를 날려 버렸을 것이다.
아, 그래서 어쩌라고.
어차피 마력 유전자는 내게 몰빵된 것을.
“이 자식이 진짜….”
“공동논문, 파이팅하시고. 그렇게 얍삽한 수여도 통과할 수만 있다면야.”
“야!”
참다못한 한시혁이 내 목덜미를 낚아채려던 순간.
어?
타이밍 좋게 에른스트 교수가 복도 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자연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그쪽으로 향했다.
“야… 야!”
“어우, 교수님.”
“…?”
“이번 연구 준비는 잘 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 발표대회에 나간다던 그건가?”
“네. 제가 반드시 대상을 타서 오도록 하겠습니다, 교수님. 항상 신경 써 주신 덕분입니다.”
고개를 돌려보니 졸지에 투명인간이 되어 버린 한시혁이 그 자리에서 부들대고 있었다.
저 앞에선 웃으면서 엿 먹이는 녀석이 교수에겐 생글거리고 있는 게 심적인 충격으로 다가온 모양이다.
신기해 보일런지 모르겠지만 이거 대학원생들이라면 다 가지고 있는 패시브 스킬이라고.
“이… 이 무슨….”
늘 근엄하다 싶을 정도로 낮게 깔려 있던 눈빛이 빠르게 요동치고 있었다.
흔들-.
한층 약을 올리기 위해 그런 한시혁을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
까득.
이를 악무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효과 좋네.
마지막까지 한시혁에 시선을 고정한 채.
쾅. 눈앞에서 문을 닫아 버렸다.
* * *
에른스트 교수는 문이 닫히자마자 흥미로운 눈길로 물어 왔다.
기껏해야 이번에 나가는 발표 대회의 연구 주제나 연구실의 근황 정도를 물어볼 줄 알았는데, 예상한 것과는 전혀 다른 류의 질문이었다.
“네 친형인가?”
굳이 말을 더하지 않아도 한시혁을 지칭하는 거겠지.
벌써 아르델 아카데미에도 소문이 돌았나 보군. 애당초 숨기는 게 말이 되지 않았다.
마법부 산하 직원이 되어 허구한 날 아르델 아카데미를 왔다 갔다 하는데, 이렇게 좁은 바닥에서 소문이 나지 않을 리가.
아마 한시혁이 서자 출신인 것도 소문이 쫙 나지 않았을까 싶었다.
마법부의 직원을 누가 건드리겠냐 싶지만, 글쎄다.
교수진들 중에서 귀족 출신인 몇몇은 분명 은근히 무시하려 들 터였다.
험난한 연구가 예상되는군. 뭐, 내 일은 아니지만.
“네, 그렇습니다.”
숨길 일도 아니었다.
에른스트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혀를 찼다.
“대충 짐작은 가는군.”
제법 유치하게 싸우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본 모양.
에른스트 교수는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형제란 무엇인지 아느냐.”
“예?”
갑자기?
진짜 갑작스러운 질문이다.
심지어 저 인간은 내 친형도 아니다. 나는 위아래로 형제가 없는 인간이라고.
교수는 교수인지 저 한심한 꼬라지가 차마 눈으로 볼 수 없었나 보다.
그래도 오늘은 그렇게 진흙탕처럼 치고 박고 싸우지는 않았는데.
지난번에 내가 한시혁을 개 패듯이 패던 광경을 보면 어떤 말이 나올지 심히 궁금해진다.
여튼 앞으로는 치고받고 싸우지 말고 화해하란 소리라도 하고 싶은 걸까.
에른스트 교수의 말이 나오기 전에 선수를 쳤다.
“네, 앞으로는 보는 시선도 있으니 주의를….”
근데, 이 교수 왜 이리 눈빛이 살벌해?
“형제란 말이다.”
에른스트 교수는 내 말도 끊고선 두 손으로 깍지를 끼었다.
그리고,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반드시… 이겨 먹어야 하는 것이다.”
아, 맞다. 이 인간.
그린트 교수랑 더럽게 사이 안 좋았지.
* * *
“그 얘기는 이 정도면 된 것 같군.”
“아.”
다행히 한시혁을 이겨 먹을 만한 특별한 루트를 알려 주진 않았다.
그저 그 말 한마디를 뱉고선 말을 아낄 뿐이었다.
그래, 솔직히 교육자가 할 소리는 아니잖아.
중학생인 애를 상대로 형을 반드시 이겨 먹으라고 가르치다니.
이거 보면 이 집안도 그린트 교수가 아니라 에른스트 교수의 성질머리 때문에 개판이 난 것이 아닐까.
가만 보면 그린트 교수가 먼저 도발할 스타일도 아닌데 말이지.
이건 합리적 의심이다.
에른스트 교수는 헛기침을 하며 말을 돌렸다.
“야영회 준비는 잘 되어 가나? 다음 주라고 들었는데.”
인자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 보니 야영회가 있었다.
에른스트 교수의 연구실에서 갈려 나가느라 저 중요한 행사를 까먹을 뻔했다.
아르델 아카데미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2학기 행사.
바로 윗 학년과 함께 아르델 제국 외곽에서 야영회를 다녀오는 프로그램이었다.
쉽게 말해서 MT나 수학여행 비슷한 거긴 한데, 거기에 평가 제도를 조금 곁들였다고 해야 할까.
야영회에 가서 주어지는 미션들을 수행하고, 그 수행률을 바탕으로 바로 윗 학년인 3학년이 평가를 한다.
그걸 종합해서 가산점을 주는데, 비중이 상당히 큰 편이라 무시할 수가 없었다.
주제는 보통 무사 생존.
험한 아르델의 외곽에서 조를 짜서 내던지고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이다.
이것도 조별 평가의 일종인데 특이한 점은 일정량의 식량을 3학년에게 공물로 바쳐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들은 먹을 거 다 챙겨 가면서도 굶어가는 애들 밥을 뺏고 싶단다.
누구 대가리에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참으로 상큼한 생각이었다.
아무튼 선배들은 가만히 앉아서 편안하게 며칠을 떵떵거리면 되고 2학년들은 신나게 갈려 나가면 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나는 올해 2학년으로서 야영회에서 갈려 나가는 역할이다.
이러한 내막들까진 알 리 없는 에른스트 교수는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말을 뱉었다.
“두 학년이 함께 교류할 기회가 많지 않았을 텐데, 이번 야영회를 통해 협동할 수 있지 않겠나.”
“그럼요.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교수님.”
협동이 아니라 착취일걸요.
“굉장히 좋은 기회가 될 거라 생각하고, 기왕 나가는 김에 좋은 성적을 기대하고 있겠네.”
“한 번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라며 기분만 팍 식을 부담감을 안겨 주나 싶었는데.
에른스트 교수가 다음으로 뱉은 말은 당황스러울 정도로 섬세했다.
“아르델의 외곽 지형이면 물이 상당히 부족할 거다. 오른편은 사막이야. 그러니 기왕이면 야영회가 시작하자마자 왼쪽에 자리를 잡는 게 좋을 터다.”
원작에서 본 기억이 있는 설정이지만 당연히 세부적으론 기억하지 못했다. 도움이 되는 얘기다.
두 눈을 반짝이며 에른스트 교수의 말을 주워들었다.
선배들과 친한 몇몇의 학생들을 제외하곤 아마 야영회의 장소가 될 아르델 외곽의 지형까지 꿰차고 있는 학생은 거의 없을 터였다.
그런데 열정이 넘치는 에른스트 교수는 굳이 안 해도 될 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생존에 가장 필요한 건 불이다. 기왕이면 불과 물 특성의 마법사는 가까이 두….”
“바실이가 있습니다.”
“아.”
“클로스티도 있습니다.”
“혼자서 다 해먹겠구나.”
“그렇습니다, 교수님.”
그밖에도 조를 짤 때의 조언들이 이어졌다.
대강은 원작에서 알고 있던 정보들에 불과했으나 한 번 더 상기시키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감사합니다.”
충분히 도움이 됐다.
* * *
야영회 당일.
우리는 아르델 제국의 외곽, 야영회의 단골장소 케이샤 평원에 다다랐다.
왼편으로는 에른스트 교수가 말했던 대로 우거진 숲이 있을 터고, 오른편은 평원이 있다. 저 평원에서 조금만 더 나가면 사막이 있는 게 함정이지만.
물론 오늘부터 바로 저 야생에 던져지지는 않는다.
오늘은 본격적인 평가를 시작하기 전, 단체 합숙 날이다.
단체 합숙 날이라 칭하고, 꼰대들의 설명회라 할 수 있겠다.
3학년들이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날카롭게 외쳤다.
“야, 가운데로 모이라고!”
교수들이 참석하지 않는 학생들만의 야영회.
물론 안전상의 이유로 교수들의 입김이 닿긴 하지만, 적어도 외관적으로는 확실히 학생들의 주도 아래 진행되는 중이었다.
그리고 이런 곳엔 늘 그렇듯 총대를 메는 꼰대가 존재하는 법이다.
“야! 다들 똑바로 안 서?”
어찌나 소리가 컸는지 땅이 울릴 지경이었다.
2학년들은 단체로 겁먹은 얼굴로 멈춰 섰다.
아까 전까지 뒤편에서 시시덕거리던 눈치 없는 애들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얼굴은 당연히 모르지만 하는 행동만 보고도 대강 감이 왔다.
3학년들의 중앙에 서서 벌써부터 성질을 내고 있는 건 카산.
3학년 마법과의 학년장이자 마력 파동 계열의 마법사였다. 마력을 이용해 발성을 키운 모양이다.
무슨 셀프 확성기냐고.
바실이 놀랐잖아.
“꾸우! 시끄로!”
바실이 버둥대며 몸을 부풀렸다.
분노에 차 뛰쳐나가려는 녀석을 간신히 붙들었다.
제발 여기서 사고치지 말자.
“점수 까이기 싫으면 말 잘 들으라고, 새끼들아.”
“…네에.”
사실 2학년들이 대부분인 원작에서 내가 카산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어지간히도 야영회에서 후배들을 갈구다가 이한에게 탈탈 털리는 설정이었거든.
굳이 따지자면 나, 아니 원래의 한시하와 비슷한 과다.
개연성도 없이 괜히 혼자 화가 나 가지고 발악하는 일회성 악역.
근데 생각보다 저런 인간들이 현실에도 많다는 게 문제지만.
까다로운 상대는 아니었지만 짜증나는 성격이긴 하다.
행동에서 묻어 나오는 권위의식에 제 성격대로 일단 내지르고 보는 기분파.
하필 오늘은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자격지심의 영향이 있겠지만.
아르델 아카데미의 3학년은 2학년들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접점도 별로 없는데 싫어할 이유가 있다고? 싶겠지만, 자격지심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렬한 감정이다.
슬카데미의 각종 주연들이 분포하고 있는 2학년에는 아르델 아카데미의 전체 학년을 통틀어 우수한 인재들이 많이 모여 있고, 상대적으로 3학년들은 그와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저들이 계속 자격지심에 차서 날을 벼르던 게 바로 오늘일 것이다.
카산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을 이어 갔다.
“이 정도로 태도가 엉망일 줄은 몰랐네. 다들 정신을 어디다 팔아먹었어? 당장 내일이 생존식 시작 날짜 아닌가? 이래서는 평가를 할 수도 없을 거 같은데.”
야영장에 침묵이 감돈다.
카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하… 라떼는. 이렇게 개판인 새끼들은 당장 짐 싸서 보냈는데.”
저, 저게 열여섯의 대사냐.
“거기 뒤에! 아까 전부터 쳐떠들어 대던 새끼들. 나 때는 너 같은 새끼들 뼈도 못 추렸어.”
야, 이 자식아. 네 나이에서 라떼를 따지려면 최소한 정자 시절로는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거 아니냐.
네가 태어나고 나서 강산이 아직 두 번도 안 바뀌었는데 무슨 라떼야.
하, 미치겠다.
내 인생은 왜 열여섯의 라떼 시절 얘기를 들어 줘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는가.
이건 뭐 화나지도 않고 같잖아서 어이가 없다.
“어어, 정신머리부터 다들 틀려먹어가지고. 야, 듣고 있냐고!”
“네에에!”
내 표정이 썩어들어 가는 게 보였는지 카산의 살벌한 시선이 내 쪽을 향했다.
“너는 아까부터 뭘 쳐다봐, 새끼야. 야, 꼽냐?”
“네.”
아, 순간 본심이 튀어나와 버렸다.
싸늘해진 공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다급히 말을 더했다.
아.
“아주 조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