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39)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39화(139/200)
#139화. 포섭. 10
계약을 마친 우진은 우리 엔지니어링을 빠져나와 차에 올라탔다.
물론 이혜림이 준비해 준 차였다.
우진은 다음 방문할 회사를 떠올리며 주차장을 미끄러지듯이 빠져나왔다.
서류가방 속에 이혜림이 건네준 회사들의 목록이 있었지만, 재차 확인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우진은 회사들을 추리고 또 추렸다.
지잉-
차창을 연 우진은 바람을 느끼려는 듯 왼손을 밖으로 뻗었다.
달리는 속도가 올라감에 따라 불어오는 바람의 질량이 느껴지는 듯했다.
어느새 속도가 시속 55km가 넘어가면서 약 84.65[N/m^2]의 압력이 손에 닿아 느껴졌고, 우진은 바람을 어린아이 쓰다듬듯이 어루만졌다.
입가가 가느다랗게 올라가 있는 우진은 중얼거렸다.
“날씨가, 좋네.”
하늘이 시리도록 푸르고 멀리 보이는 새떼들은 우진을 도심 속으로 안내하듯 훨훨 날아가고 있었다.
오늘 할 일이 아주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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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다섯 시 삼십 분.
우진은 차 안에서 바늘을 꺼내고 있었다.
그리고 남색 실을 꿰어 슈트 어깨 라인에 바느질을 시작했다.
그렇게 마치 실밥이 살짝 튀어나온 듯 마무리를 지었다.
눈여겨보지 않는다면 찾아내기 힘들 정도로 연출했다.
그리고 백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번엔 다른 가면을.”
이윽고 슈트를 걸친 우진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그렇게 찾아간 곳은 레스토랑이었다.
종업원으로 위장해 이혜림의 언니 오빠를 관찰했던 곳이기도 했다.
우진이 들어오는 모습에 직원이 다가왔다.
“오셨습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우진은 그에게 메뉴판을 건네받았다.
또 한 번 직원 행세를 하려는 것이었다.
레스토랑의 사장이 가게 이미지를 생각해 반대할 수도 있었지만, 상대가 이혜림이었다.
그녀의 돈과 위치는 사장의 영혼까지 사버리고도 남았다.
우진은 메뉴판을 들고 곧장 룸으로 향했다.
“실례하겠습니다.”
우진의 목소리에 제일 먼저 이시영의 고개를 힐끗 돌아갔다.
이 레스토랑을 몇 번째나 방문하고 있었지만, 몇 번을 예약해도 이 직원의 모습을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다.
다른 직원에게 무관심한 척 물어봤을땐, 휴가라는 말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다시 출근했다는 건, 휴가가 끝났다는 뜻과도 같았다.
그 때 친구들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시영아, 요환이 오빠 풀려났다며? 다행이다.”
또 다른 친구가 그녀의 말을 받았다.
“왜 아니겠니? 솔직히 말해서 한 번 실수할 수도 있는 거지. 재벌들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것 같다니까?
신화그룹이 매년 내는 세금이 얼마야?
세금으로 나라 굴리면서 도와주지는 못할 망정.”
이시영이 그들의 말을 끊었다.
“됐고. 주문이나 해.”
친구 하나가 메뉴판을 넘기며 말했다.
“여기 괜찮은 메뉴는 다 먹어 본 것 같은데.”
이시영과 함께 일주일에 3번이나 다녀 갔었다.
이시영이 답했다.
“난 청담동보다 깔끔하고 좋은 것 같은데.”
친구들이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래.”
그때 메뉴판을 바라보던 친구 하나가 고개를 들어 그제야 우진을 올려다봤다.
“여기……”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이런 곳에 웬 연예인이 있나 싶었다.
자신을 지그시 응시하는 눈빛이 마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할 뱀파이어 같은 느낌이……
“세프 추천 코스로 부탁해요.”
이시영의 목소리에 우진이 살짝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우진이 사라지자 우진이 사라진 곳을 응시하고 있던 그녀가 말했다.
“졔 뭐야? 왜 저렇게 잘생겼어?”
다른 친구가 장난스럽게 말하며 지갑에서 수표 한 장을 꺼내 테이블에 올려놨다.”
“내가 한번 꼬셔 볼까? 한 일주일 동안 데리고 놀게.”
친구들의 말에 이시영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여기가 클럽, 뭐 그런 데야?
너희 아직도 그런 도떼기시장 같은 곳에 다니니?”
친구들이 어색하게 웃음을 지었다.
“얘, 농담이야. 농담.”
“그런데 얼굴이 한정판같이 생기긴 했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가는 가운데, 시간이 조금 지나가 우진은 식전 벨루테 수프를 가져왔다.
우진은 능숙한 행동으로 세 명 앞에 내려놓으며 설명했다.
“새우와 버섯이 들어간 벨루테 수프입니다.
입안에 퍼지는 버석의 고소한 향이 일품인 수프입니다.”
그때 우진의 설명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이시영의 친구 하나가 턱을 괴며 물었다.
“혹시 연예인 하고 싶은 생각 없어요?
내가 그렇게 해 줄 수 있는데. 여기서 일할 얼굴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러는데.”
우진은 살며시 웃음 짓는 미세표정을 만들며 답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일이라…… 칭찬 감사드립니다.”
이번엔 다른 친구가 말했다.
“신입인가 봐요?”
“아닙니다. 일한 지……”
이시영은 친구들과 우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우습기도 했고 어이없기도 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신경을 건드리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건 우진의 어깨에 보이는 툭 튀어나온 실밥이었다.
“저기.”
이시영이 우진을 부르며 자신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실밥 튀어나왔네. 명품은 맞는 것 같은데.
매장이 어디에요? 거기는 거르게.”
우진은 자신의 어깨에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그녀는 시각적인 사람이라 이런 것을 놓칠 리가 없었다.
물론 관심이 없다면 지적하지 않고 넘어갔을 테지만, 우진의 입장에선 일종의 테스트를 한 셈이었다.
예상은 맞았고, 일부러 약점을 보여준 것이다.
그녀가 자신에게 친히 말로써 보완해줄 수 있도록 말이다.
“감사합니다. AS를 받아야겠네요.
다음 음식 준비해 오도록 하겠습니다.”
우진이 고개를 살짝 숙였을 때, 이시영이 다시 말했다.
“AS? 이리 와 볼래요?”
우진이 담담하게 다가가자, 이시영이 우진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러면서 친구들을 똑바로 쳐다봤다.
마치 우진에게 영역 표시를 하는 것만 같았다.
내 장난감이니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이내 그녀의 손가락이 우진의 어깨에 솟아올라 있던 실밥을 잡아 빼냈다.
“이렇게 하면 그럴 필욘 없을 것 같은데?”
우진은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순간, 이시영은 우진을 처음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니 조금 달랐다.
그의 손이 자신의 몸을 이곳저곳 거칠지만 부드럽게 훔치고 지나가 버리는 기분이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기도 한 것이 우진은 그녀가 미처 자의식으로 인지하지 못하도록 그녀의 쇄골과 목선, 그리고 입술을 두 눈에 담았기 때문이었다.
우진은 자신의 얼굴까지 이용하며 그녀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원초적 변연계의 뇌를 깨우고 있었다.
자신은 강인한 수컷이라고.
“그럼 음식 준비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진은 바로 자리에서 빠져나갔고, 친구들은 더 이상 우진의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조금 전 이시영의 행동을 알아들은 것이었다.
우진은 코스와 더불어 메인 요리까지 세팅을 해주었고, 마지막 디저트가 세팅 되었을 땐 이시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우진이 아닌 다른 직원이 왔기 때문이었다.
이시영이 바로 입을 열었다.
“여긴 이 사람 저 사람 바꿔가면서 에스코트 해주나? 정신없게?”
“죄송합니다. 직원이 퇴근 시간이기도 하고, 오늘 직원이 그만두는 날이라서……
양해 부탁드립니다. 죄송합니다.”
이시영의 미간이 더욱 모아졌다.
“그럼 애초에 다른 사람으로 들여보냈어야지 않나?”
“죄송합니다.”
이시영이 들고 있던 냅킨을 음식에 툭 던졌다.
“기본도 되지 못한 곳에선 더는 못 먹겠네. 가자.”
자리에서 일어난 이시영은 바로 하이힐 소리를 내며 또각또각 걸어갔다.
룸을 빠져나온 그녀의 시선이 이곳저곳을 훑었지만 우진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이시영이 어이없다는 듯 피식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시영,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그녀의 머릿속으로 자이가르닉 효과가 자라나고 있었다.
—————————–
레스토랑을 빠져나온 이시영은 바로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
그녀는 뒤에서 따라오는 친구들에게 말을 흘리듯 입을 열었다.
“다음에 보자.”
탁!
멋들어진 스포츠카에 올라탄 그녀는 그대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아니 건물 밖으로 빠져나오는 순간.
끼이이익!
쿵!
급브레이크를 밟았지만 늦었는지 사람이 하나가 본넷을 뒹굴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운전대를 꽉 잡고 있던 이시영은 감았던 눈을 떳다.
그리고 머리를 쓸어 올렸다.
“하……”
그녀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비틀비틀 일어나고 있는 검은 실루엣을 바라봤다.
“재수가 없으려니까……”
긴 한숨과 함께 또다시 머리를 쓸어 올린 그녀가 차창을 미세하게 열었다.
그리고 그를 보지도 않고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여기로 연락해요. 적당히 말고 넉넉하게 합의해 줄 테니까.”
그가 알아들었는지 명함을 받아들였다.
아니 차창 틈으로 문을 잡듯 길쭉한 손가락이 들어왔다.
인상을 찌푸린 이시영이 차창을 더 열었다.
“일단 병원 가고……”
그 순간.
자신이 건넸던 명함이 구겨진 채로 허벅지로 떨어졌다.
볼품없이 찌그러진 명함을 내려다보던 이시영의 시선이 그에게 돌아갔다.
“사과해.”
그녀의 눈이 살짝 커졌다.
다름 아닌 우진이었기 때문이었다.
입술이 터졌는지 선혈이 쭉 그러져 있었다.
이마에서도 피가 흐르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있자 우진은 나른한 눈으로 재차 말했다.
“말괄량이처럼 하고 싶은 대로만 하고 살아와서 사과하는 법을 모르는 건가?”
“다, 당신이 여기 왜……”
우진이 입가를 스윽 닦아냈다.
“지나가고 있었을 뿐이야. 당신이 친 거고.”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에 손을 가져갔다.
하지만 그 핸드폰을 우진이 낚아채 버렸다.
“엄마라도 부르려고? 사과해. 그럼 없던 일로 해줄께.”
이시영의 두 눈에 우진은 상당히 거칠어 보였다.
마치 하얀 설원에서 피를 뚝뚝 흘리는 늑대를 보는 것만 같았다.
상처 입었지만, 조금이라도 건드리면 당장 달려들 것 같은 그런.
“사과……”
털썩.
그런 소리와 함께 우진의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이시영은 사람들이 몰리는 형국에 차에서 내렸다.
눈을 감고 있는 그는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119, 119 좀 불러주세요!”
그녀의 목소리에 누군가가 119로 전화를 걸었다.
이시영은 떨리는 손으로 우진을 만졌다.
“이봐요. 정신 좀 차려봐요. 이봐요……”
하지만 반응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눈을 끄지를 못했다.
그렇게 시간이 조금 지나 구급대원들이 출동했다.
“보호자 되세요?”
“아, 아니요. 사고가 났는데……”
“일단 같이 타세요.”
이시영은 주변 환경에 의해 구급차에 함께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우진의 상태를 살피던 구급대원은 바로 병원으로 연락을 넣었다.
“TA환잡니다. 지금 이송 중인데 위험한 출혈은 눈에 보이지 않는데 의식이 없습니다.
복강내출혈이나 뇌출혈일 가능성도 있는 것 같은데……”
“저 좀 바꿔 주세요.”
이시영이 그의 핸드폰을 빼앗듯이 뺨에 가져가 대었다.
“이시영이라고 하는데, 이 교수님 대기하라고 전해주세요.”
구급대원은 놀란 눈으로 이시영을 쳐다봤다.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하면 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병원의 교수를 오라 마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지만 명령하듯 말한 그녀의 눈빛은, 사시나무처럼 떨리고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