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45)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45화(145/200)
#145화. 혼돈. 5
통화를 마친 우진은 기지개를 켰다.
이혜림의 입지가 수면 위로 올라올수록 가슴에 무언가가 들어차고 있는 기분이었다.
물방울이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져 갈증을 채워즈는 느낌이랄까.
각종 호르몬이 몸에 풍만하게 흐르는 그런 기분.
기지개를 켜며 호르몬을 마음껏 느끼고 있던 우진은 손을 내리고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하며 사진을 슥슥 넘기기 시작했다.
김태현이 보내 준 범행 사건의 사진들이었다.
김태현이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우진이 먼저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그렇기도 한 것이 우진이 원하는 삶은 평화로운 것이었다.
그런데 잔혹한 사건들이 자꾸 언론에 비추어지고, 여동생 보미에게까지 노출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경각심을 갖는 건 나쁘지 않지만, 본인에게 일어나지 않을 불안감을 꾸준히 주입받게 된다면, 무의식적으로 불안한 생각이 아지랑이처럼 자라날 수가 있다.
일어나지 않을 일을 상상하고, 심지어 노시보 효과(플라시보 효과의 반댓말) 같은 비슷한 현상을 겪을 수도 있게 된다.
이렇게 미디어와 언론은, 사람들을 세뇌하고 자극적으로 원시적 변연계를 건드린다.
시청률을 위해서든 조회수를 얻기 위해서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우진은 그런 영향이 보미에게 닿지 않기를 바랐다.
보미는 한창 행복하고 즐겁고, 앞으로 올라가야 할 계단이 많은데 그런 불안감은 방해 요소만 될 뿐이었다.
그럼에 있어서 잔혹한 범죄자들은 우진이 원하는 평화로운 삶이나, 여동생 보미에게도 상당히 좋지 않은 요소들이었다.
그래서 우진은 군대에서 한 가지를 머리에 새기듯 중얼거리며 다짐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들을 잡아들이기로 말이다.
“회개……”
우진은 십자가에 나체로 걸려 있는 피해자를 보며, 범인이 새긴 시그니처를 유심히 쳐다봤다.
총 4건의 살인 사건.
모두 한 명의 범죄자가 벌인 듯 ‘회개’라는 시그니처가 새겨져 있었다.
자신이 전역하기 몇 달 전 범인의 살인 행각은 멈춰졌다.
범죄 전문가들은 언론에 노출돼 냉각기에 들어갔을 거라 의견을 내놓고, 도망치듯 출국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았다.
우진으 범죄 현장 사진뿐만이 아니라 국과수에서 나온 정보까지 살폈다.
그렇다 한들 범인의 옷에서 떨어져 나온 것 같은 미세섬유와 족적이 전부였다.
우진은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사건 현장 인근에서 찍힌 CCTV의 영상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더 이상 다른 곳에서 모습이 잡히지 않고 증발하듯 사라졌다.
경찰도 유력한 용의자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당시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를 이 잡듯이 뒤져 봤지만 소득은 없었다.
우진은 처음 범행이 일어난 시점으로 다시 사진을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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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이시영은 이혜림을 만나기 위해 SH건설을 찾았다.
[상무 이혜림]이시영은 명패를 쓸어 만지며 빙긋 웃었다.
“우리 혜림이, 출세했네?”
“잠시 맡고 있는 것뿐이야. 식사는 못하겠네. 보다시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옆엔 서류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이혜림이 다시 서류에 시선을 고정하며 입을 열었다.
“우리 이렇게 살갑게 마주하고 이야기하는 사이 아니잖아. 어색해, 불편하고.
용건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이시영의 미간이 살짝 모아지며 입술은 당겨졌다.
화를 참고 있는 것이었다.
아니 그런 표정은 금방 숨겨 버리고 다시 미소를 찾았다.
“섭섭하게 그게 무슨 말이니.”
이시영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창가로 다가갔다.
“생각해 보니까, 내가 그동안 너한테 너무 무심한 것 같았어.”
“괜찮아. 계속 무심해도 돼.”
“상처도 많이 받았겠고.”
“상처는 무슨, 아프지도 않았어.”
창가를 바라보고 있던 이시영이 몸을 틀어 이혜림에게 다가갔다.
“혜림아.”
“말해.”
“나 부탁 하나만 하자. 언니로서.”
이혜림이 펜을 내려 두며 이시영을 올려다봤다.
“부탁?”
“그래.”
“앉아.”
이혜림은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소파에 앉았다.
이시영도 소파에 앉자 이혜림이 말을 꺼냈다.
“아홉살 때인가…… 언니한테 내가 부탁한 적이 있을거야. 머리 잡아당기지 말라고.”
그리고 재미삼아 머리를 잘랐다.
“부탁했어. 그만해 달라고.”
“혜림아……”
“마당에 그네를 타고 있으면 언제나 나를 밀어 떨어트렸지. 그래서 부탁했어. 한번만 타면 한 되겠냐고.”
“혜림아, 다 지난 일이잖아. 어렸을 때 철없던 행동이었고. 아직도 마음에 담아 두고 있었어?”
“아니.”
이혜림이 와이셔츠 단추를 톡톡 풀기 시작하자 이시영이 당황한 눈으로 말했다.
“너 지금 뭐 하는……”
이혜림이 한쪽 어깨를 스윽 드러냈다.
엷은 화상 자국이 보였다.
“나한테 국그릇 쏟았던 거, 기억나? 아버지한테 말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한거. 병원에 빨리 갔으면 흉은 지지 않았을텐데.”
“혜림아, 생각이 나지 않아서, 내가 정말 그랬니? 그랬다면 정말 미안해.”
옷을 다시 추스른 이혜림이 답했다.
“그냥 그렇다고. 나한테 부탁을 하러 왔다고?”
“미안하다, 미안해. 다 어렸을 적이었잖아. 철없을 때였고. 마음에 두고 있었다면 이렇게 사과할게. 언니가 정말 미안했어.”
“무슨 부탁인데?”
이혜림의 목소리가 호의적으로 변하자 이시영의 눈빛에 이채가 어렸다.
“혹시 가진 돈 좀 있니? 급하게 쓸데가 있어서. 이자 쳐서 금방 돌려줄게.”
“아버지한테 부탁드리면 되지 않아?”
“그럼 너를 찾아오지 않았지. 급해서 그래.”
“얼마나?”
“한 오백억 정도……?”
마음 같아선 더 부르고 싶었지만, 이혜림에겐 그렇게 큰돈은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오백억은 가지고 있을까?
“그 정도면 내 전 재산인데.”
그보다는 훨씬 많았다.
이요환에게서 받은 몇 호텔의 지분을 GH건설에 투자했고, 떨어지기 직전 회수해 사모펀드를 만들어 호텔의 지분을 더욱 사들였다.
돈은 순식간에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불어나 막대한 금액을 이혜림에게 안겨다 주었다.
그게 다가 아니었고, GH건설의 떨어진 주가를 이삭 줍듯이 매집하고 있었다.
“언니가 부탁 좀 하자. 이자 확실하게 쳐서 줄게.”
“언니, 그럼 이렇게 하자.”
“어떻게?”
“언니가 가지고 있는 호텔 지분을 담보로 내가 가지고 있을게. 내 전 재산이야. 빌려줄 땐 나도 리스크를 감안해야 된다고 생각해.”
이시영의 눈빛이 떨렸다.
호텔을 지분을 다 판 것은 아니었다.
최후의 보루로 0.2%, 그러니까 삼백억의 지분을 끝까지 쥐고 있었다.
“어차피 갚은 거잖아. 싫다면 내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어. 시집갈 때 혼수는 내 손으로 하고 싶어서.”
이시영이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어딜 가서 0.2%의 담보로 오백억을 땡길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힘든 일이었고.
일단 끌어 쓴 사채부터 무슨 수를 쓰든 막아야 했다.
“삼백억. 0.2%. 지분 들고 있는데, 괜찮겠니……”
이혜림이 그녀의 말을 끊듯이 입을 열었다.
“미우나 고우나 언니잖아. 대신에 꼭 갚아.”
이시영이 이혜림의 손을 꼭 잡았다.
“고맙다. 혜림아. 꼭 갚을게.”
이혜림은 바로 자신이 세운 아니, 우진의 생각으로 만든 사모펀드의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예요. 오백억 융통해야 할 것 같은데……”
물론 언니는 갚지 못할 것이다.
갚을 생각도 없을 테고.
이로써, 이요환이 가지고 있던 호텔의 지분과, 이시영이 끝끝내 들고 있던 지분도 이혜림의 손으로 들어가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이혜림의 사무실을 빠져나온 이시영은 한숨 돌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도 잠시,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며 휴대폰을 귓가로 가져갔다.
“나야. 저번에 파티에서 봤던 은행 아들 말이야. 식사 한번 하고 싶은데.”
– 응? 네가 왜? 쭉정이 같다고 했잖……
이시영은 감정을 조절하듯 두 눈을 감았다.
뚱뚱하고 관리도 하지 않는지 여드름투성이인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약속 한번 잡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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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GH건설 대표는 초조한 눈빛을 지울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돈을 꾸준히 먹여 놓았던 윗선들이 연락을 피하고 나머지는 힘들 것 같다는 말만 늘어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씨발 새끼들, 밥값도 못하는 버러지 새끼들!”
뜨끈뜨끈한 머리를 쓸어 올려봐도 방법이 나오지 않았다.
이곳저곳에서 유물이 발견되고 있는 가운데, 이대로라면 몇 년 동안 공사 중지는 당연한 것이고.
발등에 떨어진 공사 대금도 지급해 주지 못하고 있었다.
주가는 바닥을 기고 대주주들이 전화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
며칠 뒤에 열리는 이사회에서 자신의 자리가 흔들거리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똑. 똑. 똑.
“누구야!”
대표의 날카로운 목소리와 함께 실장이 조심스럽게 대표실로 들어왔다.
“알아봤어?”
실장이 힘없이 고개를 젓자, 대표가 얼굴을 가리며 손으로 벅벅 문질렀다.
낙찰된 부지를 다른 기업에게 넘기려 했었는데, 유물이 발견된 부지를 떠넘겨 받을 기업이 당연히 있을 턱이 없었다.
“저어…… 대표님. 혹시 SH건설에도 접근을 해 볼까요?”
대표의 눈살이 와락 찌푸러졌다.
경쟁사였다.
아니 전에는 그러했지만, 역전될지도 모르는 전개가 나와버렸다.
자사의 부지에선 유물이 나오고 있는데, 신도시개발의 삼분의 일의 부지를 낙찰받은 SH건설은 북치고 장구 치고 축제의 분위기가 따로 없을 것이다.
자사의 부지와 SH건설의 부지는 완전히 정반대였고, 거리도 멀어 원활하게 공사가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대표가 뚜벅뚜벅 걸어가 실장 앞에 섰다.
그리고 손가락으로 그의 어깨를 툭 툭 밀었다.
“경쟁사야. 말이 된다고 생각해?”
“이요환 대신에 새로 상무직을 맡은 이혜림의 행실이 말괄량이입니다. SH건설의 대표가 꼼짝을 못한다고 합니다.”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야! 이혜림이 살살 꼬신다고 뭐 되겠어? 이정철이가 가만히 있겠냐는 말이야!”
대표의 호통에 실장이 움찔거리면서도 말을 이었다.
“일이 이렇게 돼서 조사 좀 해봤습니다. 이혜림이 이정철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생각 없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데.
단가 좀 낮게 쳐서 간지러운 데 살살 긁어주면 덥석 물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아…… 제정신이야?”
실장은 포기하지 않고 말했다.
“대표님 곁에서 7년을 함께했습니다. 대표님이 저를 버리지 않고 옆에 계속 두신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시도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혜림을 설득한 후에 이정철이 알아차리지 못하게 계약을 성사시키면……”
“해 봐. 7년 믿음. 내 믿음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이번 기회에 증명해 봐. 그럼 자네도 이번에 사장 자리에 앉을 수 있을거야.”
실장은 깊게 허리를 숙였다.
그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저 빌어먹을 놈에게 크게 인정을 받고, 한몫 단단히 챙길 수 있는 기회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