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55)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55화(155/200)
#155화. 위로, 더 위로. 8
“도움?”
고모가 되묻고 정적이 찾아왔다.
그것도 잠시, 고모인 이정미가 자신의 허벅지를 탁 치며 거실이 떠나가도록 웃었다.
“하하하하! 얘? 도움? 네까짓게 도움을 준다고? 하하하!”
이정미는 천장을 바라보며 눈가를 훔쳐냈다.
“네가, 나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
차분하게 기다리고 있던 이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할아버지 앞에서 건방지게 말했던거… 죄송해요.”
이정미의 눈살이 다시 구져졌다.
배당금이나 받아먹으라는 말이 다시금 떠오른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마음을 사기 위해서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어요. 고모도 잘 아시잖아요.
달릴 땐 적토마처럼 앞뒤 안 보고 달리는 사람 좋아하시는거요.”
이정미가 어디 들어나 보자는 듯 팔짱을 꼈다.
“더 해봐.”
“SH건설, 제가 지분을 쥐고 있다고 해도 신기루처럼 사라질 걸 알아요.
큰아버지나 사촌 언니, 오빠들이 가만히 있겠어요? 제가 무슨 힘이 있겠어요.”
이정훈에게 고개를 돌린 이혜림이 미소지으며 말을 이었다.
“SH건설은 오빠 몫이잖아.”
이혜림은 다시 고모를 바라봤다.
“고모가 그렇게 만들어주실 거잖아요. 지분은 잠시 제가 들고 있을게요.
나중에 정훈 오빠 힘이 될 수 있게 제가 들고 있을게요.”
고모부의 웃음소리가 거실을 울렸다.
“우리 조카, 줄을 설 줄 아네! 줄을 설 줄 알아! 하하하!”
이정미가 남편을 쏘아봤다.
“조용히 하라고 했지?”
그는 이마를 슥슥 문지르며 입을 다물었다.
“네가 들고 있겠다고?”
“네. 제가 원하는 건 명함 하나예요. SH건설의 상무 자리.
지금 앉아 있는 자리만 지키고 싶어요.
고모가 그렇게 힘써 주시면, 때가 되었을 때 정훈 오빠한테 지분 절반을 넘길게요.
그때까지 따가운 눈총과 질타는 제가 받고 있을게요. 저 그런거 익숙하거든요.”
가만히 이혜림을 바라보고 있었던 이정훈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혜림아, 너 그거 기억해? 가족들끼리 리조트 놀러 갔을때 말이야.
너 그때 물에 빠진거. 내가 건져줬잔아.”
이혜림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밀었는지는 기억을 못 하나 보다.
이정훈이 짙게 미소를 지은 채 말을 이었다.
“그래, 상무 자리, 내가 책임져 줄게. 약속한다.
네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막내 사촌 동생이 다치는 건 원치 않았거든.”
어느새 다가온 이정미가 이혜림의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그리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혜림이를 바라봤다.
“애쓴다. 애써… 이런 기특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고모가 여태껏 몰랐어.
그 동안…… 혼자 많이 힘들었지?
고모가 항상 네 생각은 했었는데, 알잖니, 네 고모부 뒷바라지 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고모, 상무 자리만 꼭 약속해 주세요.”
고모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힘주어 말했다.
“그래, 상무 자리, 그거 네 거 해.
정훈이가 잘 이끌어줄 거야.”
지금 아빠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혜림이에게 지분을 바로 넘겨받는 건 모양새가 좋자 않은 일이었다.
다른 형제들에게도 말이다.
알게 모르게 견제가 들어올 것이 틀림없었다.
이렇게 아빠에게 신임을 받고 있는 혜림이가 가지고 있는게 맞았다.
혜림이의 손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이정미의 미소가 짙어졌다.
어린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달달 떠는 어린애.
그녀의 눈에 이혜림이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혜림의 위치가 딱 그러했다.
어렸을 적부터 천대와 무시를 받고 자라왔으니 말이다.
사방이 적이니 지칠대로 지쳐 있을 테고, 어딘가에 의지를 하고 싶을 것이다.
이정미가 이혜림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앞으로 힘든 일 있으면 고모한테 다 말해. 알았지?”
이혜림도 손을 들어 고모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네. 고모.”
하지만 눈빛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그때 이정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었다.
“어, 정혜야.”
– 언니, 가만히 있을거야? 아빠한테 따로 찾아가야 하는거 아니야?
혜림이 그년이……
“얘! 조카한테 못 하는 말이 없어! 언제 철들래, 너?
혜림이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겠어? 받을만해.
아빠가 결정한 일이고. 너도 앞으로 고모면 고모답게 보듬어줘.
조카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굴지 말고.”
– 언니……
“끊는다.”
통화를 마친 이정미가 다시 눈꼬리를 내리며 미소를 만들었다.
“혜림아, 고모들이 이렇게 못났다. 못났어.”
“아니에요. 입장 차이라는게 있잖아요. 이해해요.”
“우리 혜림이 다 컷구나. 차 한잔 마실래? 앉아.”
“아니에요. 회사에 가 봐야 해서요.”
“그래? 정훈아, 네가 혜림이 좀 바래다줘. 차로 움직인다지만 밤길이야.”
“알겠어.”
“괜찮은데……”
고모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 이렇게 짬짬이 시간 있을 때 서로 얘기도 좀 나누고.”
“알겠어요.”
이혜림은 더 이상 거절하지 않고 이정훈과 함께 차에 올랐다.
“회사로 가면 되지?”
“응.”
이정훈은 바로 차를 몰았고 이혜림은 창밖을 응시했다.
“혜림아. 일도 좋지만, 쉬엄쉬엄해. 그러다 몸 상한다.
아, 남자친구는? 연애도 해봐야지.”
이혜림은 이정훈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리에서 허리, 가슴 그리고 어깨.
그의 시선이 움직임에 따라 마치 몸에 벌레가 기어다니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혜림의 표정은 담담했다.
“아직 배워야 할 일도 많고, 아. 언제 바람 쐴 겸 요환이 오빠 보러 가봐.
오빠 스노쿨링 스킨스쿠버 좋아하잔아?”
정면을 응시하며 말하던 이혜림이 고개를 돌려 이정훈을 바라봤다.
그러면서 슬며시 미소 지었다.
“티겟, 내가 예약해 놓을까?”
이혜림에게 있어서 나름 의미 있는 말이었다.
“뭐, 나중에 시간 나면 한번 가야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이혜림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거렸다.
“가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티켓은 내가 준비해줄게. 퍼스트 클래스로.”
물론, 편도다.
돌아오는 티켓은 쥐여 주지 않을 것이었다.
이윽고 SH건설에 도착한 이혜림은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바래다줘서 고마워.”
“나 차 한잔 안 주나?”
미소 짓고 있는 이정훈의 말에 이혜림도 미소로 답했다.
“할 일이 많아서. 나중에 마시자. 차는 몰고 가고. 나중에 찾을러 갈게.”
“오케이. 수고해.”
그렇게 이정훈과 헤어진 이혜림은 멀어지는 차를 바라봤다.
“벌레가, 너무 많네.”
이제야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스멀스멀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이혜림은 환기를 시키듯 머리를 쓸어올렸다.
“해충이야?”
대뜸 들려오는 목소리에 이혜림이 깜짝 놀라며 몸을 틀었다.
빨간 츄리닝 차림의 우진이었다.
“우진아?”
“해충은 박멸해야지.”
우진의 등장에 그녀의 하얀 치아가 드러났다.
정말 시원한 미소였다.
피곤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떻게 왔어? 집에 간거 아니었어? 나 기다린거야?”
그녀의 연속되는 질문에 우진이 말을 꺼냈다.
“오늘 수고가 많았네.”
툭.
우진의 오른손이 그녀의 머리 위에 포개졌다.
순간 이혜림의 두 눈이 커지고, 동공이 영상처럼 천천히 확장됐다.
“수고했어.”
심적으로 쉴 곳이 그 어디에도 없는 그녀였다.
그래서 만들어주려고 찾아왔다.
그런 우진의 생각을 알아차린 것일까?
이혜림의 입술이 당겨졌다.
얼굴이 뜨거워진다고 느꼇을 땐, 눈가에선 물기가 느껴졌다.
“나 주책맞게 왜 이러지?”
슥슥 눈가를 훔쳐내던 이혜림은 또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뇌가 정지되듯 그녀의 사고가 멈춰버렸다.
우진이 자신을 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진의 품에 안겨 있던 이혜림이 눈을 깜빡거리고 있을때, 우진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혜림이 따뜻하네.”
우진은 혜림이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여주었다.
“우진아.”
“응?”
“고마워.”
둘은 그렇게 잠깐 동안 아무말 없이 멈춰 있었다.
이윽고 우진이 그녀의 어깨를 살포시 붙잡으며 물었다.
“울어?”
“아니.”
“우는 것 같은데.”
우진이 허리를 낮추고 고개를 들어 올려 그녀를 올려다봤다.
“우냐?”
“왜 이래?”
“우는 것 같은데?”
이혜림이 우진의 등짝을 때렸다.
짝!
“그만해. 재미없어.”
우진이 어깨를 슥슥 문지르며 말을 바꿨다.
“혜림아, 우리 오랜만에 놀까?”
그녀가 피식 웃었다.
아니 빙긋 미소 지었다.
“그럴까?”
우진과 혜림이는 너 나 할 것 없이 번화가로 걸음을 움직였다.
이것저것 구경하며 노는 둘의 모습은 마치 사진처럼 찍히는 것만 같았다.
우진이 펀치를 치는 모습, 혜림이가 두더지를 잡는 모습이.
또 인형 뽑기를 하며 동공이 흔들리고 있는 우진의 반응도.
“이게 안 된다고?”
둘은 호떡도 손에 쥐고 거리를 걸었다.
사람들은 많았고 둘도 거기에 속해 있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아도 됐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노래방도 가게 되었는데, 우진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이혜림은 눈을 깜빡이며 탬버린을 쳐 주었다.
짤랑, 짤랑.
“전우여~ 보이는가~ 한 맺힌 눈동자~”
———————————————–
며칠 뒤.
이혜림은 SH건설의 지분을 총 14%를 가지게 되었고, 사촌들의 따가운 시선들이 있었지만, 그녀는 안중에 두지도 않았다.
그리고 고모 이정미가 나서서 그러한 분위기를 잠재우기 위해 입김을 불어댔다.
‘막내 조카 못 잡아먹어서 안달들이야! 부끄럽지도 않니?’
이혜림의 방패막이라도 되려는 듯 쉴드를 치고 있었다.
한편, 우진은 김철웅 부부장검사실에서 사건 서류들을 슥슥 넘겨보고 있었다.
그때 김철웅 검사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내가 손님 같아.”
“사탕 하나만 먹어도 될까요?”
“이제 물어보자 않고 먹을 때도 되지 않았어요?”
“감사합니다.”
사탕을 입으로 가져간 우진이 전처럼 서류를 슥슥 넘겨보며 입을 열었다.
“혜림이가 SH건설의 지분을 14% 가지게 됐어요.”
“이야…… 축하한다고 전화 한 통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대신 말 전해줘요?”
“네. 검사님 이거.”
우진이 들고 있던 서류 봉투를 김철웅에게 스윽 내밀었다.
사건 서류가 아니었다.
“이게 뭐에요?”
서류를 슥슥 넘겨보던 김철웅 검사의 눈이 커져갔다.
“이거……”
사람의 명단과 숫자들이 어지럽게 섞여 있었는데.
우진이 SH Strategy에서 건네받은 서류를 정리한 것이었다.
“신화전기, 차명계좌의 명단과 분식회계 정황들이에요.”
김철웅이 안경을 고쳐 쓰며 물었다.
“이거 사실이에요?”
“네.”
김철웅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우진이 이걸 가져왔다는 의미는 한 가지다.
“이거 조사 들어가면 나 승진 못 할것 같은데?”
“승진에 관심 없으시잖아요.”
정계에 관심이 있는 검사님이다.
그리고 그 뒷배는 혜림이가 될 것이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선 혜림이가 잘되어야 했다.
“아이고야……”
미간을 꾹꾹 누르던 김철웅이 씨익 웃었다.
“뭐 해봅시다.”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번엔 흔들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