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Genius Who Sees Through the World RAW novel - Chapter (163)
천재, 세상을 읽다 천재 세상을 읽다-163화(163/200)
#163화. 하나, 둘. 6
빨간색 수성 사인펜을 그의 몸에 죽죽 긋던, 우진이 행동을 멈췄다.
흥얼거리던 콧노래도 멈췄고 미소를 짓고 있던 웃음기도 사라져 버렸다.
우진은 이윽고 수성 사인펜의 뚜껑을 닫으며 입을 열었다.
“재미없네. 재미가 없어.”
“미친 새끼. 죽이려면 빨리 죽여.”
우진이 피식 웃었다.
“나도 그러고 싶어. 내가, 완전하게 이 몸을 지배했다면 당신은 죽었어. 시체도 찾지 못했을 거야.”
머릿속에서 녀석이, 그걸 막고 있었다.
“정신 나간 새끼, 개소리도 적당히 해야…….”
우진은 가운뎃손가락을 당겨 그의 이마에 꿀밤을 먹였다.
따악!
몸을 돌려 거실로 나가는 우진의 귓가로 그의 목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어디 가, 이 새끼야! 죽여! 죽이라고!”
콰앙.
문을 닫은 우진은 거실에 걸려 있는 거울을 바라봤다.
순간, 머릿속에서 울리듯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만족하나?]우진의 얼굴이, 아니 무의식의 한쪽 입꼬리가 위로 짙게 올라갔다.
“만족은 언제나 못 했지.”
[네가 놀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하는데.]“부족해 그것도 많이. 내게 맡겨 봐. 신화그룹? 이 회장이 앉아 있는 그 자리. 내가 거기에 너 앉혀 줄게. 어때?”
[그게 너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건가?]무의식은 거울을 보며 고개를 천천히 주억거렸다.
“너도 할 수 있겠지, 다만, 넌 너무 느려.”
[느리다라……. 판단은 네가 하는 게 아니야. 내가 하는 거지.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에 이기적일 수밖에 없지만… 넌 너무 이기적이야. 그래서 평범하지가 않아.]“하하하!”
무의식이 고개를 젖혀가며 웃었다.
“야 뭐라고? 평범? 네가 평범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자체가 덜떨어진 거야. 재능을 썩히는 꼴이지. 우린 마음만 먹으면 뭐라도 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이 멍청한 자식아.”
[…….]무의식이 여유롭게 팔짱을 끼며 다시금 거울을 쳐다봤다.
“이 얼굴이 평범하다고 생각하나? 난 아주 잘생겼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평범을 정의해 줄까? 인간은 항상 욕망과 욕구에 의해 반응하며 움직이지. 인간은 그래서 일을 하는 거야. 돈, 그 종이 쪼가리를 얻기 위해서 말이야. 그리고 항상 원해. 계속해서. 돈이 더 많아지기를 갈망하고, 보다 더 행복해지기를 바라지. 이성을 만나는 것도 같은 이치야. 그걸 쫓는 게 평범하지 않다?”
[내가 말했지.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넌 그 이상으로 이기적이라고. 이유는 간단해. 넌 욕망 그 자체니까. 그래서 내가 널 컨트롤할 수 있는 거야. 내 뇌의 일부를 구성하는 부속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아쉬워하지도 말고 억울해하지도 마. 원래 그랬던 것이었으니까.]무의식이 버럭 소리쳤다.
“널 구해준 사람이 누군데!”
콰직!
무의식의 주먹이 그대로 거울에 꽂혀 버렸다.
거울이 거미줄처럼 쩍 갈라졌다.
그 사이사이로 무의식의 눈빛이 섬뜩하게 보였다.
[그거 또한 나였다고 말할 수 있어. 내가 너를 부르지 않는다고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마. 언제나 너는 내 안에 있고, 종종 내 울타리 안에서 뛰어놀 수 있게 해줄게. 그럼…….]“씨바아알!”
소리치던 무의식의 입이 다물어졌다.
동시에 매섭던 눈빛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강아지 같은 눈매로 돌아와 있었다.
우진이 돌아온 것이었다.
상처가 난 주먹을 바라보던 우진은 식탁에 올려져 있는 붕대로 손을 둘둘 감았다.
그리고 김만팔이 있는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동공이 흔들릴 정도로 우진을 정말 미친 사람처럼 쳐다보고 있었다.
거실에서 혼잣말로 그 난리를 치는데…….
우진이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에게 관심이 없었지만……. 무의식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어서 그랬어요.”
무의식의 욕망을 어느 정도 채워줄 필요가 있었다.
“미친 새끼.”
“그냥 그렇다구요. 우리 인연은 여기까지인 것 같아요.”
우진이 그에게 다가가자 김만팔이 묶여 있는 상태로 움찔거렸다.
* * *
벌컥!
우진이 있는 빌라의 현관문이 벌컥 열렸다.
“우진아!”
다급하게 들어온 것은 김태현과 최기철 형사였다.
거실에 앉아 있었던 우진이 일어났다.
“오셨어요?”
김태현이 급하게 물었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다쳤어?”
최기철이 우진의 손에 둘러 있는 붕대를 보며 흥분하듯이 물었다.
“괜찮아요. 그 사람 방에 있어요.”
우진의 말에 최기철이 황급하게 방으로 향했다.
침대 위에 뒤로 수갑을 찬 듯 끈으로 묶여 있는 중년인이 누워 있었다.
발도 결박된 건 마찬가지였다.
최기철은 그에게 다가가며 바로 핸드폰의 사진과 그의 얼굴을 매치하듯 쳐다봤다.
우진의 말대로 수배자의 얼굴과 똑같았다.
수년 전 어린아이를 납치해 노예처럼 부렸던 탈주범이었다.
“선배님! 김만팔이 맞습니다!”
방에서 들려오는 최기철의 말에 김태현이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경찰에 전화하는 것보다 김 형사님 실적 올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우진아, 안 그래도 된다니까. 근데 우진아 어떻게…….”
김태현이 의아스럽다는 듯 말끝을 흐렸다.
이곳은 우진의 예전 집이었다.
그리고 탈주범이 이 안에 같이 있다.
그때, 우진이 그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려는 듯 입을 열었다.
“저 사람이 납치했던 어린아이. 그게 저였어요.”
“어?”
“창고에 갇혀 있던 신우진. 그 아이가 저였어요.”
김태현의 눈이 부릅떠졌다.
웬만한 경찰들이라면 모두 떠올릴 수 있는 사건이었다.
우진은 담담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자살 시도를 하고 병원으로 옮겨졌던 김만팔 씨가 도망쳤다는 소식에 저를 찾아올 줄 알았어요. 그래서 기다렸고.”
“그……. 납치됐던 아이가 너였다고?”
“네.”
김태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손으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잠깐만 우진아, 잠깐만.”
“제가 잡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이름도요.”
“그건 걱정하지 말고……. 하, 잠깐만, 잠깐만. 이게 대체. 네가 그 납치됐던……. 하…….”
김태현은 우진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우진과 함께했던 지난 시간들이 마치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개꿀맛이네요.’
‘그래서 그 사람이 범인 같아요.’
‘소고기 드시러 가실래요? 넘버나인으로요.’
‘다 해보고 싶어요. 해변에서 모래성도 만들어 보고 싶고.’
‘냉면도 가능할까요?’
그 말들과 모습들이, 너무 슬프게 다가온다.
저 강아지같이 선한 눈빛이, 갑자기 슬프게 보인다.
그때 최기철이 김만팔을 방에서 데리고 나왔다.
“저 새끼가 나 가둬 놨어! 범죄 아니야!?”
최기철이 인상을 찌푸리며 김만팔의 걸음을 재촉했다.
“이 양반이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그렇게 김만팔이 최기철의 손에 이끌려 우진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아니 그때 김만팔이 목구멍으로 가래를 크게 끌어 올렸다.
“이거나 먹어라.”
그 순간, 김태현의 손의 멱살을 쥐듯 그의 입을 막아 버렸다.
김태현의 눈가는 감정에 휩싸인 듯 어느새 붉어져 있었다.
“이 씨발 노친네야.”
얼마나 힘을 주고 있는 것인지 김태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우진의 그의 팔에 손을 올렸다.
“김 형사님.”
우진의 말리는 행동에, 김태현이 김만팔을 직시하며 겨우 말을 꺼냈다.
“곱게 가자. 기철아, 먼저 데리고 가 있어.”
“선배님은요?”
“나?”
갑자기 김태현은 애써 웃음을 만들어냈다.
“우진이랑 밥 먹고 들어가게.”
그리고 우진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더 말했다간 눈에서 눈물이 떨어질 것만 같았다.
“소고기로다가.”
* * *
우진과 김태현이 앉아 있는 돼지 갈빗집엔 사람들로 바글바글거렸다.
“소고기 사준다니까.”
“자주 먹으면 질려서요.”
“냉면?”
“괜찮으시겠어요?”
“어허. 동생이 형 걱정하는 거 아니라고 했지? 그리고 이 형 진급했잖아. 하하하!”
“그럼 물냉으로 주문하겠습니다.”
“두 개 다 시켜도 돼.”
“저 그렇게 잔인무도한 사람 아니에요. 아, 김 형사님. 김만팔 씨, 저 말고도 다른 아이를 납치했었던 것 같아요. 산에서 부패가 완전하게 진행되지 않은 시신을 다시 묻는 걸 봤거든요.”
짐승이 파헤쳤던 것이었다.
“그래?”
“저보다 먼저 납치되어서 살해당했을 가능성이 커요. 경찰에 구조되었을 당시 말했어야 했는데. 그땐 제 정신이 온전치 않아서. 이젠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어요. 같이 가실래요?”
김태현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우진이 납치됐던 기억을 되뇌게 하는 것이 싫었다.
“위치만 대략 말해주면 돼.”
“그럼, 약도처럼 종이에 그려드릴게요.”
“그래.”
“고기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불판에 고기를 올려놓으려고 하자 김태현이 말했다.
“제가 구울게요. 물냉면 두 개 주세요.”
“네에~”
그렇게 김태현이 고기 집게를 잡았을 때.
“김 형사님.”
“어?”
“제가 구울게요.”
“괜찮아. 형이 맛있게 구워 줄게.”
“김 형사님이 구우면 맛이 없어서 그래요.”
김태현이 어색하게 웃었다.
“아……. 그랬어?”
“맛이 없기보단 고기 맛이 평범해져서요. 제가 구울게요.”
“진작 말하지 그랬어?”
아무렇지 않게 웃던 김태현은 한쪽 팔을 의자에 걸쳤다.
괜히 자신의 감정을 내비쳐서 우진을 불편하게 만들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진이 말하는 ‘평범’.
그곳에 오랜 시간 갇혀 있어 평범을 그토록 원하는 것이 아닐까…….
김태현은 겉으로 태연한 척하고 있어도, 자꾸만 우진을 훔쳐보듯 슬쩍슬쩍 바라봤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고, 평소처럼 우진을 대하기가 어려웠다.
김태현은 마른세수하듯 얼굴을 벅벅 문질렀다.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줘야 할까.
“먹어도 될 것 같아요.”
김태현이 치아를 드러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 우리 동생 실력 좀 볼까나.”
갈비를 한 점 집어 입으로 가져간 김태현이 눈을 감으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역시, 우진아, 어떻게 구우면 이렇게 맛있는 거야?”
“돼지고기의 구성 성분은 70~75%가 수분이에요. 나머지는 거의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는데, 돼지의 품종이나 암수의 구별, 나이, 사양 조건 또 영양 상태나 건강 상태에 따라 차이가 나지만, 내외적인 보수력에 따라 질이 결정되기도 해요. 숙성 정도도.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고려해 고기를 구울 때는 지방의 정도, 근장 단백질과 근원섬유 단백질, 육기질 단백질을 인식하고 결합 조직 단백질인……. 일단 구운 건 먹고 말씀해 드릴게요.”
김태현이 손을 세차게 저었다.
“아니아니!? 설명 안 해줘도 돼. 무슨 말인지 알겠다! 어서 먹어먹어.”
당연히 무슨 말인지 몰랐다.
다만 숙성과 돼지 갈비의 성분을 이해하면 더 맛있게 구울 수 있다는 뜻인 것 같았다.
“어우야…….”
우진의 감탄에 김태현은 그제야 의식적이지 않은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우진이 고기 한 점을 젓가락으로 잡으며 말했다.
“그렇게 웃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평범하게, 남들처럼 이야기 주고받으면서 말이에요. 김 형사님이 저를 안타깝고 어렵게 생각하시면, 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게 되잖아요.”